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IM 회
" 010 /2**6 /0976 " 스마트폰에 뜨는 전화번호이다. 그냥 전화를 꺼버린다. 또 다시 두세번 전화가 울리고 있다. 이름이나 소재가 없으면 아예 받지를 않는다. 수신차단을 하려는 순간 " 02/945/ 2**3 번호와 길상철 이름이 보인다. " 야 이 녀석 뺑코구나 , 이젠 좀 어떠냐, 살아났구나 " " 정남아 너는 전화를 왜 그리 않받는거야 " 2년여전에 뇌출혈로 생과 사의 문턱을 넘나들던 고등학교 동기생이다. 20여년 이상 청계천에서 공업용 BRUSH를 제조하는 자그마한 자영업의 사장이다. 동기생 두명도 같은 업종에 합류한다. 40대까지는 그런대로 청계천을 휘저으며 목에 힘도 주던 녀석이다. 이 몸도 청계천4가에서 7년여 동안 청계약국을 경영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가끔 한잔 술을 함께 기우리며 삶의 무게를 헤아리기도 했으리라. 술이면 술, 꽃이면 꽃 어떤 꽃이든지 종류를 마다 않는 녀석이다. 소주 맥주 양주 고량주 막걸리 청주 Alcohol(C2H5OH)이라면 종류에 관계가 없다. 병들어 시들어 가는 꽃이든 백합 장미꽃 채송화 씀바귀꽃 늙은 호박꽃이든 어느 것이 더 좋은지 가리지 않고 거품을 뱉어낸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단단한 박달나무 몽둥이를 달고 나온 남정네들은 자연스런 생리현상이 아니겠는가. 담배는 줄 담배로 연신 흡입하고 뿜어댄다. 술과 꽃과 담배는 사회생활을 하며 사업상으로도 필요악이렷다. 숨김이 없이 낙천적으로 삶을 즐기는 친구이다. 30대 중반에야 지금의 아내를 천생 배필로 호적에 올린다. 칠팔년 어린 20대 처녀이다. 성격이 밝고 구김이 없는 여인이다. 아들을 둘이나 낳아 아내로 며느리로 기본적인 의무와 책임에서는 자유로운 모습이다. 뺑코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별명이 제대로 생긴 것이다. 엄마가 독일인 2세인가 코가 온전히 서양인 모습을 닮음에서이다. 석양빛이 아름다운 80으로 향하는 지금도 길상철은 몰라도 뺑코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으니까. 그의 아내는 예나 지금이나 천주교 세례명(Christian name)인 요셉(Josephus)으로 불러주기를 바램일 테다. 세례 때 이름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남을 뜻한다. 본명이라고도 하며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스스로 골라 정한다.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의미도 있을 게다. 1985년도에는 약국을 강동구 천호동으로 이전을 한다. 어느 날 연락도 없이 뺑코가 약국으로 들어선다. 몇년만에 만나는 녀석이 그저 반갑기만하다. 따르는 술잔에 할 얘기도 많으리라. 자신만만하던 녀석의 성격은 어디로 갔을까. 근황을 물어도 할듯 말듯한 입가에는 쓴웃음만이 흐른다. 충혈된 눈가에는 눈물마저 스치는 게 아닌가. 말없이 돌아서는 녀석의 어깨는 가볍게 떨리는 모습이다. " 잘 가라 " " 그래 잘 있어," 라는 한 마디는 깊은 한숨으로 돌아온다.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 자괴감이 가슴을 누른다. 지지부진한 사업을 접고 지인의 건물 관리인으로 자리를 옮긴다. 산행을 즐기는 동기들과 가끔 들리기도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잔술은 빠짐이 없다. 냉장고에도 술병이 즐비하다. 두어평 정도의 관리실에서 거의 하루를 보내며 집에는 가끔 들른단다. 밤이면 혼자 소주로 외로움을 달래는 모양이다. " 뺑코야, 너는 내가 보기에는 알콜중독이다. 술은 삼사일 걸러서 마셔라, 알았냐 담배는 끊어라, 아직도 피는 녀석은 너뿐이야, " 묵묵부답으로 우이독경(牛耳讀經) 쇠귀에 경 읽기가 아닌가. 절제를 아니하면 너와는 이제 안 만날 것이라는 충고겸 협박도 한다. 술에다 담배 그것도 홀로 매일 마시고 뿜어대니 걱정이다. " 저어 길상철 아들입니다 " 순간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강북구에 있는 H 병원으로 친구들과 문병을 간다. 코에도 팔에 주사바늘과 링거줄이 주렁주렁이다. 뇌출혈로 쓰러져 지금은 혼수 상태이다. 심장을 치료하려면 뇌가 뇌를 치료하려니 심장에 악영향이 난감한 상태란다. 담담하면서도 체념한듯한 아내의 설명에 할 말을 잊는다. 맥박을 잡아본다. 힘차게 뛰고 있는 심장박동 소리가 느껴진다. 온 몸에 열기가 꽉 찬 느낌이다. "뺑코야, 어서 일어나라, 그래서 또 한잔해야지, 포기하지 마라 곧 일어 날 거다 " 어설픈 돌 약사의 소견은 시간이 걸릴뿐 반드시 일어나리라. 2019년 6월 22일(토) 09시 17분 4호선 수유역 1번출구에서 01번 마을버스 환승하고 북한산 둘레길 3,4 코스를 걸을 예정이다. 하산후에는 모처럼 2년여만에 뺑코와 집 근처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 야, 이따 오후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나도 수유역 1번 출구로 간다 " 예상밖의 뺑코의 전화 목소리다. 재빠기 막사리 버쁘바 버니재 까토나 빼코추 여섯이다. 지팡이를 짚었으나 생각보다 많이 회복된 느낌이다. 반갑게 서로 악수로 이야기로 잠시 시끄럽다. 하산후에 빼코추와 다시 맛집으로 들어간다. 오늘 내일 사경을 헤매던 녀석과 이렇게 다시 회식을 하다니 모두가 즐거운 표정이다.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서 삶의 천국으로 회생한 녀석이 신기하기만 하다. 습관대로 소주 각 1병인데 뺑코도 예외는 아니란다. " 약사님이 요셉씨에게 술 담배를 제발 끊으라고 말 좀 해주세요 " 언젠가 요셉인 뺑코의 아내로 부터 절절한 하소를 듣는다. 오죽했으면 " 아예 그 때 저 세상으로 갔으면 좋았을 것을 --- " 얼마나 속상하고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었을까. 그저 할 말이 없다. 막상 마주 앉은 친구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떤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친구를 냉정히 거절키는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것도 2년여만에 만난 백년지기가 아니랴. 인생 백세인데 얼마 안되는 세월 하고픈대로 고픈대로 즐기며 채우는 것이 정답이 아니랴. 오늘은 이유아닌 핑게로 불참한 엉카페를 포함하면 일곱명의 노객이다. Seven Silver Meeting(SESIM 세심회)로 거듭남은 어떠할까.
2019년 6월 28일 무 무 최 정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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