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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빗자루로 청소하듯 싹 쓸어(sweep)버렸다. 그는 혼자 힘으로 9명의 적을 볏단 베듯 쓰러뜨렸다. 더 이상 싸울 대상이 바닥나버리면서 대회도 끝났다. 국제 바둑대회 사상 특정 기사 한 명이 이처럼 전장을 초토화시킨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1997년 2월 23일 베이징 쿤룬(崑崙)호텔. 야생마 서봉수는 제5회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을 그렇게 종결지었다. 결전을 각오하고 대기하던 한국의 조훈현, 유창혁, 이창호는 베이징과 서울의 검토실에서 그저 종전(終戰)과 전승(戰勝)의 여유를 즐기기만 하면 됐다.
진로배는 현존 국제 국가대항 연승전인 농심배의 전신(前身)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1년 SBS 창사특집 기념대회에서 처음 이 대회 방식을 선보였다.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에서 각각 5명의 대표가 출전해 겨루는 3각 토너먼트다. 출전 3국 바둑 실력의 총화(總和)는 그것대로 겨루면서 특정 스타 출현의 활약 공간도 충분히 보장돼 있다. 극단적으로 특정 팀의 특정 기사 1명이 혼자 10승을 올리고 대회를 마감할 수도 있는 포맷이다. 서봉수가 두 번째 주자가 아닌 선봉장으로 출전했다면 그런 결과도 가능했다.
승부에서 9연승을 거두기 위한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난도(難度)는 어느 정도일까. 쌍방이 같은 실력이라고 가정할 경우 1승을 거둘 산술적 확률은 일단 2분의 1, 즉 50%다. 2연승을 하려면 2분의 1의 제곱, 즉 4분의 1이 되고 확률도 1승의 절반인 25%로 떨어진다. 이런 식으로 9연승을 거두기 위해선 2분의 1의 9승(乘)이 되는데 그 값은 512분의 1이다. 0.2%에도 못 미치는 바늘구멍 같은 확률이다. 상대는 평범한 기사들도 아니었다. 중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스타 9명이 서봉수의 칼끝에 비명 한 번 못 지르고 줄줄이 드러누운 것이다.
국제 메이저 개인전의 난도와 비교해 봐도 서봉수의 9연승은 엄청나다. 32강 넉다운 토너먼트일 경우 결승까지 오르려면 4연승이 필요하다. 결승전이 3번기라면 6승, 5번기라면 7승을 거둬야 우승한다. 단, 이 경우는 결승 진출 이후엔 1패(3번기) 또는 2패(5번기)까지 허용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진로배 때의 서봉수가 내리 9연승을 내달린 게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확인된다. 서봉수 자신이 제2회 응씨배서 우승할 때 거둔 총 전적은 8승 3패였다(준결 이전 3승, 준결승 2승 1패, 결승 3승 2패).
제5회 진로배는 한국 1번 주자 김영환과 중국 1번 위빈(兪斌)의 서전으로 시작됐다. 위빈은 김영환에 이어 일본 1번 주자 아와지(淡路修三)도 꺾어 2연승한 상황에서 서봉수와 마주 했다. 서봉수는 위빈을 간단히 잠재우고 새 연승 주자로 등장했다. 이것이 ‘진로배 9연승’이란 이름으로 세계 바둑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원맨쇼의 출발점이었다는 걸 그 때는 서봉수 자신도 깨닫지 못했다.
서봉수는 위빈에 이어 히코사카(彦坂直人), 창하오(常昊), 야마다(山田規三生), 친린신(陳臨新), 왕리청(王立誠), 차오다위안(曹大元), 요다(依田紀基)를 차례로 메다꽂았다. 일본 4명, 중국 4명의 최고 엘리트 기사들이 가을바람 낙엽 휘날리듯 속절없이 스러져갔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8승 가운데 히코사카, 창하오, 요다와 겨룬 3판의 바둑은 극적인 반집승이었다. 검토에 참가했던 프로들은 3판 모두 서봉수의 집념이 안겨준 역전승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 힐튼 호텔에서의 2라운드가 끝났을 때 일본은 전멸했고 중국은 1명, 한국은 서봉수를 포함한 4명이 살아 있었다.
