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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의 論과 爭 (계속)
이철희 - 제가 아사리판이란 표현을 썼는데, 아사리는 ‘모범이 되어 제자의 행위를 바로 잡는 고승’이에요. 이 고승들이 여러 모여서 갑론을박하니 얼마나 대단하겠어요. 근데, 고승도 아니면서 고승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파계승처럼 행세하니 문제인 거죠. (웃음) 언제가 끝인지 모를 정도로 한없이 싸우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려고 하셨는데, 뭐부터 손댈 생각이셨습니까?
이상돈 - 크게 보면 3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정치개혁의 차원에서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 둘째 진보정당이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당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 새로운 사람의 영입 등 당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 이 세 가지입니다.
이철희 - 평소 오픈 프라이머리, 그중에서도 정당별로 하는 오픈 프라이머리가 아니라 정당 관계없이 한꺼번에 모아서는 하고, 상위 1~2등이 본선에서 겨루는 이른바 탑 투(top 2) 방식을 주장하셨는데, 그렇다면 전략공천은 나쁘다고 보시는 건가요?
이상돈 - 지금은 전략공천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기 어려워요. 과거에는 김영삼, 김대중, 이회창 등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들이 눌러서 전략공천을 했고, 그때 들어온 사람들이 지금은 화려한 스타가 됐잖아요. 하지만 그 후에는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없어요. 안 됩니다. 그러나 전략공천이 의미 없다고 보진 않습니다. 2012년 총선 때 새누리당 입장에서 볼 때 야당이 했던 탁월한 공천은 영등포에 신경민, 광명에 이언주예요. 그들이 여당의 권영세 사무총장과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전재희 의원을 눌러버렸죠. 저는 탁월한 전략 공천이었다고 봅니다.
이철희 - 전재희 전 의원은 지역구 관리를 무척 잘한다는 평가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분의 패배를 의외로 받아들인 분들이 적지 않았죠.
이상돈 - 저는 당시에 전재희 의원이 위험하다고 느꼈어요. 제가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으로 있을 때 의원총회를 한 번 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전재희 의원과 김영선 의원이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가자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망했다는 식으로 얘기합디다. 좀 의아했죠. 그러면 의원총회에 왜 나옵니까, 정계은퇴 해야지요. 두 의원이 다 떨어졌습니다.
이철희 - 탁월한 선견지명(foresight)이시군요. 그렇다면, 내년 총선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이상돈 - 야권이 이대로 가면 어렵죠. 당시 민주당이 81석을 얻은 2008년 총선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수도권에서 2~30대, 심지어 40대까지 투표율이 저조할 것 같습니다.
이철희 - 2008년 총선에서 당시 한나라당, 선진당, 친박연대를 합치면 185석이죠. 여기에 무소속으로 당선된 여권 성향까지 합치면 거의 200석 가까이 됩니다. 만약 그처럼 되면 야권은 그야말로 몰락하는 게 되죠. 낮은 투표율, 특히 인구비중에서 이젠 상대적 소수가 된 2~30대인지라 안 그래도 불리한 터에 투표율까지 낮으면 이들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야권으로선 치명적 타격을 입겠네요.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군복무 중인 청년들에게 특별휴가 등을 선물로 주고, 노동개혁이나 청년희망펀드 따위로 청년층을 공략하고 있으니 야권으로선 설상가상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은 야권이랑 친하게 지내시니 조언 좀 해주시죠.
이상돈 - 문재인 대표가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개혁할 때 했던 방식, 즉 ‘이건희 스타일’로 해야 된다고 봐요.
이철희 - 이건희 스타일이라는 건 마누라와 처자식 빼곤 다 바꾸라는 얘긴데,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요?
이상돈 - 아날로그 철학을 버리고 디지털 철학으로 가서 일본의 소니를 이겼고, 이른바 삼성의 기적이 이뤄졌잖아요. 문재인 대표가 자기만 빼고 다 바꿔야 된다는 얘깁니다.
이철희 - 인적 구도로 보면 이건희 회장이 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이 구축한 체제를 과감하게 혁파했다는 뜻도 되잖아요?
이상돈 - 네. 소니는 아날로그의 영광에 취해 있었어요. 비유해서 말하자면 친노 세력은 과거의 환상에 취해 있는 겁니다. 이젠 노무현 프레임에서 벗어나야죠.
이철희 - 이건희 회장을 벤치마킹 하라는 것은 표현도 재밌고 메시지가 될 거 같습니다. 그런데, 재벌 오너(owner)인 이건희 회장이 가졌던 힘이나 권한을 지금의 문재인 대표가 가지고 있을까요?
