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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산악회 계획에 따라 '청량산 입구 → 전망대 → 축융봉 → 청량산성 → 밀성대 → 입석 입구 → 응진전 → 청량사 → 뒷실고개 → 하늘다리 → 장인봉 → 청량산 입구 → 청량산박물관 주차장'의 13.64km를 6시간 30분 동안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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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淸凉山]
높이: 870m
위치: 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은 기암괴석이 봉을 이루며 최고봉인 의상봉을 비롯해 보살봉 금탑봉 연화봉 축융봉 등 12개의 암봉이 옹립해 있고 봉마다 대(臺)가 있으며 자락에는 8개 굴과 4개 약수, 내청량사(유리보전)와 외청량사 (웅진전), 이퇴계 서당인 오산당(청량정사) 등이 있다.
청량산은 우선 산 곳곳에 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이 괴상한 모양의 암봉들과 어우러진 모습이 절경이다. 둥글둥글하게 생긴 암봉들이 여덟 개나 되고 그 암봉들이 품고 있는 동굴만도 열두 개에 이른다. 또 동굴 속에는 총명수 감로수 원효샘 같은 샘들이 솟아나고 있다.
산행의 백미는 의상봉 정상에 올라 낙동강 줄기를 감싸 안은 청량산 줄기가 치맛자락처럼 펼쳐져 있는 모습을 조망하는 것. 정상 남쪽의 축융봉(845m)에서 바라보는 청량산의 전경 또한 일품이다.
청량산 속에는 한때 30개의 사암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내청량사, 외청량사 두 곳이 남아있을 뿐이다.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청량사의 암자로 663년에 세워진 청량산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나다.
외청량(응진전) 못지않게 내청량(청량사)도 수려하다. 응진전에서 20분 거리. 풍수지리학상 청량사는 길지 중의 길지로 꼽힌다. 육육봉(12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다. 청량사는 연꽃의 「수술」 자리.
응진전과 함께 지어진 고찰 청량사에는 진귀한 보물 2개가 남아있다. 공민왕의 친필로 쓴 현판 "유리보전"과 지불.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다. 지불은 종이로 만든 부처. 국내에서는 유일하다. 지금은 금칠했다.
청량사 바로 뒤에는 청량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보살봉이 있다. 원래 이름은 탁필봉이지만, 주세붕 선생이 지형을 보고 봉우리 이름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청량산의 아름다움은 퇴계가 자신의 시조에서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뿐"이라고 읊은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퇴계는 어릴 때부터 청량산에서 글을 읽고 사색을 즐겼으며 말년에도 도산서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이 산을 찾았다.
청량산 주변에는 신라시대 최치원의 유적지로 알려진 고운대와 명필 김생이 서도를 닦던 김생굴, 김생굴 외에도 암릉을 따라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반야굴, 방장굴, 고운굴, 감생굴 등이 들어서 있다.
이 밖에 공민왕이 피란 와서 쌓았다는 청량산성, 최치원과 김생이 바둑두던 난가대 등도 더듬어볼 만한 발자취다.
입석에서 등산로를 따라 30분 정도. 뒤로는 거대한 금탑봉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아래는 아득한 낭떠러지. 바위가 마치 9층으로 이뤄진 금탑 모양을 하고 있다. 층마다 소나무들이 테를 두른 듯 암벽에 뿌리를 내렸다. 절벽 아래로 붉게 타는 단풍이 장관이다. - 한국의 산하
11월 3주 차 산행은 경북 봉화의 청량산으로 가기로 했다. 청량산은 2017년 7월 친구의 초대로 친구의 옛집에서 1박 후 다음 날 술에 취한 상태로 올랐었다. 술에 취해 비몽사몽에다, 당시의 기록이 거의 없어, 어디로 올라, 어디로 하산했는지, 명확하지 않다. 당연히 어느 봉에 올랐는지도. 와중에 얼마 안 되는 기록과 기억을 더듬어 당시를 복기해 보면, 청량교를 들머리로 '금강굴 → 할배할매소나무 → 전망쉼터 → 전망대 → 장인봉 → 선화봉 → 하늘다리 → 자란봉 → 청량사 → 청량정사'를 거쳐 선학정으로 하산했던 거 같다. 맞는다면 청량산의 주요 구간은 다 다녀온 거지만, 건너편이라 할 수 있는 축융봉은 밟지 못했고, 과거의 기억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 기회만 되면 다시 갈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11월 3주 차가 가을철 산불 예방을 위한 입산 금지 기간 내라, 입산을 허용하는 산을 찾다가 청량산을 발견한 건지, 서너 개의 안내산악회에서 청량산행을 상품으로 내놓았다. 딱히 갈만한 산이 있는 것도 아니라, 어디를 갈까 고민하고 있던 중이라 그 산행을 발견하고, 그중 가성비로 승부하는 산악회의 상품을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해서 11월 19일 토요일은 2017년 산행 때 가보지 못한 구간을 포함한 청량산 환 종주를 하기로 했다. 당연히 산행 전 앞선 산꾼의 산행기를 구글링해봤는데, 산악회가 내놓은 상품은, 주요 봉우리와 명소를 포함하는 코스라, 일반적인 산꾼이 하는 환 종주보다는 짧아, 책정한 소요 시간도 6시간이다. 원을 더 크게 그리는 것도 좋겠지만, 첫 방문자에게는 역사적 명소가 포함된 코스가 더 좋을 거다. 하지만, 이미 2017년에 그 명소를 다녀와, 당일 상황을 봐서, 더 큰 원을 그릴 수도 있다.
