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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מִּשְׁפָּטִים 미쉬파팀" : 2월 넷째 주 토라포션 in 5777
출21:1-24:18(To), 렘33:25-26,34:8-22(Haft), 마5:38-42,17:1-11(Brit), 마8:1-13:58(신약)
1부 예배
출24
1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2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13 모세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14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마17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마5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행하며 가르치는 자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מִשְׁפָטִים 미쉬파팀 -> תְּרוּמָה 테루마 : 예물
테루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물을 가져오라고 한다.
출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으려고 드린다. 가장 악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종교 생활이다. 하나님께 받을 것이 있으니까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 못 받을까봐 두려워서 주님께 예배를 드린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에게 이것을 확인시켜주신다. 내가 원하는 것이 오지 않으면 튀고, 내가 받고싶은 것이 다른 곳에 있을 때는 예배를 띵겨먹는다. 그래서 점점 현대인들이 예배를 빨리 드리고 받고 싶은 것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런데 테루마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의 단계이다. 기쁜 마음으로 바치는 단계이다. 사실 인간의 본질은 이것을 할 수 없다. 인간은 받으려는 본성을 가진다. 피조물이란, 알렙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하늘에서는 모든 것을 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피조물은, 그 창조주가 주는 것을 받기 위한 손을 가진다. 원체 피조물은 그렇다.
그런데 받으려고 하는 이것을 이용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받으려고 하는 이것을 타락이라고 한다. 창조주가 자기 자신을 피조물에게 주는 이유는, 그 피조물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를 받게 하기 위함이다. 창조주를 받으면, 창조주 자체는 모든 것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피조물이 모든 것을 주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게 된다. 이것을 알렙, 신성이라고 한다.
이 신성이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나타남이다. 내가, 이 피조물 자체가 받는 존재인데, 받는 존재가 목적을 주는 것으로 바꿀 때 신성이 나타난다고 한다.
테루마는 기쁜 마음으로 주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순수한 마음을 말한다. 아주 순결한 마음이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그냥 나중에 돌아오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예의를 갖추는 것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아주 100% 순전하게 그냥 주는 것이다.
제가 얼마 전에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 어떤 교회는 헌금을 무기명으로 한다고 했다. 우리가 이름을 쓰는 중요한 이유는, 나중에 연말정산할 때 돌아오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Something, 우리는 무언가 계속 받기위해 산다.
그런데 이 인간이 테루마의 경지에 오면 완전히 100% 순결하게 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 테루마는, 머리속에 진리가 결합하는 것이다. 완전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난다. 창조주와 하늘과 피조물이, 땅이 완전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것이 테루마이다.
이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면, 하늘의 모든 말씀이 땅에 가득해진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시는 길이다. 이러한 신의 성품을 통해서 완전히 기쁜 마음으로 주는 것인데, 가장 순결한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시고, 테루마를 통해서 성막이 건설된다. 주님이시다. 성막은 그냥 주님 자체이다. 주님 자체가 이 땅에 사시게 된다.
지난 2년 동안, 테루마 새벽기도가 없었다. 이 주간만 제가 계속 2년 동안 자리를 비웠다. 왜 그럴까 했다. 테루마의 경지에 오려면 반드시 미쉬파팀이 되어야 한다. 테루마는 그냥 배울 수가 없다. 반드시 받는 의지가 어떻게 가장 순결하게 주는 존재가 되느냐? 이것을 목적으로 할 수 있는가? 어떻게 기쁜 마음으로 줄 수가 있을까? 그냥 좋게 주는 것이 아니다. 100% 순전하게 받으려는 목적이 하나도 없이 줄 수가 있냐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아내에게 그런 것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내가 물질과 시간과 많은 것을 주었기 때문에 돌아오는 것이 없으면 더 화를 낸다. 교회 안에서도 많이 무언가를 한 사람이 가장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 예물을 많이 드렸는데 돌아오는 것이 없다면, 큰 문제를 일으킨다. 그렇다고 부인에게 이제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 드러내신다. 정말 순전하게 주는 것은 어떻게 가능하냐? 불가능하다. 이것이 우리의 고통이다. 어떻게 테루마로 넘어가느냐? 우리는 테루마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토라 공부하는 것 조차도, 제자가 되는 것 조차도 내가 바라는 것,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했다.
그런데 출애굽기에서 가장 위대한 챕터를 꼽으라면, 사실은 출25장이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거할 성소를 너희들 속에 지으라. 내 속에 주님이 와서 거할 성소가 지어지는 것이 테루마이다. 그래서 출25장 이후로 출애굽기의 모든 것은 테루마에 할애한다.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테루마 새벽기도를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할 때가 되었다. 아마도, 할 때가 되었지만 충분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이제 미쉬파팀을 우리가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미쉬파팀에서 테루마로 넘어가는 비밀은 출24장이다. 출24장은 굉장히 어렵다. 미쉬파팀에서 많은 율법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출24장은 뜬금없다.
출24: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출24장의 구조속에서 결국 미쉬파팀은, 우리가 주님의 모든 말씀과 율례를 준행하겠다고 하지만, 나중에 모세가 여호와의 영광을 봐야만 한다고 말한다. 모든 말씀과 모든 율례가 이미 백성들에게 전해졌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 또다시 율법과 계명을, 토라를 받는 역사가 다시 한 번 진행이 된다. 그래서 출24장은 이것을 설명한다. 모든 말씀과 모든 미쉬파팀이, 모든 율례가 이미 백성들에게 전해지고, 백성들이 받았는데, 또 토라를 받으러 모세가 다시 올라간다.
모든 말씀과 미쉬파팀을 받았다. 그런데 또 토라를 받으러 올라간다. 미쯔보트라고 하는 토라와 계명은 하나의 영역을 말한다. 사실 이 토라와 계명은 너희들이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 이것을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것이다.
왜 주님은 다시 한 번 토라와 계명을 준다고 하셨을까?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라. 이것은 사실 주님 자체이다. 모든 말씀과 미쉬파팀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그 말씀과 미쉬파팀으로 살기 위해서 주님 자체를 받아야 한다. 주님 자체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주님, 빛에 의해 모든 말씀과 미쉬파팀을 살아낼 수 있다.
테루마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출24장 때문이다. 모든 말씀과 미쉬파팀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았는데, 기쁜 마음으로 줄 수 있는 것은 뭐냐? 생명을 줄 수 있는 것 자체, (히)나탄이신 분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주는 단계로 나아갈 수가 없다. 이것이 출24장의 중요한 부분들 중 하나이다. 이 모든 말씀으로 미쉬파팀을 받아서 이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נַעֲשֶׂה 나아쎄 : 우리가 행하겠다
우리가 행하겠다고 하고 나서, 이미 제사드리는 것까지 다 내려와서 토라 책이 있는 것과 같이 다 알게 된다. 그런데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주님이 내 안에 사시기 위해서는 우리가 행하겠다, 모든 말씀과 미쉬파팀을 우리가 행하겠다고 해야 한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들어간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우리가 행하겠다고 하면, 주님은 언약의 피를 주신다. 이 피를 통해 언약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신다.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신약서는 언약서와 같다. 이미 토라와 미쉬파팀은 다 주어졌다. 그런데 언약서를 가져다가 읽어주고, 모든 언약의 피를 뿌린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말씀과 미쉬파팀을 주시고, 그것을 3년 동안 가르치신다. 그러자 제자들이 나아쎄, 우리가 행하겠다고 한다. 그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제 언약의 피를 뿌리신다. 이것은 내가 흘리는 언약의 피다. 너희의 기억속에 내가 들어가겠다고 하신다.
나아쎄, 우리가 행하겠다. 그러면 언약의 피를 뿌리게 되고, 언약서를 읽어주면, 나아쎄 베니쉬마라고 하신다.
נִשְׁמָֽע 니쉬마 : from 쉐마, 우리가 듣겠다
וְ 베 : and, 그리고
= 우리가 행하고 듣겠다
언뜻 보면, 우리가 듣고 행하겠습니다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우리가 행하고 듣겠다고 하는 이유는, 행하기로 결정하지 않은 자는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듣는 것 = 존재를 보고, 그 존재와 결합하는 것
제자들에게 정말 듣지 않는구나, 쉐마하지 않는구나라고 말할 때가 많다. 정말 자기가 원하는 것을 듣고, 자기가 원하는대로 생각한다. 니쉬마 단계, 언약의 단계에서만 비로소 듣게 되고, 존재와 결합하게 된다. 그러면 정말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시게 된다. 정말 하늘과 결합하는 놀라운 단계로 들어간다. 그것을 통해 토라와 주님 자체가 주어진다. 그러면 우리는 테루마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나아쎄는, 우리가 행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아쎄를 읽으면서도 내가 행하겠다고 읽는다. 에아쎄가 내가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내가 무언가를 바꾸려고 하지만, 여기서는 우리가 듣겠다, 우리가 행하겠다고 한다. 지금도 내가 듣고 있다. 우리가 듣는 것은, 사람에 대한 모든 생각이 바뀌는 것이다.
사람은 끊임없이 나라는 단독자를 놓고 내가 행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우리가 행하겠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The Man의 비전을 가르치기 위해 지금까지 말씀하시는 이유가 이것이다. 사람은 한 사람이고, 우리가 행하는 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행하겠다는 단계에 온 것이다.
사람은 내가 욕망하는 것들을 행하려고 한다. 이것이 되지를 않는다. 내가 욕망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행하겠다고 한다. 내가 무엇을 행하려면 내가 원하는 것을 행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행해야 하는데, 우리가 행하겠다고 한다. 우리가 행하겠다고 하는 것은, 머리가 하나여야 한다. 그리고 어떤 행함의 기준이 내가 아니라, 딱 하나여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하나의 법을 가지는 것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행하는 것이다. 한 하나님, 그리고 하나의 법이다.
사람이 어떤 의지의 행동을 결정할 때, 나로부터 말미암지 않고, 그것이 그냥 어떤 하나의 법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머리에서 나온, 한 하나님에게서 나온 법이 있음을 사람이 알게 될 때 나아쎄라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내가 모든 행함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행하겠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내가 행하고, 내가 교정하고, 내가 어떻게 했는데, 우리가 행하겠다고 하는 것이 미쉬파팀이다. 미쉬파팀은 인간에게 정말 높은 단계의 깨달음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내 행동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나가는 여인을 보고 주님은 음욕을 품지 말라고 하신다. 너희가 간음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지나가는 여인을 보고 어떻게 음욕을 품지 않냐고 한다. 가능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기도 하다. 지나가는 여인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또는 그 날의 나의 상태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실 때는,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가능하냐 아니냐를 따지는 이유가, 내 마음속에 모든 행함을 결정하는 것이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이 품어지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제 주님은 이제 그렇게하지 말라고 하신다. 우리가 행함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법이 있다고 하신다. 우리의 법에 따라서 그것을 네가 하던지 말던지, 우리의 법을 따를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이 나아쎄이다.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는 것에는, 이 삶에 본질이 숨어져 있다. 이 선택을 통해 사람은 많은 싸움을 해야 한다. 결국 인생은 선택의 싸움이다. 그런데 우리가 선택하게 되는 경우는 여러가지가 있다.
