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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남자친구로 남기
※1※
어두운 차 안에서, 금호는 애꿎은 휴지조각만 뜯고 있었다. 옆에 앉은 단영은 딸기 맛 목캔디를 입 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 상큼한 딸기향이 금호의 코끝까지 와 닿았다. 금호는 옆에 앉은 단영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는 며칠 전 데이트에서 꼭
단영과 ‘자지 않아도’ 된다고 못을 박았었다. 자신은 다른 남자들과는 분명 다르며, 그녀를 소중히 여기겠다는 일종에 트
릭이었는데 순진한 단영은 그의 그런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렸다. 그리고는 눈알을 반짝이며 플라토닉한 사랑이 좋
다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치게 안심했다. 아, 망할. 순간 금호는 그렇게 중얼거릴 뻔 했던 것
을 간신히 참았다. 그녀는 스무 살이다. 이제 갓 스무 살이다. 그는 그렇게 위안을 삼았지만 달콤한 딸기향이 나는 단영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고 싶은 것을 열심히 참고 있었다. 금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혼자 신경질을 부렸다. 늘 이렇
게 차 안에서만 데이트 하는 것도 지겨웠고, 밤마다 그녀를 품에 꼭 안고 함께 눈을 감고 싶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오늘 딱 하루만 아무 짓도 안 할테니 함께 있자고 해볼까? '
금호는 옆에 있는 단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뜨거운 시선을 눈치 챘는지 단영은 놀란 얼굴로 금호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오빠, 왜 그래요?”
단영의 촉이 선걸까. 그녀는 겁먹은 표정이었다. 금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가 차를 주차
한 곳도 밤만 되면 인적이 뜸한 주차장이었다. 그녀와 어떻게든 분위기라도 잡아볼까, 싶었지만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생각이 없는 건지 단영은 쉴 새 없이 떠들고, 또 떠들었다. 금호는 핸들을 틀어 다른 장소를 물색해보았다. 좀 더 어둡고
좀 더 은밀하며 좀 더 분위기 좋은 곳으로. 그는 학교 주차장에도 갔다가, 인근 강 변 주위도 갔지만 맘에 들지 않았다. 단
영은 그새 목캔디를 다 먹었는지 또 껍집을 까서 입에 쏙 넣고 있었다.
“단영아 왜 그렇게 목 캔디를 좋아해?”
금호는 별뜻 없이 물었지만 단영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금호는 그녀가 뭔가 숨기고 있단 생각
이 들었는지 차를 세우고 그녀에게 질문 공세를 하기 시작했다.
“응 왜 그런거야? 왜?”
사실 금호도 짚이는 곳이 하나 있기는 했다. 그런데 애써 모른 척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 미끼만 잘 물으면
될 성 싶었다. 단영은 금호의 물음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
다. 이상하게 몸도 움찔하며 파르르 떨었다. 대체 뭘 봐서 저런 거야? 금호는 호기심에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
는 곳을 보았다.
헉.
그의 차는 모텔 주차장 바로 앞에 있었다. 그녀가 오해할 만도 했고 놀랄 만도 했다. 그는 움찔하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댔다.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겁먹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뭐하는가 싶었다.
나이차도 8살인데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아이에게, 자신이 대체 뭘 바라는 거란 말인가! 그는 무섭게 타오르는 자신의
욕망을 저주하며 차를 돌려 그녀의 기숙사로 향했다. 그때까지 단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그가 학교 정문을 지나 기숙사 앞에 차를 주차하자 그녀는 고개만 끄덕이며 나가려고 했다.
그는 그녀의 목을 낚아챘다.
“아직 가지마. 조금 더 있다가.”
그가 단영에게 이런 말은 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자존심 때문에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어도 티를 내지 않았고
아쉬운 모양새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가!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놓아줄 줄을 몰랐다. 당황한 단영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입도 뻥긋 못하자 금호는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오늘은 정말로 헤어지기 싫다, 단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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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처음은 이랬다.
“단영아, 오빠랑 사귈래?”
알딸딸한 술기운이 갑자기 확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흐리멍덩해진 눈을 또렷하게 뜨고 지금 눈앞의 남자가
단영, 자신이 생각하는 남자가 맞는지 한번 쳐다보았다.
