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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3
나의 영원하신 기업
여호수아서를 읽다가 가장 집중력이 떨어지고 성경을 덮고 싶은 곳이 바로 오늘 본문인 13장에 들어서면서부터일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진입하는 이야기, 그리고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아이 성을 정복하는 이야기, 가나안 서편의 남부와 북부지역의 강력한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당당하게 승리하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처럼 자신의 앞길이 열릴 것 같은 환상에 잠기고, 여리고처럼 꽉 잠긴 문제들이 무너질 것 같은 희망이 보이고, 아무리 어렵고 힘겨운 일이 닥쳐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하는 용기가 생기지 않습니까? 적어도 12장을 읽을 때까지는 그러한 흥분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13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지루하게 이어지는 땅 분배이야기는 성경을 읽는 사람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역설적으로 여호수아 13장부터가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좀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만 우리 나라 사람들이 땅을 너무 너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만큼 땅에 대한 애착심이 강한 민족도 없을 것입니다. 땅 때문에 다투는 일도 많고, 또 땅 때문에 망하는 경우도 많고, 땅을 제일 중요한 부의 상징으로 여기는 관계로 땅 이야기만 나오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유곡 교회와의 땅을 비교하면서 배 아파한 경험).
오늘 읽은 13장부터는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하고 또 소유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가나안의 실제적인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대한 주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을 좋아하는 우리에게는 13장의 말씀부터가 가장 재미있는 장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뿐만 아니라 이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기업, 즉 유산이 적힌 등기부등본과도 같은 아주 소중한 자료인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12:7)"고 하신 언약의 성취였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분배를 시작하는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이겠습니까?
1. 그 나머지도 책임져주리라.
오늘 1절을 읽어보면 우리를 아주 당혹스럽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라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가나안 정복에 대한 기사를 공부했습니다.
11장에 19절과 23절에 보면 기브온 거민을 제외한 가나안의 모든 거민들은 모두 이스라엘이 정복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아직도 정복하지 못한 땅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땅"이란 가나안 남서쪽의 블레셋 지역과 북쪽에 있는 변두리 땅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주요 부분에 대해서 상당한 지배권을 획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 많아 늙은 여호수아(카일/90세∼100, 즉 더 이상 전쟁을 지휘할 수 없는 연령)에게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자투리땅이 큰 부담이요 걱정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6절과 7절의 말씀을 읽습니다.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나의 명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半)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하셨더라" 아직 정복하지 못한 남은 땅의 사람들도 다 쫓아내고 그 땅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나머지도 책임져주리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1절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6절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 즉 여호수아는 나이가 많아서 더 이상 남은 땅을 정복할 능력이 없어졌지만, 그러나 "나" 여호와,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 능력의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비슷한 주제의 설교가 계속된다는 것을 눈치 있는 사람은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격려에 귀 기울이라", "하나님이 방법이다", "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라", 오늘은 "하나님이 책임져주신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설교를 왜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그것이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프랑스 미술가 협회에서 '올해의 가장 멋진 그림'의 수상자로 [프란시스 모더론]이라는 사람을 선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양손이 없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손으로 붓을 잡을 수 없는 그는 팔에 나무 손을 끈으로 묶어서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그림은 정상인들이 그린 그림보다 예술성과 색채 구성, 그리고 색채에 담긴 상징성이 탁월하다는 평가와 함께 수상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손이 없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호흡이 있는 한 이 나무 손으로 인생의 아름다움을 그리겠습니다" 그는 양손이 없는 것을 인생의 한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한계를 뛰어 넘어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전후좌우 아무리 살펴보아도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는 문제에 봉착할 때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역부족일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역부족입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부족인 것을 느낄 때, 기가 꺾이고 낙심하며 절망합니다. 가만히 보면 그렇게 복잡한 문제가 아닌데, 싸워보지도 않고 일찍부터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가? 분석해보면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 정해 놓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해 놓은 한계점에 이르면 더 이상 도전해보려 하지 않습니다. 왜, 그 이상은 가보지 않았으니까? 혹시 실패하지 않을까? 더 나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들 때문에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만든 미신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그 미신을 버리지 않는 한, 결코 그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역부족이라 느꼈을 때, 인생의 한계가 느껴질 때, 결코 기 꺾이거나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세상이 정한 한계요, 내 자신이 정한 한계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떠한 한계도 초월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 안에 서 있는 백성들은 한계에 눌려 있지 말고,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면 얼마든지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다는 의식으로 무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못하는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당당하게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한계 너머에 있는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을 보게 될 것이며 새로운 인생이 개척될 것입니다.
2. 이미 받은 축복을 누려라.
