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아꽃 / 모임득
고목에 핀 꽃이 화사하다. 우듬지까지 흐드러지게 핀 꽃도 예쁘지만 짙은 갈색 울퉁불퉁한 나무에 꽃송이 몇 개가 눈길을 끈다. 굵고 오래된 벚나무 둥치에 상큼함이라니. 좀 생뚱맞기도 하다. 생명력으로 충만한 봄의 신선함이다. 느긋하고 평온하게 꽃구경하는 일이 올해는 참 힘들었다. 봄인가 했더니 느닷없이 영하의 날씨에, 눈발에, 산불에 예년보다 꽃이 늦게 핀다. 고개 내밀던 꽃다지, 제비꽃, 개불알풀, 냉이꽃, 민들레꽃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입 다물고 있었다. 햇볕은 꽃 피우는데 참 많은 역할을 한다. 이제 인색했던 태양은 따스한 햇볕으로 연둣빛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꽃을 어루만진다. 작은 가지가 아닌 철갑 같은 단단한 몸통에 싹이 돋아나는 모습이 신기하다. 줄기 속에 맹아 숨은 눈이 있는데 필요할 때 나와서 꽃이 피는 맹아꽃이다. 맹아萌芽는 풀이나 나무에 새로 돋아서 나오는 싹을 뜻한다. 어떤 현상이나 사물의 시초 및 근원을 표현하는 단어로도 사용된다. 식물에서 줄기가 훼손된 후 새로운 줄기 만들어내는 능력을 맹아력萌芽力, sprouting ability이라고 한다. 적당한 눈높이에 매달려 있어 사진을 찍기도 편하다. 겨울철에 동해凍害를 많이 보는 벚나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맹아를 많이 만들어낸다고 한다. 큰 가지가 얼어 말라죽은 것에 대비하여 다른 곳에 싹을 틔워 생존을 위한 보완 장치라니, 자연의 힘은 위대하다. 죽은 나무처럼 거뭇하던 거목에 핀 꽃. 칙칙한 갈색의 나뭇가지에도 흐드러지게 핀 맹아 꽃. 벚나무는 다른 나무에서 볼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숨구멍으로 가로 형태의 피목皮目이 발달해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줄기에서 맹아 꽃이 피는 신기한 모습을 보인다. 이 두 가지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것은 숨구멍 피목으로 공기가 많이 들어가서 형성층에 있는 개화 세포를 활성화해 줄기에서도 꽃이 피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다. 주로 오래된 벚나무 줄기에서 맹아꽃이 핀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번잡하다. 올해는 더더욱. 그래도 사람들이 아무리 시끄럽게 난리를 피워도 꽃들은 저마다 몸속에 정밀한 생체시계를 지니고 있어 때맞추어 꽃을 피운다. 순환되는 우주의 법칙과 자연의 신비로움은 계절과 절기를 무시할 수 없나 보다. 무채색이었던 세상을 빠르게 색칠해 놓았다. 생동감 넘치는 색채의 산야를 보며 마음을 다스린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무심천을 꽃물결로 바꾸어 놓은 밝고 경쾌한 시간이다. 사월의 봄. 나이 먹었다는 푸념보다 벚꽃 아래에서 나만의 맹아 꽃을 발동 걸어볼까. 젊었을 때는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숨구멍이 좀 트인다. 늦었지만 맹아 꽃을 준비하고 개화 세포를 깨워 마음 놓고 꽃 피울 준비하면 비슷한 향취라도 나겠지. 벚꽃도 이제 곧 질 터이다. 허공에 하롱하롱 꽃잎 날아오르며 떨어지겠지. 그렇게 한 잎 두 잎 바람에 난분분하다가 언제 추웠는가 싶게 여름이 성큼 다가올 테다. 봄꽃은 빨리 져서 더 애처롭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 벚꽃이 한 숨결로 피었다가 계절 따라 피고 진다. 초록빛 잎사귀로 무장하고 한 여름을 보낼 터이다. 피목과 맹아꽃을 준비하면서…. 중년의 봄. 나이 들어 봄꽃 타령이 어울리진 않지만 뭐 어떠한가. 내게 봄이 더디게 느릿느릿 왔을지라도 오래 머물기를. 이렇듯 마른 가지 끝에 와서 꽃을 틔웠듯, 주름지고 검버섯 핀 손끝일지라도 내 손끝이 닿는 자리마다 다시 피어나는 꽃잎이었으면. 내 인생이 가을까지 왔을지라도 모든 만물 소생시키는 봄비를 기다려도 되겠지. 고목에도 꽃이 핀다고 하지 않던가. 벚나무 아래에서 다시 봄을 누려볼까나. 마음 놓고 여유 있게 해찰해도 좋은 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봄은 오고 꽃은 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모든 꽃이 봄에 피는 것은 아니다. 여름에도 피고 가을에도, 겨울이 돼서야 피는 꽃도 있다. 존재의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나만의 불빛을 찾다 보면 느지막이라도 피어나지 않을까. 봄바람이 푸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