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평신도선교사훈련원 제1기생(2014, 2, 22)
북한평신도선교사훈련원제2기생(2015, 1, 17)
‘5일
만나’(Manna
for five days) (688)
북한복음화의 평신도선교사훈련 사역(북한이탈주민사랑협의회)……(21)
이민복선교사가 이른 아침에 전화가 와서 하는 말이 ‘남양주풍선기지’를 임대자가 사용하겠다며 이사를 가라는데 류선교사님!
도와 주시면 좋겠다는 요지였다.
한 평생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선교사생활 20년에 지금도 모스크바에서 추방당해
인천대은교회 8층 게스트
룸에서 신세를 지고 있던 중이라 담당교회도 없고 그렇다고 땅 한 평 집 한 칸 없는 ‘부머’의 처지라 기도하며 방법을 강구해
보았다.
문득
강화 이춘수목사가 생각났다. 이목사는 강화토박이며 인맥도 있고 풍선사역에
동참해서 이해가 있었던 터라 전화를 걸어 사유를 알렸더니 뜻밖에 긍정적인 사인을 받았다. 강화제일교회가 장애인 사역을 위해 도서
매립지 3,000평을
군에서 임대 받아 장애인 시설로 일부만 사용하고 있으니 가능하다는 답을 듣고 즉시 이민복선교사에게 연락하여 함께 강화로 달려가 이목사의 설명을
듣고 합의가 이루어졌다. 강화 남쪽 초지 대교가 놓인 인근에 작은 섬과 강화 큰 섬을 연결하기 위해 매립한 농지로 사용하는
적지다. 몇 차례 가서
보고서 결정을 하였었는데, 갑자기 임대지라 또 다시 주인의 의해 가라면 또 헛수고만 하고 나와야 하기 때문에 작으나 자기 소유지를 마련하여
이전하겠다며 난색을 표하여 무산되고 말았다.
땅 한
평 없이 살다가 러시아에서의 넓은 땅에 애착을 느꼈던 선교지 생활에서 자체토지와 건물도 있어서 자유롭던 과거를 회상하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넓은 땅이 소유임대지가 나의 마음을 이끌었다.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다가
대성공사에 근무하던 김종대장로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김장로도
퇴직을 앞에 두고 퇴직 후에 계획을 하고 있었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함께 강화 현지를 돌아보고 남북통일 후에 북한선교를 위한 단체를 구성하게
됐다.
Ⅰ.
‘한북사협’
발기인회 모이다.
이춘수목사, 김종대장로, 류지열선교사가 강화제일교회에서 몇 차례 모여서 사업을 북한에서 남항으로 들어온 이탈주민들을 ‘통일 후에 북한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사업의 목표’로 정하고 2010년 3월 26일 발기인 회에서 공식 기구인 ‘북사협 발기인 회’로 합의하고 모스크바에서부터 이 사역에 뜻을 두고
있었던 차라 본격적인 북한이탈주민들 사역에 들어갔다.
Ⅱ.
‘한국기독교북한이탈주민사랑협의회’
창립총회
2010년
6월
15일 강화제일교회에서 창립총회로 모였다. 강화서지방 이상도감리사와 강화지역 기독교연합회임원들와
이수영강화군수를 모시고 성대하게 창립총회를 마치고 총회에서 임원을 선택하였다.
대표회장: 김종대장로
이 사 장: 이춘수목사
상임이사: 류지열선교사
법인이사: 백근기목사, 홍경유목사, 이용운목사, 이태만장로
법적
등록 절차를 대표회장에게 맡기고 우리들은 기도로 후원하면서 회원확보에
매진했다.
Ⅲ.
통일부 제285호 사단법인 승인 감사예배
몇 달이
지난 2011년 5월 30일 사단법인 통일부
제285호로
‘한국기독교북한이탈주민사랑협의회’란 ‘NGO’ 단체로 국가의 승인을 받아 본격적인 활동에
임했다.
우선
홍보를 겸하여 본부 선교국총무대행 태동화목사, 이민복씨 간증과
탈북찬양단의 공연을 관람하면서 은혜로운 감사예배를 드렸다,
1부 예배 백근기목사
사회
일시: 2011년 8울 27일
장소: 부평중부교회(이정일목사 시무)
설교: 전명구감독(중부연회 인천대은교회)
2부 행사:
이태만이사 사회
축사: 서형선목사, 태동화목사
축하공연: 탈북동포찬양단
모든
순서가 끝나고 중부교회에서 제공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됐다.
Ⅳ.
‘한북사협’의 중점 사업
북한
행정구역 1개 특별시, 3개 직할시, 25개 시, 147개 군으로, 176개 군 단위
이상에 1사람씩
평신도선교사를 양성해서 통일 후에 보내는 목표를 세우고
2011년
7월
2일부터 부평에 소재한 김종대회장의 사무실에 복음자리를 잡고 류지열상임이사가
이윤희행장담당, 김수연재정담당을 맡아 사무를 시작했다.
막 젖을 뗀 아기를 딸린 이탈주민 이윤희나 김수연 김종대 딸이 행정이 처음이라
서투른 나의 행정과 컴퓨터로 하나부터 가르치며 아기를 업고 나오는 엄마의 편의를 보아주려니 행정의 대부분이 나의 손을
기다렸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서면 교산리 313번지
매립지 3000평의 초지
농장을 영농훈련 및 특수작물 재배 기술을 가르치려고 시작은 했으나 거리가 멀고 일손이 부족하여 직접 차를 몰고 다니며
2년 간 농작물을
경작하려니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Ⅴ.
