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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22년 ‘소설에 나타난 집단상담 분석: 조경란 작가의 ‘사소한 날들의 기록’을 대상으로’(교육상담연구, 제3권,제1호, 한국교육상담학회. pp.1-48.)라는 논문을 통해 우리나라 집단상담의 문제를 분석하였다. 그렇다고 이 논문을 읽은 집단상담 관련자들 – 리더든, 집단원이든 – 이 달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진실을 부담스러워하고 회피하려 한다. 설령 거짓일지라도 내 마음 편하고 법 벌어 먹는 데 지장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거짓으로 남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속인다.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이비 종교가 창궐한다.
집단상담도 이런 요소가 다분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장기간 집단상담에 돈과 시간을 너무 많이 투자했으며, 기존의 인간관계는 소원해지거나 단절되고 오로지 집단에서 만난 사람들끼리만 교류하고 소통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다시는 현실로, 평범한 일상 그 진실의 세계로 돌아올 수 없다. 그들에게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가 아니라 '정말 너무 늦은 것'이다.
권경인과 김창대(2008)가 선정한 우리나라 집단상담 대가 5명 중 2명은 기독교, 2명은 불교, 1명은 천부경을 믿는다. 신앙의 깊이도 매우 독실해 보인다. 대가들의 말을 들어보자
<사례 1>
난 한쪽으로는 상담심리학을 쭉 해왔지만 한쪽으로는 수행이랄까 일반 학문적 term으로 하면은 자아초월심리학에 관심을 가져왔거든. 구체적으로는 요가 심리학, 요가 철학, 그 담에 불교, 불교적 상담 등이 있었지. 이런 세계관, 이런 깊은 철학이야말로 상담자의 힘이라고 생각하거든.
<사례 4>
나는 이제 신앙 - 기독교 - 하고 나하고는 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니까 당연히 나무가, 화초가 자라려면 그 밑에 물이 깔려 있어야 하잖아. 나한테는 신앙이라는 게 삶 전체에 다 작용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하는 일에, 집단상담에도 신앙이라는 게 깔려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권경인, 김창대, 2008).
종교는 개인의 선택이니 누가 뭐랄 수 없다. 문제는 집단상담에 자신의 종교를 접목하는 방식과 정도에 있다. 이런 리더들이 이끄는 집단상담의 장은 분위기가 예배당이나 법당, 요가원과 유사하다. 집단원은 리더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므로 종교의 색채가 너무 강하면 집단상담이 특정 종교의 전도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고, 반대로 종교가 집단상담의 도구로 부적절하게 오용될 수도 있다. 어떤 상담가(이영선, 2011)는 자기공개가 예수의 뜻이고 성경의 가르침이라며 집단상담에서 집단원들의 자기공개를 촉구하기도 한다. 집단상담 대가 중 한 명(사례 1)이 상담 후학들에게 ‘(집단상담을) 정말 사랑해서 밥 먹듯 해야 된다. 집단이 삶이 되어야 한다’고 한 조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이래서야 일상생활은 언제 한단 말인가. 또 다른 대가(사례 3)가 ‘여러 가지 집단상담을 경험하는 것은 낭비’라며 다른 집단에 참가하는 걸 막는 것도 타 종교를 배척하는 종교집단의 행태와 비슷하다. 내 대학원 수강생이 ‘리더가 마치 사이비 종교 교주 같더라.’고 한 말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런 경향은 과학을 지향하는 상담심리학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상담심리는 이제 막 ‘종교’ 수준을 벗어나 ‘학문’으로 발전해 가는 중이니 더욱 그러하다. 기독교나 불교는 그나마 타로나 명리학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정도로 안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래서는 상담이 철학관이나 사이비 종교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문제적 리더는 집단원의 문제를 치유하는 게 아니라 더욱 키우고 고착시킨다. 집단원들을 집단상담이라는 비현실 공간에 가두어 영영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
사이비 종교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잘 설명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이유>
<출처>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이현우 옮김.(2002). 설득의 심리학. 21세기북스. 190-200쪽 요약.
