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5장 35-41절. 바울과 바나바가 싸우고 헤어짐. 요약설교
35절.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1.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선교여행의 출발지인 안디옥 교회로 돌아와서 선교 보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여행 이전처럼 안디옥 교회에 머물면서 주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육 목회를 했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설교와 선교를 했습니다.
36절.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1. 바울과 바나바는 일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이렇게 사역을 하고 있는데, 바울이 바나바를 재촉해서 우리가 전도했던 사람들을 다시 찾아서 심방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이것이 2차 전도 여행의 시작입니다.
2.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전도한 비시디아 안디옥 교회,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교회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나 몹시 궁급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구역장의 마음이고 교사들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없는 사람은 올바른 교회 일군이 아닙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집을 짓고 신학교를 만들고 병원을 만드는 것이 선교가 아니라, 선교지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돌보는 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설교하는 사람이 목사가 아니라 성도들을 향해서 이 관심과 사랑을 갖고 기도하고 심방하고 돌보는 것이 목사입니다.
형제들이 어떠한가 이것이 궁금한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한 그 형제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이 혹시 시험에 들지는 않았을까?
그들이 불신자들에게 시련을 당하고 마음에 고난을 받아서 혹시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버린 것은 아닐까?
여기에 대한 애틋한 마음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목회자의 마음입니다.
이것은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이고, 특별히 병든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목회와 심방은 이런 부모와 같은 목회적인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7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1. 전도 여행을 가자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자고 주장했고, 바울은 데리고 가지 말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심히 다투고 헤어졌습니다.
2.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 교회가 있는 집 주인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소의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하는 예루살렘 교회당의 주인입니다.
그리고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입니다.
즉 마리아의 아들이 마가요, 마리아의 남동생이 바나바입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마가의 외삼촌이었습니다.
3. 이 마가 요한은 일차 전도 여행 때 바나바와 바울의 수종자로 동행했습니다.
처음에 전도 여행을 가자니까 너무 신이 났습니다.
그래서 나도 가겠다고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나 가보니까 먹을 것이 없고 잠자리가 불편하고 사람들이 핍박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사명감이 없었으므로, 이런 불편 사항들을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외삼촌인 바나바가 대장 노릇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바울이 대장 노릇을 한 것이 기분 나빴습니다.
그리고 마가 요한의 유대인 중심의 신앙과 바울의 이방인 중심의 설교가 마가의 마음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밤빌리아에서 마가는 도중에 하차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굉장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런데 2차전도 여행 때, 바나바가 다시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하니까 바울은 성질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가를 절대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반대했습니다.
그러니까 바나바는 바울이 용서할 줄 모르는 편협한 사람이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자기가 바울을 용서하고 받아주었는데, 바울은 은혜를 모르는 배신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의 일은 인정으로 해서는 안 되고, 일이 되게 해야 한다고 끝까지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바나바와 바울은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갈라디아와 길리기아로 갔습니다.
38절.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1. 사도 바울은 화가 났습니다.
사실 마가 같은 사람은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똑같이 있습니다.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고 했는데, 가보니까 화장실이 없고, 먹을 것이 없고, 잠자리가 불편하고, 물도 부족하고,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도중에 하차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바나바가 또 데리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화가 났습니다.
바나바는 차세대의 교회 지도자가 될 마가를 꼭 데리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인정에 치우쳐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일은 일이 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일로 둘이 심하게 다투다가 결국 서로 헤어졌습니다.
물론 나중에 마가 요한은 차세데 교회의 지도자로 성장하고,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로서 마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바울도 나중에는 마가 요한이 자기 일에 유익하다고 하면서 디모데에게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딤후 4:11).
39절.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1. 이것을 볼 때 위대한 사도라고 할지라도 인간적인 허물과 잘못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잘못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점은 교회 안에서 서로 성격과 의견이 다를 때, 서로 보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본질적인 진리 문제는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 때는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선교하러 가는 자체나 복음 진리를 왜곡해서 이단이나 율법주의를 전하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시기나 방법이나 동행자 같은 문제는 서로 양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2. 이 때 마가 요한을 선교여행에 참여시키냐 안 시키냐는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즉 성령님께서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여행을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마가 요한이나 실라를 데리고 간다고 선교여행에서 성령님께서 바울을 들어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도리어 이 때 바울이 바나바와 마가를 데리고 가지 않음으로써 이후에 바울의 선교 사역과 목회 사역에는 큰 방해 거리가 생겼습니다.
과거에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이 핍박자 바울을 상종하지 않으려고 했을 때, 바나바가 중간에 개입하여 기존의 사도들이 바울을 상종하도록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 행 9:27)
뿐만 아니라 바울이 길리기아 다소에서 10년을 썩고 있었을 때, 바나바가 바울을 데려다가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을 하게 했고, 그럼으로써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1차 선교 여행을 갈라디아 지방에 성공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방인 선교를 하는 데 있어서 바나바가 이방인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 간에 중간자적 가교 할을 해주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바울이 바나바와 심히 싸우고 갈라졌기 때문에, 이후에 바울과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 사도들과 교인들과 다툼이 생겼을 때, 중간에 바나바가 화해와 중재자 역할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설립한 갈라디아 교회에서 예루살렘 율법주의자들이 쳐들어와서 바울을 배척하고 바울의 복음을 대적했던 것입니다. (갈 3:1)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설립했어도 고린도 교회에도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주의자들이 바울을 거짓 사도라고 공격하고, 바울의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고후 11:4-5)
이런 사정은 빌립보 교회나 데살로니가 교회나 골로새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때 바나바나 마가와 싸우지 않고, 계속 선교 사역을 함께 계속했더라면, 바울을 거짓 사도라고 비난하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율법주의자들이 바울의 복음을 공격하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40절.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1. 바울은 2차 선교여행의 동역자로 실라를 택했습니다.
이 실라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총회의 결의를 가지고 유다와 함께 안디옥 교회에 왔던 사람입니다. (행 15:27, 32, 34).
그래서 2차 선교여행 중에 빌립보 전도에서는 바울과 함께 매를 맞고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찬송 중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풀려나기도 했습니다. (행 16장).
그러나 바나바는 다시 생질인 마가를 데리고 선교여행을 했으나 성경에 별다른 기록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바울이 성격적으로는 과격하고, 은인인 바나바와 싸웠지만, 그래도 성령님께서는 바울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을 볼 때, 바울이 성격적으로는 과격했지만 올바른 길을 주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났다>는 것은 온교회가 모여서 바울의 선교 출발을 기도로 후원해주고, 주님의 은혜에 부탁하면서 정식으로 파송했다는 말입니다.
처음 1차 선교여행 때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행 14:26).
41절.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1. <수리아>는 안디옥 교회가 소속된 지역과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와 버가가 소속된 지방입니다.
그리고 <길리기아>는 더욱 북쪽으로서 바울의 고향 다소가 있는 지방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1차전도 여행을 했던 지역 교회들과 또 바울이 10년간 머물렀던 고향에 세워진 교회를 돌아보면서 북쪽으로 전진해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나바는 목회적인 심정을 가진 분이고, 바울은 선교적인 자질을 가진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사역자들은 서로 다른 은사와 직책으로 서로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공적으로 주의 일을 잘 감당하셔서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