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역사NGO대회 참가와 지역 탐방 스케치
6월 20일 새벽 5시 직전 집을 나서 공항버스를 타고 6시 김포공항에 도착해 역사NGO대회 참가자들의 탑승수속을 확인하고 마지막에 탑승을 했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마중나온 남상만처장의 안내로 버스로 황거를 돌아 수이도바시 근처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중의원 제1의원회관으로 향했다. 특별비밀보호법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대도 보이고 우익들의 행진도 볼 수 있었다. 국회 마지막 날이라 일본 의원들은 참석하지 못했다며 비서관만 참석해 차례로 발표를 했다. 한국의 방송 3사가 영상취재를 했고 일본 신문들도 취재 했다고 한다. 오후 3시 조금 지나 숙소인 재일한국YMCA로 향했다. 숙소가 부족해 도큐스테이에 숙소를 배정받았고 강철민한일문화교류센터 사무국장이 룸메이트가 되었다. 잠시 휴식후 근처 식당으로 이동해 일본 주최측과 합류해 식사를 하면서 소개도 하고 인사를 했다. 반가운 얼굴도 보인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이자카야에서 어울리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김정사선생과 함께 자리잡고 여러 한국 참가자들도 밤 늦도록 이야기를 하면서 반가운 시간을 가졌다.
21일 아침 행사장인 지하 강당에서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체제와 동아시아 평화’ 라는 주제로 역사NGO대회가 한일 양측의 인사로 시작되었다. 주제강연은 오랫동안 한일 관계가를 연구해 온 우쯔미 아이코교수, 국제법학을 통해 냉전체제의 문제를 밝혀온 이장희교수 일본인들에게 익수한 캐빈 맥코맥 국립호주대학 명예교수 갈등해결과 인권문제 전문가인 엘라자 발칸미국 콜롬비아대학 교수 순서로 발표를 했다. 오후에는 식민지배의 보상 문제를 중심으로 4명의 발표자와 토론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른 저녁시간이라 근처 식당으로 이동해 자유롭게 식사를 했다. 공동선언문 준비로 일찍 방에 들어와 일본측 초안에 대한 한국측 수정안 준비작업을 해야 했다.
22일 아침 선언문 수정 및 한국 측 여론 수렴 작업을 하는데 대체적으로 받아 들여 주었고 일본 측도 모두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작업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분과별로 발표와 토론 시간이 각 방에서 진행되었다. 해외 참가자들과 함께 역사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학교교과서과 역사교육 작업 그리고 특별세션으로 해외 참가자 중심으로 필리핀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유로클리오의 활동방식 등에 관해 진지한 토론을 했다. 그리고 오후에도 계속 토론을 하면서 틈틈이 청년포럼에 참석해 얼굴인사를 했다. 타카노상이 참석해 상황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식민지배 청산에 관한 토론 등 오후 5시 분과별 모임을 마치고 전체 회의에서 야노 히데키 상의 사회로 참가자 공동선언문 채택이 이루어 졌다. 조금 떨어진 사천요리 집에 가서 참가자 전체 교류 시간을 가졌다. 자리를 돌며 인사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치고 일부는 다시 호텔 근처 이자카야집에 들러 맥주한잔을 더 나눴다.
23일 아침 YMCA호텔을 출발해 에다가와 조선인 학교를 방문했다. 전교장선생님의 안내로 일제시기 도쿄도의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곳에 1941년 일본 정부가 조선인들을 강제 집단이주시키면서 시작된 이곳의 역사를 설명듣는데 김희로(1968년 조선인 차별에 분노해 인질극을 하다 30년을 감옥생활하고 석방 후 추방되어 한국에 정착했다가 사망)씨도 이곳 출신이고 영화 박치기도 이 곳이 배경무대였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학생들이 35명 뿐이라 한다. 인구 구성에 변화가 진행되면서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수업 중인 교실도 돌아보고 전현직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역사와 현황에 관해 설명을 듣고 참가자들이 모금해 마련한 악기를 선물로 증정했다. 오후에는 야스크니신사를 방문했다. 요시다 마사토시변호사로부터 세속으로부터 구분하는 경계인 높다란 출입구에 해당하는 도오리 그리고 오오무라 마스시로우(大村益次郞)의 동상에 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근대 일본 육군 창설자로 이 야스쿠니 신사 창건에도 절대적인 역할을 했고 군을 상징하는 인물로 동상을 세워놓은 것이다. 신사에는 전사자 250만명의 위패가 보관되어 있고 지방에도 유사한 성격의 신사들이 설립되어 있다는 것을 그동안 지역 방문 중에 확인했던 생각이 난다. 