* 헤세드의 선택
두가지 다 좋을 때가 있다. 이것을 Yes, Yes 선택이라고 한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그런데 이것이 선택하기가 쉽지가 않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두가지 다 좋다. 어쨌든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일이 삶에서 늘 벌어진다. 양식 먹을래, 중식 먹을래? 양식도 좋고, 중식도 늘 좋다. 두가지 다 좋으면, 선택이 힘들다. 싸움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것보다 조금 더 힘든 선택이 있다. 두가지 다 싫은 것이다. 그런데 둘 중 하나 선택해야 하는 것은 더 힘들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 둘다 원하지 않는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양식도 싫고, 중식도 싫은데 하나 먹긴 먹어야 한다. 이럴 경우는 더 힘들다.
이것보다 조금 더 높은 단계로 삶이 진행되면, 하나 속에 좋고 싫은 것이 동시에 있다. 오늘 짱깨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이것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이것을 먹으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한다. 이럴 때, 우리는 정말 삶의 선택이 힘들다.
어떤 회사를 가야 하는데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가고싶기도 하고, 안가고싶기도 하다. 어느 날은 가야지 했다가, 또 뒤돌아서면 정말 가기 싫다고 한다. 이럴 때 우리는 또 그 회사를 갈건지 말건지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어려운 케이스가 있다. 삶은 다 이런 선택의 연속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두개가 있는데, 두개가 다 좋고 싫은 것이 있는데 이 중에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두가지 다 장단점이 있을 때이다. 아주 교묘하게 서로가 가진 것이 다를 때이다. 두 여인이 있는데, 얘랑 결혼하자니 단점이 보이고, 이 단점을 완벽하게 커버하고 있는 한 여인이 나타났는데 또 얘의 단점을 다른 여인이 커버한다. 누굴 선택해야 하는가? 우리는 둘을 합치자고 한다. 둘을 합친 여인을 찾는다. 이것을 이상형이라고 한다. 이 두개를 합친 여자, 이상형을 찾는다. 결국 무릉도원에 가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지옥으로 간다.
이 마지막 케이스가 제일 어렵고, 판단을 못하고, 결정을 못하고, 자기가 좋은 것을 택하려고 하다가 그 욕망에 빠져서 죽는다. 이것이 현실세계에서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핵심이다. 문제는, 이 세상은 어른이 되어서 보면, 이 4번째 케이스가 가장 주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서 나에게 좋은 것과 악한 것이 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니까 퍼펙트한 무엇인가를 찾는다.
리더도 미치고 팔짝 뛰겠는 것이,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또 단점을 찾아내면 여러분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가 등장한다. 그런 리더들이 유*브에서 등장한다. 또 보니까 그것을 커버하고 있는 리더가 있다. 그것을 또 버리자니 장점이 아깝고, 안버리자니 단점이 있다. 좋은 것은 어차피 이것도 가지고, 저것도 가지는 것이지만, 삶은 그렇게 되질 않는다.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하나만 선택하도록 하나님의 질서는 강제한다. 미치는 것이다.
부인을 만났다. 지나가는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이유는, 부인과 처음에 콩깍지가 씌여서 결혼해서 장점만 보인다. 그런데 결혼하면 반드시 단점이 보인다. 남편에게도 장점과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이 딴생각을 하는 이유는, 그런 단점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보이고, 그런 사람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은 쉽지 않다. 선택을 안하자니 단점이 보이고, 선택을 하자니 우주의 질서에 어긋난다. 저 원수와 살지 못하겠다는 것은 원수가 아닌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택은 해야하고, 선택은 못하겠고, 미치겠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에서 구원받아야 할 핵심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해결하시는 방법을, 언약이라고 하신다. 이것이 나아쎄 베니쉬마이다. 언약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사람이 이 언약을 모르고, 언약을 훼방하고, 언약을 멸시하면, 사람은 심각한 고통 가운데 처하게 된다. 사람은 끊임없이 하늘과 땅, 영과 육, 이 두 사이에서 헷갈려 한다. 하늘을 택하자니 좋은 것도 있지만, 나쁜 것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택하자니 하나님이 다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서구의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나이트 클럽도 못하게 하고, 좀 외롭고 힘든데 한 잔도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화내면 어디 덧나나? 화냈다고 영원히 불타는 못에 들어간다고 하고, 좀 이쁜 여자 지나가면 이쁘다고 하면 안되나? 눈알을 빼버리라고 한다. 팔을 잘라버리라고 한다. 정말 하늘이 좋은가? 꼭 좋지만은 않다. 맨날 새벽기도, 예배드리라고 하고, 무조건 사랑하라고 하고, 무조건 주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땅이 다 좋지도 않다. 좋은 것과 나쁜 것 가운데서 인간은 헷갈려한다. 영으로 사는 것도 좋다. 그런데 나도 좀 누리자고 한다. 육신도 있지 않은가? 영으로만 사는 것이 좋은가? 24시간 기도만 하라고 하면 다 미칠 것이다. 하늘과 땅, 영과 육의 관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건지를 모른다.
여기서 이 둘을 연합하여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언약이라고 한다. 이 언약, Covernent는 하나에 헌신하는 것이다. 이 둘 중에서 나는 나의 욕망에 헌신하라고 하는 것이다. 나에게 좋은 것을 선택해서, 나에게 헌신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아쎄는, 나에게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자고 하는 것이다. '우리 아내'라는 말이 우리나라 말 중에서는 정말 희안하다. 말하고 나서도 좀 섬짓하다. 우리 아내면, 내 아내도 되고, 너의 아내도 되냐는 말인가? 우리 아내는 나에게 헌신하는 아내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아내를 선택한 것이 나를 좋게 하려고 선택한 아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쎄때문에 선택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좋은 것을 가져오려고 해서 정신분열과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온통 방황하고, 역마살이라고 한다. 주님의 은혜로 나에게 헌신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배우게 된다. 그리고 언약은, 장점이 있건 단점이 있건 상관이 없다. 나에게 헌신하면 나에게 선이냐 악이냐인데, 그것에 상관없이 다른 타인 하나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옥의 선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언약이라고 한다. 그냥 하나에 헌신하는 것이다.
다*엘은 여자가 자기에게 다가오면 싸하게 싫어졌다고 했다. 다가오기 전에는 장점이 보인다.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은, 자기가 데리고 살아야 하니까 단점이 있으면 안된다. 그러다가 단점이 딱 보이면 No이다. 그러면 또 이 단점이 없는 애를 찾는다. 이것의 반복이었다. 이런 여자들이 온 세상에 널려있다. 그 속에서 다*엘은 자기가 잘난 것 같지만, 조*호를 타고 망망대해를 타고 다녔다. 자기 자신만을 조준하고 다녔다. 여기에는 답이 없다. 답은 딱 하나에 헌신하는 것이다.
이 피의 비밀을 언약의 피라고 한다. 이 피의 제사의 비밀은 예쏘드이다. 피의 예쏘드, 피의 비밀은 언약에 헌신하는 것이다. 참된 헌신이다. 피는 빨간색인데 Belong to, 어디에 소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언약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정하고, 언약 가운데로 들어감이 필요하다. 이 결정을 나아쎄라고 한다. 나에게 헌신하지 않고, 우리에게 헌신하는 것을 결정해야 한다.
나에게 헌신하지 않겠다고 하면, 반드시 내가 헌신할 누군가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 미쉬파팀은 주님이 나타난다고 해서 우리가 주님을 선택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도 내가 다 만들어낸다. 우리에게 엘로힘은 여러개이다. 이 교회, 저 교회, 이 목사님, 저 목사님에게 배운 엘로힘이 다 장단점이 있다. 여기가 최고인 것 같아서 장점만 모아놓은 엘로힘만 가르치는 교회를 찾았는데, 와서 보니까 또 요만큼이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햇수가 거듭될수록 또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라를 위해서는 왜 기도하지 않지? 가만히 보니까 목사가 좌파인 것 같네?
엘로힘조차도 우리는 나에게 헌신하는, 장단점이 있는 엘로힘을 만들어낸다. 토라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지만, 니쉬마 베나아쎄가 되지 않는다. 사람이 나아쎄, 우리가 행하겠다고 외쳐야 한다. 나에게서 나오는 길이 나아쎄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이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한다. 나아쎄! 삶이라는 것은 나에게 좋은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나아쎄를 인간이 결정하게 되면 인간은 언약을 알게 된다. 언약적 삶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고 하신다. 온갖 기적을 경험하는데도, 나에게 헌신하고 있으면 소용없다. 미쉬파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아쎄 베니쉬마, 이제 우리를 위해 살겠다고 한다. 여러분의 삶에서 리더와 어떤 연합을 결정할 때도 언약적으로 해야 한다. 나에게 헌신하지 않으면, 내가 결합해야 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출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시고, 내 소유가 되겠다고 하신다. 너희들이 내 말을 듣는 니쉬마, 그리고 언약의 개념을 알면 내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언약을 모르면 하나님의 소유가 될 수 없다.
너희가 내 소유가 되는 것에 대한 설명이 온 땅에서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주님 자체, 한 사람, 이스라엘이 선택을 할 때, 한 사람이 완전해서 하는 선택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여자가 퍼펙트해서 결혼하는 것은 진정한 결혼이 아니다. 언약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남자는 나에게 퍼펙트하다고 해서 결혼한다면, 이것은 재앙의 시작이다. 나중에 퍼펙트하지 않음이 드러나고, 이 결혼은 사기이고, 이 남자가 날 속인 것이다.
