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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산(고리산·583m)은 충북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에 솟아 있는 산이다. 옥천의 산이지만 대전시민들에게는 대전~옥천 간 시내버스(607번)편으로도 쉽게 다녀올 수 있는 대전 근교의 산이기도 하다. 이제는 대전 충청권 이외 지역 산꾼들도 즐겨 찾는 명산 반열에 올라 있다.
환산에 오르면 옥천의 시가지와 경부고속도로, 경부선 철길 그리고 대전의 최고봉 식장산, 충남의 최고봉 서대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남향으로 천태산~대성산~장령산~마성산의 ‘천성장마’ 능선이 펼쳐져 보인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동북향으로는 속리산이 조망되는데, 산굽이마다 돌아가는 금강 물길과 변화무쌍한 대청호의 풍광이 장관이다.
크고 작은 산성 40여 개가 산재, 산성의 보고(寶庫)라 불릴 만한 고장 옥천. 환산에도 산성이 있다. 환산 남쪽, 지금 시외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에는 삼양리 토성이 있고 동쪽으로 서산성(西山城), 남쪽으로는 삼성산성도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이루었던 지점이다. 554년(신라 진흥왕 15년 · 백제 위덕왕 1년), 이곳 관산성(管山城) 일대에서 백제와 신라가 다툰 ‘관산성전투’에서 백제는 성왕(聖王)이 전사하고 좌평(佐平-대신급) 4명과 군사 약 3만 명이 전사했다. 금산에서 발원, 금강으로 유입되는 서화천이 흘러내리는 곳, 삼성산성 주변이 관산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이곳에 옥천군에서 ‘관성정’을 조성해 놓았다. 관성정에서는 관산성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목숨을 잃은 백제 성왕의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三國史記 참조)
옥천에는 두 개의 마성산(馬城山)이 있다. 한자까지 같은 동명이산(同名異山)이다. <월간山> 2009년 9월호 ‘산따라 맛따라’에 ‘천성장마’를 소개했었다. 대전의 많은 산꾼들이 충북권 영동과 옥천에 걸쳐 있는 천태산(715m)·대성산(705m)·장령산(656m)·마성산(497m)을 하나의 산줄기로 묶어서 즐겨 종주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독자 여러 사람이 “옥천의 어느 마성산인가요?” 하는 항의성 전화를 주었다. 산줄기의 흐름상 소정리에 있는 마성산이겠지만 여하튼, 좁은 지역에 같은 이름의 두 개 산이 있어 현지 분들도 “헷갈린다”고 했다. 옥천군청을 기점으로 1시 방향 옥천읍 교동리와 7시 방향 소정리에는 같은 이름의 마성산이 약 3km의 등거리로 솟아 있다.
옥천군의 고려 때 치소(治所. 지금의 군청) 동북향 소정리에 솟은 마성산은 옥천의 진산(鎭山)이었다. 당시 정월 대보름이면 마성산에서 고을의 편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마조제(馬祖祭)를 올렸다. 조선조에 접어들자 옥천의 치소는 지금의 군청소재지 쪽으로 옮겨졌다. 자연스럽게 교동리에 있는 마성산이 옥천의 진산이 되었고 그 산 이름을 그대로 부른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두 개의 마성산 중 군청을 기점으로 동북에 있는 마성산(409m)을 ‘동마성산’(東馬城山), 남서방향에 있는 마성산을 ‘남마성산’(南馬城山)으로 이름을 부여해 주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
마당 넓은 집 ‘향수’의 여운에 맛과 분위기 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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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에 가면 그 누구나 옥천이 자신의 고향이 아니더라도 옥천을 자신의 고향으로 착각하게 된다. 정지용(鄭芝溶·1902-1950) 시인의 ‘향수’란 시 덕분이다. 옥천에서는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향수’를 읽을 수 있다. 실내 벽면만이 아니라 웬만한 건물의 외벽에도 아름다운 이 시의 시어들이 도배되어 있다.
교동리 마성산 남쪽 자락에 있는 지용 생가와 정지용문학관을 둘러보고 지척의 거리에 있는 ‘마당 넓은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비빔밥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마당 넓은 집’ 앞에 당도하자, ‘역시’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마성산을 병풍인 양 둘러치고 앉은 우아한 고가(古家)! 이 시대에 살면서 이러한 고가를 만날 수 있다니. 시인은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라고 했지만, 나그네는 어릴 적 살던 고향마을의 한 모습에서 가슴에 잔잔한 감동이 와 닿는다. ‘어떤 사람이 이런 집에서 살고 있을까’ 하는 강한 충동이 일어났다.
예사롭지 않은 집 마당 안으로 들어가 본다. 음식점 이전에 이 집은 서예가 ‘김선기(55)’ 선생의 집이다. ‘한우물 김선기’ 선생은 ‘서예의 불모지’로 불리는 옥천에서 많은 후진을 양성한 향토 서예가다. 이런 공로로 ‘자랑스런 옥천군민대상’을 받기도 한 분인데 집안을 장식하고 있는 그의 서예작품들은 뚜렷한 독창성과 개성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서예인지 회화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자유로움을 한껏 추구하고 있는 그의 작품세계가 참으로 독특하게 느껴졌고 돋보였다.
‘마당 넓은 집’은 부인 성화열 여사가 운영하는 한식집이다. 남편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목욕재계, 향을 피우고 촛불을 밝혀 몸과 마음을 정화시킨 다음에야 서예작업을 한다는 소문이다. 부인 역시 이런 자세로 음식을 장만하는가보다. ‘비빔밥 전문점’을 표방하고 있는데 이 집에서 차려내는 비빔밥은 정성이 넘쳐나 보이고 예술작품 같다. 숟가락으로 망가뜨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으로 음식이 아니라 예술작품으로 많은 시간 감상하고픈 마음이 든다.
