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091
수년 전에 <두려운 영광>이라는 책이 나왔었다. 이 책은 당시 한국 교회를 대표할만한 목회자 10인을 선정하고, 그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시 이 책의 목차를 펼쳐보던 나는, 순간 마음속에 ‘거룩한 분노(?)’같은 것이 치솟았다. “이 땅에는 이런 유명 목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작은 교회를 목회하며 그 마을과 지역을 변화시켜가는 목사들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그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두려운 영광>을 쓴 저자를 찾아 그에게 이번에는 ‘작은 교회 목사들의 희망 이야기’를 써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된 책이 바로 <배부르리라>이다.
한국 교회는 여전히 대형교회가 주류(major)이다. 그러나 사실 한국 교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100명 미만의 작은 교회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국내의 비교적 건강한 모 교단을 예를 들어보자. 그 교단 2450개 교회 중에는 100명 미만의 교회가 1903개나 된다. 전체의 78%가 작은 교회인 것이다. 아마 한국 교회 전체적으로는 작은 교회가 80% 정도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의 대세인 작은 교회를 간과하고서는 결코 한국 교회의 희망, 세상의 희망을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참으로 역설적이다. 크고, 많고, 화려한 것을 성공이라 말하는 시대에 어떻게 작은 교회가 세상의 희망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교회는 결코 크기나 외형의 문제가 아니다. 비록 외형은 작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얼마든지 위대한 교회가 될 수 있다. <배부르리라>에 소개된 작은 교회들을 보라.
전라도 거금도에 위치한 월포교회(강태봉목사)는 복음의 삶을 몸으로 실천하는 ‘멕가이버식 목회’로 섬 마을 주민 누구나 좋아하는 교회가 되었다.
전남 고흥의 매곡교회(정도성목사)는 ‘농촌진흥 목회’로 지역사회 전체를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었다.
서울 영등포 역 근처의 광야교회(임명희목사)는 ‘노숙자 목회’로 매일 1500명의 노숙자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충남 보령의 시온교회(김영진목사)는 ‘농촌문화 목회’로 지역의 대표적인 들꽃생명문화 축제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서울의 남산아래 교회 다움(민걸목사)은 ‘뉴 버전 비전목회’로 한 건물 3교회가 서로 독립적으로 그러나 서로 함께 하는 에베소교회 유형의 본질목회를 추구하고 있다.
강원도 강릉의 어느 병원 원목인 김상훈 목사는 아내 윤정희 사모와 함께 어린이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열 명의 양자를 입양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아 훌륭한 인재로 키워내므로 지역사회는 물론 한국사회에 사회봉사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만하면 작은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큰 교회에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축소 지향적 목회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작은 교회도 얼마든지 크기에 상관없이 세상의 희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세상의 희망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 나만의 부르심의 목회를 확립하는 신학이 필요하다.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크기에 주눅 들지 않으며 나만의 부르심을 따라 목회할 수 있는 분명한 교회관과 목회관이 정립되어야 한다. “천천히, 꾸준히, 즐기면서, 그분과 함께!” 나만의 부르심의 길을 가는 것이다.
둘, 작은 교회 간의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동네 작은 교회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지역을 복음으로 변화시킬 협력자이다. 이들이 서로 연대하여 지역사회를 섬길 때에 그 지역에는 복음의 강력한 영향력이 발휘 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서로가 감당하는 사역에도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 자연스럽게 교회도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작은 교회들의 정체성의 확립과 연합을 위해 모이는 컨퍼런스가 열린다. 15년 전부터 작은 교회의 셀파 역활을 감당해온 패스브레이킹 연구소가 주관하는 “하나의 복음 하나의 교회”라는 세미나이다. 이 세미나를 통해 이 땅의 많은 작은 교회들이 서로 하나임을 확인하고 모두가 기쁨을 나누는 시간이 될 것이다. 부디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여기에 와서 치유/회복 될 뿐 아니라 나만의 부르심의 소명을 재발견하고, 함께 연합/연대하여 다시 길을 떠나는 새벽이 되기를 기도한다.
“작은 교회가 살아야 한국교회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