주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할 때, 퍼펙트해서 선택하시지 않으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는 것은, 너 아니어도 선택할 여자가 세고 셌지만, 내가 너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너에게 단점 투성이지만, 내가 선택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미쉬파팀인데, 항상 잘못한 이야기만 나온다. 이 여자가 정말 쉬원치 않음을 아셨다. 살인하지 말라, 때려죽이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이 여자가 폭력을 행할 여자라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이것을 알고도 선택하는 것을 Covernent, 언약이라고 한다. 그걸 알고도 죽음을 각오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아니, 이미 주님은 죽으셨다. 내가 죽었기때문에 상관없다. 어떤 단점도 내가 죽었기 때문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주님이 내리신 언약 관계이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자기 엘로힘과 자기 토라를 숱하게 만든다. 예슈아 비전교회에 토라가 우리 성도 수만큼 있다. 어쩜 그렇게 토라를 잘 쓰는지 모른다.
그런데 미쉬파팀에서 주님은 언약의 피로, 언약 관계로 우리를 끌어들이신다. 그러면 내가 서있는 곳이 청옥, 사파이어가 된다. 이 언약의 관계를 알면, 내가 사는 곳이 하늘이 되고, 하늘의 본질이 내 삶이 된다. 삶은 언약으로 사는 것이다. 나에게 좋기때문에 관계맺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주님이 로맨스를 싫어하시는 것이다. 로맨스는 사람을 미치게 하고, 헐리우드로 살게 하고, 결국은 자기 욕망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가게 한다. 우리는 이런 언약을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토라를 받게 된다. 이 토라를 받는 것을 말씀이 육신이 된 그 분을 영접하고 , 그 분이 내 안에 들어오신다고 한다. 하토라, 예슈아를 비로소 받게 된다. 예슈아가 내 안에 오시면, 예슈아와 한 몸이 되고, 성막을 건설하게 된다.
출24: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여호와의 영광이 보였다고 한다.
מַרְאֵה כְּבֹוד יְהוָה 마르예 케보드 야훼 : 여호와의 영광(=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남, 보여짐
מַרְאֵה 마르예 : 보여짐
- 동사가 없다.
= 너희들이 여호와의 영광을 보겠다.
그 분이 다시 오실 때, 우리 각사람이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언약의 삶을 살게 되면, 나에게 헌신하지 않고 우리에게 헌신하게 된다. 내 욕망대로 행하지 않고, 우리가 행하는 것을 행하고, 우리가 듣는 것을 듣게 되고, 언약의 삶이 회복되고, 그 안에서 예슈아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사십주 사십야를 함께하신다.
40 : 동침
그 분과 완전히 동침함으로 하나가 된다. 나아쎄 베니쉬마. 이것은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단어이다. 우리가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경지를 이해하게 된다. 오늘 여러분도 이 경지를 이해하는 곳에 왔기 때문에 주님이 이 단어를 선포하셨다고 생각한다. 나아쎄 베니쉬마를 알게 되면, 나에게 좋은 것들을 선택하려고 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눈을 열어서 내가 그냥 줘야할 자를 선택하게 하신다. 나한테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줘야할 자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 Covernent, 언약이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처럼 단점이 많은 자를 하나님이 선택하셨나? 하나님은 자신을 줘야할 자를 선택하신 것이다. 기꺼이 이스라엘에게 생명까지도 줘버리셨다. 이것이 언약의 피이다. 우리에게 이 언약의 피가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을 줘야할 자로 선택하셨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헌신한다면, 또 그것으로 우상숭배할 것이다.
우리도 우리 자신에게 헌신하지 않고, 당신에게 헌신할 것이다. 당신이 장점만 있어서가 아닙니다. 맨날 사사건건 내가 하고싶은 것을 못하게 할지라도 나를 주는 자로 당신을 선택하겠습니다. 친구, 리더, 교회, 일을 선택할 때에도 언약적 삶이 존재하길 축복한다.
* 기도
이 시간 나아쎄 베니쉬마를 우리가 주님 앞에 올려드립니다. 우리가 나에게 헌신하고, 내가 행하고 듣는 것, 이 비극적 삶에서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는 방랑의 삶에서 나아쎄 베니쉬마를 선포하고, 내 생명을 줄 자를 찾게 하여주십시요.
먼저 이 땅에 오셔서 그렇게 우리를 택하신 주님. 먼저 이 땅에 오셔서 생명을 주시고, 언약의 피를 흘리셔서 내게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당신의 생명을 줄 자로, 그 언약으로 나를 선택하신 주님. 이제 내가 그 언약을 더럽히지 않겠습니다. 내가 그 언약을 이제 이용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나도 이 세상에서 나아쎄 베니쉬마하겠습니다. 나로 살지 않고, 내 생명을 줄 관계들 속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당신의 언약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언약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당신의 언약의 피가 흐르고 흘러 온 땅을 적시고, 우리를 구원합니다. 이제 당신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마르예 케보드 야훼. 이제 당신과 사십주야를 함께 있을 수가 있겠습니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2부 예배
מִשְׁפָטִים 미쉬파팀 -> תְּרוּמָה 테루마
암송구절
출21:1(미쉬파팀)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출25:2(테루마)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미쉬파팀에서 테루마로 넘어가는 말씀이다. 토라의 모든 말씀은 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함이다.
דֵעַ 데아 : 지식, Knowledge, 인식, 앎
- 이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것이다.
앎이 뭘까? 데아이다. 단순한 과학적 지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앎이다. 이것이 인간만이 가지는 것인데, 이것을 가지기 위해서, 이 앎의 단계에 가기 위해서 인간은 모든 것을 동원한다. 앎의 단계가 모든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보*스가 관계라는 말을 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 중에, 우주는 다 관계라는 것을 배웠다. 우주와 모든 생명은 다 관계이다. 관계라는 것에 의해서 생명이란 것은 에하드로 이루어진다.
야훼 에하드, 야훼는 에하드이신데, 에하드라고 하는 것은 관계이다. 사람은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이 마음이라는 것도 다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육신이 생명 같은데, 관계가 생명이다.
Ex ) 나랑 밥이 관계하면, 내가 배부른 것이다. 그런데 밥이랑 관계를 못하는 사람이 있다. 또는 밥이랑 관계가 상당히 힘든 사람이 있다.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적게 먹거나, 너무 불규칙하게 관계하거나하는 사람이다. 조절이 잘 안된다던지 하는 것이다.
물과도 사실 다 관계를 맺는 것이다. 물을 하루에 몇잔 정도 먹어줘야 하는가? 5번, 7번 정도는 관계를 해야한다. 그런데 관계는 안 하는 사람이 있다. 아내하고도 관계의 문제이다.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만나서 관계를 해야하는데, 그 관계를 안 하는 사람이 있다. 관계를 안 하고, 나올 때도 그냥 나오고, 들어가면 자고 있고, 관계를 아예 안 한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아내와 정기적으로 관계해야 하는 것을 가르쳤다. 그것을 잘못 가르치다보니까 북어같이 패면서 관계를 해야한다!? 그런 것을 잘못 가르친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가 남편들이 오늘날 망했다.
모든 인간은 관계가 생명을 결정한다. 그래서 결국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관계를 하게되면, 인간은 영생을 얻었다고 하고, 에하드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관계한다는 것을 야다, 앎이라고 한다. 카인, 아벨이 태어나게 된 것은, 아담과 하와가 관계했다, 서로 알았다는 것이다.
יָדַע 야다 : 알다 = 관계하다
미쉬파팀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들은 통치인데, 통치라고 하는 것은 다 관계하는 것이다. 관계가 가능해지는 것을 통치라고 한다. 내가 먹는 것을 다스린다고 하는 것은 관계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을 미쉬파팀이라고 한다. 그러면 테루마는 뭐냐?
תְּרוּמָה 테루마 : 예물
그런데 예물을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들에게서 받으라고 한다.
출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물을 가져오는데, 성막을 지을 것이다. 그런데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 자체이시다. 테루마는 기쁜 마음으로 가져오게 되어있다. 뭘 가져오는데, 기쁜 마음으로 가져올 수가 있는가? 뭔가를 줄 때, 정말 기쁜 마음으로 줄 수 있는가? 사람은 절대 기쁜 마음으로 가져올 수 없다.
א
사람 자체는 받으려는 마음으로 창조되었다. 알레프에서, 하나님은 주는 손이고, 우리는 받는 손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본 구조가 받으려고 하게 되어있다.
- 여러분들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들어갈 때, 사랑을 주려고 들어가는가, 받으려고 들어가는가? 가끔 정말 자기 자신을 잘 몰라서, 자기는 사랑을 주려고 하는 존재인 줄 착각하는 존재가 있다. 그러나 다 사랑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 받으려고 하는 것을 벗어날 수가 없다. 원래 그렇게 지어졌다. 하나님에게 주는 것도, 정말 기쁜 마음으로 주는게 아니라, 사실 받으려고 주는 것이다. 호두 라도나이 키토브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주는 것 같지만, 반드시 돌아오는게 있으니까 주는 것이다. 내게 오는게 없으면 절대 기쁜 마음으로 못 나온다. 이거 해서 뭐하나? 솔직하게 나는 하나님께 받을 마음이 없이 테루마로 드렸다는 사람 손 들어보라. 그렇게 지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에 나는 다시 받을 마음이 절대 없는 것 같다고 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또 증거하신다. 오히려 갈수록 삶이 안 좋아진다. 그러면, 하나님 왜 이러시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 스스로 고백하게 만든다. 왜냐면 사람은 이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나는 받기 위해서 창조되어졌다.
그래서 부부사이에서도 나는 받으려고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서도 받으려고 많은 것을 준다. 내가 당신을 사랑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줄께, 목숨 다해 사랑해라고 하지만, 그 속에 받으려고 하는 마음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막 사랑했는데, 오는게 하나도 없으면, 점차 얼굴이 굳어지게 된다. 그렇게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안 맞는 것 같다고 하면서, 점차 얼굴이 굳어지면서 웬수가 된다. 사람의 웬수가 바로 .. 남편이다.
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꽁치, 고등어를 구웠지만, 사실은 고등어 한 마리에 받으려는거 하나씩 저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한걸 다 모아놓는다. 절대로 그냥 해준게 아니다. 내가 한 밥이 다 이 속에 모아져있다. 그래서 나중에 나한테 오는게 없으면, 내가 원하는게 안 이루어지면, 그 밥 알갱이가 다 튀어나온다.