“응? 단영아, 오빠랑 사귈래?”
남자가 또 한 번 말했다. 갑자기 얼굴에 홍조가 생겼다. 어떻게야 할지 모르고, 단영은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풀린 눈을 깜빡이며 남자를 빤히 쳐다보자, 남자는 해맑게 웃으며 단영의 통통한 볼 살을 꼬집었다.
“아 귀여워.”
남자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단영은 따져보기 시작했다. 지금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아니, 사실은 이 사람은 단영에게 남자도 아니다. 그는 자신보다 아홉 살이나 많지 않은가!
어디까지나 ‘직장동료’일 뿐이고, 나이에 상관없이 단영이 먼저 들어왔으니 필시 그녀가 ‘선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남자는 언제부턴가 그러니까 그가 레스토랑에 들어온 지 딱 한 달 하고도 17일이 되는 어느 날부턴가
그는 자신이 선임인 냥 그녀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가 ‘매니저’로 들어온 것을 감안한다면 당연한(그녀는 일개 알바에 불과했다.) 이치였지만, 그 당연한 이치가 단
영이 먼저 그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아주 사소한 이유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얼굴 반반하게 생긴 남자. 그러니까 자신보다 8살이나 많은 남자는 그녀에게 사귀자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난이 한 달 전부터 시작했지만 어디까지나 농담 까먹는 수준이었고 이렇게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것은 처음이
었다.
“농담하지 말아요.”
“농담 아닌데?”
부끄러워하는 단영의 얼굴을 봤을법한데, 그 남자는 끊임없이 단영의 눈동자만 쫓고 있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
일까? 단영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매장 안에서 항상 단영이가 제일 예쁘다느니, 단영이 밖에 없다느니 라고
노래 부르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난이었고 그녀도 그것을 장난으로 받아들였다. 원래 이렇게 사람
놀려 먹는 게 취미이구나-하고 생각한 것이다. 그 장난이 술기운을 빌어 도를 넘어 선걸까? 지금 단영 눈앞에 있는 남자
는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사나운 눈빛으로 끊임없이 단영을 주시하고 있었다.
안절부절.
단영은 미세하게 손까지 떨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은 탓이었다. 왜 자신이 지금 이 남자와 1:1로 술집
에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분명 매장 동료와 온 것이 분명한데. 어째서?
“너, 오빠 여자 친구 할 거야, 안 할 거야?”
이제 그 남자는 아예 노골적으로 단영의 얼굴까지 붙들고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가 귀에 감겨와 잠이
오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기도 했다. 민망한 단영은 필사적으로 그 남자의 눈을 피하려 했으나 그때마다 남자의 오른손이
단영의 부드러운 턱을 손으로 살살 긁는 탓에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다.
“화장실에 사람이 많아서 좀 오래 걸리네.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요?”
단영은 그때 막 잠에서 깬 기분이었다. 뒤에서 들리는 여자 목소리에 흠칫 놀랐으나, 그 남자만은 천하 태평한
얼굴로 단영의 볼을 살짝 꼬집곤 제자리로 돌아왔다.
“단영이가 얼굴에 자꾸 뭘 묻히고 먹는 거야.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완전, 애기라니까 애기.”
그 남자의 말에 여자는 웃는 얼굴로 단영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단영아, 많이 취했어? 얼굴이 어째 벌겋다?”
“괜찮아요 언니. 오늘 일이 좀 힘들었잖아요, 그래서 그래요.”
단영의 괜찮단 말에 여자는 웃으며 그 남자를 바라보았고, 그 남자는 아까 단영에게 사귀자- 어쩌자 하던 진지
한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장난 끼 가득한 얼굴로 여자에게 말했다.
“은주야, 나 단영이한테 사귀자했다 차였다.”
남자의 말에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단영과 그 남자를 번갈아보았다.
“어머, 오빠! 애기한테 그런 장난치지 말아요. 괜히 상처주려고.”
여자의 말에 단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너무도 차분
한 말투로 말했다.
“무슨 상처를 준다고 그래? 그나저나 은주야 우리 단영이 기숙사에 보내고, 아랫 시장에 있는 곱창 집 가서 소주
한잔 할래? 맥주는 영 안 땡겨서 별로다. 배가 불러서 더는 못 마시겠어.”
