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숭(曺嵩)의 절명(絕命) -
조숭(曺嵩)은 둘째 아들 조덕(曺德)과 함께 일가친척(一家親戚) 사십여 명과 종자(從者) 백여 명을 데리고 가장집물(家藏什物)을 실은 수레 백여 대를 뒤따르게 하고 아들인 조조(曹操)가 있는 연주(兗州)로 길을 떠났다.
이들이 지나는 곳의 서주(徐州) 자사(刺史) 도겸(陶謙)은 연로(年老)한데다가 최근(最近)에 악화(惡化)된 해소병(咳嗽病)<해소는 '해수(咳嗽)'의 변한 말>으로 병석(病席)에 누워 있었는데, 아들 도공의(陶公義)가 달려와 말한다.
"아버님, 조 씨(曺氏) 어르신이 오셨습니다."
"조 씨 어르신이라니?"
"조조(曹操)의 부친(父親)인 조숭(曺崇)이 우리 서주(徐州)를 지나, 연주(兗州)의 조조(曹操)에게로 간다고 합니다."
"그래 그러면 당장((當場) 의장(衣裝)을 갖추고 주연(酒宴)을 준비(準備)해라. 그리고 왕궁(王宮)의 예(禮)로서 조숭(曺崇)을 영접(迎接)해라. 아 아니... 내가 직접(直接) 나갈 것이다."
도겸(陶謙)이 기침을 거듭하며 쉰 목소리로 말을 하고 나서, 병석(病席)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도공의(陶公義)가 가까이 다가오며 손을 내저으면서 만류한다.
"아버님 이런 몸으로 어찌 나가시겠다고 그러십니까 소자(小子)가 대신(代身)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도겸(陶謙)은 매우 못마땅해 하면서도 마지못한 소리로,
"애야, 조조(曹操)의 부친(父親)이 온다고 하지 않느냐? 그러니 내가 어찌 직접(直接) 나가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간 조조(曹操)하고는 왕래(往來)도 없었으니 그저 예(禮)만 갖추면 될 텐데 왕궁(王宮)의 예(禮)까지 갖춰야 합니까?"
아들은 병석(病席)의 아버지가 조조(曹操)의 아버지 조숭(曺崇)의 등장(登場)으로 화들짝 놀라며 아픈 몸을 일으킨 데 대하여 일말(一抹)의 의구심(疑懼心)을 가지고 만류하였다.
그러자 도겸(陶謙)은,
"난들 좋아서 그러느냐?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게야... 아들아! 우리 서주(徐州)는 아주 취약(脆弱)한 곳이다. 북쪽에는 원소(袁紹), 동쪽에는 원술(袁術), 거기에다 조조(曹操)까지... 이들은 모두 우리 서주(徐州)를 노리고 있어... 더구나 우리는 군사력(軍事力)이 약(弱)해서 어떤 제후(諸侯)에게도 밉보이면 안 된다. 알겠느냐?"
그러자 아들은 다시 고개를 갸웃하면서 묻는다.
"그들 모두가 서주(徐州)를 노린다는 것을 아시면서 어찌 왕궁(王宮)의 예(禮)를 갖추란 말씀입니까?"
"이런 쯔쯧...각 제후(諸侯)들 중에 조조(曹操)의 군사력(軍事力)이 막강(莫强)한 데다가 위치상(位置上)으로도 조조(曹操)가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 또 대업(大業)의 야심(野心)도 가장 왕성(旺盛)한 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없애려도 없앨 수가 없고, 이기려 해도 이길 수가 없는데 어쩌겠느냐. 그러니 이런 기회(機會)에 그들에게 은혜(恩惠)를 베풀어서라도 우리의 우방(友邦)으로 만들어야만 비로소 우리 서주(徐州)의 평화(平和)를 지킬 수가 있는 것이다." 병석(病席)에서 몸을 일으킨 도겸(陶謙)은 불편(不便)한 몸으로 아들에게 조목조목(條目條目) 말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아들은 침통(沈痛)한 표정(表情)을 지으며 조숭(曺崇)의 영접(迎接) 준비(準備)를 서두르기 위해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리하여 서주 자사(徐州 刺史) 도겸(陶謙)은 조숭(曺崇) 일행(一行)을 극진(極盡)히 대접(待接)하기에 이르렀고 서주(徐州)에서 이틀 동안이나 극진(極盡)한 대접을 받는 사이에 조숭(曺崇)은 도겸(陶謙)의 인물(人物)됨에 크게 감동感動)을 받으며 다시 길을 떠나려고 하자, 도겸(陶謙)은 부하 장수(部下 將帥) 장개(張開)에게 오백 명의 군사(軍士)를 주어 연주(兗州)까지 조숭(曺崇)을 정중(鄭重)히 호위(護衛)해서 모시도록 하였다.
