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진산성지 김용덕 야고보 신부
내려 놓음 I (미사 전례)
* 미사 (복음말씀 루카 19,41-44)
신부님의 미사 전례말씀은 오늘 강의 주제인「내려놓음」의 시작이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의 멸망을 예견하시며 우셨다.(루가 19,41)
예수님이 우신 일은 성경에서 두 번 기록되어 있다. 한번은 나자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를 보고 우셨다.(요한 11,35) 예수님은 왜 우셨을까?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도성의 멸망에 따른 인간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연민에서 우셨을 것이다.
신부님은 아침에 일어나 선종기도를 하신단다.
중풍으로 몸을 쓰지 못하는 어느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딱 사흘만 살게 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첫째 날은 병자성사를 보고, 둘째 날은 자손들을 만나고, 셋째 날은 하느님 만나러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 분은 이 세 가지 바램을 다 이루시고 봉성체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다.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하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드리느냐가 우리의 삶을 마무리하는데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그 전에 살아왔던 삶을 깨끗이 정리하고 내려놓는 일은 중요하다.
살아왔던 삶을 움켜잡고 내려놓지 않으려는 모습은 추하다.
자식들을 키워 독립시킨 노인들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제 본인을 돌아볼 때이다. 자녀를 비롯하여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자기 삶을 정리할 때이다. 내려놓을 일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갈 준비를 할 때이다.
남의 눈치나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해하지 말고, 남은 위령성월을 잘 보내고 대림절을 맞이하여 새로운 하느님 나라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도성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다.
눈물은 슬플 때나 기쁠 때 그리고 감사할 때 흘린다.
모두를 떠나 나 자신에게로 돌아와 회개할 때도 눈물을 흘린다.
정도를 걸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눈물대신 분노한다.
정도의 길을 걸었다고 생각했던 탕자의 형인 큰 아들도 눈물대신 분노했다.
가족 중에 성숙한 마음을 가진 한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가족에 평화가 깃들게 된다.
내려 놓음 II (강의)
바람직한 인생은 6가지 가치 -행복, 자유, 기쁨, 감사, 사랑, 침묵으로 응축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행복, 자유, 기쁨, 감사, 사랑을 추구하지만, ‘침묵’도 우리가 추구하며 살아야 할 실행가치이다.
어느 신부님이 그의 회경축에서 “사람은 말로, 하느님은 침묵으로 사랑을 가르치신다.”라고 하셨다. 침묵으로 사랑을 가르치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어야겠다.
모든 성자, 신자들의 종결은 죽음의 문제로 끝난다. ‘내려놓음’의 문제이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문제는 죽음이며 부활은 그 다음에 맞게 된다.
모든 성현들이 말하는 ‘사랑’은 ‘내려놓음’과 일맥상통한다.
자녀들에 대한 사랑은 자녀들에게 대한 나의 집착을 내려놓을 때에 완성된다.
내려놓는 일은 어렵지만 우리가 지고 가야할 십자가의 길이다.
고통지수 9인 산고(産苦)의 고통은 ‘내려놓음’의 과정이다.
고통지수 10인 죽음도 ‘내려놓음’의 과정이다.
산고는 엄마가 겪는 것이고 죽음은 본인이 겪는 것이다.
순교자들의 죽음은 기쁨과 소망이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기꺼이 현세의 삶을 내려놓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아기를 낳는 고통은 죽음의 고통과 가깝지만 엄마는 태어날 생명의 신비와 기대로 고통을 견뎌낸다.
산모의 힘은 산모가 품고 있는 희망과 기대에서 나온다. 신앙의 열쇄는 하느님의 힘이다.