그러니까 사람은 내가 받으려고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을 숨기고 있으면, 자기가 선한 줄 알고, 자기가 문제가 없는 줄 안다. 저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것을 인정하고, 자기가 죄인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받으려는 존재로 창조했지만, 이것은 하나님 자체를 받으라고 하는 것이지, 너를 위해서 뭘 받으라는게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 자신을 받으려고 지어졌다. 그래서 뭘 그렇게 받으려고 한다. 그런데 받으려고 하면서, 받아도 받아도 속이 허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맛있는 맛집을 찾아다닐수록 뭔가 공허하다. 헛헛하다. 왜냐면, 하나님 자체를 받을 때까지 공허한 것이다. 그래서 테루마에 와서 정말 기쁜 마음으로 주님이 가져오라고 하신다. 자원하는 마음, 기쁜 마음으로 가져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겁나게 가져온다.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테루마가 없었다. 작년, 제작년 테루마 때마다 제가 어딜 갔다. 그래서 테루마는 새벽기도가 없다. 올해 처음이다. 그래서 제가 이상하다, 어떻게 공교롭게 54개 토라포션 중에 이렇게 테루마만 쏙 빠져있을까? 이게 우연일까 생각했는데,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건 우연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에겐 테루마라는 말씀을 하나님이 주실 수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테루마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주는 것이다. 이것은 100% 순결한 사랑이다. 100%, 내가 받으려는 목적이 없이 주는 것이다. 이런 순결한 사랑이 바로 그리스도, 성막을 이 땅에 있게 만든다. 그리스도를 출현시킨다. 이번 테루마 기간에 주님의 큰 은혜가 있기를 축복한다
사람이 그 단계에 이르면 놀랍다. 그리스도, The Man을 출현시킨다. 받으려는 목적을 가진 인간이 목적을 100%, 주는 것으로 정했을 때 주님이 출현하신다. 이때 주님의 집이 세워진다.
그런데 그게 쉬울 것 같은가? 받으려는 마음이 하나도 없이 준다라는 것, 그런 순결한 상태, 이게 정말 쉬울까? 그래도 한 번 해보고싶지 않는가? 우리 한 번 해보자. 그것을 해보기 위해서는 미쉬파팀이 중요하다. 미쉬파팀에 와서 어떻게 주님을 받는 것이 가능한지를 배워야 한다.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내 안에 주님이 오셨을 때만이 가능하다. 나는 받으려고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내 욕구를 제거할 수 없다. 내 욕구를 제거하면 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받으려고 하는 마음은 I want, 내 욕구이다. 이것을 제거할 수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주님이 오시는 수 밖에 없다.
주님은 나탄, 전적으로 주는 분이기 때문에, 내가 주님과 완전히 결합하면. 즉, 주님과 관계하고, 주님과 완전히 결합하면 나는 Receive to give가 된다. 목적이 주는 것이 된다. 내 자체가 Give가 되는 방법은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나를 바꾸려고 한다. 나를 바꿔서, 내가 어떻게 되려고 한다. 내가 영적이 되려고 하고, 의로와지려고 하고, 내가 사랑이 되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불가능하다.
나를 먼저 깨닫지 않고는, 주님을 받아들이질 않는다. 주님을 나를 조금 더 바꿔달라는 분으로 이용하려고 하지, 주님을 받아들이질 않는다. 그래서 굉장히 영적인 것 같지만,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주님을 이용해서 계속 자기의 영성을 키우려고 한다. 이런 상태가 되면 더 악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제 주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미쉬파팀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런 주님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미쉬파팀의 많은 법들이 있다. 21장에서는 많은 법이 나오고, 22장 배상의 법, 23장에서 미쉬파팀을 지키는 환경, 악과 거짓을 멀리할 수 있는 법을 이야기하는데, 24장은 조금 이상하다.
24장은 모든 말씀과 미쉬파팀(율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미 주어진다. 그런데, 모세가 다시 주님한테 가서 토라를 받으러 간다. 이게 24장의 구조이다.
모든 말씀, 미쉬파팀 --> 토라
모든 말씀, 미쉬파팀과 제사지내는 것등이 다 주어진다. 그런데 24장 후반부에 가면, 모세가 다시 시내 산 꼭대기에 토라를 받으러 올라간다. 모든 말씀과 미쉬파팀을 받았는데, 왜 또 무엇을 받으러 올라갈까? 이게 테루마로 넘어갈 수 있는 미쉬파팀의 비밀이다.
출24: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한다. 이미 모든 말씀과 율례, 미쉬파팀이 백성에게 전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한 목소리로 응답한다. 콜 에하드로 응답하여,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준행한다고 한다
נַעֲשֶׂה 나아쎄 : 준행하다
이 단어는 주님이 엄청나게 좋아하시는 단어이다. 이 단어를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은 다 배운 것을 산다. 그래서 이 말을 배우지 않으면, 테루마는 영원히 배울 수 없다.
나아쎄는 아싸 앞에 눈이 붙은 것이다. 눈(נ)이 붙으면 일단 "우리"라는 주어가 된다. 그래서 나아쎄라고하면, 우리가 행하겠다는 것이다
נַעֲשֶׂה 나아쎄 : 우리가 행하겠다. Let us..
- 우리가 그 말씀을 다 행하겠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은 토라에 대한 오해 속에서, 이 행함만 나오면 두드러기가 난다. 어떻게 해서든지 아무것도 안 하고 천국에 가는 길을 찾는다.
마5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모든 율례와 말씀 중에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행하면서 가르치는 자들은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는다. 이것은 반드시 나아쎄, 행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을 배우지 않으면, 토라를 받지 못한다. 나아쎄, 행하는 법을 배우면 주님이 언약을 주신다.
출24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이미 모든 말씀과 미쉬파팀이 내려왔는데, 언약서라고 하는 것은 뭘까? 신약 성경은 언약서이다. 언약을 가르쳐준다. 이 언약을 낭독하니,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리이다라고 한다. 여기의 준행은 아까의 준행과 조금 다르다
나아쎄 베니쉬마
נִשְׁמָֽע 니쉬마 : 우리가 듣겠나이다
니쉬마, 듣겠나이다 하니까, 언약의 피가 주어지고, 언약이 주어진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모든 말씀과 미쉬파팀을 가르쳐준다. 그러니 제자들이 나아쎄 한다. 그리고나서 주님이 언약을 말씀하신다. 언약의 피를 주시면서, 이것이 새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듣겠나이다. 나아쎄 베니쉬마, 무엇을 듣냐면, 언약을 들어야한다. 언약에 대해서 들어야만, 이 언약의 피가 주어진다.
언뜻 보면 니쉬마가 앞에 와야한다. 듣고 행하는 것이지, 행하고 듣는 것이 어딨는가? 그런데 여기에 있다. 행해야지 들을 수 있다. 그러면 이 행하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이것을 잘 배워야 한다
사람이 여호와의 뜻을 행하려고하면, 내 교훈이 여호와로부터 온 것을 알 것이라고 하신다. 여호와의 뜻을 행하려고 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는 여호와의 뜻을 행하려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 행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아쎄를 또 내가 행하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나아쎄이다
나아쎄 : "우리가" 행하겠다
잘 생각해봐라. 우리가 행하는게 뭔가? 지금까지는 내가 행해야했다. 설교를 들으면서도, 이걸 내가 행한다고 듣지, 우리가 행한다고 듣질 않는다. 우리가 행하는게 뭘까? 내 속에 행함의 기준이 내 욕망이면 우리가 행하는 것은 없다. 기준이 나이면 우리가 행하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또, 우리가 듣는 것은 뭔가? 지금 각자 듣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가 듣는 것, 이것은 전혀 인간에게서 완전히 다른 Life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행하고, 우리가 듣는다. 이것이 바로 The Man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제가 정말 우리나라 말 중에 제일 이상한 말이, 우리 아내라는 말이다. 어느날 깜짝깜짝 놀란다. 우리 아내가..? 그러면 내 아내도 되고, 네 아내도 된다는 것을 내 입으로 시인하는 것인가? 아주 끔찍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아내라고 한다.
사람이 끊임없이 관계를 맺기 위해선 선택을 해야한다. 사람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을 하기 위한 싸움이다. 이것과 이것을 합해서, 전체를 다 에하드되게 해야한다. 관계를 올바로 맺으려면 선택을 해야한다. 인간의 삶 속에서는 선택이 제일 어려운 문제이다. 종교를 가지는 중요한 이유도, 선택을 잘 하기 위함이다. 주님에게 물어보는 것도 선택을 하기 위함이다. 어떻게 해야하고, 어떻게 관계해야 하냐는 것이다
선택에는 엄청난 힘이 든다. 미쉬파팀은 다 우리로 주님이 원하는 선택을 해서, 주님이 원하는 통치가 이 땅에 내려오는 것이다. 선택이라는 것을 잘 하면, 그 자체가 하늘이 통치하는 것이다. 만나야 할 것을 만나게하면, 관계해야 할 것을 관계하게 하면 주님의 통치가 내려오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독이라는 것을 만나면 되는가? 안된다. 그러면 주님의 통치가 나에게서 파괴되어지는 것이다. 만나지 말아야 할 것들,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선택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이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인간의 삶을 선택을 기준으로 나눠보면, 여러가지 일들이 벌어진다. 첫 번째 선택은 두 개 다 긍정적인 것이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것이다. 그래도 스트레스이다. 오늘 뭐 먹을까?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우리 아내가 오늘 자기 생일이니까, 뭐 먹을래? 하는 것이다. 나는 정말 중식도, 양식도, 한식도 다 좋다. 그런데 뭐 먹을래 하면, 지옥이 따로 없다. 선택이 안된다. 우리 아내와 저는 둘 다 병자라고 한다. 다 자기가 선택하라고 한다. 두 개가 있는데, 둘 다 좋아도 선택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더 높은 단계의 선택이 주어진다. 어린 아이 때는 이러한 선택이 주로 있다. 다 괜찮은 것들이다. 어른들이 알아서 다 괜찮은 것들을 준다. 그런데 사람의 삶이 좀 나아진다는 것은 둘 다 싫은 것 중에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둘 다 싫은데, 어쩔 수 없이 선택이 주어진다. 화장실 청소할래, 본당 청소할래? 선택 안 하면 안된다. 둘 다 싫은 것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것은 조금 더 어려운 단계이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조금 더 장성한 분량에 이르르면, 그 정도가 아니라, 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한개 안에 좋은 것이 있고 싫은 것이 있다. 짜장면 먹을래? 했는데, 짜장면이 좋기도하고, 싫기도 한다. 입맛에 의해서는 먹고 싶은데, 칼로리가 너무 높다. 짜장면을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미 먹어야 할 칼로리는 다 먹었다. 그런데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다. 내 입맛을 만족시키는 면이 있다. 안 먹으면 스트레스받아 죽을 것 같다. 유 선생님이 고기를 먹으면 통풍이 오는데, 너무 먹고 싶다. 앞에 앉아있는 우리가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른다. 한처럼 드시고선 너무 맛있다. 그런데 하나 더 드세요 하면, 유 선생님은 고민이 되시는 것이다. 지금의 만족을 추구할 것인가, 통풍이냐? 선택을 해야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나 안에 좋은 것이 있고, 나쁜 것이 같이 있다. 인생은 이런 것의 계속되는 반복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단계가 있다. 인생이 본격화되면, 이 단계로 접어든다. 2개가 있는데, 2개 다 장단점이 있다. 두 개 다 좋은 것이 있고, 나쁜 것이 있다. 그런데 이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결혼을 해야곘는데, 자매가 둘이 있다. 저 자매가 좋을 것 같은데, 단점이 하나 있다. 굉장히 영적이어서 좋을 것 같은데, 힘이 너무 쎄다. 좀 매력이 없다. 영적이긴 한데, 매력이 없다. 그런데 또 자매가 나타났는데, 겁나게 매력적이다. 보기만해도 넋을 놓고 쳐다본다. 그런데 영성이 좀 떨어진다. 이 자매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이 자매는 가지고 있고, 또 반대로 한 자매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저 자매는 가지고 있다. 둘을 합치면 딱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이것은 본부인, 다른 자매는 첩으로 두었다. 영성 있는 자매는 조강지처, 매력적인 자들은 첩으로 두었던 것이다. 그랬더니, 나에게 장점만 온팡 오고, 행복해졌는가? 최악의 선택이었다.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두 개 다를 선택할 순 없고,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이게 인생의 고난이다.
