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물화 그리기 / 김유신
우리 교실은 1층 교무실과 교장실 바로 옆에 있는 4학년 1반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앉아 계신 선생님 옆모습이 보인다. 교탁을 지나 칠판 옆에 있던 선생님 책상이 어느새 우리가 출입하는 뒷문을 열면 마주 보이는 창가로 옮겨져 있다. 파랑과 분홍색 도화지를 세로로 길게 접어 하트 모양으로 자르고 계시는 선생님 어깨 위로 내려앉은 아침 햇살이 파란 셔츠에 소복이 쌓인 걸 보니 꽤 오랫동안 그 작업을 하고 계셨나 보다.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 선생님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평소보다 더 가깝게 보인다.
받아쓰기 시험에서 90점이나 100점을 맞으면 파란 하트를 하나 주신다. 열 개를 모아 분홍색 한 개와 바꾸고 또 그것이 세 개나 다섯 개가 되면 공책이나 연필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선생님 앞에 줄을 서서 교환해 가는 의기양양한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며 가방에 모아 둔 것을 꺼내 아무리 여러 번 세어 봐도 나는 세 개를 더 모아야 한다. 혹시나 가방 주머니 구석에서 하나라도 더 나올까 봐 뒤집어 털어도 헛수고라는 걸 깨닫고 오늘은 90점을 넘기려는 각오로 국어책을 펼쳐 든다.
그런데 받아쓰기를 건너뛰고 정물화를 그린다고 한다. 미술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교탁에 꽃병이나 공이 놓이겠거니 했는데 전에 가르쳤던 학생들 작품 중에 보관하고 있던 훌륭한 그림들을 보여 주고 칠판 아래 분필 놓는 곳에 나란히 펼쳐 놓는다. 모두 한쪽 신발을 그렸는데 사진처럼 정교해 감탄이 나오고, 시험을 안 봐 시무룩해진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우리도 복도에 있는 신발장에서 각자 자기 것을 한 짝씩 들고 와 책상에 놓고 골똘히 관찰한다.
내 신발은 발등을 가로지르는 연초록과 흰색 끈이 번갈아 세 개가 있고, 그 중간을 묶어 리본처럼 보이게 한 샌들이다. 평면인 종이 위에 신발 안쪽을 휘감아 바깥쪽으로 흐르는 끈의 입체적인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지 한참을 바라보다가 앞으로 나가 전시된 것을 몇 번이나 살펴본 뒤에 밑그림을 그렸다. 같은 색을 내려고 초록과 흰색 물감을 섞어 비슷한 색이 나올 때까지 농도를 맞춰 붓질하고 바늘땀까지 칠하고 나니 제법 만족스러웠다.
칭찬받은 기억은 없지만 그림을 돌려받지 못한 걸 보면 아마도 선생님의 다른 제자들에게 보이지 않았을까 기대해 본다. 그날부터 내 신이 참 예뻐 보여 소중히 다루었다. 어린 시절 신었던 것 중에 그것만 유독 선명하게 기억나는 게 정말 신기하다.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했던 인자하신 선생님은 어린 우리에게 자칫 사소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아름답게 대하는 방법을 그렇게 알려 주신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