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과 조계사 불교대학총동문회가 공동주최하는 '53선지식 구법여행' 제49번째 법회가 진행됐다. '53선지식 구법여행'은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등대로 보리심을 찾고자 53선지식을 만나 그들에게 법을 묻고 배우며 보리심을 일으켜 보현행원을 발원했듯이 우리사회에서 각 분야에서 활동하며 많은 이들에게 삶을 메시지을 전하고 있는 명사들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기 위해 마련된 법석이다.
지난 11월 22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제49차 53선지식 구법여행 법회는 선재동자의 구법정신을 따라가는 법우들이 경북대 철학과 재직중이신 임승택 교수님을 모시고 " 무아에 대한 사색과 고찰"이라는 주제로 법회가 진행되었다.
임승택 교수님은 조계사 대웅전에서 강의를 하게되어 영광이라고 하시면서 강의 주제를 무아에 대한 사색과 고찰이라고 정한 것은 무아에 대한 가르침은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나 일반 신도들이나 전공자들도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 무아가 무엇인지 의견이 통일되지 않고 있어서 무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같이 되집어보며 경전상 말씀과 연결시켜보고 점검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제목을 정함에 있어서 처음에는 무아에 대한 사색이라고 하여 고찰을 넣지않았으나 사색은 깊이 생각은 하는 것이기는 하나 연구조사를 하지않는 것이고 고찰은 깊게 따지는 것으로 불교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는 입장에서 고찰이라고 하는 것이 더 부합되어 무아에 대한 사색과 고찰이라고 제목을 정하였고 교수님은 무아와 관련하여 무아, 윤회에 대한 논쟁에 대한 비판적 검토 등 여러 논문을 쓰셨고 초기불교를 전공하시어 무아에 대하여 기존 학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교수님은 무아에 대한 철학사적 의의를 말씀하시면서 플리감블라(?)라는 학자의 견해를 인용하신다면서 철학은 서양이나 동양을 통털어 기점이 2500년전 그리스라고 하시면서 종교와 철학을 아울러 무아에 대하여는 무아의 반대개념인 자아 내지는 영혼을 들어 죽은 후에도 변치않고 존재하는 고정적 실체가 있다고 이해하면서 이는 세계의 모든 종교와 철학자들이 취하는 입장으로 유태교, 기독교, 회교, 자이나교, 힌두교 등이 영혼이 육체보다 본질적이인것이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인도의 자이나교도 지바라는 순수영혼이 본질적이고 이를 오염시키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순수청정해지는 것이 해탈이라고 하고 뿌르샤라는 순수정신이 있어 이것이 진실한 자아라고 하고 있으며 힌두교도 아트만이라는 내면의 자아가 있고 브라만과 통하는 범아일여 사상을 취하는 등 세계의 모든 종교와 철학은 자아와 영혼이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고 하셨습니다.
무아 즉 아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는 세계적으로 독특하고 고대, 중세, 근대를 통해보면 자아가 있다는 것이 거의 모든 종교와 철학의 추세이나 부처님의 영혼이나 자아가 없다, 자아나 영혼은 자기 관념에 불과하다는 가르침은 가장 독특한 가르침이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자아라고 하는 오온이라는 것은 우리 삶에서 우리가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일시적인 것으로 영구불변인 자아가 실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우리가 나라고 하는 이미지는 오온으로 환원하면 상에 해당하고 육체 몸뚱아리는 색에 해당하고 이순간 느낌은 수에 해당하는 등 내가 누구인가하는 것은 모두 오온에 다들어간다고 하시면서 고정된 실체는 없고 오온이 있을 뿐이며 오온은 있다가 없기도 하고 없다가 있기도하는 생멸변화하는 것으로 어떤 자이나교도가 오온이 있는데 왜 없다고 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부처님은 너의 구성요소인 오온이 너의 마음대로 태어나고 싶으면 태어나고 죽고 싶으면 죽느냐 구성요소가 너의 마음대로 되느냐 그렇게 되지않는다는 것은 너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하여 자이나교도는 아무할 말을 할 수 없었고 나라고 믿었던 오온은 변화하며 다섯가지 요소가 결합한 일시적 형태로서의 자아라는 것은 행위주체로서의 자아는 인정하나 영구불변한 자아는 