미쉬파팀은 둘 중 하나를 어떻게 선택하느냐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게 미쉬파팀이다. 그것을 가르쳐주겠다. 이것을 배우면 인생이 기가막히다. 이것을 못 배우면, 맨날 스트레스 받는다. 선택했어도 문제이다. 단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해서 결혼해서 사는데, 장점은 당연한 것이니까 점점 안 보인다. 공기에 감사한가? 안 한다.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쁜 것이 장점이었다. 제 아내 정말 이쁘다. 그런데, 결혼해서 살면 그냥 공기랑 비슷하다. 당연히 그런 것이다. 니가 나한테 특별히 해준게 아니라,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러면 그 이쁜 얼굴에서 마귀할멈이 나오는 것이 보인다.
사람은 다 이것 때문에 고생한다. 선택을 했는데, 다른 곳에 또 장점이 있는게 보인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여기에 만족하기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간다.
지나가는 여인을 보고 왜 음욕을 품는가? 몸빼바지 입고, 집에 있으니... 여기에 없는 것이 저기에 있다. 그래서 또 선택을 하려고 한다. 인간이 여기서 사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영원히 하나님의 통치를 가져올 수가 없다.
왜 인간이 여기서 고통을 겪냐면, 나라고 하는 것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있는데, 사실 나라고 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있으면, 선택의 기준이 나한테 좋은 것이다. 나한테 좋은 것을 선택하려고 한다. 이것을 인간의 비극이라고 한다.
이 네 번째 단계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언어를 언약이라고 한다. 네 번째 단계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을 언약이라고 한다. 나를 중심으로해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 많은 선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다고 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선악이다. 그런데 이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일부일처제가 좋은가, 일부다처제가 좋은가? 좋은 것들만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우주의 법은 그렇게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하면 잘 될 것 같은데, 완전히 재앙이 된다. 이런 세상에서 선택하며,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언약이라고 한다.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하나에 헌신하는 것이다. 이것을 언약적 삶이라고 한다. 이것만이 이 세상의 부조리에서 하늘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쉬파팀을 통해서, 언약을 배우는 것이다. 나아쎄 베니쉬마.
하나에 헌신한다는 것은 뭔가? 나에게 헌신하는 사람은 나한테 좋은 것을 가져오려고 한다. 나한테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을 선택이라고 한다. 나한테 좋은 것을 선택했는데, 여기도 나한테 좋은 것이 있다. 영성있는 여자를 선택하긴 했는데, 매력이 없다. 그런데 길거리를 가다보니까 상당히 매력적인 여자가 지나간다. 그러면 또 선택을 해야한다. 그런데 선택을 했더니, 주님이 눈깔을 빼버리라고 한다. 선택하면 안된다. 그런데 안되는데, 또 선택한다. 안되는거랑 결합을 해버린다. 그러면 내 속에 독을 집어넣는 것과 똑같다.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지옥에 간다고 한다.
나에게 헌신하는 사람은 어떤 선택도 할 수가 없다. 나에게 헌신하는 사람은 어떤 관계도 못 맺는다. 그저 나에게 좋은 것을 갖다 끌어붙인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니쉬마라고 한다. 우리가 행하자고 한다. 지금까지 나에게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을 행함이라고 한다. 그런데 진정한 행함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내는 내 아내를 공유하자는 말이 아니다. 우리 아내라고 하는 표현은, 내가 이 여인을 선택할 때, 나한테 헌신해서, 나한테 좋은 여자를 고른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것이다. 우리라고 하는 것은 나를 여기에, 상대편에게 줘버리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 좋던, 나쁘던 상관없이, 장점이 있건, 단점이 있던 상관없이, 나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장점보다 단점이 많을수록 좋다. 나를 주려고 할 때, 장점이 많은 사람에겐 줄 것이 없다. 완벽한 사람에게는 줄 것이 없다.
그래서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나를 주는 것이다. 결국 생명까지 준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서 제정하신 인간의 삶이란, 언약적 삶이다. 그분이 흘리신 피는 언약의 피이다. 제자들에게 이것이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언약의 피라고 하신다. 너희들은 이제 언약의 삶을 살아라. 너 자신에게 헌신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헌신해라. 그게 행함이다. 네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사는 것을 행함이라고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는 것을 행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도, 저기도 좋고가 아니라, 둘 중의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단은 일부일처제 이야기만 들어도 발악을 하는 것이다. 완전히 인간이 자기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지, 밥처럼 인간을 요리할 수 있다. 자기에게 헌신하면, 하나님도 자기에게 좋은 것으로, 나쁜 것으로 나눈다.
그래서 이 교회에 가서 배운 엘로힘, 이게 좋고, 저게 좋다. 그런데 그 엘로힘을 만나다 보니까, 또 단점도 있다. 이 엘로힘이 완전히 날 만족시키질 않는다. 또 다른 교회에 가니까, 여기서 가졌던 단점을 완전히 해소해주는 엘로힘을 가르친다. 주로 이런 것을 Youtube에서 발견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배우고, 저기서도 배우면 잘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이게 인간이 상당히 괴롭다. 그래서 인간은 참 힘들다. 결국 하나의 엘로힘을 택해야 한다. 둘 다 가지고 있다가 망하기도 한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아따 그건 좋은데, 단점이 하나가 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안 한다. 청년들만 좋아한다. 그러면 이제 또 다른 리더를 찾아야한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런데 거기 갔더니, 토라를 모른다. 그래서 주일날은 여기 오고, 여긴 수요일날 가거나, Youtube로 밤에 보던가.. 그런데 끊임없이 나한테 좋은 것만 가져오다보면 이 짬뽕 속에서 결국 나만 남는다. 사람이 언약을 배우지 않으면, 삶을 애초에 살 수가 없다.
출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다. 그런데,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는 말을 하시는 이유가 뭘까? 이 말은 히브리어에서 맨 뒤에 나온다
너희들이 나에 대해서 모든 민족들 중에서 쎄굴라, 보배가 되었다. 그런데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한 것이, 선택할 것이 이스라엘 백성만이면 선택이 아니다. 내가 선택할 여자가 겁나게 많은데, 모든 백성들 중에서 너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쉬파팀, 나아쎄 해야할 것을 준다. 그런데 미쉬파팀에서 예를들면, 사람을 때려 죽이면..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신부가 사람을 떄려죽이는 여자라는 것이다. 미쉬파팀에서 사람 때려죽이면 너도 죽어야된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이 여자는 사람을 때려죽이는 여자라는 것이다. 주님이 택한 여자가 말이다. 다*엘이 에*더를 택했다. 그래서 다*엘에게 에*더가 때려죽이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둑질하면.. 이라고 한다. 도둑질하면 나중에 다섯마리를 더 줘서 배상하라고 한다. 그러면 이 여자는 도둑질하는 여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한 것이, 이스라엘이 겁나게 잘나서 택한 것인가? 아니다. 미쉬파팀을 읽어보건데, 이스라엘은 상당히 문제가 많은 여자이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장점이 없는가? 아니다. 장점이 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에게, 무교절을 지켜라. 맥추절을 지켜라. 대단한 것이다.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장점도 단점도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을 이스라엘에게 주기려 결정한 것이지, 이스라엘을 통해 당신이 뭘 해먹으려고 하신 생각이 하나도 없다. 이스라엘에게 자기를 주기로 결정하셨다. 자기를 주기려고 결정하면 단점은 문제가 안된다. 이것을 언약이라고 한다.
사람은 다 언약적 삶이 회복이 되야한다. 언약적 삶이 회복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은 나를 주기로 결정하는 언약으로 사람이 선택해야 한다. 결혼이라는 것도 다 이렇게 언약적인 것이다. 나를 한 사람에게 헌신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러면, 비로소 이 언약적 삶을 통해서 존재가 보인다. 이때 토라가 주어진다. 그래서 우리 주님을 하토라라고 한다. 하토라이신 예슈아를 볼 수 있게 된다
언약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이런 선택을 못한다. 자기가 사랑해서 선택했다? 아니다. 이 장점이 좋아서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또 자기에게 가져오려고 한다. 그게 안되면 또 단점을 들고 나온다. 그리고 장점이 다른데서 보이기 시작하고, 또 다른데로 간다.
예수님도 내가 만나는가? 예수님도 다 나를 위해서 받는다. 예수님 너무너무 좋다고 하다가, 내가 원하는거 또 안해주면, 시금털털하다. 그냥 당신은 나 천국가는 것만 보증해 달라고 한다. 그냥 교회만 왔다갔다 하면서 보증만 받고, 다른 것에서 장점을 찾는다. 예수님을 절대로 못 만난다. 그분의 영광을 절대로 보지 못한다. 남편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조한 형상을 만날 뿐이다.
그런데 이 언약의 삶을 깨달으면, 하나님이 산으로 올라오라고 하신다. 모세야, 산으로 올라와라.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주신다. 그게 미쉬파팀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이다. 미쉬파팀을 통해서 언약의 삶으로 들어가기 바란다
출24: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מַרְאֵה כְּבֹוד יְהוָה 마르예 케보드 야훼 : 여호와의 영광(=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남, 보여짐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 비로소 그분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것을 행함이라고 하지 않고, 나아쎄 베니쉬마, 우리가 행한다.! 다른 존재에게 나를 헌신하는 그런 언약의 삶으로 들어가면, 사람은 비로소 여호와의 영광을 본다. 그때 토라가 주어진다.
