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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안동김씨 역사 연구회(안사연)의 윤식(문온공파)씨가 정리한 글이며 사진은 발용(군사공파)씨가 촬영 편집한 글로서 안동김씨 대종회 홈페이지에서 옮겨 왔습니다.) 하늘로 흐르는 강, 상락대에 머물다 ◆ 일시 : 2013년 8월 10~11일(1박 2일) ◇ 주관 : 안동김씨역사연구회 ◆ 참가 : 경칭 생략(無順, ★ 표시는 부부 참여) ◇ 외빈 : 최성달(시인), 이영식(경상북도의회 의원), 상운 스님(안동시 용수사 주지), 김정모(대구일보 논설실장) 들어가는 말 대종회장님을 비롯한 문중 어르신들과 종친 여러분의 크나큰 성원과 염려 덕분에 안동김씨역사연구회가 주관한 제1회 2013년 여름캠프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특히 이상 고온으로 36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를 무릅쓰고 이번 행사에 귀한 걸음을 해 주신 봉회 대종회장님 등 원로 어르신들과 안동종친회 임원 및 일가분들, 의성 사촌 도평의공파 일가분들, 대구종친회 안김산악회 및 전국의 일가분들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또한 무더위 속에서 물심 양면으로 궂은일을 도맡아 애써 주신 사주(沙洲) 선생 종손 태성 씨와 위열 씨 두 분께 다시 한 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산과 물이 상락대 절경을 빚다
백두(白頭)가 수천 리를 달려오고, 함백산(咸白山) 샘물이 수백 리를 흘러서 안동김문의 성지 회곡(檜谷) 앞에서 한몸으로 어우러진 곳. 백두는 곳곳에 울끈불끈 용맥을 솟구치며 남으로 내달리다 안동으로 들어와 학가산을 일으켜 세우고, 학가산은 다시 용맥(龍脈) 한 줄기를 나누어 풍산읍 회곡동 맞은편에 건지산을 불끈 솟구친 다음 물가로 뻗어나가 수백 미터에 걸친 절벽을 빚어내 잠시 숨을 고른다. 함백산 샘물은 백두대간 곳곳의 물을 모아 용틀임을 틀다가 건지산 아래 상락대 절벽에 이르러 거대한 몸을 뉘었다가 장장 400km를 굽이돌며 남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백두 줄기와 낙동 물길이 만나 안동 최고 절경을 이룬 곳, 이곳이 바로 충렬공께서 심신을 수련하신 상락대(上洛臺)요, 고산정(孤山亭)을 품에 안은 천 년 유허 회곡이다. 상락대 아래 모래밭에서 상락대를 올려다보면 산과 물과 하늘, 말 그대로 자연이 빚은 하늘길이 눈에 그득하다. 마암과 상락대에 올라서면 물 속에 하늘과 산과 물이 또 하나 나타나니 그야말로 ‘하늘로 흐르는 강’이다. 1685년(숙종 11년) 음력 11월 사주(沙洲) 김양좌(金良佐) 선조께서는 내외손 예순여섯 분과 함께 지례촌 능동 충렬공 묘소를 성묘하고 제를 올린 뒤에 이듬해인 1686년 3월 28일 상락대에서 종회(宗會)를 열었다. 이때 사주 선생은 상락대를 비롯해 고산정과 회곡의 충렬공 유허에 관한 귀중한 기록을 남겼다. 당시 사주 선생께서는 이곳의 지세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능선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강의 남쪽 물가에 하늘까지 닿는 절벽이 높이 솟아 있고, 절벽의 중간에 상락대가 있고 상락대 위에는 큰 산이 가로로 뻗어 있고 많은 봉우리들이 다투어 솟아 있는데 간(干 : 방패) 같은 것, 순(楯 : 방패) 같은 것, 검(劍) 같은 것, 창 같은 것, 투구 같은 것, 갑옷 같은 것, 깃발 같은 것, 활과 화살 같은 것들이 있어 백만의 기병을 줄지어 세워 장막 밖을 빙 둘러 호위하고 있는 것 같으니, 세상에서 말하는 명승지라는 것이 이곳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경에 이르기를, ‘사악(四嶽)이 신령을 내려 보후(甫侯)와 신백(申伯)을 탄생시켰다.’라고 하였고, 또 ‘넘실넘실한 강수(江水)와 한수(漢水)는 남쪽 나라의 젖줄이로다.’라고 하였으니, 인걸은 지령(地靈)이라는 말을 결코 속일 수 없다.” ▲ 상락대 전경
종회에 참석한 충렬공의 내외손 예순여섯 분은 달리 표현하면 안동의 내로라하는 사대부가 거의 대부분 상락대에 집결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성김씨를 비롯해 청주정씨, 광산김씨 등 오늘날 안동의 명문대가가 충렬공의 피를 한 줄기씩 이어받았으니 종회를 열던 날은 안동부(安東府) 전체가 텅텅 비었을 것 같은 상상을 해 본다.