제10국에서 서봉수가 일본 요다 노리모토에게 반집 신승을 거두며 8연승을 기록, 우승 결정까지 1승만을 남겼다.
운명의 서봉수-마샤오춘(馬曉春) 전은 2월 23일 쿤룬호텔서 시작됐다. 5회 대회 11번째 대국이자 최종 3라운드 첫 판이었다. 호텔 부근에는 아침부터 팬들이 몰려들었고 취재하러 온 중국 언론사만 20개가 넘었다. 방송 카메라 등 촬영 기자재가 대국장 입구에 들어찼다. 중국 매스컴은 서봉수가 유독 중국기사들에게 강하다며 대국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 시점 서봉수의 중국기사 상대 전적은 총 13승 1패였다. 마샤오춘에겐 3승 1패로 앞서 있었는데, 중국기사에게 유일하게 기록한 1패를 안겨준 상대가 바로 마샤오춘이었다.
마샤오춘은 그보다 2년 전인 95년 동양증권배와 후지쓰배를 동시 장악하면서 한때 세계 1인자 소리까지 들었던 강자였다. 이창호와 만나 패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기세가 조금씩 꺾여가는 추세였지만 국내외에서 중국 간판스타로서의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당시까지 통산 타이틀 숫자가 무려 32회에 달했다. 서봉수와 마주 앉을 당시 나이는 33세. 반면 44세의 서봉수는 마지막 타이틀이던 국기(國棋)마저 2년 전 내놓고 승부 중심에서 한 발 멀어져 있던 상황이었다. 대체로 ‘이번 대회에서 서봉수는 실력 이상 선전했으며 태풍은 여기까지’란 분위기가 대국장 안팎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봉수는 기회를 잡았을 때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하는 승부사다. 19세 나이에 혜성처럼 나타나 조남철 아성을 깨고 명인에 오를 때, 91년 제2회 동양증권배 결승서 거의 이겨보지 못하던 이창호를 꺾고 우승했을 때, 93년 제2회 잉씨배서 세계 최고스타들의 숲을 헤치고 정상을 밟았을 때, 5기 진로배 이듬해인 98년 45세의 나이로 LG정유배서 우승, 타이틀 대열에 복귀할 때 서봉수의 성취를 예상했던 이는 거의 없었다. 그는 언제나 주변 예상을 보란 듯 뒤엎고 새 역사를 만들어내곤 했다.
흑을 쥔 서봉수는 초반 수순을 그르친 상대 실착을 추궁하면서 일찌감치 우위에 섰다. 그 과정에서 흑27 한 수에 그는 무려 37분을 투입하며 총력전을 폈다. 37분이라면 1인당 주어진 제한시간(1시간)의 절반이 넘는 엄청난 시간이다. 흑35를 둘 무렵 서봉수의 남은 시간은 10분. 그런데 그 35가 상대를 곤경으로 몰아넣은 호착이었다. 극한 상황에서 서봉수의 집념과 집중력은 신비스런 마력을 뿜어낸다.
마샤오춘이 위축된 기미를 보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서봉수는 무려 7선을 밀어붙여 중원에 두터운 벽을 쌓았다. 우상귀를 거점으로 중앙에 이르는 40여집의 흑 대가가 완성됐다. 세 불리를 직감한 마샤오춘은 우하귀에서 승부수를 날려 패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으나 패의 대가로 상변 백을 헌납해야 했다. 그것으로 역전의 꿈도 사라졌다. 초읽기 속에서도 서봉수의 대응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225수 끝 흑 불계승.