당일 청량산은 6~8도의 기온에, 바람은 3m/s로 강하고, 종일 흐리다는 기상청 산악날씨의 예보다. 고로 약간 춥지만, 강한 바람이 미세먼지를 날려버려 조망이 좋을 수도 있으나, 구름이 그 조망을 가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쨌든 날씨만 놓고 보면 산행에 좋은 날은 아니나, 이것저것 따지면 1년 중 산에 갈 수 있는 날이 며칠이나 되겠나? 산행 준비는 기존과 다름없다. 다만,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청량산 박물관 주변에 식당이 몇 있으니, 상황을 봐서, 산행을 1시간 이상 단축해, 문을 연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겸해 하산주를 마실까 생각 중이다. 이 또한 늘 그래왔던 거라, 새삼스러울 건 없다. 물론 만약에 대비해 컵라면과 1L 보온병에 뜨거운 물은 넣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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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역에서 산악회 버스가 출발하는 안내산악회라, 양재 출발보다 10분 늦게 기상해 기상 일과를 마치고, 5시 55분경 집을 나서기 위해 등산화를 보니, 깔창이 없다. 지난 가평 화야산행 때 등산화가 젖어[산행기], 깔창을 꺼내 깨끗이 씻고, 등산화를 말리고, 아직 깔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해서 깔창을 깔기 위해 내부를 보니, 바닥에 이물질이 있다. 분명 산에서 깔창을 뺀 적이 없는데, 깔창 밑으로 이물질이 들어가다니, 어떻게 들어갔을까? 걷는 자세에 따라 깔창이 들리는 경우도 생기나? 어떤 자세에서 깔창이 들리나, 추측하며, 바닥을 깨끗이 떨어내고, 깔창을 깔았다. 그리고 집을 나서며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어, 패드를 보며,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옆으로 익숙한 차가 지나간다. 04번 마을버스다. 정류장까지 남은 거리는 20m 정도. 당연히 패드 보는 골 중단하고 10m가량 뛰었으나, 버스는 무시하고 출발한다. 벌써 두 번째다.
떠난 사람과 버스는 연연해하는 게 아니라, 다음 버스를 기다리며 새벽부터 들락거리는 재개발 공사 차량을 구경했다. 이 시간에 공사장으로 오기 위해 몇 시에 집에서 출발했을까? 도저히 나는 못 할 일이라는 둥 이것저것 잡생각을 하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6시 6분에 02번 마을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여기에 마을버스 두 개 번호가 지나는 걸 보면, 교통의 중심지인가? 하긴 불광역에 가는 가장 빠른 길임은 분명하지만. 02번 마을버스를 타고 불광역에 도착해, 6시 12분 오금행 열차를 탔다. 그리고 6시 41분경 신사역에 도착했으나, 너무 이른 시간이다. 역 밖으로 나가봐야 추위에 떠는 거 외에 할 일이 없어, 승차장 의자에 앉아 책을 보다가, 6시 50분경 5번 출구로 나갔다.
5번 출구로 나가며 한때 안내산악회 업계를 호령하던 산악회에서 몇 대의 버스가 출발하나, 궁금해 도로를 바로 확인했다. 한대도 없다. 그나마 이 주 전 다른 소규모 산악회와 연합해 3대의 버스를 출발시켰는데, 오늘은 전무다. 인생무상이자, 산악회무상이다. 자기 차량을 가지고 운영하는 대형 경쟁사와 어떻게 상대하겠나? 그리고 보면, 오늘같이 하는 산악회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최소 두 대는 출발시키는 걸 보면 놀랍다. 정원이 44인으로 조금은 불편한 버스라, 가격으로 승부하나, 잘 나가는 산악회의 거의 반값이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28인승 버스가 대세가 되고 와중에 가격을 올리는 바람에 불만이 많던 산꾼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다. 주인장이 머리를 잘 쓰는 듯. 그래봐야, 오른쪽 끝의 산악회는 11월 19일 계획한 모든 산행지로 버스가 출발하지만, 왼쪽 끝의 가격으로 승부하는 산악회는 청량산 포함 3대만 출발한다.
동행하는 친구를 찾으며, 버스를 기다렸는데, 친구가 먼저 왔다. 당연한가? 어쨌든 버스는 예정한 출발 시각인 7시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버스에서 사용할 물건이 들어 있는 보조 가방을 배낭에서 꺼낸 후 배낭을 짐칸에 넣으려고 보니, 배낭이 삼 층으로 쌓여있다. 44인승 버스 정원을 채웠으니, 객석에는 빈자리가 없어, 대부분 짐칸에 배낭을 넣었기 때문이다. 보조 가방을 들고 버스에 타자, 인솔 대장과 기사가 각각 승객을 확인하는 걸 보니, 기사도 이 산악회와는 자주 같이하는 듯하다. 그런데, 애초 신사에서 타기로 한 승객 2명이 부족하다. 이에 기사가 기다리자고 했으나, 인솔 대장이 바로 출발시켰다. 계획한 시각에서 5분이 지났고, 탑승지를 명시하지 않은 승객이 죽전에서 타는 일이 왕왕 있기 때문이다. 역시 인솔 대장이 맞았다. 죽전에서 나머지 승객이 타, 정원 44명을 꽉 채우고 버스는 봉화를 향해 달려, 8시 48분에 고구려 테마 공원이 있는 충주 천등산 휴게소로 들어갔다.
휴게소에 내려 볼일 보고 나와, 고구려 테마공원에 다시 가 보려고 그쪽으로 향하다가 시계를 보니, 휴식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던 거다. 해서 정신없이 버스로 뛰어가, 출발 예정 2분 전에 버스에 탔는데, 이미 승객 대부분이 자리에 앉아 출발하기만 기다리고 있다. 나는 서둘러 버스에 탔으나, 아직 승객 두 명이 오지 않아 버스는 출발하지 못하고, 결국 예정보다 1분 늦게야 봉화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나눠준 지도를 보며, 이번 산행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한다. 먼저, 지도의 파란 색으로 표시한 환종주는 8시간 코스로, 주어진 6시간 내에 종주가 가능한 산꾼만 시도하라고 했다. 이미 앞선 산꾼의 산행기로 확인한 사실이다. 이어서 산악회 A 코스인 빨간색을 따라 종주하는 것도 여유가 없을 거라며, 손을 들어보라고 해, 당연히 우리 둘은 손을 들었다. 그런데 둘을 포함 10명이 안 된다. 예상외다. 나머지는 2017년 7월 우리가 했던 코스를 거꾸로 하는 B 코스다.
