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의 성락원을 다녀와서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로 알려진 성북동을 다녀왔다.
김광섭 시인의 자취를 찾아서 간 것이 아니고,
성락원이라는 명을 보고 그 명승의 진위 여부를 문화재청 차원에서
다시 한번 검토하기 위함이었다.
철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자 서울이 아닌 듯 나타나는 심신유곡과
바위로 이루어진 계류,
이곳에 이렇게 별서를 만든 사람은 조선 후기의 내관을 지냈던
황윤명이라는 사람이었다. 그가 이곳에 별서 정원을 경영하면서부터 이곳은 조선시대 정원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고,
고종의 다섯 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이 이곳에 거주할 때에 건물의 형태가 변화되었으며, 1954년 심상준 씨의 성락원 소유 당시 수각정(송석정)을 조성하였다.
변하고 변하는 과정에서 소유주의 이름이 잘못 와전되어 뭇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린 성낙원은 말 그대로 서울의 별천지 중 한 곳이었다.
성낙워 일대를 두고 쓴 시와 글들을 보자.
池中石假山 삼가루를 읊다
斫石爲山藏澤裏 돌 잘라 산 만들어 못 속에 숨기니,
峻𡾓奇絶近天眞 우뚝우뚝 기이하고 빼어나 천진에 가깝구나.
體容每被烟霞護 이 몸 매번 연하의 보호를 받아,
不畏塵間有力人 진세 간의 권세가도 두렵지 않도다.
북쪽 시내로 방향을 돌려 시내가로 난 오솔길을 따라 1리 쯤 들어갔다. 길이 구불구불 돌고 아름다운 나무가 무더기로 빽빽하며 기이한 새와 꽃들이 세속 사람의 이목을 번쩍 뜨이고 기쁘게 하였다. 걸음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취병(翠屛) 하나가 있는데 제도가 매우 오묘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듯한 하나의 정자가 걸음을 따라 모습을 드러내니 바로 황춘파(黃春坡: 황윤명) 선생의 별서이다.
강원도<정선군지>에 실린 <총쇄록>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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雙槐堂崇藻下請敎 幷引 쌍괴당 선생의 높으신 글에 이어 가르침을 구하다
神仙第宅 畫圖溪山 신선의 저택이라 하면 모두 계산(溪山)을 그린다.
場圃果園 仲長統樂志可見 채소밭과 과수원은 仲長統 山陽의 낙지론에서 볼 수 있고
琴嘯篁舘 王輞川別業斯存 대나무 숲 별채에 거문고 소리 울리니, 王輞川의 별장을 볼 수 있다.
曩學暫逰 縱未畵桃原之美 지난날 잠시 학문 배울 적 비록 무릉도원 아름다움 다할 수 없었지만,
今成追憶 尚粗藍田之和 오늘날은 추억이 되어 남전(藍田)의 평화로움을 조금이나마 기록하여
敢竭鄙誠 恭疏短引 감히 나의 마음을 다하고자, 삼가 짧은 서문을 짓고,
繼之以詩曰 아래와 같이 시로 읊습니다.
窈窕城北洞 그윽한 성북동
瀟灑雙槐堂 말쑥한 쌍괴당
天設何奇壯 하늘은 어쩜 이리도 기이하고 장엄하게 만들었는고?
人謀且停當 사람들은 잠시 여기에 머물려 생각하네
有泉皆雪瀑 시냇물 줄기 모두 눈처럼 쏟아지는 폭포수요
無石不金剛 바위마다 금강석 아닌 것이 없어라
畵裡三山出 그림 속 삼신산 나온 듯
壺中九華藏 호리병 속에 구화산 감춰 놓은 듯
小舟撑葉嶼 조각배로 작은 섬 지탱하고
危閣架虹樑 높이 솟은 누각은 무지개 들보 얹고
庭園丹壁繞 정원은 붉은 벽으로 둘러있고
門戶翠屛張 문에는 푸른 병풍 펼쳐놓았네
屋中誰是主 그 집에 주인 누구인가?
山外世皆忙 산 밖 세상 사람 모두 정신없어라
晩樂隨三可 노년의 즐거움 三可를 따르고
初心付兩忘 초심은 모든 세속의 일 잊어라
勇退仙何遠 분연히 물러나니 신선이 어찌 멀리 있으랴
調閒病不妨 한가롭게 지내니 병이 나를 수고로이 하지 않네
似將神秘地 마치 신비한 곳이요
留待福人庄 福人의 별장에 머물러 있는듯
占取專淸餉 담박한 먹거리 오롯이 차지하고
粧修集衆芳 뭇 방초들을 모아 아름답게 꾸몄어라
산천은 그대론데, 사람들과 건물들은 사라졌는데,
사람들만 성낙원을 두고 말이 많구나.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라는
시조 한 수가 떠오르고 떠오르던 하루였다.
2019년 8월 22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