회곡종회기를 따라 하늘길로 향하다
사주 선생께서 기기묘묘하다고 표현한 상락대 하늘길과 물길을 걸으며 충렬공의 숨결과 자취를 되새기기 위해 <회곡종회기(檜谷宗會記)> 기록을 따라 2013년 8월 10일 안동으로 향한다. 이번 행사는 안동김씨사이버학술연구회의 발전적 해체를 거쳐 2013년 5월 3일 안동김씨역사연구회(安東金氏歷史硏究會 : 安史硏)로 거듭 난 이후 첫 행사이자, 충렬공과 사주 선생께서 남기신 유적 탐사와 함께 학술토론회가 진행되는만큼 여느 때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행사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안사연에서는 <회곡종회기>를 면밀히 검토한 다음 7월 6일 영환 회장 등 4명이 사전조사차 상락대와 상고산 일대를 먼저 답사하여 행사 준비를 점검하였다. 이에 앞서 안사연에서는 태영 부회장을 중심으로 학술대회용 책자 『회곡동ㆍ고산정ㆍ상락대』(안사연 제1집, 160面)에 수록할 자료들을 수집하여 편집작업에 착수하였다. 이어 7월 11일 서울 종로에서 회원 10명(영환, 재영, 재구, 윤만, 진회, 우회, 발용, 태우, 태영, 윤식)이 모여 임시회의를 갖고 행사 일정과 준비사항을 최종 점검하였다. 『사주유고(沙洲遺稿)』에 수록된 <회곡종회기>에 따르면, 예순여섯 분의 충렬공 내외손들이 상락대에서 종회를 개최할 당시 상락대 절벽 중간쯤에 3단으로 된 너럭바위가 있어 종회 참여자들이 그 위에 앉아 주연을 베풀고 절벽 사이 부추를 뜯어 안주로 삼았으며, 이분들의 이름을 바위에 새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고산정과 회곡 유허지에 관한 귀중한 기록을 남겼다.(자료집 회곡종회기 참조 <클릭하시면 별첨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행사는 이 유적들을 조사하여 그 동안 숙제로 남아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번 답사 한 번으로 해결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번 행사가 난항에 부닥치더라도 훗날 끊임없는 탐구로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라도 삼기 바라는 심정에서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07:00시 정각, 약속장소인 서울 잠실운동장 앞에 서울ㆍ경기지역 참가자들이 속속 도착해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기상 관측 이래 최장 장마라서인지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다행히 안동은 쾌청하다고 하니 일단은 안심이다. 하지만 안동지역 기온이 36도로 폭염주의보가 내린 상태라 원로 어르신들께서 한낮 행사를 어이 견디실까 걱정스러웠다. 오락가락하는 중부지방 날씨는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들어서고도 한참 지나서야 쾌청한 날씨로 바뀌었다. 대부분 아침을 거르고 나와 중간에 휴게소에서 허기를 달랠 예정이었으나 행사 준비를 위해 곧바로 안동으로 향했다.