인솔 대장이 코스 설명을 하던 중, B 코스 들머리인 입석에서 먼저 등산객을 내려주고, A 코스 들머리인 청량산 입구에 내려주겠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하차 순서지만, 버스의 진행 방향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데,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내 옆자리 바로 뒤에 앉은 노인네가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뭐라 한다. 요는 서울에서 내려갈 때는 A에서 B로 진행하고, B에서 A는 안동 방향에서 올 때라는 거다. 말하는 걸로 봐서는 이 동네 사람이거나, 청량산에 많이 와본 거 같다. 그리고 일리가 있다. 다른 산악회도 다 같은 A, B 코스다. 와중에 가격이 비싼 산악회는 A 코스 소요 시간이 6시간 30분으로 이 산악회보다 30분이 길다. 해서, 그 앞, 내 옆에 있던 다른 노인네가 인솔 대장을 불러, 상황을 설명했고, 이를 받아들여 인솔 대장이 수정 발표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달린 버스는 10시 37분에 청량산 박물관 주차장에 도착했다.
A 코스 들머리니 내리라고 하는데, 다시 그 노인장이 뭐라고 한다. 버스가 박물관 방향이 아니라, 낙동강을 건너야 했다는 거다. 그래야 A 코스 들머리인 청량산 입구와 B 코스 들머리인 임석에 갈 수 있다고. A 코스야 여기서 시작하면, 200여 미터만 더 가면 되나, B 코스는 입석까지 배달해 줘야 하므로 어쨌든 청량산 입구를 지나야 하니, A 코스 산꾼도 여기가 내릴 게 아니라, 버스를 타고 가자는 얘기다. 맞는 말이다. 분위기로 봐서는 인솔 대장이나 버스 기사는 청량산은 처음인 거 같다. 어쨌든 말싸움하는 게 귀찮아, 인솔 대장의 지시대로 A 코스 산꾼은 버스에서 내렸다. 그 두 노인장도. 그런데 버스에 내리며 보니, 눈에 익은 빨간 버스가 산꾼과 등산객 배달을 끝내고, 주차하고 있다. 응? 빨간 버스 산악회도 청량산행이 있었나? 하긴 알고 있어서도, 이 산악회와 같이 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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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38분 처음 계획한 들머리가 아닌 청량산 박물관 주차장에 정차한 버스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둘러메고 산행을 시작했다. 그나마 인솔 대장이 우왕좌왕했던 게 미안했던지, 마감 시각은 20분을 더한 17시로 공지했다. 고로 산행에 주어진 시간은 다른 산악회와 비슷한 6시간 20분이다. 그리고 우리가 산행을 시작하고 조금 있으니, B 코스 등산객을 태운 버스가 다리를 건넌다. 고로 그냥 앉아 있었다면 다리를 건너는 수고는 하지 않았을 거다. 어쨌든 기존 다리 옆에 낙동강에 다리를 하나 더 짓는 거로 보이는 공사장을 구경하며, 다리를 건너자 사찰의 일주문 같은 거대한 '청량지문(淸凉之門)’이 있다. 2017년에도 있었나? 당시 친구의 시골집에서 전날 폭음한 술이 깨지 않아, 기억이 오락가락한다. 그 문 뒤 왼쪽이 당시에 올랐던 등산로가, 그 문 앞 오른쪽에 오늘 우리가 산행을 시작하는 들머리가 있다.
청량지문 오른쪽 옆에는 주봉인 장인봉이 있는 주 능선과 반대편 축융봉이 있는 능선으로 청량산을 둘로 나누는, 오마도 생태터널이 있는 오마도재에서 시작한 거로 보이는, 계곡이 있고, 이를 가로 가로지르는 다리인 청량교가 있다. 그런데, 그 계곡 이름을 알기 위해 온갖 지도를 다 찾아봤는데, 계곡 명은 없고, 그 옆에 놓인 길에만 '청량산길'이라는 이름이 있을 뿐이다. 청량교로 계곡을 건너가자 정자가 있다. 그 정자 주변에서 스틱을 꺼내 조립하는 등산객 두 명도 보인다. 다리 입구에 있는 이정표에 의하면 이 청량교가 '퇴계사색길' 14.9km의 1코스 시작 지점이다. 정자에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으로 직진은 퇴계사색길로 안동 도산서원까지 달리고, 장인봉의 맞은편 축융봉으로 오르는 길은 오른쪽으로 능선을 향한 급경사 등산로다.
첫 시작부터가 계단인 등산로에 발을 내딛기 전, 등산 앱으로 현 위치의 고도를 확인했다. 219m다. 최고봉인 장인봉의 해발이 870m니, 최소 650m를 올려야 한다. 지난 화야산과 비슷한 산행이 될 거라는 예고다. 동행하는 친구와 보조를 맞추며 급경사 계단을 오르자, 데크 계단이 반겨준다. 그렇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으로 첫 번째 전망대에 도착한 시각이 10시 55분으로 주차장을 떠난 지 17분 만이다. 첫 전망대이기는 하나, 고도가 높지 않아, 시야는 좁으나, 굽이치는 낙동강의 줄기를 볼 수 있어 좋았다. 그걸 사진으로 남기고, 다시 계단으로 위로 오르자, 계단 정상 아래로 이번에는 인간이 만든 데크 전망대다. 당연히 위로, 더 올라왔으니, 보이는 게 더 많다. 아래 전망대에서는 한눈에 볼 수 없었던 낙동강 줄기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그 절경이야, 말로 표현이 안 된다.
오른쪽 옆으로 암봉이 보이는데, 첫 느낌이 최고봉인 장인봉이다. 그런데, 너무 가깝고 낮아 보이는 게 긴가민가하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장인봉이 맞다. 물론 그것도 사진으로 남기고 다시 길을 재촉해, 11시 13분경 그나마 급경사가 끝난 능선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경사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한국의 모든 산이 그렇듯이, 완경사의 등산로에 접어들자 낙엽이 져 앙상하지만, 울창한 숲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해서 그저 앞만 보고 달려, 11시 20분에 이번 산행의 주요 목표 봉우리인 축융봉 정상에서 2km 거리의 이정표를 지났다. 산행 안내소에서 고작 1km 왔다. 숲에 가려 가끔 보이는 왼쪽의 주 능선을 감상하며 가다가 하늘다리를 발견하고 잠깐 멈춰 서서 주 능선을 살펴보며, 지난 2017년 7월 청량산행을 복기했다. 그리고 확인했다. 당시에 주 능선의 주요 봉우리는 다 올랐다는걸. 고로 이번 산행에 다시 갈 필요가 없으나, 정상석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없어, 기록을 위해 최단 코스로 장인봉에 오르기로 했다. 물론 남아도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목적도 있다.