‘한북사협’은 초기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김종대대표회장은 본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열방엘림선교회’를 조직하여 부평사무실에서 단체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었으며 천안에 버섯농장을 경영하고 있어서 계속 그곳에 힘을 써야
되겠기에 양분된 사역을 해야만 했다. 기술의 부족과 재배기술자의 여건이 원활하지 못해 수확이 적어 적자를 면키 어려우나 천직으로 알아 애착을 느끼며 협회
이사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사업을 추진하여 수입은 고사하고 많은 재정적인 부담을 하면서 ‘한북사협’ 단체 등록 시 보증금 5,000만원을
홍경유목사에게서 1개월
기한으로 차용하고 한 달 후에 자신이 경영하는 ‘열방엘림선교회’가 경영하는 버섯농장 대금으로 인출하여 사용하면서 초기부터 문제가 생겨 불협화음이 일어나
‘한북사협’의 사업을 하지 못하고 공전하여 매주주중에 상근을 하지만 허송세월하며 금쪽같은 시간만
흘러갔다.
Ⅵ.
영등포시대를 열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다.
몇 번의
이사회를 거치면서 사태 수습을 하여 2011년 12월 4일 사무실을 서울시 영등포구 영중로 65-4
OK빌딩으로 이전하고도
2년간의 준비기간을 지내고 2013년 10월 24일 제2대 류지열이사장으로 선임되고 북한평신도선교사를 훈련시킬
당초목표 대로 훈련생 모집에 들어갔다.
1. 모집 대상: 남북통일 후 고향으로 들어 갈 북한
이탈주민
2. 모집 자격:
20세 이상
60세까지의 남,
여
3. 모집 인원:
30명
4. 특별 혜택:
장학금 월
3만원
제1기생 30명을 2014년 2월 22일에 영등포침례교회의 협조로
무료로 5층 교육관에서
강의 실시 하면서.
제2기생 30명을 2015년 1월 17일에 같은 장소에서 둘 째 주
토요일 10:00-13:00교육을 지금은 각기 45명씩 90명을 실시하고 있다.
Ⅴ.
단체명을 ‘북한이탈주민사랑협
의회’로 개명한 이유
북한훈련생들을 모집하여 매월 교육을 하면서 그들의 점차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최초
목표인 174명을
확대할 의욕이 생겨 후원자들을 모집하면서
제2기생을 모집했다.
교회에 협조를 의뢰하고, 국가기관(서울시, 영등포구, 동작구)에 보조를 신청하여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으나 예비심사에서 탈락하여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종교계통에는 국가 보조가 안 된다는
조건부였다.
회원들의 중지를 모아 2013, 12, 24
총회에서 ‘한국기독교’를 삭제하기로
결의하고 2015년 초에
재차 보
조 신청을 하였으나 역시 탈락돼 북한평신도선교사는 기도하는 성도들의 정성으로 하라시는
뜻으로 받아
드렸다.
그러나
당초계획인 174명은 재정상 어려워서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으니 불원
하나님의 감동하신 뜻은 이루어져, 비록 지금은 나비의 날개 짓에 불과하지만 통일 후에는 고향에 돌아가 폭풍을 일으킬 것을 확신하며 정성을
쏟는다.
Ⅵ.
곧 닥쳐오는 남북통일의 준비 두 날개운동
독일
나치 과거사를 반성하고 민주주의와 관용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
양심의 수호자’ 리하르트 폰 바이즈제커
대통령의 '준비 안된 통일은 재앙’이 될 수 있어도 “준비된 통일은 축복이다”는 명언과
같이, 곧 닥쳐오는
남북통일을 눈 앞에 두고 한국의 6만 목회자님과 1천만
성도님들에게 남북통일과 북한복음화를 위하여 ‘두 날개운동’을
호소합니다.
첫째,
통일을
위하여 교회마다 대 예배 대표기도로부터 뜨거운 기도운동이 다시 불이 붙여야 합니다.
둘째,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보내 주신 사람들인 3만
명에 달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무신론과
공산주의
사상으로 다져진 개인주의에 인성을 말씀으로 변화된 이웃사랑의 이타주의자들로 개조하는 평신도 지도자들 신앙훈련이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롤 모델 바울 사도 동족사랑의 지극한 심정,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9: 3) 를
본 받아 선교지에서 러시아현지인 구원
과 탈북자 사역의 두 기둥이 23년이 된 지금까지 이어져 부르실 때까지 할 사역이다.
동, 서독 통일의 선구자인 독일 통일에서
동독 출신의 여성 최초이자 독일 전후 역사상 최연소 총리로
선
출돼 재정, 가족, 보건복지 등 여러 분야의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며 세계금융 위기 속에서도 독일
경
제
안정에 기여하고 있는 동독
목사의 딸 앙켈라 메르켈의 지도력을 모델로 삼아 훈련으로 변화된 이들
은 통일 후 고향에 돌아가 교회와 사회의 각계,
각층에서 지도자로 역할을 하여 2천4백만 북한주민들을
변화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 사역이야 말로 북한복음화의 지름
길입니다.
l
초기 통일부의 등록 시 거금을 헌납한 홍경유목사,
5년 간 무 보수로 매주 상근한 필자의 헌신이 밑거름이 있었고 함께 하신 이사님들과 많은 회원들의 헌신적인 협조의
합작품이다
2016,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