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스럽게 쓴 만화책 리뷰가 있어서 머리좀 식히시라고 올려봅니다.
카페의 성격에 맞지 안는다면 삭제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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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만화책은 왠지 친근하고 손이 가는 '거의 유일한' 책이다.
본인의 경우는 책읽기 자체를 좋아해서 만화책뿐 아니라 다른 책들도 섭렵하려는 편이지만,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책으로는 만화책이 딱인 것 같다. 단순히 시간 때우기용으로 훌훌 넘겨보는 것도 있지만, 나름대로의 미학과 철학을 담은 수준
있는 작품들도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그저 '가볍기만 한' 책으로만 봐서는 안될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만화책에 노출이 잘 되어 있는 환경(?)에서 자라서 대여점을 매우 자주 이용했다.
적고 나니 부끄럽긴 하지만, 보고 싶은 모든 만화책을 다 사서 보기엔 우리집 사정도 그렇고 내 마음도 그렇게까지 간절하지
않아서 대여점을 이용하는 게 최선이었다. 덕분에 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잔혹하기 그지 없다는 평까지 받는(!) <소년탐정 김전일>을 읽기 시작해, 지금까지 전권 돌려읽기 7번 정도를 완료한 상태다.
어디나 있는 만화 대여점 덕분에 즐겨 보는 만화도 생겼고, 무심코 집어든 만화에 꽂히게 된 적도 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거의 가 보지도 않았던 '꿈이 있는 마을(만화책 대여점)'이 왠지 땡겨서, 들르게 되었다.
혹시나 연체료가 있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그건 기우였다. 다행히도.
요즘에는 정해 놓고 만화책을 보지 않아서, 어떤 게 나와 있는지 연재되고 있는 건 어디까지 나왔는지 이런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이럴 경우에는 만화책을 빌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전에 봤던 거라도 시리즈로 나온 걸 싹 훑는 법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새로운 작품, 그 중에서도 단편을 공략하는 것이다. 연재물도 좋긴 하지만 지속성이 있기 때문에 다음 편을 기다리게 되는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추천하고 싶진 않다. 여튼 난 심사숙고한 끝에 어제 다섯 개의 만화책을 골랐다.
캠퍼스 _ 톰톰
연재물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해 놓고 제일 먼저 고른 게 <캠퍼스>였다.
비슷한 분위기가 나는 <푸르츠>라는 만화가 독립성을 띠고 있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깨닫고는, 당연히 <캠퍼스>도 그럴 줄 알고 빌렸건만 연재였다. 휴. 그래도 따라가는 데 큰 무리가 있진 않았다. 호사, 석주, 소호, 비아, 가언, 진우 등 여대생들이 주인공이었는데 첫 장에서 짧은 머리인 비아를 보고 남자인 줄 알았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데, 주인공 면면에서 나와 비슷한 점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제일 흥미로운 캐릭터는 호사와 석주. 이름이 왠지 '호사'스러울 것 같아 거부감이 든다고? 전혀. 풀네임은 '변호사'다.
엘리트적인 느낌이 팍팍 묻어나오지 않은가?
이 여인네는 <캠퍼스> 내에서 유일하게 남친이 있으며, 늘 A를 놓치지 않는 우등생에, 상상하지 못할 만한 과거를 지닌 특이
캐릭터다. 과거가 뭔지 알고 싶다면 <캠퍼스> 2권을 펼쳐 보면 된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 모습을 연상케 하는 '석주'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다. 바로 '동인녀'이기 때문.
지금은 어디 나가서 동인녀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취향을 지니게 됐지만, 아직 불씨는 지니고 있는 내게 강한 임팩트를 선사한 캐릭터다. 역사서에서 동인의 흔적을 발견하고, 심지어 동인남 박하와 짝짜꿍하기도 한다.
만화라 어느 정도 과장된 면이 있긴 하지만, 맘에 드는 사람은 일단 엮고 보았던 지난날의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왠지 옛 생각이 나게끔 만드는 캐릭터랄까.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캠퍼스>는 꽤 재미있고 유쾌한 만화다.
특히 대학생이라는 계층에 있는 내게는 곧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더 흥미롭게 봤다.
