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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내전
삿 20:12-23
12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다니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행이 어찌 됨이냐
13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들 곧 그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 주어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14 도리어 성읍들로부터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라
15 그 때에 그 성읍들로부터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 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 택한 자가 칠백 명인데
16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
17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
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19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 이스라엘 사람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21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22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
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삿 20:1223 / 그래서 이스라엘 각 지파 사람들이 대표를 뽑아 베냐민 지파 사람들에게 전갈을 보냈다. `너희 지파 사람들이 우리 이스라엘 지파 공동체내에서 차마 하지 못할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13) 그러니 그 못된 짓을 한 무뢰한들을 징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냐? 그들을 우리 앞에 내놓아라. 우리가 그들을 처벌해야만 우리 이스라엘 지파 공동체의 질서가 유지될 것 아니냐?' 이렇게 말하였는데도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이스라엘 지파 공동체의 결의사항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14) 오히려 베냐민 지파 각 마을 사람이 기브아에 모여 다른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15) 이때 기브아에 모여 싸울 준비를 하고 있던 베냐민 지파 군인들은 모두 2만 6천 명이었고 그밖에도 싸움 잘하기로 유명한 기브아 전사가 700명이나 합세하였다. 16) 이 기브아 전사700명은 모두 왼손잡이로 날아가는 참새도 떨어뜨린다는 돌팔매질의 명수들이었다. 17) 여기에 맞서서 싸울 이스라엘 각 지파 군인들은 모두 40만 명으로, 칼로 무장하고 있었다. 18) [이스라엘 연합군의 패배] 이스라엘 사람들은 싸우러 가기 전에 벧엘 성소로 올라가 하나님께 물었다. `우리 이스라엘 군대 가운데에서 어느 지파가 먼저 올라가 베냐민 지파를 칠까요?'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 싸워라.' 하고 하나님께서 대답하셨다. 19) 이스라엘 군대는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 맞은편에 진을 쳤다. 20) 그들이 베냐민군과 싸우려고 밖으로 나가 전투 대열을 갖추자 21) 베냐민군도 기브아에서 나와 맞서 싸웠는데, 이스라엘 연합군은 그날에 2만 2천명이나 쓰러졌다. 22-23) 이스라엘 연합군은 그날 벧엘로 다시 올라가 날이 저물 때까지 하루종일 여호와 앞에 울면서 부르짖었다. 그들이 `주님, 어째서 우리가 싸움에 져야 합니까? 어째서 우리가 한 형제인 베냐민 지파와 이렇게 싸움을 벌여야만 합니까?' 하고 여호와께 묻자 `그래, 다시 올라가 싸워라' 하고 여호와께서 대답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날에 다시 올라가 전투 대열을 갖추었다.
기브아 사람들의 악행은 당연히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온 이스라엘이 베냐민 지파에 기브아 사람들을 처형할 수 있도록 넘기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완악함(12-16) 그곳에 모인 베냐민을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와의 갈등을 최소화하거나 피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죄악을 두고 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기브아 사람들을 처형하도록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베냐민은 그 요구를 거절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다른 지파들과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결의합니다. 베냐민 지파의 이러한 태도는 죄악을 인정하지 않고 참회하지 않는 죄악에 물든 인간의 참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를 범한 사실 앞에 바른 신앙의 자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참회하며 삶을 되돌이키려고 결단해야 합니다. 베냐민 지파가 죄를 깨닫지 못했다기보다 죄책감에 휩싸여 그릇된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죄책감이란 자책하는 마음이 들게 할 뿐만 아니라 죄인에게 수치심을 가지게 하고 자신의 죄를 숨기거나 외면하게 합니다. 베냐민 지파는 범죄를 인정하고 참회하며 선한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러지 못한 결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만들뿐이었습니다.
첫 번째 전투(17-23) 이스라엘의 살기등등한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40만 명에 이르는 전사들은 전쟁 치를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여쭙습니다. 과연 누가 베냐민과 싸워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를 지목하십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은 베냐민과 전쟁에 대한 부담감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전쟁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형식적으로 여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에 대해서 진정한 회개를 기대하지 않고 이방 민족과 전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승리만을 열망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연합군은 교만하게 방심하다 베냐민에게 크게 패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전쟁은 절대 패배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묻고 답을 들었지만, 이 전쟁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쟁도 아니요. 정당한 전쟁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 패배는 이스라엘 전체의 패배일 뿐 누구의 승리도 될 수 없는 오히려 동족상잔의 심판일 뿐이었습니다.
적용: 진정한 믿음의 승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승리입니다. 당신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믿음의 승리를 위해 오늘 결단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경건의 시간을 가지는 이유는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임재의식 가운데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위해서는 영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어느 한 장소나 시간에 국한 시켜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가는 모든 곳이 골방이 될 때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집니다. 우리가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힘써야합니다. 단순히 그때 그때 우리의 심령을 입술의 말로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께 내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음성을 듣고 우리 안에 임하십니다.
< 설 교 >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삿 20:12-28 / 우인택목사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연합군이 기브아의 악행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베냐민 지파와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열다섯 배의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거듭하여 베냐민 지파에게 거듭 패배하고 맙니다.