급경사는 아니나, 이어지는 계단으로 계속 전진해, 11시 56분에 축융봉에서 0.7km 위치에 있는 이정표를 통과했다. 안내소로부터 2.3km로, 1시간 18분이 걸렸다. 1km 이정표에서 1.3km 오는 데 고작 36분이 걸렸으니, 처음 1km가 얼마나 힘든 구간인지 방증하고 있다. 건너편 하늘다리를 구경하며, 사진도 찍었으나, 다리가 있는지 구분도 되지 않는다. 역시 한국 산은 전망대가 아닌 곳에서 사진 찍는 건 체력 낭비다. 민둥산이 아니면 다른 나라 산도 마찬가진가? 역시 앞에 축융봉으로 생각되는 봉우리가 보이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라, 사진 찍는 걸 포기했다. 그런데 역시 축융봉이 청량산에서 두 번째 높은 봉우리답게 마지막 깔딱은 쉽지 않다. 반면 가끔 길목에 위험한 바위 전망대도 있어 거기에 올라가 그나마 다리라고, 확인할 수 있는 건너편 하늘 다리 사진을 남겼다.
몇 명의 등산객을 추월하며 축융봉으로 향하며 보니, 나와 같은 산악회로 온 등산객이 아니라, 빨간 버스 산악회다. 그런데, 아는 얼굴이 없다. 해서 산행 후 인솔 대장과 등산객의 별명을 보니, 익숙한 별명이 하나도 없다. 어쨌든 축융봉이 가까워지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정상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거로 보이는 한 쌍이 있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다시 전진해, 12시 13분에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음성으로 알려준다. 축융봉 반경 50m 내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다. 그런데 축융봉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쌍둥이 암봉이 아니라, 정상 직전에서 두 개로 나눠진 암봉이다. 분위기로 봐서, 두 명의 등산객이 점심을 먹고 있던 봉우리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게 정상이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철계단이 있어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계단이 없어도 오를 수는 있으나, 조금 위험해 보이기는 했다. 철계단이 시작하는 곳에 이정표가 있어, 거기에 배낭을 벗어 두고, 핸드폰만 들고 철계단을 올라, 먼저, 좌측의 암봉에 올랐다.
아래에서 정확히 봤다. 좌측 암봉에는 빨간 버스 산악회의 한 쌍이 점심을 먹고, 있고, 건너편 암봉에 정상석과 그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등산객 두 명이 보여,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 후, 좌봉에서 우봉으로 갔다. 정상에 올라서자 입이 딱 벌어진다. 건너편 주 능선의 절경이 아무런 방해 없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론 그 옆을 휘돌아가는 낙동강과 청량사(淸凉寺), 정상 아래 두 채의 집도. 그리고 우리가 올라온 능선의 모습도. 먼저 그 절경을 사진으로 남긴 후 정상석도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출사 나온 작가로 보이는 사람에게 부탁해 같이 온 친구와 인증을 남겼다. 이후 철계단으로 다시 아래로 내려가 이정표 옆에 두었던 배낭을 둘러메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이번에는 배를 채울 컵라면을 먹을 수 있을 만한 식당을 찾아. 그런데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산성 방향인데, 이정표에는 그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어, 일단 ‘오마도터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터널 방향으로 급경사 50여 미터를 내려가자, 축융봉 갈림길로 이정표가 있다. 앞에는 입산을 막는 금줄이 쳐져 있는데, 그 너머로 두 명의 산꾼이 올라가는 게 보인다. 이정표와 그 두 산꾼을 보는 순간 혼란이 왔다. ‘오마도터널’은 청량산 환 종주 원을 크게 그릴 때 축융봉 능선에서 주 능선으로 넘어가는 생태터널이자, 다리다. 고로 우리는 그 방향으로 가면 안 되고, 작은 원을 그리는 산성으로 가야 하는데, 산성에 관한 정보는 이정표에 없다. 해서 일단 금줄을 넘지 않고, 금줄을 따라 임도 수준의 등산로로 내려갔다. 사실 처음 그 길을 보고 임도라 생각해서, 가기를 주저했다. 뒤로 쌍봉처럼 보이는 축융봉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며 임도로 따라가자, 다시 갈림길이 나타났다. 우는 좁은 등산로로 '오마도터널' 방향이라고 이정표가 알려준다. 직진은 임도로, 어떠한 정보도 없다. 해서 일단 우로 방향을 틀어 금줄을 따라 15m가량 올라가자, 삼각점이 있는 지점에서 금줄이 끝나고, 열악하기 그지없는 등산로로 바뀐다. 여기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니라는 판단에, 재빨리 발길을 돌려 임도로 다시 돌아갔다. 임도에서 올라오던 등산객도 돌려세우고.
임도로 돌아와 아래로 50여 미터를 가자 다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직진은 '산성 입구' 우회전은 '공민왕당'이다. 고로 이제야 제대로 길을 가도 있다는 걸 이정표로 알려준다. 정말 있어야 할 곳에는 없던 정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청량산 주 능선이 가까워지니, 그 모습이 더 뚜렷하게 보여, 하늘다리도 바로 구분이 된다. 물론 기록으로 남겼다. 계속 임도를 따라 내려가, 12시 35분에 데크 전망대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전망대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산성을 발견했다. 전망대에는 한 쌍의 등산객이 점심을 먹고 있어, 방해하지 않게 산성만 사진으로 남기고 다시 돌아왔다. 이후 길은 데크 계단과 임도로 번갈아 등장하고, 데크 중간중간 쉼터가 있어, 그중 한곳에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으려 하는데, 저 아래로 너럭바위가 보여, 데크를 버리고 너럭바위로 갔다. 그런데, 너럭바위가 가까워지는 순간 그 실체를 알 수 있었다. 바위가 아니라 산성이다. 그리고, 낙엽이 쌓여 그 실체를 모르고 임도라 생각한 게 사실은 산성이다. 축융봉 바로 아래에서 시작해 산성이 죽 이어지고 있다. 해서 이정표에 산성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었다. 산성에서 산성을 찾을 이유는 없으니.
