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계절에 희망함은 시원한 날씨와 풍요로움 그리고 낭만으로의 추억을 쌓아보는 것 아닐까 싶다.
해를 거듭할수록 온대화가 아닌 열대화의 날씨는 그 정도를 더해갈 것이고,
만물의 영장성 생명 본위의 풍요로움들은 인공지능화의 지배하에 더욱더 피폐화되어 갈 것인데,
인간으로서의 누려야 할 낭만과 추억은 생태계 파괴와 더불어 인간 본성의 가치관도 상실한 채 가족관계의 이질성으로부터 온갖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불투명한 삶을 사는 데 주저치 않아 보여 안타깝기만 하다.
홀로 스스로의 삶은 문화와 도덕을 무시한 채 개념 상실 시대의 주역들로 나아가 안주하기에 급급하니 이를 어쩌랴?
기후 기상이변과 생태계 환경들의 급변으로 야기된 현장성 삶의 문화는 받아들이고 지켜 극복해야 하는데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오만 짜증의 불손함들은 궁극적으로 건강을 해치고 삶을 위협하여 인생을 망치게 된다.
계절이 주는 건강한 가을은 감사와 행운이 함께하는 새로운 힘들의 발견으로부터
아프지 않고 근심과 고통이 없는 일상의 행복을 꿈꿔본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주여! 지난여름은 위대했습니다(?)
폭서(暴暑)의 무더위 속에 예상치 못한 힘의 균형을 잃고 고심했었던 올 여름날들은 숱한 고역과 역경들로 점철 소홀함들을 반성해 보는 기회도 안겨주었다.
가을의 길목은 건강함의 시작과 함께 소망해 보아야 하는데….
인류의 주식(主食)은 탄수화물로부터 생성된 음식문화의 발달이다.
농경사회로부터 산업사회에 이르러 다양한 물질의 먹거리들은 과다 영양과잉의 잡식성으로 발달 뇌와 신체조직 구강구조에 이르기까지 친환경적인 요인들을 무시한 채 걷잡을 수 없는 건강 문제로 발생한 사태에 직면 현대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곡식에서 얻는 힘의 원천을 기(氣)라고(气:기운, 힘, 에너지와 米:쌀)한다.
인간이라는 생명의 근본은 음식이지 않은가?
언제 어느 때부터인가 갖가지 동·식물성 소재들이 융합된 이른바 사료(시리얼)들을 먹고 사는 작금의 현실들은 많은 사회적 문제와 우려들을 낳고 있지만 속수무책인 듯하다.
밥보다는 빵을 빵보다는 굶고 눈 비비고 일어나 빈속에 커피를 선호하며 무분별한 인스턴트 식품들을 주구장창 선호하는 이들을 바라보기에 누군가의 탓이전에 그저 측은할 뿐이다.
왜 그리도 불확실한 건강염려들을 자초하며 사는지 모를 일이다.
홀로 사는 시대 핵가족사회의 문화는 가정 가족의 족보 형태마저도 참담한 현실로 진보되어 가고 있다.
내 가족 부모와 형제에 앞서 동반 반려한 대상은 개와 고양이로 대체되었고
혈연 혈통의 계보는 이미 상실된지도 오래고 보면 사촌 간에도 낯가림들은 남남을 방불케 할 뿐만 아니라 부모가 자식들에게 안부 묻는 시대에 이르렀으니 품 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달갑지만은 않을 뿐이다.
무슨 연유에서든 상대적 박탈감에서의 불편함들은 받아들이려는 마음속의 빈곤함으로 지쳐있는 지금의 세대(世代)와 세태들을 개탄해 볼 뿐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구월은 너무도 아름답다.
건강한 신체, 신선한 바람, 문화와 여행, 가을 꽃향기, 풍요로운 먹거리 등 가을이 전해오는 느낌들 속에 책도 읽고 편지도 써보며 한동안 소원(疏遠)했었던 누군가에게 계절의 그리움과 위대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여력(餘力)을 과시해 보며 좋은 추억과 사랑 그리고 새로운 힘이 생성되는 건강한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