어떤 특정한 날에 이 세상에 심판의 날이 닥쳐 그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신도들만을 구원해 준다는 예언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종교집단이 지금까지 존재해 왔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심판의 날은 지구의 대재난과 함께 시작된다고 하였으나 그들의 예언이 맞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예언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에 그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보여준 행동은 매우 이해하기 힘든 경향을 보인다. 그것은 그 신자들이 그날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대신 오히려 그 종교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건하게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들 종교의 예언이 분명히 실패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인의 조롱을 무릅쓰고 거리로 뛰쳐나가 이전보다 더욱 확신에 찬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그들의 종교를 전파하고 열심으로 개종을 권유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2세기 터키의 몬타니스트, 16세기 네델란드의 아나뱁티스트, 17세기 이즈미르의 사바타이스트, 19세기 미국의 밀레라이트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시카고에도 종말주의자의 종교집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당시 미네소타 대학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었던 세 명의 심리학자들의(Festinger, Riecken, Schachater)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마침내 이들은 신분을 숨긴 채 이들 종교집단에 침투하는 데 성공하였고 재난의 날을 전후하여 신도들이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직접적으로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이 집단의 신도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모두 30명 안팎이었다. 그들 집단의 지도자는 암스트롱(Armstrong)이라는 중년의 의학박사와 키이츠(Keech) 부인이라는 중년의 여자 두 사람이었다(둘 다 가명). 암스트롱 박사는 대학의 보건소에 근무하면서 신비주의, 비학 그리고 비행접시 등에 많은 관심을 가져 이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한편, 키이츠 부인은 이 종교집단의 실질적인 핵심 인물이었는데 그녀는 그 해가 되면서 갑자기 ‘수호신(Guardians)’이라는 이름의 외계인으로부터 영적 메시지를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호신은 키이츠 부인의 손을 자동으로 움직이게 하여 그들의 메시지를 받아 적게 하였다는데, 이 메시지는 초기 기독교의 사상과 매우 흡사한 것으로서 이들 집단의 종교적 체계를 형성하는 데 뼈대가 되었다.
이들 종교집단은 수호신으로부터 전달된 메시지를 열심히 해석하고 또 토론하였는데, 어느 날 그들은 지구에 큰 홍수가 나서 온 지구가 물에 잠겨 버리는 커다란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해 받았다. 그들은 메시지를 전해 듣고서는 매우 놀라서 걱정을 하였는데 부인을 통해 전달된 ‘가르침(the lessons)’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모두 구원해 준다는 수호신의 잇다른 메시지를 전해 받고서야 안심을 하였다. 수호신의 메시지에 의하면 지구의 대재난이 시작하기 직전에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그들을 비행접시로 안전한 곳으로, 아마도 다른 혹성으로 옮겨준다는 것이었다.
수호신에게 구출되기 위하여 신도들이 꼭 해야 할 일이 두 가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외계인을 만날 때 신분을 확인하기 위하여 필요한 비밀암호를 암기하는 것이었으며 또 하나는 몸에 지니고 있는 모든 금속물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금속물을 지니고 있으면 비행접시를 운행하는 데 지장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Festinger, Riecken, Schachater의 관찰에 의하면 대홍수가 예언된 날이 다가오기 몇 주 전에 보여준 신도들의 행동은 두 가지 매우 중요한 특징으로 요약되었다.
첫 번째 특징은 신도들이 종교집단의 가르침에 매우 충실하게 따랐다는 점이다. 신도들은 지구의 멸망을 예견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행동들을 취해 나갔다. 그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의 신앙을 굳건히 지켰다. 이들은 가족들로부터 연을 끊겠다는 위협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법에 의해 금치산자로 선고하겠다는 위협까지 받았으나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박사의 누이동생은 박사의 자녀 양육권을 박탈하기 위해 법에 호소하기도 하였다. 신도들의 대부분은 직업도 내팽개쳐 버렸다. 앞으로 쓸모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소유물을 모두 남에게 주어버린 신도도 있었다. 지구의 종말에 대한 그들의 확신은 너무도 분명해서 그들은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법적 압력을 이겨냈으며, 그들에 대한 압력이 커질수록 반대급부로 그들의 믿음을 더욱 키워나갔다.
