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9일(일요일).
청산(802m) : 대구시 달성군 우록리.
▣산행코스 : 녹동서원주차장-김충선묘-602봉-남지장사갈림길-청산정상-백록마을회관-우록리버스종점.
▣산행시작 : 녹동서원주차장 출발 09시 47분.
▣산행종료 : 우록리버스종점 도착 15시 57분.
▣소요시간 : 약 10.5km / 6시간 10분 소요.
09 : 47 녹동서원주차장 출발.
10 : 00 김충선묘.
10 : 32 602봉.
11 : 35 남지장사갈림길.
12 : 46 청산 정상.
14 : 48 백록마을 갈림길.
15 : 20 백록마을회관.
15 : 57 우록리버스회차장 산행종료.
▲ 08시 35분 : 칠성시장앞1 정류장.
가창 우록리 비슬지맥상에 위치한 청산(802m)으로 가기위해 가창2번 버스를 기다린다.
▲ 09시 35분 : 가창 우록리의 녹동서원(鹿洞書院) 도착.
녹동서원은 충절보국의 삶을 산 사야가(沙也可) 김충선(金忠善, 1571~1642)의 위패를 봉안하고
봄과 가을에 제향하는 서원이다. 영조 임금(재위: 1724~1776) 말기부터 삼도(三道) 유림이 뜻을 모아
상소했으며, 1789년(정조 13)에 다시 유림에서 공의를 모아 상소한 결과 1794년(정조 18)에 서원을
준공하고 위패를 봉안하게 되었다.
서원 소슬대문의 향양문(向陽門)이라는 현판은 김충선이 남쪽을 향하여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향양문(向陽門)이라 이름 지었다.
▲ 충절관(忠節館)..
김충선의 후손과, 일본인 및 대구시의 후원으로 1998년 6월에 건립한 유물전시관이다. 왜란 당시 사용된
조총을 비롯하여 유물, 유품과 한일 양국의 역사, 문화, 왜란 관련 전문도서가 전시되어 있다.
▲ -3도의 알싸한 차가움이 옷속을 파고드는 아침이지만.. 완전무장을 하고 산행하기에는 딱 좋은 날씨다.
▲ 김충선의 생애와 일대기가 전시된 한일우호관 마당을 통과하여 왼쪽으로 가면..
▲ 모하당 김충선묘소를 안내하는 이정표를 따라간다.
▲ 녹동서원은 1864년(고종 1)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885년(고종 22)에
영남 유림과 김씨 문중이 합심하여 재건했다. 1971년 국가의 지원을 받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녹동서원에는 사당 녹동사, 숭의당, 향양문, 충절관, 유적비, 신도비, 한일우호관 등의 건물이 있다.
▲ 녹동사(鹿洞祠).
김충선은 1642년(인조 20) 72세를 일기로 우록동에서 별세했다. 사후 녹동서원에 배향되었다.
조정에서는 그에게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2품 정헌대부의 벼슬을 내렸다(광해군 10).
김충선의 위패를 모신 녹동사에서는 매년 3월 유림과 후손들이 모여 제례를 지낸다.
▲ 한일우호관건물 뒤편의 묘소로가는 안내판을 따라 쪽문을 지나 데크로 올라간다..
한자로 써 놓은 것은 간간히 찾아오는 일본인들을 위한 배려인듯 하다..
▲ 10시 00분 : 김충선묘 아래쪽에 차남인 김경신의 묘..
비문에는 증공조참판김해김공휘경신지묘(贈工曹參判金海金公諱敬信之墓)라 되어 있다.
▲ 김충선묘..
사야가(沙也可) 김충선(金忠善, 1571~1642)은 원래 가토 마사요사의 좌선봉장을 맡아 휘하 3000명의
부대를 이끌고 조선에 상륙했다. 그러나 모하당문집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부터 유학공부에 심취해 있었고
조선과 중국의 문화를 흠모했으며 일본의 비속한 풍속에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하여 4월 13일 부산에 상륙한 후 부하들에게 약탈을 금하는 군령을 내리고 이틀 뒤 침략의 뜻이
없음을 알리는 효유서(曉諭書)를 백성들에게 돌렸다.
이후 경상도 병마 절도사 박진에게 "사람이 사나이로 태어난 것은 다행한 일이나 불행하게도 문화의 땅에
태어나지 못하고 오랑캐 나라에 태어나서 끝내 오랑캐로 죽게 된다면 어찌 영웅으로 한이 되는 일이 아니랴
하고 때로는 눈물짓기도 하고 때로는 침식을 잊고 번민하기도 했다”
“이 나라의 예의문물과 의관 풍속을 아름답게 여겨 예의의 나라에서 성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따름입니다.”
등의 내용이 담긴 서신을 보내 투항의사를 밝히고 뜻을 같이하는 500명과 함께 조선에 투항한다.
▲ 김충선의 비문.. 증정헌대부병조판서김해김공휘충선지묘(贈正憲大夫兵曹判書金海金公諱忠善之墓).
▲ 10시 04분 : 김충선묘를 지나 능선에 올라서서.. 남지장사 방향을 따른다.
▲ 제법 가파른 오름에 땀이 배일만 하면 한줄기 바람이 스쳐가며 땀을 말려주는 기분좋은 걸음이다..
▲ 숲에가려 조망없는 602봉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 바위사랑이 남다르신 홍여사님이 모델이 되어 주신다..
▲ 큰형님과 함께... 아직은 청춘이십니다..
▲ 후미팀과의 호흡고르기...
▲ 10시 45분 : 삼정산 갈림길.. 방향표시목들이 윗쪽은 어지러웠는지 땅으로 내려와 아예.. 드러누웠다..
▲ 11시 01분 : 656봉의 케언(cairn)에 정성의 돌하나 올리고...