서봉수의 기적 같은 9연승 신화가 완성된 순간 마샤오춘은 복기도 없이 총총히 대국장을 떠났다. 중국 기자들 수십 명이 흡사 한국 전쟁에 참전했을 당시의 중공군처럼 대국장에 밀려들어와 서봉수를 에워쌌다. 시종 여유롭게 검토에 임하던 김인 단장, 조훈현, 유창혁, 이홍렬(진로 사범) 등 한국 선수단도 백이 돌을 거뒀다는 소식에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천주더(陳祖德) 류샤오광(劉小光) 차오다위안 위빈 등 초조하게 대기하던 중국 검토진은 침묵 속에서 주섬주섬 판을 거두었다.
이날 서봉수가 패할 경우 조훈현과 유창혁은 다음 번 순번으로 출전하게 돼 있었다. 이들은 ‘대기 멤버’로 전날 서봉수와 함께 베이징에 날아왔다. 두 사람마저 패할 경우엔 최후의 보루로 서울에 남겨놓은 이창호도 중국으로 향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들 3명은 서봉수의 원맨쇼 덕분에 바둑돌 한 번 쥐어보지도 않고 각자 2500만원이란 거액의 배당금을 지급 받았다. ‘무노동 무임금’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바둑계에선 좀체 희귀한 ‘불로소득’이었다.
그렇다면 ‘진짜 영웅’ 서봉수는 대첩(大捷)의 대가로 얼마를 손에 쥐었을까. 우승 배당금 2500만원 외에 연승 보너스 7만 달러, 그리고 아홉 판 대국료를 합해 총 1억40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당시 국제 메이저급 개인타이틀전 우승 상금을 보면 삼성화재배가 3억원, 잉창치배가 40만 달러, LG배가 2억원이었다. 서봉수의 진로배 1억4000만원은 우승까지 필요한 승수, 난도 등을 감안할 때 오히려 적은 느낌을 준다.
김인 한국선수단 단장은 한국의 진로배 우승을 일찌감치 결정한 서봉수 대 마샤오춘의 대국과 관련해 “서명인(바둑계에선 한때 명인전서 유독 강했던 서봉수를 이렇게 호칭한다)의 일생일대 명국”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진로배에 한 배를 탔던 ‘전우’ 조훈현은 “내가 생각도 못했던 엄청난 강수 일변도”라며 평생 라이벌을 칭찬했다. 요즘까지도 대국 때 눈도 안 마주치고 복기도 피하는 두 사람이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칼 한 번 안 뽑게 하고 우승과 배당금을 안겨준 고마운 동료였다.
그해 진로배는 총 11판으로 끝났는데 그 중 서봉수가 9승, 중국 팀 1번 주자로 나왔던 위빈이 2승을 올렸다. 한 중 일의 간판스타 15명 중 나머지 13명이 1승도 맛보지 못하고 대회를 끝낸 것, 우승국이 무려 4명의 생존 병력을 남긴 것, 특정 국가(일본)가 1승도 없이 몰패 당한 것, 한 기사가 3번에 걸쳐 반집승을 따낸 것 등이 모조리 신기록이었다. 그 대부분이 최종국인 서봉수-마샤오춘 전으로 결정됐다.
서봉수의 9연승 싹쓸이 쾌거는 물론 한국 내에서도 엄청난 화제였다. 각 TV와 통신사가 다투어 특집을 마련했고 도하 각 일간지들은 사회면에 톱기사로 이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신이 난 후원사(진로그룹) 홍보실에선 신문 잡지 등 각종 인쇄 매체에 실린 진로배 기사 크기를 자로 재 같은 크기의 광고 단가로 환산하고 합산하는 작업을 했다. 회사 측 발표에 따르면 그 액수가 무려 11억 원이 넘었다(당시 11억원이면 요즘 광고 단가 시세로 따지면 대략 100억원에 육박할 것이다).