7절을 읽습니다.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半)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하셨더라"
나이 많아 늙은 여호수아가 해야 할 마지막 사명은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게 그들이 정복한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나누고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半)쪽 지파는 이미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아모리 사람의 땅과 바산 땅을 기업으로 받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아홉 지파와 또 다른 므낫세 반(半)쪽 지파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하느라 아직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들 때문에 아직 가나안의 기업을 누릴 형편이 못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얻은 땅을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분배하여 그 땅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땅을 정복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생각에만 집중되어 피곤한 일상을 사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미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것을 권고하시는 말씀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엔조이 할(즐기고 누릴)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보다 앞으로의 일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너무 일찍부터 이루어지지 않은 기대감만 가지고 현실의 축복에 감사하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사실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관심보다 우선적으로 여러분들의 손에 쥐고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보다 지금 내게 주신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세어보고 감사하는 인생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최고 경영자 예수]라고 하는 책을 보고 있습니다. 광고, 마케팅, 경영컨설턴트 회사인 존스 그룹의 창시자이며 경영자인 '로리 베스 존스'라고 하는 여인이 20년간 회사를 경영하면서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경영자 상을 정리한 책입니다. 이 책 54페이지에 "예수님은 항상 축제상태에 계셨다"라고 하는 테마가 있는데, 예수님은 탄생에서부터 축제로 시작하여 언제나 축제의 삶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먹기를 탐하는 자라고 하는 핀잔을 들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앞으로 당신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일에 대해서만 근심하고 걱정하셨다면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희망이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은 매일 매일의 삶에 임하고 있는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하셨고, 최선을 다해 누리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신이 받은 축복보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내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남들과 똑같아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남들이 가진 것을 내가 가져야 하고, 남들과 같지 않으면 소외감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사탄이 역사 하는 것입니다. 자꾸 우리의 눈을 남의 것에 관심 같게 하고, 자꾸 우리의 귀를 남의 소리에 가까이 가게 만듭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어진 축복마저 빼앗기는 불행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의 실수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이 누리고 에덴 동산의 온갖 축복보다 마귀가 보여준 선악과에 관심을 갖게 됨으로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남들이 받은 축복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주신 축복이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의 비극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언제나 무거운 율법의 짐을 지고 허덕거리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었지만 언제나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정죄와 심판을 당할 걱정에만 사로 잡혀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은 누리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오셨건만 그들은 계속해서 다윗의 영광만 부르짖으며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된 구원의 기쁨을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받고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자긍심은 있었으나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불행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함으로 누렸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지금까지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로마서 8장 1-2절의 말씀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 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 믿으면 아멘 합시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우리들은 참 자유인들입니다. 예수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참 자유자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축복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가치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기준에 따라 미혹 당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에 따라 행복을 순위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은 그 감격과 기쁨 때문만이라도 행복하고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어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들을 기쁨으로 누리고 그것으로 행복할 수 있을 때, 새로운 은혜와 축복은 계속해서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여호와가 너의 영원한 분깃이다.
14절을 읽겠습니다.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기업으로 준 것이 없었으니 이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 기업이 됨이 그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음이었더라"
33절 "오직 레위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가나안 땅을 분배하면서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지파가 있었습니다. 바로 레위지파입니다.
레위지파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음식제물" "선물)을 분깃(유업)으로 받았습니다.
민수기 18:20에 보면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고 했습니다.
레위인들에게는 생계를 위한 아무런 분깃이 없었지만 하나님 자신이 레위인의 분깃이 되고 기업이 되신다는 하셨습니다. 레위인들은 레위지파는 제사장 지파며, 성전 예배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지파입니다. 땅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일을 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책임져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많은 물질적인 축복들보다도 여호와 하나님 그 분이 가장 크고 놀라운 우리의 유업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레위 지파 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는 것이 무가치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자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땅을 소유하는 것, 물질을 누리는 것, 신앙의 눈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가나안 땅은 분명히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보다 여호와 하나님 그 분 자체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것이 축복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자세라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8장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를 마치고 봉헌식 기도를 드릴 때, 백성들을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솔로몬이 백성들을 축복하는 내용은 이것입니다.
"①하나님께서 우리 열조와 함께 계시던 것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떠나지 마시고 버리지 마옵소서 ②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명령과 규례와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③하나님만이 온 세상의 주되신 것을 알게 하소서"입니다.
백성들에게 '땅을 달라는 이야기' '명예를 달라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백성들의 주가 되셔서 영원히 함께 계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부귀보다 중요하십니다. 하나님은 명예보다 중요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이십니다. 정말로 주 예수님을 우리의 유업으로 분깃으로 받으며 감사할 수 있는 백성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렇게 성숙한 신앙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찬송하지만 사실은 세상의 부귀와 영화, 땅과 명예를 더 좋아하고 그것에 온통 정신을 잃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촌성결교회의 이정익 목사님이 쓴 "기독교 안의 무속신앙"이라는 칼럼을 읽으며 공감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복을 해석하는 기준이 성경중심이 아니라 세속적인 기준을 따르면서 돈을 잘 벌고 몸이 건강하고 재난을 당하지 않아야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삶이라는 사고가 그리스도인들을 지배하고 있어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낙심하고 절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에 임하는 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의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께로 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성령이 오셨고, 성령께서 우리의 삶에 언제나 동행하시며 지키시고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의 심령에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귀하고 큰 축복입니다. 이것이 나의 유업이요, 내가 받은 분깃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이렇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찬송가 492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여러분들에게 한번 묻겠습니다.
예수 믿으면 아멘 합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신이의 신앙에 대하여 자신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믿는 예수가 부끄럽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붙잡고 있는 십자가가 떳떳하십니까?
문제가 생기면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축복을 동냥하는 불쌍한 인생들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레위인들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분깃이요 기업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며 매일 매일의 삶 속에 녹아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