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사벽(家徒四壁)
[집 가/무리 도/넉 사/벽 벽]
[뜻]
집안에 다만 네 벽만 있을 뿐이었다.
너무 가난하여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비유한 말
[내용]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촉군(蜀郡) 성도(成都) 사람으로, 자는 장경(長
卿)이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격검(擊劍)을 배웠으므로 그
부모는 그를 견자(犬子)라고 불렀다. 사마상여는 공부를 마치자 춘추전
국시대의 인상여(藺相如)의 사람됨을 흠모하여 이름을 상여로 바꾸었다.
그는 많은 돈을 내고 낭(郎)이 되었다가, 효경제를 섬겨 무기상시(武騎
常侍)가 되었으나 이 벼슬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온 사마상여는 지안 가난하고 스스로 직
업으로 삼을 만한 일 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사마상여는 평소 사이가 좋
았던 임공(臨邛)의 현령 왕길(王吉)에 가서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이 때 그곳의 대부호 탁왕손(卓王孫)이 연회를 열었는데, 사마상여도 현
령과 함께 참석했다. 그런다가 사마상여가 거문고를 연주하게 되었다.
이때 탁왕손(卓王孫)에게 과부가 된지 얼마 안 되는 문군(文君)이라는
딸이 집에 와 있었다.
사마상여가 탁씨 집에서 술을 마시며 거문고를 탈 때 문군은 문틈으로
그를 엿보고 마음이 끌려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와 부부가 될 수 없을까
염려하였다. 한참 뒤에 연회가 끝나자, 상여는 사람을 시켜서 문군의 시
종에게 후한 선물을 주어 자기 마음을 은근히 전했다. 그러자 문군은 그
날 밤에 상여에게로 도망쳐 나왔다. 상여는 곧바로 그녀와 함께 성도로
돌아왔는데, 그의 집은 네 벽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탁왕손은 몹시 화가 나서 말했다.
“딸은 아주 쓸모가 없다. 나는 차마 죽이지는 못하지만 재산을 한 푼도
나눠 주지 않겠다.”사람들 중에는 탁왕손의 마음을 돌려 보려는 자도
있었지만 왕손은 끝내 듣지 않았다.
사마상여의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 살림살이가 없고 방안에는 네 벽뿐
었으므로 탁문군은 사마상여는 임공(臨邛)으로 가서 술장사를 했다. 이
에 탁왕손은 부끄러워 문밖출입을 하지 않다가, 어쩔 수 없이 문군에게
노복 백 명과 100만 전(錢)과 시집갈 때 줄려고 준비한 살림을 나누어
주었다. 문군은 이에 사마상여와 성도로 돌아가 밭과 집을 사서 부자가
되었다.
그 뒤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사마상여의 《자허부(子虛賦)》를 읽고
감동하여 그에게 벼슬을 내렸는데, 사마상여가 이름을 떨치자 그때부터
탁왕손의 집안에서도 사마상여를 얕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첫댓글 인연이 그러했고 운명이 그러했나 봅니다.
집 사방에 벽 뿐이라면 얼마나 가난했을까... 그걸 이겨낸 이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