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단 여수와 광양 사이 그곳에는 남해군이 자리 잡고 있다. 운전 연습을 하기 위해 남쪽 도로를 따라 여행을 하던 중 원래의 목적지에 가기엔 너무 거리가 멀고 밤늦게 도착할 것 같아 급하게 장소를 바꿨다. 그 장소가 바로 남해였고, 남해를 가게 된 이유도 단순했다.
“이주 정도 지내다 왔다고 하는데 되게 좋다고 하더라고.”
여자친구의 말을 믿고 무작정 방향을 튼 것이다. 방향을 틀었으니 적어도 정보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연락을 남겨 놓았고, 그렇게 맛집 정보를 받게 되었다.
“남해에 가면 꼭 여기서 멸치쌈밥을 먹어봐! 진짜 맛있어!”
이 순간 남해는 나에게 멸치가 되었다.
남해군
남해에 위치한 경상남도 남해군은 무려 신라시대 때부터 남해라는 이름을 처음 시작해 계속해서 이름이 바뀌어 온 곳으로 남쪽 바다인 남해보다 조금 더 역사적 명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남해하면 남쪽 바다를 떠올리기에 남해군이라는 명칭으로서 더 많이들 지칭한다.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지만 사천시와 하동군을 통해 다리를 건너 진입할 수 있다. 또한, 대중교통으로 터미널에 올 수 있으며, 여행시기에는 수많은 관광버스가 찾아오는 멋진 관광지 중 한 곳이다. 대표적인 특산물로는 유자와 마늘, 시금치, 멸치가 있다.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금산, 보리암, 독일마을, 다랭이 마을, 최근에 핫해진 스카이워크 등이 있다. 이외에도 나는 시간이 없어 가지 못했던 여러 뭉돌해변이 있다. 크게 남부와 북부로 나뉠 수 있는데 대부분 북부에 여러 관광지들이 모여 있는 반면에 펜션과 같은 멋진 숙박업소들은 비교적 남쪽에 위치해 있다. 섬 자체는 대한민국에서 3번째로 큰 곳이고 지방이다 보니 대중교통으로 여행하기엔 조금 어려운 사항이 있다.
삼천포 대교를 통해 남해군에 들어온 뒤 쭈욱 국도를 따라 달리다 보면 창선교라는 작은 다리를 지나게 된다. 이곳을 넘어가면 지족항이 나타나고 그 유명한 남해군의 멸치 쌈밥 거리를 알게 된다.
다행이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해 여자친구에게 소개 받은 우리 식당이라는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금요일 밤이라는 늦은 시간만큼 주변의 다른 가게들은 문을 닫은 상황이었지만, 이곳만큼은 계속해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고, 가게 내부에는 엄청난 유명인들의 방문을 볼 수 있다. 먼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정운찬 전 총리의 흔적은 멋지게 액자 속에 위치해 있었고, 배용준과 다른 연예들의 방문 기록도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맛집의 기본 베이스인 티비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에서도 이곳에 방문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가장 재밌는건 이러한 유명인들 사이로 일반인들도 무수히 많은 기록을 남겨 놓았는데 마치 학교 앞 분식집 같은 묘한 분위기도 함께 선사했다. 물론, 이곳은 어른들이 멸치쌈밥과 소주를 마시는 공간이지만 말이다.
부모님과 함께 왔기에 멸치쌈밥 2인분과 멸치회무침 소자 하나, 그리고 갈치구이 하나를 주문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중 반찬이 하나 둘 나왔고, 일하시는 어머님들의 손맛이 하나하나 느껴지는 반찬들부터 맛있었다. 가장 먼저 나온 멸치회무침은 비쥬얼은 조금 익숙한 편이었다. 회무침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멸치회만의 특별한 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야채와 함께 젓가락에 들린 멸치는 이게 진짜 멸치인가 싶을 정도로 큰 하나의 생선이었다. 뼈는 발라내어져 있었고, 새콤한 소스와 함께 버무러진 야채를 한 입에 먹으니 술안주로 제 격이었다. 근처에 숙소를 잡고 걸어오길 참 잘했다 여겨졌다.
그 후, 갈치구이와 멸치쌈밥이 나왔다. 국내산 갈치와 지족항에서 잡힌 멸치로 만들어진 한상 차림. 본격적인 남해의 맛을 즐기기 시작했다. 멸치쌈밥은 뭐랄까. 조금은 익숙하면서도 달랐다. 기본적인 생선 조림의 맛이지만 조금 더 텁텁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양념 베이스와 시래기가 들어가는 점은 마치 갈치 조림이나 고등어 조림과 비슷하면서도 생선에서 우러나온 맛은 의외로 쓴 맛이 나고 있었다. 물론, 멸치 자체는 맛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그 멸치가 우러나온 시원~한 육수의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 야채에다가 마늘도 올리고 해서 먹으면 맛있어요.”
술과 함께 음식을 즐기는 우리에게 맛있게 먹는법을 알려주는 이모님. 남해산 마늘이라며 김치와 시금치, 마늘장아찌 등 밑반찬과 음식을 함께 충분히 즐겨갔다. 모든 음식을 텅텅 비웠지만, 개인적으로는 멸치쌈밥 보다는 멸치회무침이 더 맛있었다.
그렇다면 이곳 남해는 도대체 왜 멸치가 유명할까. 먼저 이곳 지족항은 시속 13~15km의 거센 물살이 지나는 좁은 물목으로, 이 일대의 어로작업은 죽방령이라고 불리는 고유한 어획법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 23개소의 죽방령이 설치된 우리나라 전통적 어업경관의 모습을 볼 수 창선교와 그 주변 바닷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죽방이란 대나무 발 그물을 세워 고기를 잡는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나무 어살이라고도 한다. 물때를 이용하여 고기가 안으로 들어오면 가두었다가 필요한 만큼 건지는 재래식 어항으로 이곳에서 잡힌 생선의 최고의 횟감으로 손꼽히고 있다. 물살이 빠른 바다에서 사는 고기는 탄력성이 좋아 그 맛도 뛰어나다고 한다.
창선교 아래에 보면 무지개로 칠해져 있는 작은 해안 도로를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죽방이 있는 전통적 어로를 구경하며 과연 남해에는 또 어떤 맛이 있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기대는 얼마가지 않았으니 남해는 특산물이 멸치인 만큼 온 세상이 멸치 쌈밥집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