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경은 미친 계집애” 날 괴롭힌 가짜뉴스 19개
이문열, 시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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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나에 대한 오해를 변호한다
몇 해 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스스로 어떤 작가였다고 생각하느냐고 묻길래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재수 없는 시대에 태어난 재수 없는 소설가. 봄은 짧고 겨울은 길고. 봄의 추억은 달콤하고.
내가 만든 허구의 세계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모습은 굉장한 감동이었지만 불행히도 그 기간은 대단히 짧았고, 이후 세상과의 터무니없는 싸움이 길게 이어졌다는 뜻이었다.
보수 논객 자부한 적 없어
나는 호사꾼들이 말하는 것처럼 보수 논객도 아니고, 스스로 보수 논객이라고 자부한 적도 없다. 아무도 말을 안 해서 내가 나서다 보니 대표적인 보수 인사로 보였을 뿐, 내가 딱히 논쟁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를 공격하면 효과가 있다고 봤던지 자주 시비에 휘말렸다. 그렇다고 내가 야박한 말을 서슴없이 해댄 것은 아니었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주저 없이 바로 말해버린 건 있다. 단언(斷言)을 자주 하는 독학자(獨學者)의 독단이었을 수도 있고, 부주의했다고 할 수도 있는데 그래서 가끔씩 욕을 봤다. 시비 끝에 욕먹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하지도 않은 말로 오해가 생겨 시비가 붙으면 억울할 수밖에 없다. 10여 년 전 헤아려 보니 그런 경우가 열아홉 가지나 됐다. 대표적인 게 내가 1989년 방송 토론 프로에 나가 대학생 임수경씨를 두고 “미친 계집애”라고 표현했다는 오해였다.
1989년 8월 4일 방송된 MBC TV '박경재의 시사토론'에 참석해 발언하는 이문열씨. 이 토론에서 대학생 임수경씨를 두고 "미친 계집애"라고 했다는 가짜뉴스가 퍼져 오랬동안 고통받았다. 사진 MBC
결론부터 밝히면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미친 계집애’라는 표현은 내가 평상시 쓰는 말이 아니다. 단순한 오보(誤報)였는지 아니면 요즘 식으로 악의적인 가짜뉴스였는지 임수경에 대한 욕설 논란은 그야말로 어처구니없이 생겨나, 내가 우리 시대 가장 통탄스러운 현상으로 꼽는 ‘정정이 불가능한 문화’를 업고 사실로 둔갑한 다음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다.
89년의 방송 토론은 지난 회에 가톨릭 문규현 신부의 방북을 비판한 내 신문 칼럼 논란을 소개할 때 언급했던 MBC TV ‘박경재의 시사 토론’이다. 토론의 주제 자체가 ‘문 신부 방북 파문’이었다. 진작에 방북해 있던 당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 임수경씨와 판문점을 통해 동반 귀환하기 위해 문 신부를 북한에 파견한 가톨릭 정의구현사제단의 결정이 옳은 것이었는지, 종교의 정치 개입을 어떻게 봐야 할지가 토론의 초점이었지 임수경씨는 원래 토론 대상도 아니었다.
2시간가량의 토론 내내 내가 학생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나쁘게 말한 대목은, “아무것도 모르고 6·25의 경험도 없이 감정만 갖고 크고 완전하고 아름다운 걸 찾는 학생들의 고통이 더 큰 것인지,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 얼굴이라도 한번 봤으면 싶은데 (학생들의 성급한 방북 때문에) 막혀버려 집에서 한숨 쉬는 내 어머니 같은 사람의 고통이 더 큰 것인지, 신부님들은 생각해 봐야 한다”는 발언 정도였다.
어처구니 없는 경로로 가짜뉴스 퍼져
그런데도 시사지 월간 말 11월호에 뜬금없이 내가 임수경을 욕했다는 글이 실렸다. 8월 토론 방송이 나간 후 석 달이나 지났을 때였다. 문학평론가 이우용이라는 사람이 쓴 ’이문열연구-오만과 편견 그리고 허무주의’라는 글이었는데, 전문(前文)의 첫 문장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