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합리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객관적으로 문제를 바깥에서 바라볼 줄 알며 감정보단 이성을 중시하는 냉철한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계획을 짜려고 노력했고 최대한 그 틀을 지키려고 노력했었던 것 같다.
직관적 경험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지만 제일 먼저 가족들과 함께 갔던 일본 여행이 생각난다. 처음으로 가는 일본 여행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고 싶은 마음으로 계획을 세웠었다. 가족들 모두 바빠서 나 혼자 호텔을 알아보고 예약하고 비행기 티켓도 예매하고 여행 일정을 짜게 되었다. 동선과 여행비용을 생각하면서 합리적으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건지 하나하나 다 따져가며 계획을 완성했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다 풀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내가 알아보았던 도톤보리의 유명한 라멘집이 문을 닫은 것이다. 바로 다른 지점을 알아보았지만 길이 헷갈려서 자꾸 그 주위만 돌아다니게 되었다. 이때 가족들은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좋지만 힘이 드니까 근처 아무 라멘집이나 가서 먹자고 말을 했다. 원하던 가게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 열심히 짜왔던 계획이 틀어지는 것 같고 아무 라멘집이나 가게 되면 맛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생각이 되어 꺼려졌었다.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던 채로 일본에서의 첫 번째 식사를 끝냈다. 다음날에는 꼭 계획에 맞추어 일정을 진행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숙소를 출발하는데 또 예상을 벗어난 일이 생겼다. 일본 지하철을 타야하는데 표를 끊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시간이 지체되면서 계획이 조금씩 어긋나고 있는데 가족들은 아무 상관없듯이 지하철이 신기하다며 즐겁게 구경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결국 지하철 티켓을 끊고 가려고 했던 목적지에는 계획했던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게 되었고 일정들은 한 두 개씩 뒤로 밀렸다. 이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체력적 한계로 인해 내가 구상했던 합리적인 계획들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행복한 여행이 되어야 하는데도 계획이 망가진 것에 자꾸만 화가 났고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이때 기분이 좋지 않은 나에게 엄마가 “여행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즐겁게 여행 다니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말씀을 해주셨고 나는 내가 이 여행에서 놓치고 있던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행복해야할 가족 여행에서 나는 계획대로 되지 않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다른 가족들에게도 나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었다. 그 이후 합리적인 계획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끌리는 대로, 발이 향하는 대로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가는 길목에 있었던 양식집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계획해서 찾아보았던 곳에 가게 되었다면 분명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이렇게 가족들과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오붓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이 좋았다. 계획을 버리고 직관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다보니 돌발 상황이 생겨도 내가 그 전 시간동안 느끼지 못했던 여행의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합리적인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관적으로 선택을 내리는 이 경험은 평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합리적 사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직관적인 것이 항상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직관적 선택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경험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유연한 사고와 선택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