이상돈 - 저는 그게 권한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의 문제라고 봅니다. 따라가는 게 아니라 이끌어 가는 리더십을 발휘해야죠. 그런데, 지금까지 하는 걸 보면 너무 구태의연한 생각에 머물러 있는 거 같아요. 지난 4월 29일에 있었던 재·보궐 선거 때 동작을 선거구에 출마했던 노회찬 후보처럼 사고하는 거죠.
이철희 - 그게 어떤 겁니까?
이상돈 - 야권의 후보 중에서 내게 제일 크고 세다, 그러니 나로 단일화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내가 단일후보로 나서면 이긴다, 뭐 이런 생각이죠. 그런데 결과가 어땠어요? 졌잖아요. 한 달 전에 들어온 나경원 후보에게 졌습니다.
이철희 - 제1 야당으로서 군소정당을 억눌러 새정치연합 중심의 후보단일화를 이뤄내는 패권적 행태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설사 산술적 덧셈을 뜻하는 단일화를 이루더라도 승리하기 어렵다는 거죠?
이상돈 - 2012년 총선과 대선도 단일화로 치렀지만 졌잖아요. 단일화 필승론은 이제 철 지난 신화일 뿐입니다.
이철희 - 선거연대나 후보단일화는 우리나라의 선거제도에 따르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소선거구-단순다수제는 1등과 2등 간 싸움, 양당 경쟁을 추동하기 때문에 제2당으로선 단일화 필요성이 일종의 제도효과이니까요.
이상돈 - 그런 불가피성을 인정하더라도 ‘이길 수 있는’ 연대가 돼야 하는 거잖아요. 이기기 위해선 충성심 있는 유권자만으로 안 됩니다. 지금 여론은 수도권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아요. 그런데도 총선에선 여당이 이길 거라는 전망이 더 많죠.
이철희 - 유권자들은 바꿀 의향을 갖고 있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이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얘기군요. 옳은 말씀입니다. A와 B 중에 A가 싫다고 해서 B가 자동으로 좋아지는 건 아니죠. A가 싫으면 B를 쳐다볼 기회는 더 늘어나지만 좋아할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죠. 그런 점에서 B, 즉 새정치연합은 유권자들이 좋아할 만한 긍정적인 이유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건 그렇고, 충성심 있는 유권자만 잡아서는 못 이긴다는 말씀은 정당론의 관점에서 포괄정당(catch all party)로 가야 하는데, 새정치연합이 너무 진보 정체성을 강하게 표출한다는 건가요?
이상돈 - 진보정책이 만병통치약이 아니잖습니까. 진보정책이라는 게 이미 허점이 많이 드러났잖아요.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바꿔야 합니다.
이철희 - 남재희 전 장관이 칼럼에서 이런 지적을 했더군요. “한국의 정당정치가 중도화되어야 한다는, 그 가운데 특히 지금의 야당이 중도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얼핏 그럴듯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실은 숨은 목적을 갖고 있다고 여긴다. 중도화론은 알게 모르게 우리 정치를 중성화시키고 무력화시킨다. 중도화란 많은 경우 진보적·개혁적 입장에서 보수화로 가는 중간기착지이기가 십중팔구이기 때문이다.” 저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이상돈 - 저는 야당이 우클릭 해서 당의 중도적 성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고, 좌클릭에 몰입하면 국민의 외면을 받을 거라고 봐요. 모름지기 보편적인 국민 정서를 파악하고 거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정치죠.
이철희 - 저는 진보냐 중도냐 하는 문제를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선택하는 차원으로 이해하는 건 잘못이라고 봅니다. 유권자들의 성향을 말할 때, 레이코프 교수가 말하는 다중개념(bi-conceptual)이나 요즘 정치학자들의 양가성(ambivalence)이란 용어는 한 사람이 사안에 따라 보수성향을 보이기도 하고 진보성향을 보이기도 하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거든요. 진보정책이나 보수정책, 또는 중도정책이란 표현은 그나마 가능할지 몰라도 진보냐 중도냐 하는 이분법적 선택 프레임은 옳지 않죠. 그런데 어쨌든 진보를 강조하는 분들은 제대로 된 진보정치를 제대로 펼쳐보지 못했다고 볼멘소리를 해요.
