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량난과 만나의 약속(1-5)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불평하기보다는 인내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을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가 즉시 채워지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실지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신뢰는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진정한 테스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그 계획에 따라 최선의 방법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1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2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4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5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1-5)
엘림에서의 꿈같은 휴식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다음 행선지는 엘림과 시내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입니다. 신 광야에 도착한 때는 출애굽을 기준으로 제1년 2월 15일입니다. 그들은 1월 15일에 출발했으므로(민 33:3), 신 광야에 도착할 때까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신 광야에서 재차 백성들의 원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온 회중이 척박한 광야 한복판에서 식량 부족으로 모세와 아론을 향해 불만을 터트립니다. 그들은 엘림의 달콤한 휴식이 끝나자마자 다시 투덜거립니다. 충격적이게도 그들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먹을 때 여호와의 손에 죽는 것이 나을 뻔했다고 말합니다. 해밀턴(Hamilton)의 표현대로, 지옥과 같았던 애굽이 불과 한 달 만에 에덴동산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것은 사악한 거짓말입니다.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매일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구원을 간절히 호소했던 그들이 어떻게 고기를 배 터지게 먹었단 말입니까? 더 중요하게도 과연 그들에게 식량이 없었습니까? 앞서 웅장한 출발 장면에서 그들은 ‘수많은 잡족(여러 민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함께 떠났음이 확인됩니다(12:38). 카수토(Cassuto)는 식량 부족으로 백성이 투덜거린 것은 식량으로 쓸 가축을 소유하지 못한 일부 사람의 난동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온 회중’을 단순히 과장법으로 치부합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 그들은 머지않아 가나안 땅에 입성할 것을 기대하면서 귀중한 재산인 가축을 광야에서 축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 추론이 옳다면, 매우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불평을 터트리고 있는 셈입니다.
한편, 동일한 사건이 민수기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백성을 위해 하늘에서 양식을 비처럼 쏟아지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4). 그들은 매일 필요한 양식을 거둘 것입니다. 그들에게 풍성한 만나를 주시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실천하는지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직전 마라의 쓴물 사건에서도(15장) 단물의 기적 뒤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방식으로 ‘시험’을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율법 준수 여부에 따른 그들이 받을 시험은 무엇입니까? 상당히 설득력 있게 카수토는 아마 이 시험은 이어지는 안식일 법의 준수 여부와 연결되는 것으로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만나를 제공하시되, 과연 그들이 제7일의 안식일을 명령대로 지키는지 그들을 시험하실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섯째 날에 갑절을 거두어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5).
안식일은 창세기 1-2장의 창조 사역을 마친 후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날로 언급됩니다(창 2:2-3). 그러나 아담 이후 창세기의 족장 이야기를 거쳐 모세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켰다는 언급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안식일 법은 나중에 시내산 아래에서 십계명이 반포될 때 비로소 공식적으로 선포됩니다(출 20:8-11).
그러나 노아 홍수의 시간표는 안식일이 준수되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시내산 율법과 레위기의 법전이 선포되기 전에, 원시적 형태의 다양한 율법들과 제의적 관행들이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이미 실행되고 있었을 것입니다(창 4장; 8:20; 15:9-11; 31:34-35,54). 따라서 안식일 제도의 율법적 공식화 이전에 이미 이스라엘 백성은 원시적 안식일 법을 알고 지켰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나와 고기 공급을 예고하심(6-1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시며,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지를 확인하십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며, 그분의 뜻에 따르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더 깊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방법입니다. 신앙의 시험을 맞이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6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7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8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9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10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1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6-12)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그대로 전했습니다(6). 만나가 이슬처럼 내리고 엄청난 메추라기 떼가 날아온 것입니다. 저녁에는 메추라기 떼가 내려와 대지를 덮을 것이고, 아침이면 만나가 하얗게 지면에 내려온 것을 볼 것입니다(6-8).