청년부 예배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 그 자체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들의 생명을 빚어간다. 말씀이 양식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생명이 빚어지고 살아진다.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자체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결합해오는 것이다. 말씀을 접하는 모든 자들에게, 그들의 어떠함과 무관하게 생명으로 공급하시고, 그 생명을 빚어가신다. 말씀을 믿으시고, 그 믿음 가운데서 말씀을 받아 먹어서 그 생명이 되시길 축복한다. 하나님의 생명이 되시길 축복한다
때로는 여러분들이 주무시면서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귓구멍이 잘 때 닫히지 않는다. 눈처럼 닫히지 않게 하셨다. 눈은 보지 않더라도, 귓구멍으로는 들을 수 있게 하셨다. 주무셔도 괜찮다. 소리가 다 들어간다. 안 자고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귓구멍은 뚫려있다. 참 미치겠다. 귓구멍은 절대 닫히지 않는다. 귓밥이 아무리 늘어나도, 소리를 막을 순 없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쉐마하게 하셔서, 들음에서 믿음이 나게 하시고, 믿음을 통해 우리의 생명을 빚어가신다
מִשְׁפָטִים 미쉬파팀 -> תְּרוּמָה 테루마 : 예물
מִשְׁפָטִים 미쉬파팀은 샤파트, 통치하다는 말에서 나왔다. 미쉬파팀이 율례로 번역되어있다. 율례, 정의, 법, 통치, 여러가지 뜻으로 쓰인다. 이 우주는 하나님의 뜻으로 통치하게 되어있다.
תְּרוּמָה 테루마란 것은 예물이다. 오늘 찬양에서 람 베니싸라는 말이 있었는데, 람, 들어올리는 것에서 나왔다. 주님을 들어올린다고 할 때, 또는 The Highest one, 높이높이 들어올리다 할 때, 람이라고 한다. 테루마는 주님께 들어올리는 것이니까, 예물이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 테루마에 오면 예물을 가져오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뭘 가져오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창세기부터 주님이 뭐 가져오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갑자기 주님이 예물을 가져오라고 한다. 어따? 드디어 주님이 본색을 드러내시는가? 속셈이 여기 있었는가?
교회 가지 말아라. 헌금 뜯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소리 혹시 들어보셨는가? 전 그런 소리를 듣고 자랐다. 결국 목적은 여기 있던 것인가? 금은동, 해달가죽에 이르기까지 다 가져온다. 이제 다 가져오시기 바란다.
그런데 주님이 기쁜 마음으로 가져오는 자들만 가져오라고 하신다. 기쁜 마음으로 가져오는데, 특이한 말씀을 하신다. 이 예물을 주님이 테루마티라고 한다.
תְּרוּמָתִי 테루마티 : 내 예물, 내 것이다
테루마를 가져오라고 하는데, 내 것을 가져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헷갈린다. 내 것인데? 주님이 내 예물을 가져오라고 하신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주님의 것이 나한테 와 있다? 굉장한 비밀이다.
기쁜 마음으로 가져오라고 하신다. 이 기쁜 마음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한 몸에 있는 한 지체를 בָד 바드라고 한다. 한 몸 안에서의 지체의 특징은,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는 세포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우리 몸에는 70조개의 세포가 있다고 한다. 큰 사람은 100조 정도 된다. 그 세포들의 원리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세포가 하나도 없다. 이 한 세포가 원하는 것은, 다른 세포에게 주는 것이다.
Ex ) 심장이 하는 일이 피를 열심히 모아서 가두고 있는가? 큰일난다. 심장은 계속 일한다. 피를 주기 위해서 일한다. 심장 한 번 만져보시라. 심장이 뛰고 있는가? 심장이 뛰지 않는 인간은 안된다. 청년들이여, 터질듯한 뛰는 심장으로 전진하라. 심장이 잘 안 뛰는 것 같다고 하지 말라. 심장이 뛴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다른 존재에게 주기 위해서 계속 일한다는 것이다.
청년의 때는 심장이 펄떡펄떡 뛰어야 한다. 저 발 끝까지도 피를 주기 위해서 뛰어야 한다. 끝까지 줘야한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래서 바드는 결코 나의 기쁨을 나의 기쁨이라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을 기쁨이라고 한다.
사람이 바드임을 온전히 깨달으면, 뒤집으면 דָב 다브가 된다. נָדַב 나다브, 이것을 기쁜 마음이라고 한다. 오늘날 히브리어에서는 자원봉사할 때 이 단어를 쓴다. 아주 존귀한 자를 가르칠 때 이 단어를 쓴다. 자원봉사란, 받으려는 목적이 하나도 없이 주는 것이다. 이 자원봉사자들은 받으려는 목적이 전혀 없다. 물론 오늘날에는 자원봉사해서 학점받거나 하기 위해 한다. 정*이가 방학내내 자원봉사 한다는데, 그게 학점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게 자원봉사인가, 아닌가? 자원봉사 하면서도 교회 나와서 새벽기도하고, 교회 와서 밥도 한다. 받으려는 목적이 하나도 없다. 도대체 여기 와서 왜 밥을 하는 것인가? 이런 것이 진정으로 사람의 삶에서 깨닫는 것이다. 이것을 기쁜 마음이라고 한다.
사람의 가장 큰 정체성은 원래 이 땅에서 자원봉사라고 살게 되어있다. 그게 사람의 가장 큰 정체성이다. 무엇을 받으려고 해야 살 것 같지만, 인생은 자봉, 자원봉사자로 사는 것이다.
이렇게 지나서보면, 선교사들이 살아가는 가장 큰 원리가, 내가 뭘 받으려는 마음이 전혀 없이 산다. 이상하게 살아진다. 희한한 것이다. 그냥 살아진다. 우리 사역자들이 있지만, 제가 사역자들을 20대부터 데리고 사역을 했다. 그런데 얘네들은 정말 나다브, 이런 삶을 살았다. 저한테 와서 한 번도 연초가 된다고 연봉협상, 이런걸 안 했다. 물론 연봉도 없었다. 연봉협상이란, 연간 봉사 계획, 이런 것 밖에 없었다. 이것을 나다브라고 한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모른다. 이게 하나님의 몸을 이룬다. 인생을 사는 것은 이렇게 산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테루마를 가져오라고 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우리 교회에서 작년 제작년 새벽기도를 찾아보면, 테루마 새벽기도가 없다. 이때만 제가 어딜 갔다. 54개 토라포션 중에서 새벽기도가 없는 토라포션은 테루마밖에 없다. 우연인 줄 알았으나, 하나님은 지금까지 너희들이 테루마를 받을 상황이 아니었고, 이제 테루마를 받을 때가 되었다고 하신다. 이제 기쁜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것을 이해를 못했다.
사람이 이 기쁜 마음이라는 것을 가지게되면, 성막을 세울 수 있는 예물을 드릴 수가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성막이 예슈아이다. 이 성막이 The Man이다. The Man의 Life, 예수 그리스도의 Life를 있게하는 재료가 내 기쁜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Life가 나타나게하는 그게 내 기쁜 마음 속에 있다.
삶의 목적을 받으려는데 두지 않고, 전적으로 100% 주기 위한 목적을 가진 그 마음, 이 마음이 성막을 출현시킨다. 즉, 예슈아를 출현시키고, The Man을 만들어낸다
예슈아를 만들어낸다고 하니까, 참 이상한 느낌이 들지만, 원래 삶이란 것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육신의 덩어리가 삶이 아니라, 살아냄으로 삶이 나오는 것이다. 너 평생 어떻게 살았냐? 그 사람의 삶이 어떠냐? 삶은 그런 것이다
The Man을 출현시킨다는 것은 The Man의 형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부어만든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다. 삶은 살아서 건축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성전의 산 돌이 된다고 하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삶을 사람이라고 하지, 부어만든 우상, 살덩어리를 삶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삶을 제대로 안 살면, 사람도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삶이라는 것이다. 지금 성막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만든다는 것인데, 그리스도를 살아야 그리스도가 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살 수 있는 모든 예물은 기쁜 마음에서 나온다. 100% 받으려는 마음이 없는, 이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 청년부는 결혼을 참 많이 한다. 오늘 간증에서처럼 사실 나는 준다고 하지만, 다 받고 싶은 것이 그 마음 속에 있다. 그래서 그게 안 오면 쌩까기 시작하는 것이다.
테루마는 굉장히 놀라운 단계인데, 나다브,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살기 시작하면, 그리스도를 출현시키고, 그리스도를 만들어낸다. 성막을 출현시킨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미쉬파팀에서 얻어진다.
알레프를 보면, 하나님은 주는 손이시다. 그런데 사람은 받는 손이다. 하늘은 주는 손이고, 땅은 받는 손이다. 땅은 다 Receive하는 것이다. 땅은 여인으로 표현되는데, 여인은 다 Receive하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다 Receive한다. 우리의 본질은 Receive하는 것이지, 주는 것이 본질이 아니다. 우리는 Receive밖에 할 줄 모른다. 주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원래 그렇게 창조가 되어졌다.
그래서 Receive하는데, 문제는 이것을 가지고 타락했다고 하는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을 Receive하려고 하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을 받게 되어있다. 하나님을 받아야만 이 공허함이 사라진다. 여러분들 다 사랑받고 싶다. 그런데 어떤 누구의 사랑을 받아도 공허하다.
저는 대학다닐 때, 이 속에 Emptyness가 있었다. 공허함이다. 그 단어 뜻을 배우지 않아도, 그냥 가슴에서 느껴진다. 비어있는 것 같다. 이 Emptyness를 느끼면 수업을 들어갈 수 있는가? 못 들어간다. Emptyness를 느끼면 떨어지는 낙엽 한 장만 맞아도 정신이 나가고, 한 잔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그런데 한 잔으도 안 된다. 절대 한 잔으로 채워지지가 않는다. 두 잔, 세 잔, 네 잔 해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채우는데, 또 채울 수도 없다. 또 다시 뱉어내야 한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가? 아직 채워지지 않는데, 또 뱉어내야 한다. 그게 뭔가?
이 Emptyness라고 하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저는 여자친구를 사귀면 그 Emptyness가 채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더 공허하다. 저는 결혼을 하면 채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안 채워지더라.