없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아의 개념을 변하는 자아는 인정하고 고정불변의 실체로서의 영혼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혼이란 생각일뿐 실제 내가 아닌데 영혼을 자아라고 하면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생존은 계속되는데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이렇게 흘러가는 속에서 일시적을 흘러가는 나 행위책임의 나는 인정하되 종국실체인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에 무아의 철학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아의 논의에 있어서 윤리학과 존재론적입장에서 보면 윤리학은 어떻게 살아야하느냐 존재론은 우리 존재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에 대하여 논의하는데 불교를 제외한 모든종교와 철학은 자아가 있다고 가르치는 반면에 어떻게 살아야하느냐에 대하여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여 존재론적으로는 자아가 있다고 하고 윤리적으로는 이타적으로 살라고 하여 서로 상충된고 이타적으로 살라고 할려면 자아를 무아로 할때만 가능하며 그렇지않으면 세계의 종교와 철학은 가식적이고 모순된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혼이나 영원한 자아를 인정하는 차원에서는 집단이기적행위가 나올수밖에 없으며 영원한 자아를 인정하며 이타적이라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자아를 타인을 구분할 수 밖에 없고 갈등의 원인이되며 영혼이나 자아의 관념을 극복하고 벗어날때 이타적인 삶과 윤리론과 존재론적 가르침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무아에 대한 가르침은 차원이 다른데 이를 인도의 요가 스승인 소아니즈(?)와 심리치료사인 비욘의 가르침을 통해 살펴보면 소아니즈는 스승을 선택할때 기준의 하나가 무아를 가르치느냐 자아를 가르치느냐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자기를 내세우기 위하여 하고 이기적이고 자기 잇속을 챙기면 무아의 가르침이 아니고 자기 욕구를 초월하며 무아로 가는데 그런 스승을 따라가는 것이 낫다고 하는 점에서 무아의 일상적 의미가 있다고 하셨고 비욘은 생각을 할때 생각하는 자의 입장이 개입되면 부자연스럽고 생각이 잘떠오르지 않는데 모성애를 보면 아이를 키우며 나중에 받을 생각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그냥 무조건적으로 하는 것이 무아로 하는 것이며 이것이 부처님 말씀과 같은 일상적 무아이며 남방불교나 인도의 요가 철학에서 수행을 할때 처음에는 내가 수행을 하나 수행중에는 내가 빠져야 수행이되듯이 처음에는 내가 수행하나수행이 무르익으면 법이 드러나 이끌어 간다고 하는 것이 무아의 가치에 대한 체화한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아에 대한 초기불교의 경전적 확인은 교수님은 무아에 대한 논문을 쓰시면서 무아를 다찾고 있는데 무아를 가장 많이 설한 두경전을 소개하시면서 물질현상을 무아이고 (여기서 물질현상은 지수화풍의 감각적느낌의 물질현상으로 자연과학적 물질이 아님) 느낌은 무아이고, 지각은 무아이고, 지행은 무아이고, 의식은 무아이다라는 경전말씀을 소개하시면서 다섯가지 나의 정체성의 구성요소는 그것들이 나아니다라는 것으로 물질현상, 느낌, 지각, 지행, 의식을 염리(厭離)히여 더이상 탐내지 않고 벗어나면 그것이 해탈이며 모든것은 탐냄에 묶여있다고 하고 해탈하고 해탈했다는 지견 지혜가 있어 아라한이 되면 태어남을 다했고 청정성을 완성했고 할일을 다마쳤으며 다시는 이상태를 받지않는다라는 것을 소개하셨고 또 무아는 나의 것이 아니다 나의 것이라고 하는것 즉 재산, 명예, 자식 등등은 그것은 나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한 것은 이미지때문인데 이 이미지를 자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이미지는 자기가 아니고 생로병사 등등 고통도 원래 없는 것으로 고통을 극복하는 것은 스스로 물어보면 알 수 있다고 하시면서 고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시고 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보라고 하신후 이순간 손들거나 안들거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내가 아니고 내려 놓으면 되는데 안되면 그대로 갈 뿐이라고 하시면서 나의 것은 내가 아니고 자아가 아니며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은 간단하고 단순하고 명확하다고 하셨습니다.