건너편 산 중턱의 청량사를 기록으로 남기며 데크 계단으로 산성 쪽으로 가며 보니, 우리가 식당으로 생각한 곳이 산성 등산로다. 고로 거기에 주저앉아 컵라면을 먹을 수는 없어, 데크 중간에서 산성으로 내려가, 어쩔 수 없이 경사가 좀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컵라면을 먹었다. 와중에 용기를 잘못 건드려, 물을 한번 엎어 먹어, 다시 뜨거운 물을 붓는 해프닝도 생기고. 그렇게 간단히 점심을 먹고, 모든 흔적을 깨끗이 없앤 후 식당을 떠나, 1시 11분에 밀성대에 도착했다. 그리고 산성은 아래로 계속 이어지는데, 문제는 너무 내려간다. 내려간 만큼 반대편 주 능선을 올라가야 하는데. 밀성대를 떠나, 데크 계단과 산성이 번갈아 등장하는 급경사 등산로를 따라 다시 내려가, 1시 22분에 산성이 끝나는 산성 입구에 도착했다. 데크 계단으로 산성 아래로 내려가자, 포장된 임도로 이정표가 있다. 위에서 봤던 공민왕당 갈림길에서 내려오는 길이다.
돌탑에 돌을 얹기도 하며 바짝 마른 계곡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 1시 27분에 산성 입구에 도착했다. 안동으로 향하는 청량산길이다. 그 입구 조금 위에 주차장을 가진 카페인지, 식당인지 있고, 등산로에 가까운 입구에는 쉼터로 정자가 있다. 그 정자에는 버스가 다리를 건너지 않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것에 분노를 터트렸던, 두 노인장이 쉬고 있었다. 그들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주 능선으로 올라가기 위해 입석을 향해 아래로 내려갔다. 입석으로 내려가는 길목 왼쪽으로 손가락 욕을 하는 듯한 바위를 사진으로 남기려 애를 썼으나, 눈으로 보는 것과 너무 다른 결과물이나, 말 그대로 기록을 위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1시 34분에 '원효대사 구도의 길'이라는 입석 입구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청량사로 올라가는 길이다. 청량사까지 1.3km. 그리고 얼마나 고도를 높여야 하나 궁금해 등산 앱으로 입석의 해발 고도를 확인해 보니, 441m다. 주차장의 216m에 비하면 많이 내려온 건 아니나, 어쨌든 장인봉까지 400m 이상을 올라가야 한다. 이건 꼭 안내산악회의 1일 2산 하는 기분이다. 해서 주 능선은 버릴까도 생각했는데, 17시 즉 5시까지 딱히 할 일이 없어 올라가기로 했다.
1시 34분에 입석을 출발해 청량사로 향하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자, 낙석 위험 지역이라 떨어지는 돌을 막기 위해 설치한 철망이 보이고, 그 사이로 암벽 아래로 일렬로 곳곳에 뚫린 굴이 보인다. 분위기로 봐서는 그 굴속에 들어가 기도를 드리는 사람도 있었던 듯한데. 철책 사이로 핸드폰을 밀어 넣어, 굴을 기록으로 남기며 청량사로 향해 올라가는데, 누군가 장승처럼 얼굴을 새긴 헐벗은 나무가 있어 그것도 사진으로 찍었다. 2017년 내려왔던 길이라, 익숙한 등산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 1시 42분에 응진전 갈림길에 도착했다. 그런데, 응진전과 김생 굴에 갔었는지 기억이 오락가락한다. 비록 안 갔다고 해도, 오늘은 들를 상황이 아니다. ‘여기저기 다 들렸다.’가는 하산주 시간을 만들 수 없다. 현재 많이 늦었다. 동행 산행의 문제다. 해서 응진전과 김생 굴을 포기하고 청량사로 직진해 1시 55분에 청량정사와 2017년 7월 차를 마셨던 찻집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찻집으로 가까이 접근해 보니, 그 옆으로 응진전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고로 당시에 응진전에 갔다면 옆으로 올라갔을 텐데, 전혀 기억이 없는 거로 봐서 응진전과 김생 굴은 당시에도 지나쳤다.
찻집 앞을 지나, 계속 위로 올라가니, 연화봉 밑으로 절집과 석탑이 보이다. 청량사다. 당연히 그 자체 절경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절 입구에 있는 가물어 졸졸 흐르는 샘에서 물을 받아 들이킨 후 경내로 들어갔다. 그런데, 경내로 들어가자 지붕을 씌운 우물이 있다. 비록 좀 전에 물맛을 봤으나, 이 또한 맛을 봐야 해서 가까이 갔다. 그런데 우물이 아니라 절구통 모양의 물통으로 바닥에서는 물이 나올 수가 없다. 고인 물의 출처가 궁금해 유심히 살펴보니, 지붕과 연결된 속이 빈 대나무를 통해 하늘에서 감로수가 내려온다.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옆에 매달려 있는 플라스틱 표주박을 이용해 청량사 감로수는 어떤 맛인지 확인했다. 역시 절간 물맛이 최고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맛이 좋고, 몸에 좋은 약수가 나는 곳을 골라 절을 짓는 듯하다. 그래서, 유명 고승이 건강하게 한반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득도했나? 음, 이러다 한반도 남쪽 산을 돌아다니며 거기 모든 절의 감로수 맛보는 나도 득도?