지난 금요일날 방법을 알았다. 나의 Emptyness를 채워지지 않는 부인에게 회개하라를 계속 명령해야 하더라. 채워지지가 않더라. 여러분들은 뭘로 채우시는가? 먹는 것으로? 돈으로? 좋은 직업으로?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 미드, 게임?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 특히 채워지지 않는 것은, 우리의 이 마음이다.
왜 그런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네가 하나님을 받을 때까지 안 채워진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하기 위함이다. 네가 그렇게 뭘 받으려고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받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받을 때까지, 그래서 하나님을 받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미쉬파팀이다. 왜냐? 이 100% 주려고 하는 마음, 이 기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내 자체로는 불가능하다. 왜냐면 나는 100% 받으려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테루마라고 하는 것은 나한테는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내가 순전하게 주려고 하는 것등은 불가능하다. 가능할 것 같지만, 불가능하다. 그냥 여자 꼬실 때나 쓰는 말이다. 나는 너에게 다 줄거야? 나는 널 위해서 살거야?
제가 몇일 전에 보*스네 집에 가봤다. 냉장고 옆에 결혼할 때 썼던 케투바가 붙어있고, 그 밑에 편지가 한 장 붙어있는 것이다. 그거 읽다가 울 뻔 했다. 한 달 되었다고 룻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하면서.. 얘들이 사랑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정말 전적인 주는 사랑, 언약적인 사랑, 가장 최고로 사랑하고, 당신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을 듣고, 얼마나 기특하고, 가슴이 저려오던지 모른다.
그런데, 사실 그러한 것이 가능할 것 같지만,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이야 룻이 저렇게 회개하니까 그런 편지를 쓰지, 자기가 그러는데도, 룻이 정말 계속 구타하고, 목 조른다고 쳐봐라. 상처나고, 밥도 안 해주고, 나가서 들어오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게 오지 않는다면? 내가 줬는데 오지 않는다. 그러면, 더 난리가 난다. 줬기 때문이다. 차라리 안 줬으면 덜하다.
교회에서도 항상 난리를 피우는 사람은, 많이 준 사람이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항상 뭘 많이 하는 사람들을 항상 주시하고 있다. 언제 터지나? 나한테 와서 가장 격렬하게 뺨을 치는 애들은, 나에게 목사님 사랑해요 평소에 잘 하던 애들이다. 평소에 목사님에게 사랑을 줬다고 하는 애들은, 와서 격렬하게 미친짓을 한다. 아주 미치겠다. 그런 애가 있었다.
목양실에 와서 드러눕더라. 왜 그러냐면, 내가 한게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100% 주는 것을 못한다. 다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100% 주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있냐면, 딱 하나밖에 없다. 100% 주는 것인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분을 주님, 예슈아라고 한다. 내가 100% 할 줄 아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 밖에 없다. 그런데 100% 주는 것인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을 연합이라고 하고, 에하드, 결혼이라고 한다. 주님과 결혼하는 것이다. 하늘과 결혼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이 에하드되는 것이다. 이것을 신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배우려면 미쉬파팀을 배워야 한다
출24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출24장의 구조를 배워야 한다. 미쉬파팀에서 많은 법규를 이야기하다가, 출24장에서 뜬금없이 이런 말씀을 한다.
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우리가 준행한다고 한다. 사실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여호와의 모든 율례(미쉬파팀)를 이미 이스라엘 백성이 받는다. 그리고 이것을 준행하겠다고 한다. 준행하겠다는 말이 나아쎄이다. 미쉬파팀에서 반드시 외워야 할 단어이다. 이 말씀이 여러분들을 고친다
נַעֲשֶׂה 나아쎄 : 우리가 행하겠다
모든 말씀과 모든 율례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는다. 특이한 것은, 이 율례를 받고나서, 7절에서 언약서를 낭독한다. 언약서를 낭독했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아쎼 베니쉬마라고 한다
נִשְׁמָֽע 니쉬마 : 우리가 듣겠나이다
모든 말씀과 미쉬파팀 -> 나아쎄 -> 언약서 -> 니쉬마 -> 언약의 피 -> 토라와 계명(예슈아)
그랬더니 언약의 피를 준다. 우리가 신약 성경을 토라의 말씀이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말씀과 율례를 제자들에게 다 가르치신다. 그러면 제자들은 나아쎄라고 해야한다. 그리고나서 예수님이 언약서를 읽어주신다. 그런 다음에 제자들이 니쉬마를 하면, 언약의 피를 주신다. 이 언약의 피가 주님의 죽으심이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다. 모세가 다시 하나님께 올라간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다시 올라가서 토라의 계명을 주겠다고 한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말씀과 율례는 뭐고, 토라와 계명은 뭐냐? 이것을 또 받으러 올라오라고 한다. 이미 받았는데, 또 받으러 올라오는건 뭐냐? 언약의 피까지 뿌려졌는데, 또 받으러 올라오라는 것은 뭔가?
이 토라는 하토라이신 예슈아를 가르친다. 예슈아 자신, 하나님 자신을 주시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엔 예슈아, 하나님 자신이 얻어져야 한다
깨끗한 마음, 순전한 마음은 하나님 자신을 얻어야만 한다. 그래서 출24장은 하나님 자신을 얻는 Process가 기록되어진다.
נַעֲשֶׂה 나아쎄 : 우리가 행하겠다 / נִשְׁמָֽע 니쉬마 : 우리가 듣겠다
- 나아쎄 베니쉬마
이 나아쎼 베니쉬마를 이해하기 위해선, 여러분들은 삶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여러분들의 삶의 본질은 끊임없는 선택이다. 선택을 통해서 관계를 만들어간다. 우주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이라고 하면 관계를 이야기한다고 했다. 시간, 공간, 이것이 모두 인간을 설명하는 핵심이다. 모든 시간을 합치면 인간, The Man이 된다. 관계는 무엇과 무엇을 연결시킬 것인가를 설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생명이란 것은 다 관계이다. 내 생명은 관계이다. 내가 무엇과 관계를 맺고 있느냐? 그래서 만약 관계가 잘못되면 죽을 것 같다.
사람은 관계를 설정짓는 통치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관계가 잘못되면 그게 지옥이다. 엉뚱한 것을 연결시켜 버렸다. 이러면 큰 문제가 생긴다. 여러분들이 밥과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 그런데 나한테 할당된 밥이 100톨인데, 100만톨을 늘 먹는다. 그러면 희한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관계는 사실은 선택에 의해서 굉장히 중요해진다.
인생에서 관계를 하기 위해선, 이것을 선택하고, 저것을 선택해서 연결해야 한다. 이것을 통치라고 한다. 선택이 굉장히 핵심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 선택을 하려고 인간은 이 관계를 배우는데, 이 관계를 배우는 지식을 데아라고 한다
דֵעַ 데아 : 지식
그리고 이 데아에서 야다라는 말이 나온다
יָדַע 야다 : 관계하다
청년부 수련회에서 성에 대해서 배우는데, 성관계는 다 데아, 관계를 배우는 것이다. 관계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성이 타락하면, 관계로 선택하는 것을 못한다. 욕정이 생겨나서, 성적인 것이 육신적인 것으로 타락하고, 성적인 것을 육신적인 것으로 여겨버리면, 관계를 못한다. 합당한 선택을 못하고, 자기의 욕망에 따른 것만을 선택하다가 말라 죽는다. 모든 삶을 살 수 있는 에너지를 뺏겨버린다.
이 선택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다 토라이다. 이 선택을 할 때, 첫 번째로는 헤세드의 선택, Yes Yes의 선택이 있다. 두 개 다 좋은 선택이 있다.
Ex ) 짜장면 먹을래, 우동 먹을래? 두 개 다 좋다.
제 아내와 저는 이 선택 때문에 정말 힘든적이 많다. 저는 뭐든지 좋다. 뭐 먹을래 하면 뭐든 좋다. 하오차이도 좋고, 시골집도 좋다.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너무 힘들다. 이런 것들은 낮은 차원의 선택이다. 이런 선택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삶에서 조금 더 어려운 선택이 온다. 두 개 다 안 좋은 것이다. 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인간은 반드시 이럴 때가 온다. 화장실 청소할래, 본당 청소할래? 그냥 나가서 커피 한 잔 하고 싶다. 그런데, 두 개 다 안 좋은데, 해야한다. 안 했다가는 목사님한테 혼난다. 둘 다 나쁜데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게 또 인생에서 찾아온다.
그런데 이거보다 더 어려운 케이스가 또 생겨난다. 어떤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 속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있다. 그러면, 이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Ex ) 누가 회사를 하나 소개시켜줬는데, 가고싶기도 하고, 안 가고 싶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데도 있고, 들지 않는데도 있다. 미치겠다.
이런 경우는 더 높은 차원의 삶이다. 그런데, 정말 높은 차원의 삶은 어른이 되면 이런 케이스가 생겨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인데, 여기도 선이 있고, 악이 있고, 반대에도 선이 있고 악이 있다. 장단점을 둘 다 가지고 있다. 이런 것은 주로 결혼할 때 발생한다
여자가 있는데, 맘에 꼭 드는 것도 있고, 꼭 안 드는 것도 있다. Perfect한 여자가 없다. 그래서 영성은 마음에 드는데, 힘이 너무 쎄다. 에*더라고 이야기하진 않겠다. 좀 여성스러운데가 있어야지. 그런데 또 옆에 있는 애를 봤더니, 영성은 좀 딸리는데, 야들야들하고 힘이 없다. 오빠~ 하면 그냥..! 녹아진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선택하기 힘들어한다. 인생은 이것으로 가득찬다. 여기서 미치는 것이다.
장점은 참 희한하다. 얘를 선택해서 살다보면, 장점은 그냥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다. 제 아내가 굉장히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결혼했으면, 아름다움은 마치 공기와 같은 것이다. 당연히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장점이 되지 않는다. 지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지, 당연한 것이다. 이제 저 아름다운 얼굴에 어떻게 마귀할멈이 나타나는지만 보인다. 장점이 있어서 선택을 했더니, 단점이 더 커진다. 그러면 그 다음 비슷한 상황에서 또 선택을 못한다. 그래서 Perfect한 사람을 찾는다.
또는, 이 두 개를 합치려고 든다. 그게 여기는 본처, 저기는 첩이라고 하는 것이다. 영성이 좋은 것은 본처로 하는게 좋다. 그러면 야들야들은 첩이 좋다. 그래서 이 둘을 합치는 것이다. 그러고 산다. 그런데 우주의 원리는 합치는 것을 허락을 안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나름대로 합친다. 옛날에는 첩으로, 지금은 몰래 간음으로 합친다. 집에는 본처 두고, 바깥에 나가서 첩질한다고 한다. 나름대로 합친다. ㄱ런데 그러면 멸망한다.