엄밀하게 무아를 살펴보면 무아란 나의 없음으로 빨리어로 아나따, An-Atman을 한자어로 번역하면서 무아로 번역하여 내가 없다로 번역한것인데 경전을 보면 비아 내가 아니다로 해야하는 경우도 있어 아나타를 무아인지 비아인지 100년 논쟁인데 무아이든 비아이든 둘다 맞다고 하시면서 간과하였던 부분이 무아는 주어로 쓰인 경우는 거의 없고 모두 서술어로 쓰였으며 서술어에는 주어가 따로 있어 무아든 비아든 다 같아 나의 없음과 내가 아니라는 것이 동일한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아의 실제적의미는 An-Atmam 내가 아니다라는 것은 말하는 이순간 이자리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1인칭 화자가 아닌 오온이 내가 아니라는 의미로서 무아의 실천적 양상으로서 오온외에 12처,18계 등이 내가 아니고 무아의 요체는 탐욕을 떠나 해탈지견을 가지고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으로 이런 집착을 내려 놓으면 된다는 것이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명상, 위빠사나등을 하는 것으로 모든 존재는 무상, 고, 무아이므로 경전을 통해 깨닫고 실천수행을 하는데 의의가 있고 나를 구성하는 요소인 오온이 내가 아니라면 본질적인 무엇인가 있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하는것은 초월적인 무엇인가는 상에 해당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하셨습니다. 1인칭화자인 나는 없지 않고, 오온이 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주체인 일인칭화자인 나는 있는 것이고, 법구경에도 자기자신을 의지처로 삼으라는 말과 대반열반경에 자등명 법등명 도 이러한 자기는 인정되는 것이고, 무아에서 부정되는 자아는 온, 처, 계의 나와 동일시되거나 융화된 나로서 이런 나는 본질적인 내가 아니라는 것으로 지금 이자리에서 듣고 있는 나는 부정되지 않으나 명예 등과 결합된 나는 부정된다고 하시면서 이러한 1인칭화자인 나와 오온의 나는 있다 없다의 연속에서 있고 오온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나는 있지만 1인칭인 나와 일치시키면 집착에 빠지고 온, 처, 계와 동일시되거나 융홥된 나 즉 껍데기의 나는 무아로서 극복되어야 하며 이런 껍데기를 붙잡고 나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아에 대한 오해 세가지를 들어 주셨는데 첫째로 죽고 나면 영혼이 없다는 것이 무아라는 것으로 이런 무아설은 유물론과 같은 것으로 많은 학자나 스님들도 취하고 있으며, 둘째로 내가 아니다라는 비아로 여기면서 초월적 나는 있다는 것으로 아트만이나 대승불교의 여래장 입장에서 취하고 있는 무아설인데 초월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오온과 같다면 이는 경험적 자아이지 초월적 존재가 아니며 오온과 다르다면 경험세계를 넘어서는 것이므로 무의미하다고 하셨고 세째로 무아이지만 윤회한다는 것으로 그 근거로 업보는 있지만 작자는 없다는 것을 내세우지만 이러한 견해는 무아란 해탈을 하여 윤회를 하지않는다는 것을 간과하고 윤회세계와 무아세계를 믹스하여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교수님께서는 나라는 관념이 개입된 부정된 나와 일인칭의 긍정된 나와를 왔다갔다 하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런 가운데 초기 불교의 무아가 의미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날은 11월 하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동문 선후배님들과 불교신문사 관계자들이 법당을 가득채울 정도로 많이 오셨고 조계사총동문회 찬불가 합창단의 '부처님의 미수' '보리밭' 음성공양 후 성해회장님의 임승택 교수님께의 감사인사와 다음달 13일 장학회 정기총회, 10일에 있을 송년법회에 대한 많은 참여당부 말씀 후 그동안 53선지식 법회가 잘이루어질수 있도록 하여주신 주지스님, 불교신문사관계자 ,선후배동문님께 감사인사 후 동문들과 가족들에 대한 인연공덕과자비광명의 축원인사가 있었으며 밖에서는 따뜻한 보이차 공양과 화엄경 사경지를 배포하는 등 많은 동문들이 수고하셨습니다.[정리=총무부차장 보광 신종열]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첫댓글 보광님!. 익숙하지만 가볍지않은 주제인데 깔금하게 정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_()_
작성 불편하셨을텐데.. 여러분들께 좋은말씀 다시듣고 볼 수 있도록 애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