특히, 28절의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라는 표현은 이 사건이 사사기 초기에 일어난 사건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먼저 12-13절에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총회는 베냐민 지파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기브아 불량배들을 응징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는 기브아 불량배들을 처벌하는데 협조하기는커녕 도리어 이스라엘 총회를 상대로 싸우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지파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정의를 따르기보다는 기브아 불량배들의 악행을 눈감아 줌으로써 이 문제를 동족끼리의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몰고 갔습니다.
특히, 베냐민 지파의 용사들 중에는 칠백 명의 왼손잡이 물매꾼들이 있었다고 말씀하는데, 그들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적들을 명중시키는 명사수들이었습니다.
소년 다윗이 물매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렸듯이(삼상 17:49), 그들은 어쩌면 이러한 비장의 병사들이 있었기에 자신들보다 열다섯 배나 많은 이스라엘 연합군과 대적하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이기든 지든 베냐민 지파 자기들에게도 결코 유익이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정의를 외면한 집단이기주의는 매우 악하고 전염성이 강해서 자신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냐민 지파와 같이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이웃과 서로 돕는 관계를 유지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 나는 과연 정의의 편에 서 있는지 집단이기주의의 편에 서 있는지 스스로를 살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7절에 이만 육천 칠백 명의 베냐민 지파 군사와 대치한 이스라엘 연합군의 수는 자그마치 사십만 명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베냐민 지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숫자가 우세했으며 그리고 그들의 군인들이 다 ‘전사’였음을 감안할 때 승패는 이미 결정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연합군은 베냐민 군대를 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연합군은 전쟁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지만, 18절에 보시면 누가 먼저 베냐민과 싸울 것인가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서 싸우라고 응답하셨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응답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대제사장이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여 판결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연합군은 이 판결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는 그들의 기대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이날에 무려 이만 이천 명의 전사자를 내고 패배하고 말았습니다(21절).
여러분, 어떻게 된 것일까요?
왜 이스라엘 연합군은 패배하게 된 것일까요?
여러분, 이스라엘 연합군의 질문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이스라엘 연합군은 하나님께 이 전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묻기 전에 이미 자기들 마음대로 전쟁을 결정했습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 누가 먼저 나가 싸울 것인지를 물었다는 점에서 이미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이 물은 것은 “누가 먼저 싸우리이까?” 하는 것이었지 “어떻게 하면 승리를 할 수 있습니까?” 묻지 않았습니다.
또 그들은 승리를 주시도록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숫자적인 우위에 자만심이 넘쳤습니다.
그래서 싸우기만 하면 반드시 승리할 것처럼 착각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구하는 형식만 취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대 참패였습니다.
그들의 교만은 가나안 정복전쟁 때의 ‘아이성 전투’를 재현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겸손을 유지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그런데 베냐민 지파와의 전투에서 크게 패한 이스라엘 연합군은 23절에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하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18절에서는 단순히 ‘베냐민 자손’이라고 불렀는데, ‘내 형제 베냐민 자손’이라고 호칭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첫 전투에서 패한 뒤 패배의 원인이 형제와 싸운데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12지파는 언약공동체이자 운명공동체입니다.
그들은 결코 서로 싸워서는 안 되는 관계입니다.
그들의 싸움의 대상은 가나안 족속이며 그들을 위협하는 주변의 강대국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로 연합해야 할 ‘형제’이지 싸움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그들은 처절한 후회와 상처만 남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러한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따로 있습니다.
그 대상은 오직 악의 근원인 ‘사탄’입니다(엡 6:12).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를 꼭 기억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연합군과 베냐민 지파는 어떠한 허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하고 도와야 하는 한 형제였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언약공동체이자 운명공동체였습니다. 그러한 그들이 악에 빠지자 전쟁의 대상이 누구인지도 분별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아비규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형제를 향해 폭력을 사용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오직 성령의 열매로 형제를 대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멸망으로 가는 길
사사기 20:12~18 / 박희원목사
오늘 본문에서 베냐민 지파가 보이는 모습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때 거치게 되는 과정과 거의 일치합니다. 비록 나머지 11지파도 완전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오늘 본문의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자와 같은 위치에 서 있습니다. 이후 본문에서는 11지파의 문제가 나타나겠지만, 일단 오늘 본문에서는 베냐민 지파의 잘못에 초점을 맞춰 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12-14).
베냐민 사람들의 모습은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했던 이스라엘의 축소판입니다. 나머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을 보내어 베냐민 온 지파를 다니며 기브아의 불량배를 이스라엘에게 넘겨 죽여서 이 악을 제거하게 하라고 말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이후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을 다니며 회개하라고 외칠 것인데, 그것은 곧 그들 가운데 있는 죄의 뿌리를 뽑으라는 선포였습니다. 그러나 베냐민 사람들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과 싸우려 나서는 어리석은 선택을 합니다. 이 역시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15-16).