▲ 서울 잠실야구장 앞에 모인 서울·경기지역 참가자들
11:50 풍산읍 풍산장터에 도착해 예약해 둔 식당 ‘설화맥적’에서 점심을 들고, 회곡으로 향한다. 마애리 인근을 지날 무렵 안동의 예전 모습을 잘 알고 계신 봉회 대종회장께서 6ㆍ25 직전까지만 해도 큰 배가 안동에 들어올 정도로 수량이 풍부했다고 들려주신다. 선사시대 유적과 상락대처럼 깎아지른 절벽이 절경을 이룬 마애리를 지나 12:45분경 상락대 옆 낙동강생태학습관에 도착해 12:50분 목적지 단호샌드파크공연장에 도착했다. 바로 옆이 권예 선생이 지은 낙강정이다.(자료집 판서연기 참조 <클릭하시면 별첨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가지나 구와집의 판서연기에 기록되어 있듯이 이 지역은 본래 충렬공의 채마밭으로 우리 후손들에게는 뜻깊은 곳이기도 하다.
안사연 학술대회, 새 지평을 열다
행사 시작이 14:00시 정각이므로 서둘러 현수막을 걸고 행사 준비를 시작하였다. 사주 선생 종손 태성 씨와 위열 씨가 트럭에 대형 천막과 각종 행사 준비물을 가득 싣고 먼저 도착해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이한다. 찌는 듯한 폭염으로 땀이 등줄기에서 줄줄 흐르는데, 13:20분경 느닷없이 서쪽하늘에 먹장구름이 몰려들더니 강풍이 몰아치면서 온 천지가 어두컴컴한 암흑 속에 묻혔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돌개바람이 몰아치면서 현수막을 고정시킨 끝이 순식간에 끊어졌다. 바람에 몸이 들썩일 정도였으니, 가느다란 끈이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20여 분 동안 강풍이 몰아치더니 소나기가 쏟아진다. 빗줄기가 옆으로 휘날리며 몸에 와 부딪는다. 바람이 거의 180도 수평으로 부는 것 같았다. 이대로 빗줄기가 계속 날리면 행사에 차질을 빚을 게 뻔했다. 서둘러 낙동강생태학습관 회의실을 빌려 학술대회 장소를 변경했다. ▲ 단호샌드파크 행사장에 걸린 현수막. 갑작스런 돌개바람과 소나기로 인해 낙동강생태학습관으로 장소를 옮겼다. ▲ 사주 선생 후손 위열(在항) 종친과 안사연 우회 종친 ▲ 행사 준비를 지켜보는 문중 원로. 왼쪽부터 영국 문온공파종회장, 광도 문온공파종회 이사, 봉회 대종회장 ▲ 갑작스런 돌풍과 소나기로 행사 도구를 철수한 직후 비를 피하는 안사연 회원들
낙동강생태학습관에는 어느새 안동과 사촌에서 찾아온 문중 어르신들과 종인들로 북적거렸다. 14:10분 영환 회장의 인사말과 태영 부회장의 경과보고를 시작으로 학술대회가 시작되었다. 이 자리에는 최근에 충렬공과 상락대에 대해 명문(名文)을 남긴 최성달 시인을 비롯해 이영식 의원, 상운 스님, 김정모 논설실장, 봉회 대종회장 등 내외빈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었다. 내외빈 소개 자리에서 이영식 의원은 여타 성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청장년 모임으로 안사연이라는 특이한 조직이 종사에 참여한다는 점과 각 파종회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가 이루어지는 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감회를 술회하였다. 봉회 대종회장은 문중 원로 소개 시에 그 동안 안사연이 종사에 큰 기여를 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새롭게 조직된 안사연이 이처럼 학술대회 겸 답사 행사를 개최해 대종회장으로서 고맙다는 치하 말씀을 하였다. 아울러 귀한 발걸음을 해 주신 안동과 사촌 문중 어르신 및 사주 선생 종손 태성 씨 소개가 이어졌다. 한편, 이 자리에 참석한 대종회장 등 여러 문중 원로 및 어르신들께서 각각 금일봉을 안사연에 전달하였다. 분에 넘치는 문중 어르신들과 일가분들의 격려를 받아 안사연 일동은 송구하기 그지없으며, 금일봉은 금액을 밝히지 않으니 혜량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 금일봉(無順) ◇ 물품 및 기타(無順)
▲ 낙동강생태학습관에 모인 문중 어르신과 참여 종친들 ▲ 부부 동반으로 제1회 안사연 여름캠프에 참여하신 우리 문중 며느님들. 더운 날씨에 고생하셨습니다.