여고vs여대 비교해 놓은 에피소드도 재밌었고, 만년 고질병인 지각에 대한 이야기, 후덜덜하게 다가왔던 성적 수정 이야기
까지- 전체적으로 상큼발랄한 분위기이고 쓸데 없이 폼 잡지 않아 참 마음에 드는 만화다.
순애보2 - boy's love
의도하진 않았는데 빌린 BL물이 있었다.
바로 <순애보2>. 전에 <순애보>를 보고 나서 굉장히 좋았던 기억이 나서 2편이 나왔구나, 생각해서 빌렸는데 무려 BL물.
아참! 여기서 BL물은 Boy Love 즉, 남-남 커플 이야기를 말한다. 커플링 엮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만화로 보는 건 <절정>
이후로 처음이었다. 게다가 일곱 명의 작가 각자의 취향과 매력이 묻어나는 것이라서 좀 더 기대가 됐다.
우선 목차부터 살펴볼까?
심혜진의 <달밤은 위험천만!>, 나예리의 <Get Real>, 이현숙의 <끝없는 밤에 태어나다>, 강혜진의 <jardin de chouette 올빼미의 정원>, 이시영의 <그러나…>, 신유하의 <Lunch>, 임주연의 <SANCTUARY 성역>이 순서대로 나와 있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건 <Get Real>과 <그러나…>. 그럼 인상적이었던 작품부터 훑어보도록 하겠다.
Get Real _ 나예리
<Get Real>은 나예리의 작품이었는데- 그래도 저 중에서는 내가 한 번쯤 들었을 만한 이름이었다.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인지 좀 봤다 싶은 사람에게는 식상할 수도 있는 소재?
조금 철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속이 깊은, 하지만 조금 덜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연하공.
보다 현실적이라서 머뭇거리기도 하고 헤쳐 나가야 할 게 많은, 공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연상수.
거기에 연상수가 과거에 많이 좋아했던 첫사랑이 나타나는 상황! 이 얼마나 진부한가! .....라면서도 열심히 봤다.
전에 남쫑 커플에서도 다루었던 내용이라 비교도 해 가면서.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하지만, 잠깐 동안 느꼈던 긴장감은
썩 괜찮았다. BL물에서 나오는 대사가 비교적 유치하긴 하지만-분명 멋진 말인데 자주 써먹어서 신선도를 잃었다고나 할까- 마음에 드는 구절도 있었다.
'근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열리지 않는 것이 몸인지 마음인지.'
'이깟 눈보다 겨울보다 니가 훨씬 더- 더- 차가워! 니 속은 도대체 뭘로 만들어진 거야!'
덜 사랑하는 자가 겪는 고질적인 슬픔이랄까. '시간이 지날수록 널 더 좋아하게 되는데 넌 왜!'라고 부르짖는 준영을 보면서 나도 조금은, 마음이 쓰렸다. 왜 사랑은 둘이 하면서, 그 정도는 자꾸 다르게 흘러가는 걸까. 느끼는 바가 많아서 기억에 남았다.
<그러나....>는 일제강점기 시기에 문인으로 활동했던 하루키(조선인이지만 일본 이름을 썼음)와 게이샤 취급하지 말라고 했지만 꼭 게이샤 같았던 후유키의 이야기였다. 색기가 넘쳐 여자고 남자고 후리고 다니는 건 오히려 공 쪽인 후유키였지만, 점잖음 뒤에 후유키와 그렇고 그런 관계를 만들어 낸 은근한 '사고뭉치' 하루키에 더 눈길이 갔다. 근데 잘 풀리진 않는다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 시기라는 특별한 배경이 있어서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캐릭터의 생김새가 눈에 확 띄는 것도 특징.
늑대인간이라 본능적으로 솟아나는 욕구(!)를 주체할 수 없는 사내의 이야기를 그린 <달빛은 위험천만!>도 첫작으로 하기에 적절할 만큼 괜찮았다. 재미도 있고. <끝없는 밤에 태어나다>는 그림체가 마음에 들었지만, 좀 잔인하기도 하고 내가 참으로 싫어하는 근친상간.. 그것도 일방적으로 당하는 이야기여서 좀 거북했다. 그래도 이런 쪽에 관대한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은 변하는가 보다. <올빼미의 정원>을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중세풍 이야기였는데다가 뭘 말하고자 했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패스. <Lunch>는 일본냄새가 몹시 진하게 풍겨오는 특유의 그림체와 엄청나게 동인지적인 스토리라인, 구성 등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지나치게 동인지스러워서 만화 같은 느낌이 덜했다. 마지막 편인 <SANCTUARY 성역>도 지루하고 별로 재미 없었다. 제목은 딱 BL물스러웠는데. 그나저나 고의가 아닌데도 이런 만화책을 서슴없이 빌리게 되다니, 역시 난 아직도 이런 류의 취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양한 걸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분명 좋은 거니까, 만족!