조숭(曺崇)이 가솔(家率)을 거느리고 길을 떠나 화비(華費)에 도달(到達)했을 때, 맑게 개었던 초가을 하늘이 별안간(瞥眼間) 어두워지며 큰 비가 쏟아졌다. 일행은 가까운 절간을 찾아가 하룻밤을 묵어 가게 되었다. 큰 비를 만나는 통에 조숭(曺崇)을 호위(護衛)하던 도겸(陶謙)의 병사(兵士)들은 모두 옷을 흠뻑 적시게 되었다. 그리하여 불을 피우고 삼삼오오 둘러 앉아 옷을 입은 채로 말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느닺없이 불만(不滿)을 터뜨렸다.
"우리는 본래(本來) 예전부터 황건적(黃巾賊)의 부하로서 멋대로 살았는데 지금은 마지못해 도겸(陶謙)의 부하(部下)가 되기는 했지만 그 알량한 돈만 받아가지고는 술 한잔도 맘대로 못 마시게 되지않았나? 이거야 원, 아무리 생각해도 잘 한 짓인지 모르겠어?" 하면서 일장 신세(身世) 타령을 늘어 놓는 것이었다.
"그건 나도 그래!"
"나도!"
"내 생각도 그렇구먼!" 앞서 불만(不滿)을 말한 자를 동조(同調)하는 자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대꾸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를 지켜 보던 호위대장(扈衛大將) 장개(張開)가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의 불만(不滿)을 내가 잘 안다. 그러나 잘 들어 보아라, 우리는 황건당(黃巾黨) 출신(出身)으로 지금은 도겸(陶謙)에 의탁(依託)하여 밥을 얻어 먹고는 있지만 우리는 출신(出身)으로 인해 중용(重用)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앞으로 전쟁(戰爭)이 벌어지면 앞장서 나가서 죽을 일 외에는 앞날이 불확실(不確實)한 것이 사실(事實)이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심복(心腹) 부하(部下)가 맞장구를 친다.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밤에 끝장을 내자 지금 바로 행동(行動)을 개시(開始)하여 조숭(曺崇)을 죽여 재물(財物)을 모조리 뺏고 우리는 오봉산으로 숨어들어 산적(山賊)노릇이나 하면서 신선(神仙)처럼 살아보도록 하자, 알겠냐?" 장개(張開)는 자신의 생각을 부하들에게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러자 부하들은,
"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게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가자!"
"네!"
이들은 즉각(卽刻)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조숭(曺崇) 일행(一行)이 자고 있는 숙소(宿所)에 난입(闌入하였다.
"이게 무슨 일이냐?"
조조(曹操)의 동생 조덕(曺德)이 잠을 자다가 잠옷 바람으로 뛰어나오며 소리를 지르자 장개(張開)가 번개같이 달려들어 목을 잘랐다.
그와 동시(同時)에 여기저기서,
"앗!"
"으악!"
"사람 살려라!" 날카로운 비명(悲鳴)과 함께 사람들이 쓰러져 죽는소리가 어둠 속에서 수없이 터져 나왔다.
호위(護衛)의 임무(任務)를 띠고 오던 군사(軍士)가 졸지(猝地)에 약탈(掠奪)의 폭도((暴徒)로 돌변(突變)해 버린 것이었다.
조숭(曺崇)은 측간(廁間)에 숨어 있다가 발각(發覺)되어 무참(無慘)히 칼을 맞아 쓰러졌고 일가친척(一家親戚)과 따르던 종자(從者)까지 백여 명이 넘던 일행(一行)이 씨알머리도 남김없이 장개(張開) 일당(一黨)에게 참살(慘殺)을 당(當)했다.
이런가 운데 호위(護衛)의 임무(任務)를 띠고 갔던 장개(張開)의 부하(部下) 중(中)에 한 사람이 난동(亂動)의 와중(渦中)에 홀로 빠져나온 뒤 서주(徐州)로 달려와 지난밤에 벌어진 참상(慘狀)을 그대로 전하였다.
그러자 도공의(陶公義)가 아버지 도겸(陶謙)의 침소(寢所)로 황급(遑急)히 뛰어들며 아뢴다.
"아버님, 아버님! 큰일 났습니다!"
도겸(陶謙)은 첩약 (貼藥)을 먹다 말고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호들갑을 떠느냐?"
"아버님, 조숭(曺崇) 어르신께서 우리가 호위(護衛)로 붙여 준 장개(張開)에게 살해(殺害) 당하셨습니다!"
"뭐라고?" 도겸(陶謙)은 기절(氣絕)할 듯이 놀랐다.
그러자 자세(仔細)한 소식을 가져온 자가 도겸(陶謙)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며 말한다.
"조숭(曺崇) 어르신께서 연주(兗州)에 도착(到着)하시기 하루 전에 장개(張開), 그 도둑놈이 재물(財物)에 눈이 멀어 밤새 부하(部下)들과 함께 조숭(曺崇) 어르신을 비롯해 그 일족(一族)을 모두 살해(殺害)하고 가진 재물(財物)을 약탈(掠奪)하여 도망(逃亡) 쳤사옵니다!" 하고 아뢰는 것이 아닌가?
"아!..." 도겸(陶謙)은 놀라운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뒤로 자빠졌다.
"아버님!...." 화들짝 놀란 도공의(陶公義)가 황급(遑急)히 달려와서 넘어지는 아버지를 붙잡았다.