대홍수가 닥치기 직전 이들 신도들이 보여준 행동의 두 번째 특징은 그들이 이상할 정도로 사회에 대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들의 믿음에 대하여 그토록 확신에 차 있었으면서도 대홍수의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데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비록 그들이 초창기에 대홍수의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는 하였으나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그들 종교에 끌어들이거나 개종시키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단지 세상에 한 차례 경고를 하였고 그 경고에 따라서 자발적으로 그 종교에 가입된 사람들만을 환영하였을 뿐 그 이상의 어떠한 노력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들이 새로운 신도를 그들의 종교에 가입시키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증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들은 수호신의 가르침에 대하여 철저한 비밀보안을 지켰다. 수호신의 가르침의 내용을 담고 있는 여분의 유인물은 즉시 불에 태워졌으며, 수호신의 가르침을 녹음한 테이프의 외부 유출은 물론이고 녹취하는 것마저 허용되지 않았다
대중매체와의 접촉도 가능한 한 꺼렸으며 종말의 날이 다가올수록 수많은 신문, TV 그리고 라디오의 기자들이 키이츠 부인의 집에 몰려들었으나 이들의 면담 요청은 철저히 거부되거나 무시되었다. 기자들의 열화같은 질문에 마지못한 그들의 대답은 ‘노 코멘트’가 고작이었다. 이들 종교집단의 소극적인 태도에 기자들은 한동안 잠잠하였으나, 암스트롱 박사가 이 종교집단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대학의 보건소로부터 해고 당하자 이들 기자들은 다시금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대홍수가 예견된 하루 전날 밤에도 기자들은 신도들을 괴롭히면서 지구의 종말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고 노력하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의 연구자들은 이들 종교집단의 신도들이 대홍수 직전에 보여준 세상에 대한 태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 그들의 존재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이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인의 관심사가 되는 것을 마지막 순간까지 회피하였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킬 기회가 엄청나게 많이 있었지만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세상에 무관심하였다(Festinger et al., 1964, p178). -
마침내 그날 밤 자정이 다가오자 이들은 우주선에 의해 구조받기 위한 준비 상태를 마지막으로 점검하였다. 우주선에 의해 구출되어 지구를 떠나기로 예정된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신도들은 조용한 정적 속에서 그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은 연구자들의 관찰기록이다.
- 신도들은 응접실에서 예정된 구원까지의 마지막 10분을 긴장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코트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두 개의 벽시계만이 째깍째깍 초침을 움직이고 있었다. 두 시계 중에서 다른 시계보다 10분 정도 빠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던 시계가 마침내 자정을 넘기고 12시 3분을 가리키자 신도 중의 한 사람이 자정이 넘었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소리는 아직 자정이 되지 않았다는 다른 신도의 외침에 의해 금방 파묻히고 말았다. 이스트만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오후에 시간을 맞추어 놓았기 때문에 두 시계 중에서 늦게 가는 시계가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 시계는 이제 자정까지 4분을 남겨두고 있었다. 자정이 되기까지의 4분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직 부인만이 자정이 되기 1분 전에 긴장된 날카로운 목소리로 "계획이 잘못되었을 리가 없어!"라고 외쳤을 뿐이었다. 마침내 벽시계는 자정을 알리고 있었고 모두들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자정이 지났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예정된 대홍수는 이제 7시간도 채 남지 않았지만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기로 했던 우주선은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신도들은 포스트라는 이름의 한 남자를 제외하고는 부동자세로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포스트는 침대로 가서 누워 눈을 감았는데 자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신도들은 큰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점차 그들을 에워싸기 시작하였다. 박사와 부인은 그들이 받은 메시지를 몇 번이고 반복하여 확인하고 있었다. 다른 신도들도 안절부절하면서 그들이 지금 당면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를 심사숙고하고 있었다. 새벽 4시가 다가올 무렵, 키이츠 부인이 고통스런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신도들도 거의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제 시계는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예정된 구원의 실패를 설명해주는 어떠한 단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신도들은 점점 공개적으로 구원의 실패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이 종교집단의 최후가 거의 눈앞에 있는 듯 보였다(Festinger et al., 1956). -
신도들의 믿음이 점점 산산조각으로 깨져갈 때, 연구자들은 두 개의 놀라운 사건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 첫 번째 사건은 4시 45분경에 부인의 손이 갑자기 허공을 헤집으면서 하늘로부터의 신성한 메시지를 받아쓰는 것이다. 부인의 손에 의해 신도들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하루 종일 신심으로 기다린 신도들의 신앙에 신이 감동하여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마음을 바꾸었다’는 것이었다. 이 메시지로 그날 밤 예정된 우주선이 도착하지 않은 이유가 충분하게 설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신도 중의 한 사람은 그 메시지를 전해 듣고서는 자신의 코트를 집어 들더니 말없이 떠나버렸다. 그는 그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신도들의 믿음의 수준을 이전처럼 돌려놓기 위해서는 무언가 보충설명이 더 필요했다. 순간, 두 번째의 사건이 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벌어졌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세 사람의 심리학자들의 생생한 표현의 힘을 다시 한번 빌리도록 하자.