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한 번 여호와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셨을을 알게 될 것이며 (6), 저녁에 고기를 먹고 아침에 ‘만나’라는 떡을 배불리 먹을 것입니다(8). 모세와 아론은 이 약속의 말씀을 전하면서 자신들에게 불평하며 대항하는 백성을 꾸짖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들이므로 그들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8). 다시 한 번 모세의 대언자 아론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모세는 아론을 통해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망을 들으셨다는 사실과 그분의 살아계심의 증거를 나타내실 것임을 알립니다(9).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았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습니다(10). 이것은 초자연적이고 압도적인 광채의 출현이었을 것입니다.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림(13-1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시며, 우리의 순종을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의 공급을 경험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13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14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15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16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1)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13-16)
하나님의 약속대로 식량이 하늘에서 쏟아졌습니다. 저녁에 메추라기 떼가 진영을 뒤덮었고 아침에 이슬이 진영 주변에 내렸는데, 이슬이 마른 뒤에 놀랍게도 광야 전역에 서리처럼 하얀 물질이 비늘처럼 얇게 쌓였습니다. 메추라기 떼는, 다수의 학자들의 설명대로, 지중해로부터 이집트 남부와 수단을 오가는 철새이며, 그것들이 이 시기에 대량으로 출현한 것으로 추론됩니다. 그러나 더햄(J. Durham)은 이러한 견해를 거부하면서 출애굽기 저자의 의도는 초자연적인 기적에 의한 공급의 역사를 묘사하고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만나와 메추라기 떼가 출현한 시기인 음력 2월(양력 4월경) 어간은 실제로 철새인 메추라기 떼의 이동 시기와 일치합니다. 이때 지친 메추라기 떼는 시내 반도에 쉬기 위해 내려앉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새 떼가 평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밀도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이것은 분명 초자연적 현상이었습니다. 만나 또한 자연주의적 설명이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만나는 타마리스크 나무에서 기생하는 벌레의 하얀 배설물로 간주되는데 실제로 달콤한 맛이 난다고 합니다. 아랍인들은 그것을 ‘만(mann)’이라 부릅니다. 오늘날도 만나의 채취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매우 소량이며 특정 시기에만 채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공급된 만나는 매일 이스라엘 백성을 다 먹일 만큼, 또한 특정 시기가 아닌 연중 내내 40년 광야 생활 동안 계속 공급되었다는 점에서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로 만나를 채취하러 간 사람이 거둘 만나의 양을 장막에 남은 가족 수당한 오멜(약 2.2리터)로 한정하셨습니다. 2.2리터의 만나는 한 사람이 먹기에는 지나치게 많기에, 그것은 특정한 숫자의 가족을 위한 분량으로 보아야 합니다. 유월절 예식 때 양 한 마리에 맞는 가족 규모가 적시되지 않은 것처럼 이 평균적 가족의 숫자 또한 적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유월절 양을 위해 모인 가족 규모가 작을 때는 두 가정이 합치라고 한 것을 고려할 때, 한 가족의 평균 숫자는 최소 5명 정도였지 않을까 추정해봅니다. 어쨌든 그들은 평균적 가족 수에 맞게 만나를 거두어야 했습니다(16).
평균케 된 만나 공동체(17-21)
현대 신앙 공동체에서도 하나님의 자원과 은혜는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우리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신앙과 자원을 나누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물질적, 영적 자원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공동체 전체가 함께 성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17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18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19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20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21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17-21)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 나가 만나를 채취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노동력에 차이가 있으므로 모두가 동일한 수확량을 거둘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많이, 어떤 사람은 적게 거두었습니다(17). 그러나 오멜의 됫박으로 재보니 놀랍게도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이 먹을 만큼’의 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먹고 남은 만나는 그날 저녁 취침 전에 폐기해야 했습니다. 만일 아침까지 남겨두면 썩어서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기 때문입니다(20). 일부 사람들은 아까운 마음에 만나를 남겨두었지만, 결국 부패해 먹을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불순종한 그들에게 분노하며 경각심을 심어주었습니다. 백성은 아침마다 만나를 적당량 채취했으며, 햇볕이 뜨거워지면서 만나는 점점 녹아 사라졌습니다(2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필요를 어떻게 채우셨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그들의 기본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며, 신뢰와 순종을 시험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적시에 공급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급 방식을 신뢰하고 그분의 지혜를 받아들이며,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고, 그분의 신실함에 감사하며 신앙을 더욱 깊이 해 나가길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