제5회 진로배 시상식은 2월 27일 저녁 쿤룬호텔서 거행됐다. 11국이 끝나고 무려 나흘이나 지난 뒤 공식 폐막된 이유는, 대회가 최종 14국까지 이어질 경우에 대비해 장소 예약을 그렇게 잡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11국에서 마샤오춘이 서봉수를 이긴 뒤 이후 조훈현 유창혁 이창호 순으로 모두 출전할 경우 26일 모든 일정이 끝나게 돼 있었다. 예정보다 일찍 우승 팀이 결정되자 한국 선수단 일부는 바로 귀국했고, 서봉수 등 나머지 일행들은 시상식 날까지 베이징에서 계획에 없던 나흘간의 휴가(?)를 즐겼다.
서봉수가 마샤오춘을 상대로 거둔 그 빛나는 승리는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진로배 역사에 남겨진 마지막 1승으로 기록된다. 그토록 높은 인기를 누리던 진로배가 폐지되는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이듬해 연말부터 시작된 외환 위기, 이른바 IMF 사태가 원인이었다. 진로배는 결국 5년이란 ‘짧고 굵은 역사’를 남기고 바둑계에서 모습을 감춰버렸다. 대회 5년 간 한국이 빠짐없이 우승, 5연패(連覇) 기록을 남겼다는 것으로 자위하기엔 너무도 안타까운 엔딩이었다.
이 인기 절정의 국가대항 연승전은 하지만 다른 스폰서에 의해 곧바로 부활한다. 3년만인 2000년 ㈜농심이 인수, 농심배란 이름으로 대회를 맡기로 한 것. 1991년 SBS 창사특집 기념대회와 진로배를 거쳐 24년째 연륜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여성 국제대회인 정관장배가 초기 토너먼트 방식을 버리고 3회째부터 이 방식을 채택했다. 2010년 9회로 문을 닫았지만 중국 황룡사배가 이 포맷을 계승해오고 있다.
제6회 농심배(2005년) 이창호의 막판 5연승, 제9회 정관장배(2011년)서 19세 문도원의 7연승, 제5회 정관장배(2007년) 이민진의 막판 5연승 등의 드라마가 펼쳐졌지만 ‘원조’ 서봉수의 9연승 신화엔 미치지 못했다.
흑31과 백32를 교환한 뒤 흑33으로 젖혀간 수가 기민했다. 백34로 젖혀 효율적인 연결을 도모했으나 흑35의 치중이 또한 타임리 히트.
흑39의 봉쇄를 뻔히 보면서도 백38, 40으로 기어서 넘어갈 수밖에 없어선 매우 나쁜 출발이다.
1 <1도> 흑이 과감하게 둘 수 있었던 이유실전처럼 흑A와 백B의 교환이 없었다면 백은 5까지의 수순을 밟은 뒤 6, 8로 나와 끊을 수 있다. 이것이라면 백은 실리가 크고 흑의 두터움도 실전만 못해 백이 피하지 않았을 것이다. 2 <2도> 백의 수순 착오백은 실전처럼 5로 밀기 전에 먼저 1로 젖혀야 했다. 백15까지의 진행은 팽팽한 형세로 이제부터의 바둑이었다. 실전(제1보) 31의 잽과 35의 기민한 급소 반격이 초반 반상(盤上)에서 빛나는 광채를 뿜고 있다. |
상변에서 포인트를 얻은 흑의 호조가 이어지고 있다.
백이 70의 보강을 생략할 수 없을 때 흑이 71을 점령해선 질래야 질 수 없는 바둑이 됐다. 백은 좌변서 동분서주한 뒤 우하귀 흑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날렸으나 패 바꿔치기 끝에 대차(大差)를 확인하고 항서를 썼다.
흑23, 흑31-흑5 | 백24, 백36-백8 | 흑27-백12 | 흑29-백18
흑33-흑△ | 흑35-흑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