14:40분 태영 부회장의 행사개요 설명에 이어 영환 회장이 <고산정(孤山亭)에 대한 고찰(考察)>을 발표하였다. 영환 회장은 발표 논문을 통해 회곡은 안동김문의 천년 세거지로서 안동은 물론 전국을 통틀어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임을 강조하면서 충렬공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상락대와 고산정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또한 상락낭자 무덤에 관한 전설과 함께 영가지, 학봉 김성일 선생의 고산정 기록과 하회낙강상하일대도, 사주 선생의 회곡종회기 등의 기록을 예로 들며 충렬공의 정자인 고산정의 위치 비정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하였다.(별첨 학술자료 참조 <클릭하시면 별첨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어 15:25분부터 두 번째 발표자로 윤만 안사연 감사가 자료집을 토대로 답사지역의 주요 유적지인 상락대, 낙강정, 배환 선생의 낙암정 등을 설명한 뒤 충렬공 연보를 중심으로 충렬공의 주요 행적과 일본정벌의 중요성, 충렬공 묘지석 등을 설명하였다.(별첨 자료집 및 충렬공김방경자료집성 참조 <클릭하시면 별첨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 행사 취지를 설명하는 영환 안사연 회장
▲ 이영식 경상북도의회 의원
▲ 고산정(孤山亭) 위치를 주제로 한 영환 회장의 학술논문을 경청하는 참석자들
15:35분경 학술대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그 사이에 하늘이 환하게 걷히고 한낮의 강렬한 햇볕이 머리 위에서 내리쬐었다. 불과 두어 시간 전 몰아치던 강풍이 슬며시 간절했다. 매섭게 몰아치던 그 돌개바람은 폭염 속에서 강행군 중인 후손들이 안쓰러워 충렬공께서 한바탕 ‘거대한 자연의 에어컨’을 보내주신 것만 같았다. 안사연 학술대회는 종전의 단순한 캠프활동에서 벗어나 일정한 테마 또는 일정한 주제를 설정해 집중적인 탐사와 학술대회를 병행함으로써 선조 유적과 행적에 좀더 깊이 있게 다가감과 동시에 선조 현양사업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안사연 회원의 중지를 모아 실행한 것이다.
하늘로 흐르는 상락대 강물을 걷다
15:40분경 윤만 감사의 안내로 상락대 시비(詩碑)를 둘러보며 상락대 표석 아래쪽 강물을 내려다본다. 경북북부지역 부사공종친회 광득 전 회장이 상락대 표석에서 남쪽으로 10걸음 떨어진 곳이 예전 상락낭자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자리라며 걸음을 잰다. 충렬공을 사모하던 상락낭자가 이곳에 묻혔는데 봉분에 풀이 자라지 않으면 안동김문 후손들이 번성한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몇 해 전 생태학습관이 들어서면서 상락낭자 무덤 위치를 찾기 어려워졌는데, 광득 전 회장의 증언으로 명확한 위치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광득 전 회장은 1990년대에 상락대 표석을 다시 세울 때 참여한 바 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상락낭자 무덤은 10여 평 넓이로 봉분이 꽤 컸다고 한다. 10여 년 전 이곳을 찾을 당시에는 봉분이 깎여 약간 봉긋한 상태였으며, 주위에는 풀이 전혀 자라지 않아 특이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곳에서 충렬공의 위대한 발자취를 온몸으로 느낀 뒤 참석자 모두가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시비 뒤쪽의 오솔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마암(馬巖) 정상에서 드넓은 벌판을 조망하며 도도하게 흐르는 상락(上洛) 물결을 다시 느낀다. 얼마 전 버드나무 우거진 모래밭을 퍼냈지만, 어느새 그 자리에 모래가 쓸려와 다시 수북히 쌓였다.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옛 모습 그대로 재현될 것 같았다. 쉼없이 흐르는 물줄기를 좀벌레 같은 미미한 인간이 어찌 거스르랴. ▲ 상락대 전경. 가운데 나무가 서 있는 지점이 상락낭자 무덤 자리이다. ▲ 상락대 시비(詩碑). 2012년 11월 22일 충렬공 탄신 800주년 경모제전 기념으로 안동김씨대종회에서 이 비를 세웠다.
