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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열린 한 학회에서 어느 물리학 교수가 영어 강의의 어려움을 토로해 눈길을 끌었다. 특별히 마련된 세션에서 이 교수는 “이 자리를 빌려 물리학 영어강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러 왔다”며 “불만을 얘기할 수 있어야 건강한 집단”이라는 말로 서두를 열었다.
1980년대 초반 학번으로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한 이 교수는 외국에서 박사후 과정을 7~8년 한 뒤 귀국해 국내 대학 교수로 임용됐다. 임용조건은 ‘영어로만 강의’였다. 자신을 “영어책으로 배우고 한국말로 강의를 듣고 잘 안되는 영어로 논문을 쓰고 졸업한 세대”라고 표현한 이 교수는 영어 강의가 교수는 교수대로 ‘로봇 교육’을 해야 하는 자괴감을 느껴야 하고, 학생들은 불만만 쌓이는 교육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영어로 강의를 하는 분야의 강의 평가는 가장 낮게 나오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 교수는 “학생들의 강의평가에서 불만은 결국 강의를 한 교수한테 온다”며 “100의 99는 불만이고 하나 정도만 칭찬”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강의 때 못 알아들으면 한국어로도 설명을 해달라’ ‘학생들을 위한 방침이 아닌 것 같다’라고 불만들을 털어놓고 있지만 교수는 ‘계약상’ 영어로만 강의를 해야 한다. “심지어는 영어로만 강의를 하는지 감시하는 ‘프락치’가 있다는 소문도 있다”고 이 교수는 털어놨다.
그는 유학조차 가지 않은 자신으로서는 성인이 된 이후 짧은 미국생활로는 영어를 잘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교수가 강의하다 자신이 영어(단어)를 모르면 어~어~ 하고 지나갑니다. 책 읽어서 외운 것만 가르칠 수 있어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얘기를 전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디스커버리> 해설과 중고등학생 수업을 몇개월 들어보니 그나마 (수업용) 영어가 조금 늘더라”면서 “그러나 강의를 기록으로 남기려면 (틀린 영어 때문에) 두렵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 선배 교수가 “나는 영어를 잘 하지만 학생들 교육적 입장에서 영어강의를 안한다”는 말을 했다며 영어강의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그건 네 문제”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밝혔다. 이 교수가 속한 학과의 교수는 현재 40% 가까이가 영어강의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학생들의 자세도 문제다. 학원에서 다 주입해주는 방식에 익숙해 있다가 대학에서는 그렇게 안 해주니 불만인 데다 영어책 읽기를 싫어한다. 학기초 영어 원서와 번역서를 함께 들고 다니다 나중에는 아예 번역서만 들고 다니기도 한단다. 영어로 전공 강의를 들으면서 뜻을 모르는 전문용어가 나와도 사전을 제대로 찾아보지 않는 학생도 있다. “심지어 선생한테 단어장을 만들어달라 학생도 있어요.”
이 교수는 “영어강의의 악순환은 대학이 경쟁력 향상보다는 (영어강의 비율로) 점수를 따내려 하는 데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영어강의 비율을 늘리려는) 학교와 (어느 정도 한국어 강의를 섞어 넣으려는) 학과의 입장이 갈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학교 방침이 변할 것 같지도 않고 학생들은 스스로 영어강의 들을 능력을 기르려 노력하지 않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전력’을 마련했다며 이를 소개하는 것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그는 우선 학생들이 요구하는 단어장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수업시간에 단어 시험을 보기도 한다. 또 영어강의를 동영상으로 제작해 홈페이지에 올려 학생들이 반복해 들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동영상 강의를 보면서 오류를 찾아오면 출석점수에 보너스를 주는 방법도 쓴다.
이 교수는 “학생들 영어 능력 키워줄 준비가 되지 않은 경우 영어강의는 해악이 더 많다”며 “교수도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 당국도) 영어강의 비율에만 집착하지 말고 내용을 들여다보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