하느님의 힘을 경험하는 진정한 신앙인은 죽음을 하느님의 힘으로 견디어 낸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현세의 삶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세상의 물질, 권세, 명예에 대한 애착, 자식에 대한 집착도 하느님의 힘으로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죽음도 하느님의 힘으로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많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가치를 내려놓지 못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이야기도 그 예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어머니와 요한이 옆에 있었다. 예수님은 성모님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세상 사람인 요한에게 양보하시고 떠나셨다. 어머님의 사랑을 세상의 자녀인 제자에게 내려놓고 가신 것이다. 사실, 예수님은 세상으로부터, 제자로부터,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으셨다. 얼마나 절망하셨을까? 예수님은 당신이 내려놓으셔야 할 것을 다 내려놓으시고 자신의 생명을 하느님께 맡기시고 돌아가셨다. 절망까지도 버리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느님께 마지막 보고를 드리고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부활하셨다.
‘하느님의 종’, ‘가경자’, ‘복자’라는 호칭으로 순교하신 분들은 마지막 죽을 때의 모습을 웃음으로 끝내신 분들이다. 하느님의 힘을 체험한 분들로서 세상에서 겪었던 많은 인연을 거듭 내려놓고 천국의 희망을 바라고 가신 분들이다.
나뭇잎들은 비, 바람, 햇볕 등 모든 과정을 겪어도 떨어지지 않으면, 새순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어려운 삶을 힘들게 겪어 왔어도 내 영혼을 위한 내려놓음, 비움이 없으면 천국을 맞이할 수 없다.
죽음의 때를 기다리고 있는 노인들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드려야 할까?
하느님은 내 삶 깊숙히 내재되어 있는 존재, 하느님을 만나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성찰해 봐야 할 것이다. 나의 삶이 외적으로 성공했으나 내적으로 죽어있는 삶은 아닌지, 과연 둘 다 만족한 삶인지, 나 자신이 너무 氣가 강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 온 일은 없는지, 너무 氣가 약해 꼭 필요한 일을 못했는지, 부정적이었는지, 불행한 사람이었는지, 다른 사람의 단점을 지적해온 사람이었는지, 행복한 사람을 시기 질투하고 다른 사람과 다투기를 잘 했는지, 지나치게 고민하여 나하고 싸우는 삶을 살아왔는지, 등.
살아온 과정을 감사하며 그동안 겪었던 어려웠던 일, 슬펐던 일, 억울한 일들을 남의 탓으로 연관짓지 말고 이제 그들과의 인연들을 내려놓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제 남은 인생여정을 행복한 사람과 함께 어울려 행복의 기(氣)를 받아드리고,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사랑이라는 말로 아이들에게 향한 집착을 버리고 신앙인의 입장으로 감사하며 세상에 대한 마음을 비워야 할 것이다.
하느님과 나는 원래 하나이다. 내가 하느님의 속성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부부가 하나 되려면 나만의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느님의 세계를 향한 대림절 묵상 - 사막에서 피정하시며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냐?’라는 유혹의 시험을 겪으셨던 예수님은 본인 자신을 위한 기적을 베풀지 않으시고 하느님 흉내를 내지 않고 끝까지 인간으로 남으셨다.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베드로가 세 번째 예수님을 배반할 때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다.(루가22,61) 예수님의 눈빛으로, 스승님의 어머님 같은 마음을 읽은 베드로는 밖에 나가 슬피 울었다. ‘괜찮아!’ 결코 꾸짖지 않으신 예수님의 침묵의 사랑이셨다.
행복, 자유, 기쁨, 감사, 사랑을 얻고자 살아왔던 우리는 죽기 전에 체면 차리지 말고,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추구해 왔던 세상의 가치들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P.S. 우선 작은 것부터 올해 안에 움켜쥐지 말고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정리해보자.
- 옷, 신발, 그릇, 책, 살림살이, 옛날을 기억하게 하는 사진들...
첫댓글 아멘!
감사드립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가 하는 행동은 이타적이 될 수 밖에요.
당신을 위해선 기적을 행하지 않았던 예수님처럼. 집중해서 강의를 듣기도 바쁜데 최선배님은
어떻게 다 기록하시고 정리를 하시는지요. 듣고서도 잊었구나를 선배님 요약을 읽으며 깨닫는답니다. ^^
저는 '하느님은 사람을 침묵으로 키운다'로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