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 단편선·1
-서머싯 몸 지음/황소연 옮김/(주)민음사 2023년판
모순(矛盾)의 즐거움
1
-문명을 그를 몰아냈지만, 원시적 본성에 더 가까운 이 사람들과 단순히 접촉한 것만으로도 그는 큰 해방감을 맛보았다.
(단편 <샘>에서)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는 삶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날마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목적의식을 가지려고 하며, 희망과 가치있는 생활을 유지하려 애를 쓴다.
태어나서 부모님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교육을 받고, 자라서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며, 귀여운 자식을 낳아서는 어릴 적 자신들처럼 화목한 가정과 자애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키우며 세대를 이어간다. 그리고 그런 가정의 평화 속에서 공동체와 사회가 화합과 연대를 이루며, 동일한 흐름 속에서 지구촌을 열어나가기를 염원한다.
하지만, 우리 삶에는 항상 긍정적인 원칙과 도덕, 그리고 정의로운 진리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다른 요소가 있음을 우리는 유구한 역사와 개인적으로 살아오면서 느낀 다양한 경험으로 그걸 직감한다. 우리가 학교와 가정에서 배운 가르침과 일면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세상살이의 방식들 말이다. 그걸 우리는 철학적으로 일명 ‘부조리’라고 일컫기도 하고, 옛날 동양에서는 모순(矛盾)이라고도 전해져온다.
2
이번에 읽은 영국의 문학 작가 ‘서머싯 몸’의 단편들에서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의 여러 다양한 모순적 상황이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문명과 미개’의 사회문화적 우열을 가리기 힘든 각자의 미덕과 가치(<에드워드 버나드의 몰락>), 태평양 연안의 미개 사회를 향한 문명사회의 선한 영향력을 가름하는 잣대의 부조리(<매킨토시>), 인생의 도덕과 가치관에서 드러난 부조리한 진실들(<개미와 베짱이>, <삶의 진실들>) 등.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단편 <개미와 베짱이>에서 삶과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적 가치관 엄정함 속에서 열심히 살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삶을 살지 않은 동생이 오히려 인생의 뒤안길에서 자신보다 더 많은 재산을 획득하는 낭패(?)를 접하게 되고, <삶의 진실들>편에서는 도덕군자의 삶을 가르치는 아버지의 조언이 무색하게 아들에게 날아든 여러 가지의 행운을 지켜본 후 낙담하는 아버지와 그의 친구들이 던지는 조롱들은 삶이 지닌 부조리한 상황을 코믹하게 보여주고 있다.
<에드워드 버나드의 몰락>편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미국 상류 사회에서 자라 결혼을 앞둔 젊은이가 그들의 문명이 일찌감치 태양처럼 환하게 드리웠던 타히티에 갔다가 그들의 삶의 환경에 녹아, 귀국과 귀국 후의 화려한 삶을 포기하고 현지에 남아 그 환경에 맞는 자연친화적 삶을 살겠다며 의지를 표명하는 장면들은 문명의 최첨단을 살아가는 요즘 세대에게는 자칫 갈등과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충격일 수도 있다.(‘미개문명’(?)이 향후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고, 딱히 어떤 점을 집어 저급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검증되지 않은 많은 미덕을 갖추었다고 보는 견지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단편들을 들여다보며 나는 ‘모순의 즐거움’이라 명명해 보고자 한다. 지금 세계를 아우르는 대세격인 서구 문명은 여전히 진행중인 것으로 어떤 식으로든 완결되지 않았으며, 앞으로 또 어떤 식으로 변화할 지는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서구화는 그 급격한 진행으로 말미암은 피로도로 이제 서서히 소멸 단계에 접어들었고, ‘동양적인 문명’이 대세로 부각되고 있다는 시각을 펼치기도 한다.
3
그런가 하면 인간의 위선과 허영을 다룬 서머싯 몸의 여타 작품들도 흥미와 함께 커다란 폭소를 자아낸다. 입에만 발린 거짓말로 가난한 예술인의 지갑을 털게 만든 유쾌한 점심 식사를 다룬 <점심>, 다이어트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비만의 세 여자의 일상을 다룬 <앙티브의 뚱뚱한 세 여자>, 재산과 권력을 쥔 장년의 남자와 젊은 아가씨의 위선적 사랑을 그린 <현상과 실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잘 보여준 작품들이다. 특히 매춘부의 죄를 도덕적, 종교적으로 징치하겠다며 인간성의 극단까지 몰고갔던 어느 위선적인 선교사의 죽음을 다룬 <비>는 인간 내면의 자신할 수 없는 불확실성까지 섬세하게 해부하고 있다.
4
지난 달에 재미있게 읽었던 《서머싯 몸의 단편선·2》에 이은 1편도 그 작품성과 흥미로운 내용, 독창적 소재들에 힘입어 하루 반나절 만에 다 읽는 기쁨을 만끽했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보고 관찰했던 경험으로 쓴 그의 단편선 1, 2집은 안방에서 편안히 소파에 앉아 간간히 음악과, 커피를 마셔가며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게 해주었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태평양의 서사모아와 하와이 호눌룰루, 그리고 프랑스령 타이티에서,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계절을, 비록 작품을 통한 상상이긴 하지만 마치 가 본 것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는 점에서 작가서문에서 작가가 안내한 조언은 아주 훌륭했다.
(2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