베냐민 사람들은 아무리 나머지 11지파가 다 함께 자기들을 친다고 해도, 자기들의 용맹함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그 앞에서 협상을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의 이 판단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가 유다 지파처럼 그 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의 힘이 자기들에 비해 현저히 약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편이 되어주신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습니다. 자기들 안에서 일어나 죄악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700명의 왼손잡이 투석병들과 자기들의 용맹함을 믿었습니다. 분명 그 700명의 투석병들은 뛰어난 전사였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11지파가 모두 결의하고 베냐민을 치려 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그들이 뛰어난들 승산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들의 능력을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경고하고 그 죄악을 버리라 말하지만 그 말을 듣지 않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력이나 군사력을 믿고 선지자들이 경고하는 재앙은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죄악을 멀리하지 않으며, 자기 힘을 의지하는 자는 결국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17-18).
민수기에 의하면 가나안 정복 당시 이스라엘의 군대는 약 60만 명이었습니다(민 1:46, 26:51 참조). 그런데 40만 명이 이 전쟁에 참여했으니 거의 전 병력이 동원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자기 조상 야곱(이스라엘)의 성지인 벧엘에 올라가(창 35:1~3 참조) 누가 먼저 베냐민 자손과 싸울 것인가를 하나님께 묻는데, 열한 명의 형들이 아버지 앞에 모여서 누가 먼저 그 막내 동생을 칠까를 묻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 이들은 유다가 먼저 가라는 응답을 받는데. 이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칠 때의 모습과 일치합니다(창 35:1, 삿 1:1~2).
베냐민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경고를 무시하였고, 자기 힘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가나안 족속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베냐민을 치는 11지파들도 그다지 거룩하거나 하나님 보시기에 바로 선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나안을 치듯이 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여하튼 베냐민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선택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하였고,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만 것입니다.
1차, 2차 세계대전에서 일어난 역사를 살펴보면 그 전쟁 가운데 서로 하나님이 자기들의 편이 되어 주실 것처럼 서로 자기들에게 승리를 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상 양쪽이 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지도, 의롭지도 않지만 저들은 모두 하나님이 자기들 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실상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뢰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만약 진정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뢰하는 자들이었다면 그 전쟁 자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당연히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피상적으로 종교적인 선언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선포하고, 실제로는 자기들의 군사력을 의뢰합니다. 물론 한 쪽은 이기고, 또 한 쪽은 패하는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으나, 하나님이 그들을 의롭게 여기셔서 승리를 주신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어리석은 태도에 머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들을 비춰보고, 죄악이 있다면 회개하고, 고치는 것을 먼저 합니다. 오늘 본문의 베냐민 지파처럼, 자기들의 죄악을 부인하고, 자기 힘을 의뢰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패망의 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내전
삿 20:12-23 / 구성교회
우리는 하나님의 현존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에 우리가 가는 곳마다 동행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마 28:20). 예수님께서 우리를 따르지 않으시고 우리가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활동에 하나님을 초대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활동에 참여하도록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였노라(요 15: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려면 절대적인 순종이 필요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떤 방향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상의하지 않고도 무엇이 가장 좋은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죄에 갇힌 사람들을 위해 울 때 당신은 예수님과 함께할 것입니다.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나러 오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깨어진 삶이 온전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속박에 빠진 사람들이 풀려나고, 애통해하는 사람들이 위로받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쉬울 것입니다. 다른 때에는 예수님을 버리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폭풍을 겪거나 산 정상에 서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주님에 대한 확신을 품고 주와 동행하는 하나님 사람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에게 불량배들을 넘기라고 요구합니다. 그들을 제거해야 악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는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다른 지파들과 전쟁을 준비합니다. 기브아 주민 700명과 베냐민 군사 26,000명이 모였습니다. 특히 기브아 주민 700명 중에는 물맷돌을 잘 던지는 훈련된 병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오른손에 장애가 있거나 어떤 제약 혹은 왼손을 잘 쓰기 위해 오른손을 사용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사사기 3장 15절에 나오는 ‘에훗’이 바로 왼손을 잘 사용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이들은 4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는 하나님께 전쟁 개시 여부를 묻곤 했습니다. 그런데 베냐민과 싸울 때는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었고, 어느 지파가 먼저 올라갈지를 묻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라고 말씀합니다. 18절을 정확히 살펴보면 하나님은 “유다가 먼저” 혹은 “유다가 시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올라가라” 혹은 “가라”와 같은 동사가 사용되었으면 그 전쟁은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 이와 같은 동사를 사용하지 않고 그저 “유다”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승리에 대한 약속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질문에 대답만 하신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승리 약속을 받았다고 생각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침 일찍 기브아를 향해 진을 치고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22,000명의 이스라엘 군사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충격에 빠진 이스라엘은 이전과 다르게 울며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올라가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번에도 승리를 약속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두 번째 전쟁에서도 18,000명이 전사하여 전쟁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대충 살펴보면 이스라엘에게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불량배들을 감싸고 있는 베냐민 지파가 문제인 듯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과정을 살피고 계십니다. 우리는 내가 받은 피해와 상처만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더 자세히 알고 계십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거짓을 포장하고 있는 어리석음이 나의 길을 하나님의 길로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어리석음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도 조금은 어렵고 힘든 길일지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사람다운 모습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초대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