첫 번째 샘터에서 물을 마시고, 무언가를 두고 온 친구를 기다리며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노닥거리다가 친구가 경내로 들어온 걸 확인하고, 절의 중심인 대웅전을 향해 계단으로 올라가며, 범종각을 사진으로 남겼다. 물론 그 뒤의 암봉도. 그리고 계단 정상에 올라가 보니, 축융봉 방향으로 5층 석탑이 있고, 그 앞에 항마촉지인의 부처가 자리 잡고 있다. 왜 석탑과 그 앞의 부처가 기억에 없을까? 2017년에는 청량사에 들르지 않았나? 당시 다른 친구들이 청량사를 향해 내려갈 때 흥수와 나는 길을 만들면서 더 갔었다. 그 뒤를 이번에 같이 간 미옥이 따라왔고. 당시 청량사를 지나, 찻집으로 바로 내려갔나? 어쨌든 5층 석탑과 그 앞의 부처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데, 친구가 위로 올라와 신발을 벗고 석탑 앞으로 가, 오체투지로 3배를 올린다. 물로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친구를 앞에 석탑에 두고 혼자 절의 중심인 대웅전이 있는 곳으로 가서야, 청량사는 대웅전이 아니라 약사여래를 모시는 유리보전(琉璃寶殿)이 중심이라는 걸 알았다. 전혀 기억에 없는 걸 보면, 역시 2017년에는 청량사에는 들르지 않았다. 평소라면 유리보전으로 달려가 본존불에게 신고 후 기록으로 남겼지만, 유리보전 내 본존불 앞에서 스님이 창생을 위해 독경하고 있는데, 아무리 철면피라도 어떻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겠나, 해서 조용히 본존불에게 신고만 하고 내려왔다. 이후 유리보전 주변을 둘러봤는데, 한국 절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형상의 부처를 발견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통일된 형태의 유적지 안내문이 있어 빠르게 읽어 보니, 보물도 있다. 유리보전의 본존불인 '건칠약사여래좌상(乾漆藥師如來坐像)' 및 '복장유물(腹藏遺物)'이 보물 제1919호고, 지장전의 '목조지장보살삼존상(木造地藏普薩三尊像)'이 보물 제1666호다. 본존불은 스님의 독경을 방해할 수 없어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으나, 당연히 지장전의 세 보살은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나무와 어울린 5층 석탑을 사진으로 남기고, 청량사를 떠나, 끝 모를 계단으로 뒷실고개로 향했다.
청량사를 떠나며 도대체 얼마나 고도를 올려야 하나, 궁금해 현재 고도를 등산 앱으로 확인했다. 584m에 불과했다. 건너편 축융봉 능선에서 본 청량사는 최소 해발 600m 이상으로 보였고, 입석에서 청량사로 꽤 많이 올라온 느낌이라 최소 해발 700m 이상이라 생각했다. 물론 절에서 바라본 위의 고개가 별로 높아 보이지 않은 착시가 준 효과도 있다. 그런데, 해발 584m라니. 결국 고도를 300m 이상 올려야 한다. 그것도 계단으로! 1m당 계단이 5개라고 계산하면, 1,500개 내외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와중에 자소봉으로 오르는 길은 산불 예방 기간이라고 통제 중이다. 물론 통제와 무관하게 의지가 있으면 그 방향으로 가겠지만, 히신주 시간 확보를 위해 최단 코스로 하산해야 한다. 가끔 뒤로 돌아, 축융봉 능선을 감상하며, 헉헉대고 계단을 오르다, 어느 순간 청량사 앞에 있는 금탑봉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의 주인공 라퓨타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얘기야,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 나왔으나, 라퓨타의 모습은 금탑봉을 보고 그린 건가? 주변의 숲에 가린 모습이 더 그럴듯해 보인다.
죽을 둥 살 둥 계단을 힘겹게 올라, 2시 39분에 뒷실고개 정상에 도착했다. 청량사를 2시 13분에 떠났으니, 고갯마루까지 27분이 걸렸다. 거리로는 0.8km에 불과하다. 애석하게도 너무 지쳐 뒷실고개의 고도를 확인하는 걸 깜빡했다. 다만, 오른쪽으로 자소봉으로 향하는 직벽에 가까운 철계단을 보니, 앞으로 높여야 할 고도도 만만치 않다는 걸 감으로 알 수 있었다. 청량산의 명물 하늘 다리까지는 0.3km, 즉 300m만 더 가면 된다. 문제는 그게 봉우리 하나를 올라야 한다는 거지만. 하늘 다리 방향으로 다시 헉헉대며 올라가자,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생각지도 못한 고지라, 등산 앱을 확인해보니, '자란봉'이라고. 하긴 하늘 다리가 두 암봉 사이를 연결한 거니, 무명봉이 아닌 이상 이름이 있는 게 이상할 건 없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자란봉이 하늘 다리의 한쪽 봉우리가 아니다, 다리의 버팀 봉우리는 자란봉 다음 봉우리다. 고로 그 봉우리로 가기 위해서는 철계단으로 내려가서 다시 올라가야 한다. 매번 깨닫는 거지만, 산, 특히 봉우리에서의 0.1km는 평지 1km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2시 47분, 드디어 하늘다리 0.1km 지점의 봉우리에 도착했다. 뒷실고개에서 여기까지 0.2km, 200m를 오는데, 8분이 걸렸다. 물론 그 중간에 자란봉이라는 봉우리도 하나, 있고, 몇 개인지 모를 철계단도 내려가고 올라왔다. 여기서 내려가면 하늘다리라, 지나온 길을 돌아봤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자소봉도. 그리고 왼쪽 아래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다리를 감상하며, 1km 같은 100m를 가, 2시 49분에 하늘다리에 도착했다. 먼저 다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후 다리 좌우의 경치를 감상하며 건너다가, 중간에서 인증도 남겼다. 그런데, 왼쪽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와 둘로 갈라진 쌍둥이 암봉인 축융봉의 모습은 아무리 사진으로 찍어도 눈으로 보는 거와 같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실망했으나, 어쨌든 기록을 위해 계속 사진을 찍었다. 물론 친구의 인증도 찍어준 후 뒤로 돌아 반대편을 보니, 계곡으로 내려가는 철계단이 보인다. 하늘다리가 없던 시절 양쪽 봉우리를 오가기 위해 계단이리라. 2017년에도 그 계단을 보며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다리 중간까지 오는 동안, 무서움을 느끼지 않았는데, 그 계단의 전모가 궁금해, 고개를 내밀어 바닥까지 보고 나니, 갑자기 다리가 떨리기 시작하고, 하늘다리의 조그마한 흔들림에도 공포가 밀려왔다. 해서 거의 뛰다시피 하늘다리를 건넜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밑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공포에 떨며 하늘다리를 건너고 나서, 건너편 암봉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제대로 된 철계단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철계단을 찾았는데, 아예 보이지 않아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하늘다리 위에서 찍은 게 유일한 기록이라, 지금도 철계단을 사용할 수 있는지, 사진을 확대해 봤다. 만약 다시 청량산에 간다면, 저 철계단으로 내려간 후 장인봉으로 올라가 볼까 해서다. 2009년 부산일보 청량산 개념도에는 표기된 등산로가, 최근 지도에는 없는 거로 봐서 폐쇄된 등산로다. 그렇다고 포기할 인간이 아니라 그건 문제가 아니나, ‘관리하지 않은 철계단이 안전하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확대한 사진은 절대 안전하지 않아 보인다. 아차 하는 순간 철계단을 껴안고 추락할 거 같은 분위기다. 더 큰 문제는 봉우리 정상에서 철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다시 잘 보면, 애초 계단이 필요 없는 등산로 같아 보이기도 한다. 평면이 주는 착시인가?