그래서 사람이 반드시 선택을 해야한다. 어떻게 선택을 하느냐? 이 선택을 하는 것을 언약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언약서를 낭독한다. 그런데 니쉬마, 듣겠다고 한다
모두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다. 선택하기 정말 힘들다. 왜 힘드냐면, 이게 나한테 장점이고, 나한테 단점이다. 나는 지금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한테 좋은 것을 가지고 와야한다. 그러니 이 선택이 정말 힘들다. 나는 선악과를 따먹어서, 나한테 좋은 것을 가져와야 하는데, 이게 왜 어렵냐면, 아까처럼 Yes Yes선택이면 정말 좋다. 그런데 얘를 선택하면 단점까지 딸려오니 미치겠는 것이다. 여기서 장점, 저기서 장점만 선택하고 싶다. 그런데 그런 것은 또 없다.
결국 사람의 삶이란 것은 이런 것을 통해서 엄청난 재앙에 빠지게된다. 나라고 하는 것이다. 이 나, 이 느낌을 설명하려고 지금까지 출애굽기에서 그렇게 하나님은 고생하셨던 것이다. 나를 기준으로, 내가 원하는 장점을 가져오는 것, 이것을 선택하는 것을 인간은 행함이라고 착각한다. 나에게 원하는 무엇을 하는 것을 내가 행한다고 착각한다. 그런데 행함이라는 것은 나를 위해서 행하는 것을 행함이라고 하지 않는다
נַעֲשֶׂה 나아쎄라고 하는 것은 내가 행하겠다가 아니라, 우리가 행하겠다이다
נַ 나 : 우리(주어)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행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행하는 것은 알겠는데, 우리가 행한다가 뭔가? 내가 듣는 것은 알겠는데, 우리가 듣는다는게 뭔가? 이런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이,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약이라는 것은 한 사람, 하나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나한테 헌신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 나한테 헌신한다. 나한테 헌신하니까, 나한테 좋은 장점을 가져와야 한다. 단점이 섞여있는 것을 가져오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가져오기 전에 계속 확답을 받는다. 나 사랑하지? 나 사랑할거지? 나 안 버릴거지? 나 이뻐해 줄꺼지?
그래서 결혼 전에 로맨스로 확답을 받으려는 것이 그것이다. 나에게 좋은 것만 너는 할거지? 그리고 사람이 미쳐서 로맨스를 해서 육신의 관계에 들어가면, 그게 믿어진다. 육신에게 미치면 말이다.
육신이 육신을 즐겁게하면, 100% 이 존재가 좋아보인다. 왜?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서, 나에게 키스를 해준다고 생각해봐라. 그러면, 그 느낌이 어떻겠는가? 절세미녀가 나타나서 너에게 딱 키스를 해준다. 이 육신이 100% 미치도록 좋은 것이다. 그래서 이 육신은 나에게 100% 좋은 것을 준다. 단점이 없다. 저 육신만 나타나면 나는 100% 좋다. 이게 육신적인 성관계를 결혼 전에 하면 망하는 이유이다. 언약이라는 것은 없다.
그래서 이 존재가 100% 좋아진다. 그러니까 선택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결혼하고 나면, 그게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절세 미인도, 결혼하고 나면 일단 내 것이 되었으니까, 공기랑 비슷한 것이다. 당연히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예쁜 것은 절대 2달 이상은 안 간다. 인간의 감각의 특징이다. 아무리 예쁜 것도 매일 보면 질린다. 육신에 속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100% 좋았다가, 단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극과 극을 달린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 이 육신적인 성관계라고 하는 것은, 나에게 헌신하게하는 사단의 가장 큰 무기이다.
그런데 언약이라는 것은 내가 좋은 것을 찾는게 아니다. 그래서 예슈아 비전교회에서는 언약적 결혼을 시킬 때, 손만 잡게 하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물론 여러분들은 이해가 안되겠지만, 언약적 결혼을 할 때, 이 사람이 장점이 있던지, 단점이 있던지 상관을 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결혼하는가? 룻이 보*스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결혼한 것인가? 언약이라는 것은 내가 이 사람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 있는 것을 가져오는게 아니라, 내가 주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나아쎄라고 하는 것은, 내가 행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제 우리가 행하겠다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나아쎄라는 말은 위대한 것인데,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위해서 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나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소리이다
우리나라 말 중에 제일 좋아하는 말이 우리 아내라는 말이다. 옛날에는 이 말 때문에 기절할 뻔 했다. 어느날 어느 형제에게 우리 아내에게 좀 갔다오라고 헀는데, 얘가 네 이러고 가는 것이다. 가만 보니 우리 아내라는 말에 지가 동의하는 것이다. 가면서 뒷모습을 보고, 저것이? 그런데, 우리 아내라는 것은 이 아내를 공유한다, 이런 타락한 개념이 아니라, 나한테 있어서 우리 아내라는 것이다. 나아쎄 아내라는 것이다
내 아내라고 하는 것은, 이 아내를 내가 선택한 것이다. 나에게 헌신하라고, 나에게 좋은 것만 가진 아내를 내가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내다라고 했을 때는, 이제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우리라고 한다. 나에게 헌신하지 않고, 우리에게 헌신한다. 당신에게 헌신했다고 했을 때 우리 아내가 된다. 공유한다고 우리 아내가 아니라, 나아쎄, 더 이상 나는 나를 행하고, 나에게 헌신하는게 아니라, 우리에게 헌신한다. 나를 너에게 헌신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 아내라고 한다
그래서 제가 우리 아내라고 한다고 해서, 제 아내 데려갈 생각하지 마시기 바란다. 우리 아내라고 한다고 해서 룻을 데려갈 생각하지 마시기 바라낟. 보*스는 자기의 생명을 주기로 결정했다. 룻이 어떤 장점, 단점을 가졌던지 상관이 없다
언약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주님이 오셔서 하신 것이 언약을 하신 것, 언약의 피를 흘리신 것이다.
출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쎄굴라 : 소유
모든 민족으로부터 내 소유가 되겠다고 했는데, 세계 모든 민족이 내게 속했다는 말이 제일 뒤에 나온다. 내가 너희를 선택헀는데, 그냥 하나 중에서 선택하면 선택이라고 하지 않는다. 온 세상이 내게 속했다는 것은, 내게 선택할 여자가 겁나게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내가 너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너를 선택하는데, 선택할 때도 정말정말 100% 장점만 있어서 선택하면, 그것은 선택이 아니다. 누가 못하는가? 그런 것은 선택이라고 하지 않는다
저 같은 사람은 정말 불쌍하다. 100% 장점만 있다면 제 아내가 선택하기 쉬웠을 것이다. 이런 것은 선택이라고 안 한다. 그런데 우리 아내는 진정한 선택을 한 것이다. 아저씨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선택이 아름다운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민족들 중에서 단점이 제일 많은 민족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신다. 이 소리는, 내가 너한테 헌신한다는 것이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것이 언약의 피를 흘리신 것이다. 우리에게 언약의 삶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주님이 여러분들을 선택한 것은, 여러분들이 잘나서가 아니다. 단점 투성이다. 미쉬파팀에서는 그것을 설명한다
미쉬파팀에서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나아쎼, 우리가 살겠다고 한다. 미쉬파팀에서 니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하는데, 사람을 떄려죽이면.. 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때려죽일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런 속성을 가진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언약한 사람들이, 사람을 떄려죽이는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남자를 때려죽이는 여자랑 결혼할 사람 손 들어보라. 그리고 도둑질 하는 여자다. 도둑질하면 다섯배로 물어줘야 한다고 하는데, 그 여자가 도둑질 한다는 것이다. 구덩이 파놔서 다른 사람 빠지게 하는 여자, 정말 못됐다. 구덩이는 왜 파서, 다른 집 소, 양 빠지고 그러는가? 진짜 못됐다. 심지어는 짐승과 행음한다고 한다. 하나님이 택한 여자가 그렇다.
하나님은 장점만 나한테 택하려는 이런 악한 분이 아니시다. 이러면 선택은 아무것도 못한다. 모든 인류가 고통받는 이유는, 자기를 위해서 헌신해서, 자기에게 장점만 가져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배워도, 나한테 장점이 있는 하나님을 배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내가 택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 종류도 많다
- 이 목사님에게 배운 하나님, 그 하나님을 택해서 살다보니까 단점이 보인다. 그래서 또 다른 목사님의 하나님, 이렇게 만들어낸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네 하나님이 도대체 몇명이냐? 없다? 여섯명이다. 그래서 이런 대화들이 주님과 오가는 것이다.
리더도 그렇다. 자기에게 좋은 리더, 단점있는 리더이다. 이것을 리더로 삼을 수도, 안 삼을 수도 없다. 다비드를 리더로 삼자니, 토라는 잘 가르치는 것 같은데, 너무 어렵게 가르친다. 그런데 너무 쉽게 가르치는 리더에게 갔는데, 제대로 못 가르치는 것 같다. 어디로 가야하는가? 그래서 주일은 여기, 평일엔 여기 간다. 유투브로 봤다가 한다. 첩 리더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인생은 이렇게 살면 고달프다. 사람도 나한테 좋은 사람, 나한테 헌신해서 사는 사람만큼 고달픈 사람은 없다. 인생은 언약적으로 사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사람의 삶이란 것은, 자기에게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이 우리라고 하는 개념은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주는 것이다. 다른 존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럴 때 베니쉬마, 들을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다른 존재가 나타난다. 주님이 나타난다. 존재를 알게된다.
그 전까지는 내가 만든 우상만이 존재를 한다. 진정한 존재들을 알게된다. 그래서 관계를 맺을 수 있게된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그것을 제정하셨다. 인간의 삶이란 것은 나아쎼이다. 내가 나를 위해서 행하는 것을 행함이라고 하지 않고 다른 존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을 행함이라고 하고, 언약이라고 한다. 언약적 삶을 살아라. 그러면서 당신이 오셔서 친히 단점 투성이인 우리를 택하시고 생명을 줘버리셨다. 그리고 이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주님에게 뭘 잘 갖다 바쳐서가 아니라, 그분이 언약으로 내게 생명을 주기로 결정하셨구나 할 때 이 관계가 유지된다
보*스와 룻과의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룻에게 생명을 주기로 언약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언약의 위대함인 것이다. 이런 언약적 삶을 살려고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생명을 줄 사람을 앞에 출현시킨다. 이것은 절대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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