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명절만 되면 고향은 가야하고, 몇시에 출발하여 어느 길로 가야 고생을 덜 할까? 하는 마음을 늘 갖습니다. 이 것은 저뿐 아니라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마음일 것입니다.
금년 추석에도 각 언론기관에서는 연휴가 3일밖에 안되므로 '극심한 교통체증'을 예고했습니다. 저는 가족들과 함께 추석 전날 새벽 4시도 못되어서 서울의 잠실을 출발했습니다. 언제나 고속도로를 주장하는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국도를 이용하여 송파>성남>광주>용인>양지>백암>일죽IC 까지 가서 중부고속도로를 탔지요. 그런데 평소 보다 약 30분 정도 밖에 더 걸리지 않았더라구요. 물론 잠을 설치며 새벽에 출발한 사정도 있지만 말입니다. 그 후로도 극심한 교통체증은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돌아오는 길도 추석 다음날 새벽 4시가 못되어 고향을 출발했는데 고속도로가 하나도 안막히더라구요.
이번 추석이 특별했던 것은 교통도 교통이지만, 제가 약 27년만에 할아버지 산소의 벌초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 특별하냐구요? 그동안 시골에 사시는 형님이나 종갓집의 조카들이 늘 벌초를 해왔기 때문에, 저는 한번도 할아버지 산소를 가본 일이 없었거든요. 성묘도 집에서 가까운 부모님 산소만 다녀 올 뿐, 제가 어릴 때 호랑이가 방목하는 송아지를 잡아먹었다는 산속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는 못가보는 것이 당연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형님도 바쁘고, 종갓집 조카도 몸이 아파서 벌초를 미루다가, 추석 전날이 되었던거죠. 그래서 친조카 두명과 저의 아들을 데리고 깊은 산속을 들어가서 벌초를 했던 것입니다. 아직도 어릴 때의 호랑이가 송아지 잡아먹은 생각을 하니까 약간은 무서운 생각이 들더군요. 어쨌거나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제가 결혼도 하기 전에 거기까지 데리고 가셔서 벌초를 하시며, 당신이 돌아가신 후에도 할아버지 산소가 어디 있는지 잊지말고 잘 봐두라고 당부를 하셨던 일이 있지요. 저는 그때 상석에 씌여진 표시문을 일기장에다 옮겨두었고, 그 일기장이 아직 보관되어 있으니 할아버지 산소를 잊어버릴 일은 없답니다. 저는 조카들과 제 아들녀석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며, 어릴 때 소먹이러 근처의 산을 올라서, 먼 도회지쪽(대구)을 바라보며 장래의 꿈을 키워 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조상들의 은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지요.
"너희들에게는 증조부님이 되시는 이 할아버지가 안계셨으면, 아버지도 안계셨을테고, 그러면 형님이나 나도 없었을 것이며, 그러면 너희들 또한 지금 이자리에 서있지 못했을 것이야. 그러니 우리가 조상들의 은덕을 기리며 명절때 마다 멀리 있는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예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겠느냐?"
추석날 새벽에는 형님과 형수님이 새벽 5시부터 성당에 갈 준비를 하셨습니다. 15Km는 족히 되는 거리에 떨어져 있는 선남본당으로, 부모님을 위한 추석합동위령미사를 드리러 가시는 것이었지요. 안개가 자욱한 밤길을 제가 운전하여 같이 갔습니다. 제가 명절에 고향에 와서 합동위령미사를 드리는 것은 난생 처음이라, 이 또한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형수님이 신앙생활을 20년 정도 쉬셨고, 형님도 25년 정도를 쉬시며,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유교전통대로 제사드리는 것을 그만둘 수 없다."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이번 추석은 새벽에 합동미사를 드리고, 집에서는 젯상에 지방도 안써붙이고 간소하게 차례를 지낸 것입니다.
또 한가지 특별한 얘기는 바로 농촌 마을의 난데없는 폭음(爆音)에 관한 얘기입니다. 저의 고향은, '들리는 것은 파란 하늘에 흰구름 흘러가는 소리뿐'이라고 제가 표현했을만큼, 모든 공해와는 거리가 먼 시골이랍니다. 그런데 고향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조금 있으니, 느닷없이 대포소리가 "쾅!"하고 나더란말입니다. 깜짝놀라서 이게 무슨소리냐고 형수님께 물으니, 과수원에 설치한 조류퇴치용 가짜총소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리는 한 번 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3~5분마다 한방씩 터져 온 산의 메아리까지 동원되니, 그 소음공해란 이루 말할 수 없더라구요. 그 뿐이 아닙니다. 밤에도 그소리는 계속되었거든요. 대포소리에 놀란 소가 유산을 할 정도라니 말입니다. 과수원 주인은 이곳에서 자는 사람이 아니라, 대구에서 출퇴근 하는 사람이랍니다. 밤에는 사냥개가 지키게 하고 본인은 대구에서 자니까, 고향사람들의 입장은 조금도 생각을 안하나봐요. 그리고 그런 장치를 하는 것이 합법인지 불법인지는 모르지만 경찰서에서는 알고나 있는지...
밤중에 자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어두컴컴한 화장실을 찾아 뒷곁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대문앞 농수로에 일을 보는 것이 오히려 편하답니다. 별이 총총한 하늘을 올려보니 '똥누러 가는 별' 하나가 길게 꼬리를 물고 날아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시원하게 볼일을 보는데, 깜빡 잊고 있던 "쾅!"하는 폭음에 저는 또 한 번 움찔하며 놀라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