등산로를 확인하기 위해 과거 지도를 찾다가, 이번 산행 최고의 미스터리를 풀었다. 한국의 산하 청량산 소개에는 의상봉에 관한 언급이 있다. 그런데, 지도 어디를 봐도 의상봉이 없어, 축융봉 전의 봉우리가 의상봉이 아닐까 추측했는데, 막상 그 봉우리에 도착해 보니, 어떠한 표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조망처라 했는데, 숲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로, 그 봉우리는 의상봉이 아니다. 그럼 조망이 탁월한 의상봉이 어딜까, 궁금했는데, 과거 지도에는 현재의 장인봉을 의상봉으로 표기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2004년 앞선 산꾼의 산행기를 보면, 정상에 '의상봉'이라 음각한 검정 대리석 정상석이 있다. 그럼, 의상봉에서 장인봉으로 이름을 바꾸고 이에 맞춰 정상석을 교체했다는 건데, 이유가 뭘까? 해서 구글링했다. 예측이 맞았다. 유교적 견지에서 주세붕이 이름을 바꿨지만[기사], 의상봉으로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새삼스럽게 바꾼 이유는? 상황을 보니, ‘퇴계 사색길’이라는 걸 조성하면서 인 거 같다!
하늘다리를 건너자,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음성으로 알려준다. '선학봉'이란다. 물론 정성석 따위는 없다. 뭐 그러려니 하고 다음 봉우리이자, 청량산 최고봉인 의상봉[장인봉]으로 가기 위해 고개로 내려가자, 장인봉 갈림길이다. 이번 산행 날머리로 생각하고 있는 '청량폭포'는 여기서 하산해야 한다. 최고봉인 의상봉은 직진해 올라가면 된다. 하산주 시간으로 보면, 여기서 내려가야 하나,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없어, 아니, 정상에 갔었는지도 기억이 없어, 하산주는 둘째치고 일단 인증을 위해 의상봉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그리고 등산 앱의 지도에 의하면, 의상봉에서 반대쪽으로 내려가도 여기서 내려가는 길과 중간에서 만나는 등산로가 있어, 조금 늦어질 뿐이다. 해서 서둘러 정상을 향해 올라갔는데, 시작부터 철계단이다. 그 철계단을 다 올라가자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아직 정상까지는 멀었다. 그리고 철계단이 아니라, 나무를 땅에 박아서 만든 계단이 정상까지 이어진다. 오늘 원 없이 계단을 오르내린다.
3시 10분 의상봉[장인봉] 정상에 도착해 가장 먼저 정상석 사진을 찍었다. 정상석을 보자, 2017년 청량산에서 찍은 사진 중 그걸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있다는 게 기억났다. 고로 2017년 정상에 올랐고, 인증도 남겨, 굳이 여기까지 올라올 이유가 없었다. 어쨌든 막 도착한 다른 등산객이 인증을 부탁해 서로 인증을 찍었다. 물론 아직 친구가 도착하지 않아서다. 그리고 친구가 도착해 같이 인증을 남기고, 뜨거운 물 한잔 후 하산을 시작했다. 올라올 필요가 없었던 정상이라 했으나, 2017년과 다른 점은 당시는 반대편에서 올라와 절경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뒤로 돌아야 했으나. 지금은 절경을 감상하며 내려가, 언제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와중에 2017년 당시 힘들게 올라와 걸터앉아 낙동강을 조망했던 소나무를 보자 옛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그 모든 걸 기록으로 남기고,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는데, 역시 철계단이다. 전국의 웬만한 산은 다 오르내렸지만, 이렇게 계단이 많은 산은 없었다. 광청종주도 계단이 많은 산행이나, 청량산 환 종주에 대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거다.
저 아래로 보이는 낙동강을 감상하며 철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2017년에 무슨 정신으로 여길 올라왔는지, 궁금했다. 전날 마신 술이 깨지 않아, 비몽사몽 알콜 기운으로 올라오지 않았을까? 중간중간 계단을 뛰어내려가기도 하며, 계단을 다 내려가, 등산 앱이 알려준 등산로가 있는 곳에 도착해 보니, '등산금지'라는 플래카드가 길을 막고 있다. 폐쇄 등산로다! 우리가 2017년에 올라왔던 코스로 내려가면 2.4km를 가야 한다. 현재 시각 3시 28분. 하산주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아, 어쨌든 빠른 길로 내려가야 한다. 해서, 플래카드 뒤를 살펴보니, 산꾼이 다닌 흔적이 있다. 당연히 금줄을 넘어, 산꾼의 인적을 따라 ‘장인봉 갈림길’ 방향으로 갔다. 그런데, 100여 미터를 가자, 그 인적이 위로 올라간다. 내려가도 시간이 부족한데, 위로 올라가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 길을 개척하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에 전혀 인적이 없는 오지에서 길을 개척하며 전진해, 3시 44분에 장인봉 갈림길에서 청량폭포로 내려가는 등산로와 만났다. 고로 16분 동안 관목을 뚫고, 낙엽에 미끄러지며 길을 만들었다.
