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자도는 육지와 인연을 끊어 놓는 유배의 섬이었다. 유배지는 대부분 산세가 거칠고 토질이 척박해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살아가는, 뭍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윤선도의 유배지 보길도가 그렇고, 정약전이 아우 정약용과 나주에서 눈물로 헤어진 후 찾아간 유배지 흑산도가 그렇다.
조선문인화(朝鮮文人畵)의 세계를 연 화가 조희룡의 유배지 임자도 또한 척박한 곳이었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시 새한도를 그려 유배생활의 심경을 표현했다면 우봉 조희룡은 ‘거친 산, 찬 구름 그림’이라는 의미의 황산냉운도(荒山冷雲圖)를 그려 유배지의 심경을 표현했다.
들에 자생하는 깻잎이나 겨우 뜯어 먹고 사는 척박한 곳이라 해 임자도(荏子島:들깨섬)라 한 곳이니 오죽했을까. 우봉 조희룡이 유배생활에서 화혼을 불사른 남다른 이야기기가 묻어 있는 망중한의 섬이기에 더욱 관심이 끌렸다. 우봉 조희룡은 추사 김정희의 수제자요 심복으로 알려져, 권력 다툼에 희생양이 되어 나이 63세(1851년 8월)에 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유배당한 이다. 그의 유배지 임자도를 그림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임자도는 예전에는 목포에서 여섯 시간이나 걸리는 뱃길 때문에 왕래가 어려웠으나, 무안 해제~신안 지도 간 연륙교가 세워지고 지도읍 점암과 임자도를 잇는 철부선이 운항하면서 서울에서 승용차로 당일에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섬이 되었다. 원래 대둔산 및 삼학산, 불갑산, 검무산 등 여러 산을 중심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연안조류와 파랑(波浪) 등에 의해 산지가 침식되고 흘러내린 토사가 퇴적되어 하나의 섬이 되었다.
이제는 곳곳에 간척을 해 드넓은 들판과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이 많아 척박한 유배의 섬이 아닌 풍요의 섬으로 변신했다. 또한 아름다운 해안선과 각자 개성을 갖춘 산들이 산재해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섬이기도 하다. 산행은 벙산~불갑산(224.3m)~장목제~삼각산(211.9m)~부동재~대둔산(319.5m)~원상리로 이어가는 16km 종주코스가 있지만 대부분 장목제에서 원상리로 하산하는 8.5km 산행코스를 택한다.
- ▲ 1 삼각산에 오르며 만난 석릉과 암봉. 2 제1조망처에서 바라본 염전이 있는 이흑암리 들녘. 3 대둔산 정상에서 바라본 어머리해수욕장과 양파밭.
-
‘불광불급’을 말한 조희룡의 유배지
막배를 타고 검은 밤바다를 헤치고 유배의 섬 임자도를 찾아가며 조희룡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지만 어찌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임자도에 밤 늦게 도착해 함께 간 김남규씨 친구가 경영하는 대하양식장에서 갓 건져낸 펄펄 뛰는 대하를 안주 삼아 보석을 뿌려 놓은 듯한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동편 산릉으로 솟아오른 밝은 달이 대광리해수욕장 드넓은 바닷가로 나를 안내했다. 달빛은 파도에 부서지고 별빛은 가슴으로 쏟아졌다. 모두가 떠나고 없는 광활한 백사장에 홀로 서니 밤바다의 적막함이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살포시 나를 감싸안는다.
한양에서 불원천리 이곳까지 유배 온 조희룡은 바닷가 밝은 달을 쳐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외로운 마음을 달래고자 그림에 몰두하며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남이 미치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려면 미치지 않고는 안 된다. 미쳐야 미친다. ‘미치려면(及) 미쳐라(狂)’고 했다. 그런 자신의 행동을 ‘돌로 찍어 먹고, 글자를 달여 먹는다’고 해명했다. 괴석에 몰두해 밥 먹는 것을 잊었으니 돌을 찍어 먹은 것이고, 그림을 그리고 제화를 쓰며 그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느라고 배고픔을 몰랐으니 글자를 달여 먹는다고 했다.
조희룡에게 그림은 처절하게 지친 그를 유배지에서 지탱해주는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유배지 오두막집에 ‘만구음관(萬鷗햌金館:만 마리의 갈매기가 우지짖는 집)’이라는 편액을 붙이고 그 속에 칩거하면서 집필과 작품 활동을 미친 듯이 했다. 당호가 있는 그의 그림 19점 중 홍매도대련(紅梅圖對聯), 홍백매팔연폭(紅白梅八連幅), 위천하지노인도(爲天下之老人圖) 등 8점이 이때 나왔다. 또 산문집 <화구암난묵(畵鷗 墨)>, 시집 <우해악암고(又海嶽菴槁)>, 서간문집 <수경재해외적독(壽鏡齋海外赤牘)>, 예술논문집 <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畵雜存)> 등을 임자도에서 저술했다고 한다.