"아버님! 정신(精神)차리세요!"
그러자 도겸(陶謙)은 이즈러진 눈을 간신히 뜨며 탄식(歎息)하며 울부짖었다.
"끝이다 끝이야! 모든 게 끝장나고 말았구나! 으흐흑! ...."
"진정(鎭靜하세요 아버님!"
"아이고, 내 탓이다. 내 탓이야!... 내가 눈이 멀었구나! 장개(張開) 그놈이 도둑의 잔당(殘黨)이란 것을 잊었구나! 아, 아, 아이고!... 난 그저 조조(曹操)와 잘 지낼 생각이었는데 이리 될 줄을 어찌 알았겠느냐! 이제는 큰 화(火)를 부르게 생겼구나 아흐흑!.... 세상(世上)에, 서주(徐州)는 이제 끝장이다 끝장이야!"
도겸(陶謙)은 실성(失性)한 사람처럼 허공(虛空)을 향해 팔을 휘저으며 외쳐댔다.
"아버님, 어르신의 죽음은 장개(張開)란 놈의 탓입니다. 우리는 그저 사람을 잘못 쓴 것뿐입니다. 소자(小子)의 생각에는 무엇보다 장개(張開)의 뒤를 쫓아 놈의 목을 베어 오는 것이 우선(于先)이라고 봅니다. 그다음에 장개의 목을 가지고 연주(兗州)로 가서 조조(曹操)를 만나 앞뒤의 사정(事情)을 설명(說明)하고 사죄(謝罪)하는 겁니다. 그리고 아버님, 연주(兗州)라면 군량(軍糧)이 부족(不足)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진 수십 만석의 군량으로 배상(賠償)을 하면 잘 해결(解決)될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상심(傷心)하지 마세요."
도공의(陶公義)는 이렇게, 실망(失望)과 불안(不安)에 잠긴 아버지를 위로(慰勞)하였다. 그러자 도겸(陶謙)은 아들의 말이 한심(寒心)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말한다.
"이히 휴~...! 너는 이런 말 들어 본 적이 있느냐?
<내가 천하(天下)를 배신(背信)할지언정 천하(天下)가 나를 배신(背信)할 수는 없다!>"
"누, 누가 한 말입니까?"
"조조(曹操)!"... 도겸(陶謙)은 말을 마치고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자 아들은 놀란 두 눈을 크게 뜨고 할 말을 잊고 아버지만 쳐다본다.
"이제야 조조(曹操)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냐? 예야, 우리 서주(徐州)에는 큰 재앙(災殃)이 닥친 거다! 아흐흑!..."
도겸(陶謙)은 또다시 고개를 흔들며 울부짖었다.
"아버님, 그러면 어찌해야 하옵니까?... 아버님, 말씀해 주십시오. 도공의(陶公義)는 아버지가 무엇이라도 시키면 그대로 할 듯이 조르면서 결행(決行)할 의지(意志)를 보였다.
도겸(陶謙)은 결연(決然)한 어조(語調)로 다시 아들에게 말힌다.
"명(命)을 전해라! 서주(徐州)의 모든 군마(軍馬)들은 속(速)히 전투(戰鬪)에 대비(對備)하라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도공의(陶公義)는 아버지의 명을 받고 밖으로 나가려고 황급(遑急)히 몸을 돌렸다.
그러자,
"잠깐만, 조조(曹操)가 서주(徐州)로 공세(攻勢)를 취(取)해오면 우리 서주군(徐州軍) 전력(戰力)만으로는 절대(絕對) 조조군(曹操軍)을 막아낼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서신(書信)을 몇 장 써 줄 테니 너는 그걸 가지고 밤새 말을 달려 기주(冀州)에 있는 원소(袁紹)와 남양(南陽)에 원술(袁術), 평원(平原)에 공손찬(公孫瓚)을 찾아가거라. 거리상으로는 닷새 안으로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니 그들에게 속(速)히 원군(援軍)을 청(請)하거라."
"하지만 아버님, 그들은 모두가 서주(徐州)를 노리는 자들이 아닙니까?"
"그들은 모두 서주(徐州)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서주가 조조(曹操)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겠지. 일단(一旦) 우리 서주(徐州)가 조조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중원(中原)을 제패(制霸)한 셈이 되니 그들에게는 이로울 것이 없다. 가서 전해라. 그 누구든지 조조군(曹操軍)을 퇴각(退却)시키고 전쟁(戰爭)을 종료(終了)시킨다면 나, 도겸(陶謙)이 늙어 죽을 때까지 해마다 20만 석의 곡식(穀食)을 바친다고 말이야...."
병(病)들어 지치고 긴박(緊迫)한 가운데서도 도겸(陶謙)은 아들에게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도공의(陶公義)는 밖으로 나와 군사들에게 전쟁(戰爭) 준비(準備)를 시키고, 자신(自身)은 아버지의 서한(書翰)을 받아가지고 기주(冀州)를 비롯한 남(南陽)양과 평원(平原)을 다녀오기 위하여 질풍(疾風)같이 말을 달렸다.
삼국지 - 61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