다른 정규 등산로에 비하면 열악하기 그지없는 등산로이나, 길을 만들며 온 것에 대면 고속도로나 다름없는 등산로를 따라 빠른 속도로 하산을 시작해, 3시 51분에 KBS 인생극장에 나왔던 새미터에 도착했다. 그 다큐를 보며, 꼭 한번은 직접 보고 싶었던 집들이라, 소원 성취했다. 그런데, 현재는 사람이 안 사는 거 같은 분위기다. 그 새미터를 지나자, 다시 계단이고, 마지막 데크 계단은 임도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상 산행은 끝나거나 다름없다. 두들마을을 관통하는 임도를 따라 내려가, 4시 2분에 청량산길에 도착했다. 이제는 주차장까지 빨리 달려 식당을 찾아 들어가면 된다. 그렇게 애를 썼지만, 하산주 시간은 길어야 30분 정도다. 그 길목에 있는 청량폭포를 동영상으로 남기기도 하며, 도로를 따라 내려가, 4시 14분에 산행을 시작했던 청량지문에 도착했다. 청량지문 바로 뒤 오른쪽으로 보이는 계단이 2017년 산행을 시작했던 들머리다.
3
산행이 끝나고, 트랙을 살펴보니, 환 종주로 그린 그림이 작은 종이배를 닮았다. 그리고 고도표를 보면, 뾰족한 두 봉우리만 보이는 게 전형적인 1일 2산 모양이다. 종이배에 대단히 만족하며, 청량지문을 지나, 다리를 건너는데 저 앞에 흰 버스가 서 있고, 그 주변에 등산객이 서성이는 게 보인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아닌가 생각된다. 마감인 17시, 즉 오후 5시까지는 아직 40분이 넘게 남았는데, 저기서 기다리는 이유가 궁금했으나, 괜히 말을 붙였다가는, 하산주 시간만 줄어들 거 같아, 무시하고 식당가로 들어갔다. 그런데 첫 번째 식당부터 문을 안 열었다. 낭패다. 해서 문을 열었을 만한, 식당을 빠르게 스캔하며, 버스에서 멀어지는 주차장 방향으로 가는데, '영업 중'이라는 팻말을 내건 식당이 있다. 그리고 외부 테이블에는 식사가 끝난, 빈 그릇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볼 것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너덧 테이블에 손님이 앉아 음식을 먹거나,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를 보니, 몇 가지가 있는데, 남은 시간이 길지 않아,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더덕구이 정식을 주문했다. 하산주로는 동동주를. 그리고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화장실에서 씻고 나와 먼저 나온 동동주를 맛봤다. 그런데 술을 마시기 위해 고개를 젖히며 힐끗 본 벽시계는 4시 43분이다. 깜짝 놀라, 내 시계를 보니, 4시 28분이다. 벽시계가 15분 빠르다. 식당 시계 안 맞는 거야, 한두 번 본 게 아니라, 무시하고, 주문한 더덕구이 정식이 나와 동동주 반주로 늦은 점심? 이른 저녁을 먹었다. 그 식당 안의 대부분 손님이 빨간 버스 산악회 승객들이라, 이번 산행에 관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 마감 시각이 가까워져 오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한다. 그중 한 손님이 주인장에게 시계가 빠른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답이 놀랍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승객이 버스를 놓치는 일이 자주 발생해, 부러 15분 빠르게 했다고. 추가로 여기는 오지 중의 오지라 대중교통이 불편해 산악회 버스를 놓치면 답이 없다고 했다.
빨간 버스 승객이 다 나간 후에도 계속 시계를 주시하며, 남은 음식을 먹는 동안, 이번 산행을 결산했다. 먼저, 관목을 뚫고, 낙엽에 미끄러지며 길을 개척하는 동안 청량산신이 친구의 선글라스와 보온병을 가져간 걸 나중에 알았다. 오지 산행에서야 늘 당하는 일이라, 별로 놀랍지도 않은 기부다. 그 외 산행과 조망에 관해서는 둘 다, 감탄을 금치 못한 대단히 만족한 산이다. 그리고 남은 음식을 싹싹 쓸어 먹고, 마감 7분 전인 5시 53분경 식당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다리 앞에 서 있던 흰 버스는 우리 차가 아니라는 거다. 그 말을 믿고 주차장으로 가보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버스를 향해 가며 보니, 여기저기 식당에서 흰 버스, 빨간 버스 승객이 쏟아져 나온다. 그들과 함께 버스로 가, 자리를 잡고 앉자, 차가 바로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공지된 마감 시각보다 1분 빨랐나?
버스 전용 차선 시간이 끝나기 전에 출발지에 도착하기 위해 달린 버스는 생각보다 이른 시각인 7시 15분에 여주 휴게소로 들어갔다. 동동주를 마시며, 화장실이 급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술을 적게 마셨나? 의외로 이상이 없었다. 그래도 남은 구간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을 다녀와서 보니, 두 명을 제외하고 이미 모든 승객이 자리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정말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두 명의 승객이 늦는 바람에 예정보다 5분가량 늦게 다시 서울을 향해 출발해, 8시 25분에 아침에 출발했던 신사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절묘한 타이밍으로 다른 산행지에서 복귀한 버스도 같은 시간에 도착했다. 그거야 흔히 보는 장면인데, 그 버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번에 같이 한 산악회 소속 버스다. 버스를 보유한 산악회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가격으로 승부할 수 있는 거다.
버스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둘러메고 역으로 내려가 집으로 향하는 거로 이번 청량산행을 최종 마감했다. 물론 집에 도착해 산행 중 흘린 땀과 관목을 뚫고 다니느라 묻은 이물질을 깨끗이 씻은 후, 김치찜 안주로 하산주 2차와 늦은 저녁? 저녁 2차도 했다.
안내산악회 계획과 달리 단축 코스인 ' 청량산박물관 주차장 → 청량산 입구 → 전망대 → 축융봉 → 청량산성 → 밀성대 → 입석 입구 → 청량사 → 뒷실고개 → 하늘다리 → 장인봉 → 폐쇄등산로 → 새미터 → 두들마을 → 청량폭포 → 청량산 입구 → 주차장'의 12.75km를 5시간 47분 동안 계단으로 다녔다. 이동 5시간 32분, 휴식 15분!
흐릴 거라는 예보와는 달리, 시야가 좋아, 청량산 주 능선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최소 한 번은 주 능선 맞은편의 축융봉에서 주 능선을 감상해야, 청량산의 참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환 종주가 두 산을 이어 오른 것과 같아, 생각보다 아주 힘들었는지, 오랜만에 종아리에 알이 배였다. 계단이 많아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