좋은 사람 _ 백정원
만화책을 보다 보면 가끔씩 봤던 걸 또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좋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단편집을 본 건 아니었고, 수록작 중 하나를 <순애보>에서 본 것 같았다. 표제작인 <좋은 사람>을 포함해 <이그니스>, <벽화루>까지 고르게 재미있었다. 가장 좋았던 건 역시 <좋은 사람>.
흔하디 흔한 삼각관계를 다룬 거였는데도, 삼각관계에 휘말린 여자주인공이 어느 한 쪽을 배신하고 변절하게 되는 결말이 아니어서 마음에 들었다. 절친한 친구 명하의 여자친구인 은수를 좋아하게 되어버린 강우는 혼란을 겪지만, 조금은 뒷맛이 씁쓸한 새드엔딩. 그래도 난 이게 해피엔딩이라고 믿고 있다. 본래 서로 좋아했던 이들을 가르는 것엔 단연코 반대기 때문에. 하지만 강우도 외모가 굉장해서 좀 흔들렸다 허헛.
<이그니스>는 노 코멘트. 재미가 있지도 없지도 않고 밍밍하고 뭐 그닥이기 때문에. 난 모든 작품에 관대하지만은 않다^*^
<벽화루>는 아버지의 첩으로 들어온 또래의 여성을 좋아하게 된 왕자의 이야기. 슬픈 사랑이야기이긴 했는데 몰입도는 좀 떨어졌다. 재미는 있었지만 깊이가 부족하달까? 그건 내공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려나. 여튼 누구나 예상 가능한 대사가 튀어나오고 흐름도 그렇고, 아버지의 여자를 좋아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많이 생략된 느낌? 왜 하필 그 시점에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지 잘 납득이 안 된다. 물론 사랑은 '납득할 만한 일'이라기보다는 사람 마음이 가는 일이니 좀 다르지만. 딱 무난무난한 작품이었다.
녹턴 _ 박은아
아!!!!!!!!!!!!!!!!!! 바그너! 내가 좋아하는 만화 중 다섯 손가락에 드는 <다정다감>을 그린 작가의 신작이었다.
바로 <녹턴>! 그림체도 완전 내 스타일인데다가, 이야기 꾸려내는 솜씨도 좋아서 정말 강추! <다정다감>만큼의 느낌이 파파
팍 온 건 아니지만 이것도 왠지 중대박 정도는 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홉살짜리 유리를 맡게 되는 김도욱의 이야기.
책이 좀 얇은 느낌이었는데, 한 권 내용은 매우 널널하고 한가한 편이었다.
짜임새있게 쭉쭉쭉쭉 늘어지는 건 아니고, 약간은 느슨하게? 이건 신작이니까 최대한 스포는 줄이도록 하겠다!
다들 기대감에 차서 책장을 펴시길.
사실은 이것 말고도 한 권이 더 있었다. <안녕, 파파>라는. <좋은 사람>의 another story라고 해서 아까 말했던 백정원의 <좋은 사람>과 연관된 건 줄 알았는데 아예 다른 만화였다. 일본작이었는데 그림체부터가 완전 일색이 선명한! 게다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오른쪽에서부터 보는 형식의 만화책. 내용도 별로라서 그냥 10% 정도 읽다가 덮었다. 뭐 그래도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빌려 보시든지...<아 건방져 얘 뭐야
다행히도 이번 선택이 '마이더스의 손'처럼 잘 돼서 골고루 재미있게 읽었다. 책보다 한 200%는 빨리 읽은 듯?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쉭쉭 하고 들릴 정도였다. 겨울방학에 방바닥 따뜻하게 해 놓고 배 깔고 귤 까먹으면서 만화책 읽는
그런 환상의 기분까지는 못 느꼈지만 나름대로 즐거운 만화 보기 시간이었다.
(출처 : 다음블로그 - UniqueC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