그가 그림을 그린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요, 명예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는 어느 한곳에 미치지(狂) 않으면 안 되는 성품이자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상념에 빠져 있는 내 발등을 하얀 파도가 덥치며 나더러 불광불급(不狂不及)한 마음을 갖고 살라 한다.
대기리와 광산리 뒷단에 펼쳐진 대광리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넓은 해수욕장이다. 백사장의 길이는 12㎞나 되고, 폭이 300m가 넘는다. 달빛에 비친 드넓은 백사장은 참으로 그 끝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바닷가 끝자락 바위섬에 등대불이 깜박이며 서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이 해수욕장 끝임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작은 암봉들로 이루어진 바윗길의 연속
다음 날 이른 아침 대파향이 그윽한 들판을 지나 벙산 입구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본 후 대둔산에 오르기 위해 곧바로 장목제로 이동했다. 지나는 길 옆에는 온통 파밭이다. 전국 대파 생산량의 60%가 임자도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삼각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 뙈기밭에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말라 비틀어진 고구마 줄기에 작은 고구마가 몇 개 매달려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의 고구마밭에서 서리를 하다 주인의 고함소리에 놀라 줄행랑을 치던 일이 아련히 떠올랐다. 언덕배기 조밭에는 허수아비가 아직 졸며 서 있고 아침 이슬에 함초롬히 젖은 조 이삭은 벌써 잠에서 깨어나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아침 햇살을 받은 조밭에는 참새 떼가 후르르 내려앉았다. 가을걷이가 다 끝나고 먹을 것이 없으면 찾아오는 참새도 없어 허수아비는 외로울 것이다.
삼각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한적하고 잘 정리되어 있었다. 금년 4월에 튤립축제와 함께 제7회 전국 섬산 등산대회를 치르느라 정리를 잘해 놓은 모양이다. 임자도에서는 매년 봄이면 화려한 튤립축제와 함께 등산대회도 열린다고 한다.
등산로로 접어드니 인기척에 놀란 까투리 두 마리가 푸드득 숲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너무 늘어난 산짐승 때문에 산 아래 있는 농경지는 작물 피해가 심하다고 한다. 길 옆에는 진분홍 키 작은 코스모스 몇 송이가 아직 가을을 붙잡고 있었다.
‘삼각산 2.1km, 대둔산 5.8km’로 표시된 이정표와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박상범씨는 간밤에 대하로 잔뜩 기운을 충천한 탓인지 가파른 산길을 가뿐하게 올랐다.
이른 아침이라서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곳곳에 널려 있는 각시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붙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잡목과 풀을 제거해 놓은 촉촉히 젖은 등산로를 따라 첫 번째 조망처 너럭바위에 올라서니 이른 아침의 고요함과 서정적인 분위기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추수가 끝난 광활한 들녘, 한여름 땡볕에 달구어졌을 염전, 먼 바다 해무 위로 솟아오른 작은 섬들, 이 모든 것들이 한 폭의 수묵담채화를 보는 듯했다.
들머리 벙산이 멀어져 보이고, 그 옆 광활한 대광리해수욕장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바닷가 가까운 들판은 온통 초록빛 대파밭이다.
잡목지대를 지나 작은 암봉들로 이루어진 바윗길을 조심스럽게 올랐다. 유난히 임자도에는 괴석이나 무늬석이 많다고 한다. 그것이 조희룡에게는 무한한 창작품을 낳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당대까지는 그리지 않던 ‘괴석도’를 그렸다. 그는 “사람들은 실제의 돌을 사랑하지만 나는 그림 속의 돌을 사랑한다. 실제의 돌은 외부에 존재하고 그림 속의 돌은 내면에 존재한다. 그런즉 외부에 존재하는 것은 거짓 것이 되고 내면에 존재하는 것은 참된 것이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흔히 돌을 돌로만 봄으로써 희소한 괴석을 갖고도 그것이 왜 소중한가를 모른다. 그러나 그가 보는 괴석은 뚫려서 새고 쭈글쭈글하면서 여위고 움푹 파여 텅 비고 영롱한 것이 바로 천태산이요, 안탕산이며, 나부산이고, 오대산이다. 이 모두 중국에 있지만 천하의 명산으로 꼽힌다. 천하의 산을 다 가볼 수 없고, 천하의 물을 다 볼 수 없다. 그러므로 괴석을 통해 그 산을 보는 것이다. 대문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편안히 앉아서 천하의 오악을 접할 수 있으며 그것은 바로 우주를 보는 것이다. 조희룡은 이것이 괴석을 그리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고 했으며 이를 와유(臥遊)라고 했다.
