꽃 피는 소리/ 백이운
나누고 베푸는 것인 줄 알았더니
알아서 갈 데로 가는 차와 찻잔들
기쁘게 꽃 피는 소리 멀리서도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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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처럼/ 김선희
가장 붉게 빛날 때 제 몸을 떨구는 것
감탄사 눈길마다 우쭐하는 마음도 그만
사랑도
내려놓아야
마침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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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김연희
새실쟁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
마음 담은 그릇 하나라도 제대로 닦아
말본새
글 향이 나는
질향로 되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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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달의 행방/ 김용주
네거리 모퉁이에 허름한 슬레이트집
낮달이 소리 없이 들어와 놀다 간 뒤
한 켤레 해진 구두가 천연스레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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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 김학동
고장난 채 긴 잠을 잔다
수많은 사연 안고
한 편의 드라마인가
초점 잃은 눈동자
언젠간 깨어날 추억
오늘은 덮어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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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찾는 사람들/ 김효신
전셋집이 사라져버린 오래된 주택가
무보증 월세집이 이름을 내걸었다
빈집은 사람을 찾고 사람들은 집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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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돌목/ 김희선
잔잔히 흐르는 물에 이 마음 맡겨두고
내 삶도 저리 흘러가리라 여겼는데
때로는 거센 물살이 갈 길을 열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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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바다/ 문주환
가을 하늘 바다에다 파랗게 수를 놓아
같이 왔던 별들이 윤슬 되어 반짝인다
바다는 수평선에서
섬을 보면 또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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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푸른 날/ 박남식
볏논의 이마를 바람결 스쳐 가네
찰나를 영원이라 여기고 속삭인 말
너에게 들킬 것같이 가슴 먹먹 푸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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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3년 부처님/ 서석조
부처님, 저 취직 좀 되게 해주십시오
네 이놈, 너하고 나하고 자리 바꾸자
너처럼 밥 먹고 앉아 빌기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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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이희숙
겉잎이 여린 속잎 가슴으로 품으면
고 어린 속잎 자라 저도 한껏 보듬는다
사랑은 따뜻한 품에 안아주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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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언니/ 정도영
벚꽃 구경, 눈멀도록 안 보았겠나, 팔순이니
이쯤에는 안 볼란다, 텃밭이나 갈 일이지
밤마다 허리를 앓는 우리 언니 봄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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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 정용국
그대 몸에 듬뿍 묻어
한 획으로 남고 싶다
사지의 벌판 위를
거침없이 내닫다가
일순에
천지를 가르는
대자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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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황삼연
동주가 헤는 별엔 보고픈 이 여럿 되어
새는 날 우련토록 미어지는 노래여
별 하나
더듬대는 나
떨어질까 조바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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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세계 포엠 제5호/ 시조세계시인회/ 2024
바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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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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