▲ 상락대 시비(詩碑)에서 태철과 춘식
▲ 상락대에서 낙암정 쪽을 바라본 풍광.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물이 상락대 절벽을 만나 크게 휘어지면서 깊은 소를 이룬다.
16:20분 낙암정에 도착했다. 상락대 위쪽 물가에 자리한 낙암정은 도깨비가 터를 잡아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에 자리한 낙암정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94호로 1451년(문종 1년)에 흥해배씨인 낙암(洛巖) 배환(裵桓) 선생이 처음 지었다고 한다. 그 뒤 1813년(순조 13년)에 중건한 것을 비롯해 여러 차례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경관이 뛰어난 낙연(洛蓮) 언덕 위에 서향으로 자리한 이 정자는 정면 3칸×측면 2칸으로 막돌 기단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왼쪽 온돌방에는 온돌방 쪽에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누각 형식이다. 이러한 형태가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정자 양식이라고 한다. 대청마루 위쪽에 교묘하게 구성된 천장과 정자 아래쪽 기둥을 의도적으로 짧게 만든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 유교문화길 코스 중 일부인 상락대 인근 산책로. 상락대에서 마암(馬巖) 정상부로 올라가는 길이다. ▲ 흥해배씨 배환 선생의 정자, 낙암정
▲ 낙암정을 둘러보는 참가자들
여러 차례 이곳에 왔지만, 오늘은 여느 때보다 더운 날씨로 일행 모두가 땀범벅이 되었다. 그래도 일행 모두는 줄줄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 가며 보고 또 본다. 낙암정에서 올라와 아스팔트 길로 다시 단호샌드파크로 내려가 16:50분경 낙강정에 도착했다. ▲ 낙강정. 안동권씨 권예 선생의 정자로 상락대 아래쪽 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낙강정은 퇴락할 대로 퇴락하고, 그 옆에 ‘이조판서(吏曹判書) 마애(磨崖) 권선생(權先生) 낙강정기적비(洛江亭紀蹟碑)’가 웅장하게 서 있다. 후면 음기(陰記) 중에 “옛 上洛 金方慶公이 遺躅地였다”라고 적혀 있다. 이 글귀는 “옛날에 상락 김방경 공께서 남기신 유적지이다.”라는 뜻으로 영가지에 이곳이 충렬공의 채마밭이 있던 곳이라는 기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글귀를 적은 듯하다. 이처럼 안동지역 명사들은 이곳 상락대 일원이 모두 충렬공의 유적지임을 오늘날까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상락대를 포함하고 있는 ‘유교문화길’에는 변변한 ‘상락대 도로표지판’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기울어 가는 고려를 온몸으로 지탱해 나라와 겨레를 위해 헌신한 충신이자 명현(名賢)인 충렬공을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안동시로서는 적잖은 행정착오라 아니 할 수 없다. 우리 후손들로서는 더더욱 반성하고, 강력하게 도로표지판을 비롯해 상락대 안내 입간판을 충렬공 명성에 걸맞게 설치할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 낙강정 옆에 최근에 세워진 권예 선생 기적비
17:10분경 행사를 종료하고 단호샌드파크장에서 자유시간을 갖는 사이 내일 탐사에 사용할 보트 운행 문제로 대여업체 사장이 방문하였다. 원래 계획에는 10여 명이 승선할 수 있는 선박을 대여해 사주 선생께서 남기신 기록을 확인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강물이 너무 얕아 선박을 접안할 수가 없어서 보트로 대체했는데, 그마저도 겨우 3명이 올라타면 강바닥에 닿아 운항할 수가 없었다. 영환 회장과 발용 씨가 보트에 승선해 상락대 절벽을 직접 접안한 뒤에 결정하기로 하였다. 며칠 전 안동 임하댐을 열어서 강바닥은 얕아도 물살이 거세 보트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기에 벅차 보였다. 상락대 절벽을 살펴보고 돌아온 영환 회장과 발용 씨는 천하 절경이라며 감탄하면서 아쉽게도 보트 운항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의견을 회원들에게 설명하였다. 결국 내일 상락대 아래쪽 절벽 답사는 훗날을 기약하기로 하고, 18:00시 정각 상락대에서 안동시로 향했다. ▲ 상락대 절벽 접안 문제를 점검하기 위해 보트를 타고 현장으로 이동 중인 영환 회장과 발용 종친
▲ 마암과 상락대 절벽
▲ 상락대 절벽.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는 상락대 절벽은 경사가 90도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하늘을 찌를 기세로 천하절경을 이룬다.