- 부인으로부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들은 신도들은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첫 번째 메시지를 받은 지 불과 몇 분 후에 키이츠 부인은 신이 대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두 번째의 메시지를 전달받았으며 그녀는 전화기를 집어들더니 신문사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전화 신호가 울리는 동안 한 신도가 물었다 “부인, 부인이 신문사에 연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요?” 그녀는 즉시 대답했다. “그래요.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이전에는 그들에게 알릴 것이 별로 없었지만, 이제는 달라요. 구원의 사실을 빨리 세상에 알려야 해요.” 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른 신도들도 열심히 전화를 돌려댔다. 신문사, 통신사, 라디오 방송국, 잡지사 등등 이용 가능한 모든 매체를 사용하여 그들은 대홍수가 발생하지 않은 진정한 이유를 세상에 알리려 노력하였다. 대중매체를 회피했던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들은 적극적으로 홍보에 열중하고 있었다(Festinger et al., 1956). -
기자들의 집요한 공세에도 무겁게 입을 다물던 이전의 모습이 180도 전환된 것처럼, 세상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도 완전히 변화되었다. 과거에 세상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했고 그들을 방문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배척하던 모습과는 달리, 단 하루만에, 그들은 이제 적극적으로 그들 종교를 세상 사람들에게 포교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방문한 사람들은 따뜻한 환영을 받았으며 어떠한 질문에도 신도들은 자상하게 답변을 하였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방문자들에게 개종을 권유하였다. 그들이 전도에 얼마나 열성이었는가는 다음날 그들을 방문한 아홉 명의 고등학생과 부인과의 만남에서 엿볼 수 있었다.
학생들이 방문했을 때 부인은 우주인과 전화 중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학생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1시간 이상씩이나 우주인과 전화를 계속하면서도 번갈아 가면서 학생들과 대화를 하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개종시킬 기회를 단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전혀 딴판으로 변해버린 신도들의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불과 몇 시간만에 그들은 신의 가르침에 대하여 폐쇄적이고 과묵하던 모습에서 개방적이고 전도에 열심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도 대홍수의 예언이 실패로 돌아가서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기 십상인 최악의 순간에 말이다.
그들의 변화는 대홍수의 예언이 실패라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져 가던 그날 새벽에 시작되었다. 묘하게도 신도들을 전도에 열중하게 만든 것은 이전 대홍수에 대한 분명한 확신 때문이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만일 우주선과 대홍수의 예언이 잘못되었다면 그들의 신앙 체계 전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키이츠 부인의 응접실에 모인 신도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끔찍한 현실이었다. 그런 현실을 그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들 신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너무도 많은 것들을 희생하였기 때문에 이제 와서 그들의 신앙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수치심, 경제적 손실, 그리고 세상 사람들로부터의 조롱 등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의 말을 빌려도 그들이 얼마나 그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애를 썼는가를 알 수 있다. 세살바기 아이를 둔 한 여자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대홍수가 꼭 올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나는 이제 돈을 다 써버려서 한 푼도 없기 때문이죠. 나는 직장도 버렸고, 컴퓨터 학원도 그만 두었어요. 나는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우주선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4시간 후에 암스트롱 박사가 한 연구자에게 한 말을 또 인용해보자.
“나는 이제 갈 데까지 가야 합니다.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어요. 나는 모든 것을 다 포기했어요. 나는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다 끊었어요. 나는 세상과 완전히 등을 돌렸어요. 의심할 수 없어요.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믿을 수밖에 없어요.”
아침이 다가오면서 암스트롱 박사나 그의 동료 신도들이 겪어야 했던 막다른 골목에서의 처지를 한번 상상해 보라. 그들은 너무도 큰 희생을 치렀기에 종교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 종교의 핵심인 구원의 예언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했다. 우주선도 오지 않았고 우주인이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고 대홍수도 일어나지 않았다.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너무도 또렷하였다. 그들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들을 건져 줄 새로운 증거를 필요로 했다. 물적 증거는 이미 그들 편이 아니었다. 그들은 신앙을 지켜줄 새로운 종류의 증거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바로 ‘사회적 증거’였다.
이제야 비로소 그들이 왜 비밀 결사대의 모습에서 열광적인 '전도사'의 모습으로 갑자기 변신해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변신이 왜 최악의 타이밍인 대홍수의 예언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 분명해진 순간에 이루어졌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세상 사람들의 냉대와 조롱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도에 나선 것은 새로운 신도를 그들 종교집단에 가입시키는 것만이 그들의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었다.
첫댓글 제가 믿고 있는 가치는 과연 옳은가를 의심할 만큼 놀랍습니다.
처음 드는 생각은 교수님께서 지도 교수님이어서 다행이란 믿음은 지속해도 무해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