■메뉴 비빔밥 8,000원. 두부전골, 황태전골 각 3만 원 (4인분)
■전화번호 043-733-6350
■찾아가는 길 충남 옥천군 옥천읍 죽향리 63-9
대박집 민물생선국밥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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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읍 교동리 313번지 마성산 자락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다. 육영수 여사는 1925년 11월 29일 이 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이 집은 흔히 ‘교동집(校洞宅)’이라 불리던 옥천지역의 명가로서 1600년대부터 김(金), 송(宋), 민(閔) 삼정승(三政丞)이 살았던 곳이다. 이 가옥은 1894년경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상류 계급의 건축구조를 대표할 수 있는 집이었다고 한다.
1918년 육영수 여사의 부친인 육종관(陸種寬)씨가 매입하고 기단을 높여 개축했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10여 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사랑채, 내당, 사당, 별당 등이 팔작지붕의 형태를 지닌 가옥이었다고 한다. 1974년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방치되어 오다가 1999년 철거되어 생가터만 남아 있게 되었다.
2002년 4월 26일 육영수 생가지(陸英修 生家址)가 충청북도 기념물 123호로 지정되었고 옥천군에서는 생가복원계획을 수립, 지표조사를 실시했다. 2004년 12월 안채 복원공사를 시작으로 2010년 5월, 건물 13동과 담장 석축 등 부대시설들을 재정비, 복원해 놓았다. 육영수 여사는 우리 역사상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최고의 영부인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기억되고 있어, ‘육영수 생가지’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육영수 생가지에서 멀지 않은 곳, 옥천 IC에서 보은, 속리산 방향 3~4분의 거리, 옥천읍 죽향리에는 민물생선국밥 전문점 ‘대박집(대표 육동호)’이 문전성시, 영업을 하고 있다. 지용 생가와 육영수 생가를 둘러 본 사람들이 즐겨 찾는 업소로 크게 알려져 있다.
‘대박집’에서는 도리뱅뱅이와 생선국수를 먹을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음식은 옥천군에서 대표적인 맛으로 내세우는 음식이다. 도리뱅뱅이는 피라미나 빙어를 바삭하게 튀겨낸 후, 매콤한 양념고추장을 골고루 발라 지져내는 음식인데 ‘대박집’에서 쓰는 ‘모로코’는 이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안동댐 어부들 사이에서 ‘개코도 모른다’는 말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도리뱅뱅이’이라는 애칭은 피라미를 프라이팬 위에 둥글게 빙빙 돌려서 내는 모양에서 유래했다. 생선국수는 민물고기를 뼈째 중불에서 4~5시간 푹 고은 후, 뽀얀 국물에 고추장을 풀어 간을 한다. 삶은 국수에 파, 애호박, 깻잎, 미나리, 풋고추 등을 썰어 넣고 한소끔 더 끓여낸다. ‘옥천 향토음식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경력을 가진 ‘대박집’ 육동호 대표는 음식과 식당경영에 관한 한 프로근성이 대단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메뉴 생선국수, 생선국밥 각 5,000원. 도리뱅뱅이 8,000원.
■전화번호 043-733-5788
■찾아가는 길 충남 옥천군 옥천읍 죽향리 214
미락올갱이 옥천 올갱이 집의 살아 있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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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을 끼고 있는 옥천은 올갱이축제를 개최할 정도로 올갱이의 고장이었다. “옥천에 가면 올갱이국은 먹고 와야지” 하는 분들이 많고 이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업소들은 옥천 일원에 산재해 있다. 옥천에서 살고 있는 몇몇 친지가 ‘미락올갱이’를 추천해 주었다.
시장통에 있었던 이 업소는 6개월 전 금구리 공용주차장이 있는 곳으로 이전했다. 업소 이름 앞에 ‘원조’를 붙이고 있는 만큼 1984년 4월에 개점한 오래된 업소다. 개점 당시에는 옥천에서 올갱이를 잡아 파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춘천사람이 청주 서문시장에서 파는 것을 공급받아 납품해 주었다고 업주 윤옥순(64)씨는 회고했다. 1990년대가 되면서 옥천의 금강에서 잡은 올갱이로 국을 끓였고 지금껏 철저하게 현지 옥천산 올갱이만을 고집한다고 했다.
‘올갱이국 맛은 된장이 좌우한다’ 는 게 상식이라, 된장담기는 연중의 큰일로 꼽는다. ‘미락올갱이’에서는 1년에 400kg의 콩으로 메주를 만든다. 뒷간에 메달아 둔 메주는 어린이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 올갱이국은 끓는 물에 20분 정도 살짝 올갱이를 익힌 뒤, 속 알맹이만 따로 건져 놓고 푸르스름한 국물에 된장을 풀어 간을 맞춘다. 그 다음 아욱과 부추, 파를 듬뿍 넣고 한소끔 끓여 낸다. 60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업소 안은 새로 지은 건물이라 밝고 깔끔하다. 어디까지나 ‘올갱이국밥집’이라 술은 없다. 주차는 업소 앞 무료공용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올갱이의 표준어는 다슬기인데 충북에서는 지역에 따라 올갱이 또는 올뱅이라고 한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대사리’라 하고, 대구 지방에서는 ‘고디이’라고 한다.
■메뉴 올갱이국 6,000~8,000원. 올갱이무침 4만 원.
■전화번호 043-733-4845
■찾아가는 길 충남 옥천군 옥천읍 금구리 3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