설명을 들으면서 유슈칸으로 이동해 중요 지점에서 구체적인 역사왜곡 사실들을 확인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안중근을 독립운동가라고 지칭한 것은 다행이지만 암살된 것이라는 표현은 한계로 인식된다. 대동아전쟁 70주년 특별전을 볼 수 없어 조금 아쉬웠다. 2년전에 가미가제(神風) 특별전의 모습이 떠올랐다. 군국주의를 반성이 아닌 향수하는 모습같다. 탐방을 마치고 다수 일행은 공항으로 출발하고 타카노상과 함께 시나가와 역으로 이동했다. 근처 일식당 漁民으로 자리를 옮겨 NNAA 측 인사들과 타카노상의 활동방안과 역할 등에 관해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치고 타카노 상과 요코스카 중앙역에 도착하니 늦은 시간인데 저렴한 숙소를 찾느라 시간이 더 늦어져 도로변의 작은 빌딩 여관(一國屋. 메이지유신 20년 창업이라니 1888년)에 들었다. 다다미방의 작은 여관방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24일 아침 일직 여관창문을 여니 시커먼 미해군 잠수함 두 척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놀라운 분위기였다. 미군 함정도 눈에 들어왔다. 잠시 후 타카노상의 안내를 받으며 해변 베르니공원(프랑스인 Verny 기념)을 돌아보고 미해군기지 입구에서 사진을 찍으니 경비원이 제지한다. 조금 떨어진 미카사(三笠)공원으로 이동해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함 미카사를 둘러 보니 일본 해군의 초기역사에서 해상 자위대 현황까지 전시되어 있다. 군사주의의 욕망이 느껴진다. 군항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미제 7함대 사령부가 있는 요코스카항은 2008년부터 군항해역에 유람선을 운항하는 등 개방적으로 항구를 운영해 왔다고 한다. 한국전 베트남 전쟁 등 그리고 최근에는 대 중국 작전을 한다는 대단한 군항이다. 다시 전철을 타고 핵연료봉을 제작하는 회사 GNF(Global Nuclear Fuel)를 찾아 나섰다. GE 도시바 히다치의 공동 벤처기업이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정문에서 썰렁한 분위기에 겨우 실체를 알 수 있는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지하철로 이동했다.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일본공산당 후보의 선거벽보가 인상적이다. 탈핵과 탈원전항모입항 반대를 구호로 내걸었다. 희망제작소의 깃카와 준코상을 만나 식사와 차를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유럽 여행 컨설팅까지 해 주었다. 여관 짐을 챙겨오느라 늦게 도착한 타카노상과 함께 비가 와서 잠시 쉬다가 아키하바라를 방문했지만 별로였고 수이다바시 역에서 이연옥님과 최승구선생을 만나 단포포샤(민들레 집) 4층 강연장으로 가서 인사를 했다. 강연을 알리는 직은 홍보 전단지롤 보니 연속강좌의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1시간여의 강연과 질문과 토론을 하다보니 2시간에 훌쩍 지났다. ‘후쿠시마 세대’로서의 공동 책임을 가지고 탈핵시대를 열어가야 하는데 원폭 피해와 원전 사고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일본 시민의 주도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근처 중국집으로 이동해 10여명이 식사를 겸한 작은 대화자리가 이어졌다. 치열하게 활동하는 분들의 모습도 보였다. 마치고 가와사키로 이동해 최승구 이연옥씨와 2차 술자리를 통해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캡슐여관에 들었다.
25일 여관에서 쉬다가 신주쿠역 근처의 고속버스 탑승장에서 니이가타행 버스를 타고 5시간을 달려 오후 5시 니이가타 역 근처 정류장에 도착하니 니이가타 평화센터의 아리타 사무국장 마중을 나와 주었다. 근처 식당으로 이동해 자리를 옮기고 앉으니 와타나베 선생도 도착했고 니이가타 조선중급학교 교사인 김순철 선생이 통역으로 와 주었다. 푸짐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각종 해산물로 대접받았다. 그동안 아평에서 활동해 왔던 일들 그리고 평화센터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서로 소개하였고 이번 한국으로의 평화여행 참가자에 관해서도 소개를 받았다. 아평에서 추진중인 아시아 평화여행에 관한 구상도 설명하면서 한일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방안도 소개하고 의논했다. 작은 카페같은 선술집으로 옮겨 도착하니 취객들이 반겨주고 요코하마시호기자가 도착해 반갑게 인사하며 영어로 이야기 하다가 한국어로 대화를 바꾸었다. 이번 여행에 동참하기로 했다는 선언에 더욱 반가웠다. 도쿄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 아쉬운 작별을 하고 버스에 올랐다.
26일
아침 5시 10분경 신주쿠역에 도착해 지하철로 이동하니 아침 출근길이 분주하다. 지하철로 시나가와역에서 환승해 하네다 공항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