▲ 낮최고기온 7도.. 바람 초당 4m의 예보이지만 능선의 굴곡에 따라 바람도 불었다가 멈추고의 반복이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서신 아등팀 저마다의 관록들이 아름답다..
▲ 회원님들이 떠난 막힘없는 656봉에서...
▲ 정동쪽을 바라보니 비슬지맥상의 상원산이.. 대청봉.. 동학산.. 두루봉을 앞세우고..
▲ 동북쪽의 병풍산과 함께.. 수성구의 용지봉을 향해 또다른 맥을 이어간다..
▲ 몸을 돌려 서쪽을 보면.. 우록마을 너머로는 우미산이고.. 저멀리로는 비슬산이 조망된다.
▲ 서북쪽에는 오늘의 목적산인 청산(802m)이 보이고 그 아래로는 남지장사가 자리하고 있다..
▲ 당겨 본 남지장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4년(684년) 양개대사가 왕명으로 남지장사(南地藏寺)를 창건 되어, 무학대사(無學大師) 등
많은 도인이 수도하였고...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이 절을
승병 훈련장으로 이용하였다. 당시 승병과 의병장 우배순이 거느린 의병이 함께 훈련하였는데,
모두 3천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 여름이면 바람길 좋고.. 조망좋은 쉼터인데... 우록골에서 올라 오는 바람이 너무 세차다..
▲ 바람길을 피해 양지바른 곳에서.. 바다에서는 오징어가 대표선수로 나오고..
육지에서는 식물고기 두부(조포)가 나와 경쟁을 한다..
▲ 여기에 황새님의 동곡막걸리 한잔을 곁들이니 궁합이 완전 딱이다..
▲ 또 하나... 야대장님이 홍여사님께 권하는 달달한 술잔속에 대추나무사랑결렸네~,, 아니라..
야등팀에 사랑 걸렸네~~ 가 된다... 보기 좋습니다..
▲ 우록의 산행은 말굽처럼 한바퀴 휘돌아 가는 코스다..
▲ 11시 34분 : 남지장사 갈림길..
▲ 11시 57분 : 삼각점이 있는 740봉..
▲ 전에 없던 안테나가 세워져 있다..
▲ 12시 29분 : 주리 갈림길..
▲ 청산으로 오르는 마지막 치오름을 올라서면...
▲ 청산벌의 전망대 육각정 쉼터..
▲ 최정산쪽으로 가면 넓은 평원이 나오고..
과거에 목장이 있던곳으로 억새가 장관인 이 일대를 청산벌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 12시 46분 : 청산(802m) 정상 도착.. 정상석 뒷면을 보니 청도산악회에서 세웠다..
청산이라고 한 유래가 아쉽다.. 나의 개인 생각으로는 청산벌에서 중심이 되는 곳이라는 의미인듯...
▲ 야회장님... 소나무 여신님의 자리 불안 합니다..ㅎㅎㅎ..
▲ 14시 48분 : 겨울산행에서 더 이상의 진행은 무리다.. 백록마을로 하산..
▲ 무수히 숱한 사연들이 오고갈 철탑속의 세상..
▲ 찜질방.. 문에 지철심경이라 되어 있다..
지철심경(志鐵心鏡)은.. 의지(意志)는 쇠와 같이 마음은 거울같이,,라는 말로..
"무릇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자기의 뜻을 펴 나가기를 의지는 굳게 다지며 한점 부끄럼 없는 삶으로
자신의 삶을 거울에 비쳐 보고 마음을 다스려 밝게 그리고 행동은 부드럽게, 유연하게,, 라는 뜻이다."
▲ 내부 모습...
▲ 백록당(白鹿堂)..
1554년경 단양우씨 판서공 우홍명의 5세손인 우성범(禹成范 1534-1603)이 선대의 피난처인 청도 풍각의
송천을 떠나 최정산 아래 선유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가 거처를 옮기던 날 밤에 큰 눈이 내렸는데
흰사슴 한 마리가 상처를 입고 그의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사슴을 구해준 뒤 자신의 집 이름을 흰사슴이
찾아온 집이라는 뜻에서 백록당이라 지었고... 마을 이름도 선유동에서 백록동으로 바뀌었다고...
▲ 백록동의 옛 이름인 선유동을 딴.. 선유정 앞에.. 래인거맥(來人去脈) 사람이 오니 산맥이 물러나네...
깊은 산속은 사람을 유혹하듯 이끌어 가며, 가없는 계곡이 나를 유혹하누나~~...
자연에 순응하며 순리에 따르라는 뜻이다..
▲ 15시 22분 : 백록마을 쉼터에서 한숨돌리고..
가창2번 버스 종점인 우록1리정류장 2.2km를 내려가야 된다..
부지런히 간다면 16시 01분에 출발하는 버스시간을 맞출수 있을 것이다..
▲ 아침에 지나갔던 656봉이 손에 잡힐 듯 하다...
▲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가 어릴적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 우록1리 버스 정류장..
▲ 15시 57분 : 정류장 도착.. 기똥차게 시간을 맞추었다..
▲ 대구 도심과 먼거리도 아니면서 별리의 세상 같은 마을..
최정산 첩첩 산중마을,
대구의 젖줄인 신천이 시작되는 마을,
임진왜란 때 조선에 귀화한 왜군 장수 모하당 김충선이 이곳에 터를 잡은 마을..
설원에는 백록이 뛰어 놀고 계곡에는 신선이 노니는 마을..
깊은 산속은 사람을 유혹하듯 이끌어 가고, 가없는 계곡은 나를 유혹하는 곳..
무릉도원.. 십승지지의 길을... 좋은 님들과 함께 걸어온 하루였다.
첫댓글 노회장님 덕분에 좋은곳 구경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