이상돈 - 제대로 된 진보정치가 뭔지에 대해선 설명이 없잖아요. 그래서 전 그들이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철희 - 아마 추론컨대, 유럽의 사민주의나 복지노선을 말하는 것 같아요. 민족적 진보에서 사회경제적 진보로 바뀐 거라 할 수 있죠. 사민주의든 복지노선이든 이를 풀어내는 정치와 전략이 핵심인데, 이에 대한 이해는 너무 얕아요. 그러니 지난 대선에서 복지나 경제민주화를 먼저 외쳐놓고서도 어는 순간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이른바 이슈 오너십(issue ownership)을 빼앗겨 버린 거죠. 이처럼 무능한 진보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상돈 - 이런 질문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복지를 계속 강조하는데, 그 복지 혜택을 누가 보느냐,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야당을 지지하느냐, 하는 거죠. 젊은 층은 복지보다는 일자리 늘리고 경제성장을 더 필요로 하는 거 아닌가요. 이게 더 중요하죠.
이철희 - 저소득층일수록 상대적으로 보수정당을 더 지지하는 현상을 지적하는 거군요. 복지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상돈 - 복지에 너무 긴박되어 있는 건 잘못이라고 봅니다. 복지도 여러 가지 정책 중에 하나가 돼야지 복지만이 살길이라고 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이철희 - 박상훈 박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 정치가 점점 더 중산층 편향적이고 하층 배제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중략) 노동자의 시민권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그 나라 민주주의의 내용과 질은 크게 달라진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는 하나의 노선으로서 진보는 옳고, 필요하다고 봅니다. 내용적으로는 복지노선에 대해 동의하는지 여부를 떠나서, 선거 전략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좋지 않다고 보시는지요?
이상돈 - 복지가 내년 총선의 메인 이슈가 되긴 어렵죠. 복지는 이미 2012년의 담론이잖아요. 아마 내년에는 일자리, 경제 등이 더 크게 작용할 겁니다. 예컨대 청년 실업이 정말 심하잖아요. 젊은 층이나 젊은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려면 그들에게 와 닿는 뭔가가 있어야죠.
이철희 - 새정치민주연합의 주력 지지기반이란 할 수 있는 젊은 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데 복지담론은 안 먹힌다는 거죠?
이상돈 - 복지 담론은 한계가 있다는 얘깁니다.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거냐,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이런 것들이 중요할 겁니다.
이철희 - 야당도 성장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의 소득주도 성장이나 안철수 의원의 공정성장, 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복지성장 등이 대표적이죠. 야당도 성장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건데요, 이런 시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상돈 - 그런 시도는 좋아요. 그러나 먼저 정리할 게 있습니다. 자기들이 집권했을 때 본격적으로 추진했던 것이 FTA이잖아요. 야당이 되고 나서는 FTA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건 자가당착입니다. 여당으로서는 이런 말 바꾸기(flip flap)가 활용하기 좋은 호재죠.
이철희 - 총선은 이대로 가면 진다고 보시고, 대선은 어떻게 보세요?
이상돈 - 대선은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죠. 그러나 총선에서 야당이 제1당은 못 돼도 그에 근접할 정도로 선전해야 대선 전망이 가능합니다. 턱없이 패배해 버리면 대선도 어렵다고 봐야죠.
이철희 - 사실 야권 입장에서 보면 총선보다는 대선이 상대적으로 좀 쉽죠. 총선에서 이겨본 적은 한 번밖에 없고, 대선은 그래도 두 번이나 이겼으니까요. 총선과 관련해, 보수 정부 10년에 대한 피로증도 상당하기 때문에 야권에게도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이상돈 - 그런 분위기가 형성될 가능성이 아주 크지만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대안으로 인식되지 않잖아요.
이철희 -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은 넘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신뢰가 낮기 때문에 어렵다는 뜻인가요?
이상돈 - 새누리당을 싫어하더라도 그 대안이 마땅치 않으면, 다시 말해 야당을 선뜻 지지하기 어려우면 그냥 기권해 버리죠. 2008년 총선에서 당시 한나라당이 승리할 때 투표율이 낮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철희 - 야권의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불러낼 만큼 대안으로써 인정받고, 그 자체로 야당을 믿고 좋아할 만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에 동의합니다. 인물이나 정책, 행태 등을 모두 포괄해서 지금의 야당은 후지고 지질한 게 사실이죠.
이상돈 - 저 정당을 지지해 표를 주면 우리 문제가 나아지고, 삶이 좀 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해요. 그렇게 되려면 헤세의 표현처럼 알을 깨는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아직 그런 게 잘 안 보입니다.