바위지대를 지나 삼각산 정상에 올랐다. 대둔산으로 이어진 산릉이 말굽형으로 되어 있어 대둔산 정상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다. 나뭇가지 사이에서 거미줄을 쳐놓고 각시거미가 오색찬란한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
북동쪽의 중첩한 작은 섬들이 다도해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겹겹이 늘어서 있다. 삼각산에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른 길로 로프만 설치되어 있을 뿐 등산로가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조금 내려서니 나뭇가지에 임자면산악회 표지기가 매달려 있었다. 그곳에서 조금 더 내려서니 다시 정리된 등산로가 나타났다.
- ▲ 하산지점인 동백꽃이 피어 있는 원당마을. / 대하양식장 방죽에서 바라본 삼각산과 대둔산.
-
중첩한 작은 섬들로 더욱 아름다운 풍광
안부에 이르니 양편으로 옛 돌담 축대 흔적이 남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산길이 나타났다. 길 중앙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삼각산 1.5km, 부동재 1.5km’라고 표시되어 있다. 다시 잡풀이 우거진 숲속을 헤치고 비탈길을 올라서니 소나무가 서 있는 조망 좋은 곳이다. 오던 길을 뒤돌아봤다. 삼각산 정상과 등산로가 확연했다. 산자락 끝에 잘 정리된 들판은 마치 짜깁기를 해 놓은 보자기처럼 느껴졌다.
부동재에 도착했다. 이흑암리와 온동마을로 넘어다니는 콘크리트 포장이 된 작은 농로다. 주위는 억새꽃이 줄거리만 무성했다.
부동재에서 비탈길로 올라섰다. 산길에는 노랑 산국과 보랏빛 용담꽃이 새악시 얼굴처럼 곱다.
정상 조금 못 미쳐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꺾어 오르니 바로 대둔산 정상이다. 대둔산성의 흔적은 사라지고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데크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에 올라 어머리해수욕장의 그림 같은 풍경을 스케치한 후 만구음관의 초막이 있었던 이흑암리를 내려다보면서 조희룡의 학문과 예술의 열정을 느껴봤다.
조희룡은 남의 뒤를 따르지 않겠다는 ‘불긍거후(不肯車後)’라는 말을 통해 조선문인화의 첫 단추를 끼웠으며, “문인이라면 문자향(文字香:문자의 향기)과 서권기(書卷氣:책의 기운)가 들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스승 추사와는 달리 “비록 가슴속에 서권기 문자향이나 구학(邱壑)이 이루어져 있다 하더라도 손의 기량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것을 표현할 수 없다”라고 했다(그의 저서 <석우망년록>에서). ‘심의’보다 화가로서의 ‘기량’을 중시하는 화론을 새로이 정립한 것이다. 이를 조희룡 수예론(手藝論)이라 한다.
정상에서 가파른 바위지대로 내려서서 벌써 옷을 벗어 버린 소사나무 잡목숲을 헤치고 선인장 밭을 지나니 하산지점인 원상리마을이 나온다. 돌담 너머로 벌써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박상범씨에게 한 노모가 가까이 다가오며 “꽃이 많이 이쁘지요. 많이 찍어가세요. 우리 아들이 엄니 심심하면 보라고 심어 놨다요” 한다. 자랑이라도 하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노모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동백나무 바로 옆 고목이 된 매화 가지는 벌써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임자도는 ‘거친 산, 찬 구름’의 척박한 유배지가 아닌 평안하고 풍요로움이 가득한 아름다운 섬이었다.
접수완료
임자도에 두고온임자있는디 찿으러가야져
많이 늜었을꺼유 ``````````````
접수완료
박수영님 신청 접수합니다.
이쁜 아줌마 두명추가요 .이름 유유자.김영숙 정종연.````
접수완료
일단 신청합니다.
접수완료
김병기님 김숙자님 남동현님 신청 접수합니다.
대기인원 20명 이상 신청으로 2호차 증편 운행합니다.
조규호 임형산 임자도갑니다
접수완료
김재량님, 박관순님 신승렬님 신청 접수합니다.
정진선,정금옥 갑니다
접수완료
임자도 섬산행 한명추가요.이름..이성우....
접수완료
사정이생겨서못가게되어 죄송합니당
사정이 생겨 다시 가신다고 하니 접수합니다.
고태성님 오지원님 이옥희님 방정희님 신청 접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