오늘 저녁은 단호샌드파크에서 야영하며 정담을 나눌 예정이었으나, 폭염으로 야영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부부 동반으로 참여하신 분들이 상당수라 우리 집안 며느님들을 한데서 주무시라 하기에도 송구한 처지였다. 마침 안동종친회에서 저녁을 대접하겠다는 뜻을 집행부에 알려와 계획을 변경해 안동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풍산읍에서 숙박하기로 하였다. 18:30분경 안동 시내 옥동손국수집에 도착해 푸짐한 음식을 배불리 먹고, 19:30분경 풍산읍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무더운 날씨에 행사에 참여하시고 저녁까지 대접해 주신 안동종친회 일가분들께 깊은 감사 말씀을 올린다. ▲ 안동종친회의 저녁식사 초대로 정겨운 시간을 갖는 문중 원로. 맨 앞 네 분(오른쪽 위에서부터), 봉회 대종회장, 광도 문온공파 이사, 동수 안동종친회장, 창회 전 도평의공파 회장.
회곡 맞은편 상고산을 오르다 이튿날 07:00경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엊저녁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때로는 격론을 펼치느라 일행 대부분 새벽이 되어서야 잠깐 눈을 부쳤다. 08:00시 정각 예약해 둔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어제처럼 햇볕이 따갑다. 08:30분 식사를 마치고 08:50분 풍산장터를 출발해 회곡으로 향한다. 태성 씨와 위열 씨가 아침에 단호샌드파크에 짐을 내렸다가 다시 차에 실은 모양이다. 어제 갑작스런 돌개바람과 폭우, 그리고 행사일정 변경으로 그 많은 짐을 싣고 내리기를 반복했으니, 이 더운 날씨에 죄송스럽다. 회곡을 향해 가는 차 안에서 윤만 감사가 사주 선생의 <회곡종회기>를 낭독한다. 그 소리를 새겨들으며, 눈은 골짜기 사이사이에 펼쳐진 논을 살핀다. 어느덧 벼 이삭이 패고 따가운 햇볕을 받아 알곡이 익어 가기 시작한다. 짙푸른 녹색이 산기슭을 돌아 맑고 푸른 하늘로 이어져 가슴이 후련하다. 어느덧 서애 유성룡 선생의 유택이 있는 수동(水洞)을 지나 산모롱이를 돌아서니 회곡이 보인다. 09:05분 태홍 씨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상락재로 올라서니 오랜 세월 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 설단과 충렬공 유허비, 상락재 등을 관리하고 있는 봉회 씨가 반가이 맞이한다. 09:20분 죽주박씨 할머니 단소로 올라가 인사를 드린다. 설단 규모는 전면 3.40m×측면 3.30m로 거의 정사각형에 가깝다. 09:35분 단묘에서 내려와 충렬공유허비각과 유허비 옛 좌대를 둘러보고, 몇 분은 회곡리 마을회관 앞에 있는 장군샘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회곡동 전경 ▲ 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 할머님 단소 ▲ 행사 참여 종친들. 뒷줄 왼쪽부터 재영, 은회, 윤만, 앞줄 왼쪽부터 태홍, 용주, 우회, 태영, 태우, 영국, 춘식, 태철, 봉회 대종회장, 광도, 영환, 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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