이철희 - 알을 깨는 데 비유하셔서, 과거엔 안에서 쪼는 힘이 약하면 밖에서 던지는 충격으로 알을 깨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시민사회라고 부르는 정치권 밖의 진보진영도 너무 약해서 그런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죠.
이상돈 - 시민사회 또는 NGO는 이미 동력을 상실했어요. 노무현 정부에 너무 밀착해서 노 정부의 몰락과 함께 무기력해졌고, 스스로의 한계도 있다고 봐요. 너무 관료화한 거 같습니다. 여기에 SNS의 영향도 있어요. 개인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디지털 사회이다 보니 스스로 의견을 표출하려 들지 어떤 단체에 의존하지 않으려 하는 거죠.
이철희 - 결사체(associations)를 통한 대중적 접근보다는 미디어를 통한 개인적 접근이 더 효용성을 갖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니까요. 크렌슨과 긴스버그란 정치학자가 쓴 책(『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을 보면 대중민주주의(popular democracy)가 개인 민주주의(personal democracy)로 전락한 게 미국 민주주의의 질이 나빠진 이유라고 설명돼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맥락이죠.
이상돈 - 보수 진영도 그리 좋지는 않아요. 보수의 지식인 집단은 이명박 정부 때 거의 몰락해 버렸습니다. MB정부의 들러리를 서면서 잘못한 것에 대해서도 침묵했습니다. 그래서 신뢰를 잃어버린 거죠.
이철희 - 그러고 보니, 보수 지식인 중에 대중적 신망을 갖는 분이 거의 없네요. 사실 보수나 진보를 떠나 잘잘못을 가차 없이 따져주는 것이 지식인의 기본 역할인데 말이죠. 진영 논리 때문에 시비가 뒤틀리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그렇다면, 진보의 지식인 집단은 어떻습니까?
이상돈 - 편협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국민 대중을 움직이는 힘을 잃어버린 거 아니가 싶어요.
이철희 - 지식인 집단으로 보면 진보나 보수 모두 대중적 호소력을 잃어버렸네요.
이상돈 - 그렇죠. 그 원인은 진영 대결에 있어요. 진영 논리에 빠져서 한쪽은 무조건 비판하고 한쪽은 무조건 지지하기 때문이에요. 그건 지식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이철희 - 사실 요즘엔 대중적 권위를 인정받는 집단이 거의 없어요. 교수, 변호사, 의사 등등 거의 모든 집단이 권위를 잃고 있죠. 그러다 보니 셀럽(celebrity)이라고 불리는 유명인들이 득세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젠 인지도가 실력이고 권위인 세상입니다. 문제죠.
이상돈 - 요즘엔 개나 소나 다 논객이라고 합디다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어요. 60~70년대에 논객이란 호칭은 거룩한 것이었어요. 조선일보의 선우휘, 동아일보의 천관우쯤 되어야 논객이라 불렀죠. 그분들은 어디에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이었죠. 진영을 막론하고 틀린 건 틀렸다고 했어요.
이철희 - 사실 그래야 논객이고, 지식인 거죠. 진영 대결의 구도에서 다수파라면 몰라도 소수파는 무조건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자신들이 소수파인 진영 구도를 깨고 자신들이 다수파인 진영 구도로 바꾸지 못하면 계속 소수파에 머물러 있어야 하니까요.
이상돈 - 노무현 정부 때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교수가 어느 칼럼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영정을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했잖아요. 저는 그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과거에서 탈피해야죠.
이철희 - 과거로부터 좀 벗어나려는 조언은 야당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근거 없는 도덕적 우월의식을 버렸으면 좋겠어요. 야권에는 그게 아주 강하거든요.
이상돈 -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젠 의미 없죠. 이미 민주화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지금의 2~30대에겐 꼰대의 잔소리로 들려요. 지금 시대의 과제에 집중하고, 그에 대한 해법에서 더 낫다는 평가를 받아야죠.
이철희 - 전략적으로든 누굴 경시하면 항상 지게 돼 있는 것 같아요. 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퇴라고 하잖아요. 근데 사실 상대를 아는 ‘지피’보단 자신을 아는 ‘지기’가 더 어렵거든요. 상대를 폄하하고, 자신을 과장하면 질 수밖에 없는 거죠.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런 것 같아요.
이상돈 - 우리 선거를 보세요. 내용이 넘쳐흐르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나요? 오히려 반대죠. 선거는 이성적 프로세스라고 보기 어려워요.
이철희 - 옳으신 지적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앞으로도 왕성한 활동과 편 가르기 없는 지성적 비판을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