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아침, 한 아이가 성당의 말구유 속에 모셔진 예수님 형상을 세발자전거에 싣고 마당 안을 내닫고 있었다.
이 광경에 놀란 신부가 달려가 아이를 붙잡고 예수님의 형상을 거두어 오려고 했다.
그러자 아이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무어라고 신부에게 말했다.
신부는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왜 빈손으로 오느냐고 묻자 신부가 말했다.
"자기에게 자전거를 주면 아기 예수님을 첫 손님으로 태워주겠다고 하느님께 약속했다는군요.
어젯밤, 성탄절 선물로 부모님에게서 자전거를 받고 지금 그 약속을 지키는 중이랍니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약속 위반을 하고 사는지 세어본 적이 있습니까?
또 그 많은 약속 위반에 대해 당신은 얼마만큼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요?
-'행복을 나르는 배달부'중에서-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16-23)
살면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듣고 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인내와 침묵이 함께하지 않는 말은 언제나 서로를 아프게 합니다.
주님의 말씀도 매순간 믿음을 중심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주신 우리의 평화 또한 너무나 쉽게 깨뜨려지는 현실입니다.
하느님 말씀과 삶의 연결 부위는 수많은 걱정처럼 언제나 약하고 부실합니다.
걱정해야 할 것은 나약한 믿음뿐입니다.
걱정해야 할 것은 걱정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아야 할 것을 걱정하는 어리석은 삶입니다.
하느님의 영은 인내의 영으로 알맞은 때를 택하여 당신 말씀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며 위로하실 것입니다.
온전한 열매는 참고 견디는 인내 없이 맺어질 수는 없습니다.
매순간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 말씀은 바로 우리에게 인내를 일깨워줍니다.
인내 없는 지혜 또한 믿음이라는 중심에 뿌리를 내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하느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무엇보다 하느님 말씀을 나누는 하루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