“그럴까요? 아, 그런데 어제 너무 과음해서 무리인데, 다음에요.”
그리고, 대화의 주체에서, 흐름에서 단영은 제외되었다. 어차피 술 한 잔 제대로 못 하는 거 애당초 이 자리에도
낄 마음이 없었는데 막무가내로 저 남자가 가자고 조르는 통에 단영은 거절할 수 없었다.
일 끝나고 뭐 좀 먹으러 가자고 한 것이 어디 오늘 뿐이랴? 오늘은 힘이 들어서 안 된다, 시험기간이다, 친구랑
선약이 있다 뭐다 해서 거절한 것만 8번이었다. 그 정도 거절이면 그 남자도 어련히 자리가 불편해서 안 가겠거
니-하고 그만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이거 웬걸? 그 남자는 너무도 해맑은 표정으로,
“오늘 시험 끝난 거 다 알아. 오늘은 무조건 콜이다?”
라며 단영의 팔뚝을 잡고 질질 끌고 간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단영은, 어차피 한번 꼭 갈 거라면, 매장 동료
언니가 함께 있을 때 가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남자.
술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대뜸 진지하게 사귀자 하더니 이제는 자신을 빼놓고 2차를 가잔다. 어차피 좋아하
지도 않는 곱창, 마시지도 못하는 술 때문에 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예의상 한번 물어봐주는 게 인지상정
이라 생각했기에, 단영은 빈정상해 버렸다.
역시 좋아한다는 거 완전 거짓말이었구나! 어리고 순진해보이니 장난치는 구나! 하고 속 뒤틀려 하는 사이, 그
남자는 알아서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단영아, 금호오빠 어때? 금호오빠 괜찮으니까 한 번 사겨봐.”
“은주언니. 저 오빠랑 그런 사이 아니에요.”
여자의 말에 단영은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 부정했다. 그래, 매장에서 한두 번 놀린 거가지고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을 하는 바보는 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저 순 날라리 바람둥이 같은 남자한테 자신의 순정을 바치고
싶진 않았다.
“가자!”
남자의 말에 단영과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른 기숙사에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자가 다시 화장실
에 간 사이 남자는 단영에게 다가왔다.
“생각해봤어? 오빠랑 사귈지?”
남자는 다시 진지하게 물어왔고, 이제 한 번 더 그런 소리 하면 정말 화내겠다 소리치려는 사이 여자가 나왔다.
“가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단영은 어색한 걸음을 함께했고 이제 막 횡단보도에 들어설 무렵 고개를 꾸벅 숙이곤 말했다.
“기숙사 코앞이니까, 이만 들어 가볼게요.”
단영의 말에 남자는 입술을 삐죽이더니 잠시 생각해 빠졌다.
“혼자갈 수 있겠어?”
“네.”
짧은 단영의 대답에 그는 그러라는듯 고개를 끄덕였고 고개를 꾸벅이고 뒤돌아섰다.
사실, 혼자가기 무서웠던 단영이었지만 기숙사 앞까지 어색한
공기를 이어가고 싶진 않아서 혼자 가겠다고 한 것이었다.
단영은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그렇지, 좋아한다면 앞까지 데려다준다는 거 아닌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그렇지! 저
런 나쁜 놈! 왜 하필 날 찍어서 좋아한다니 어쩐다니 장난을 치는 거지? 대체 왜?! 왜?!! 아 열 받아!
“단영아!”
단영이 속으로 궁시렁대는 사이, 뒤에 있던 남자는 단영을 불러세웠다. 돌아보지 않고 더 빠른 걸음으로 걷자,
어느새 앞까지 달려온 남자가 단영의 어깨를 돌려세우며 말했다.
“이번 주는 오늘이 마지막 스케줄이지? 다음 주 화요일에 바다 놀러가자. 너 그 날 스케줄 없잖아. 수업 몇 시에
끝나?”
갑작스런 남자의 말에 단영은 벙찐 표정이 되었고, 남자는 그런 단영을 자꾸만 재촉했다.
“응? 몇 시에 끝나?”
“6시요.”
“그럼 밤 바다겠네. 잘 들어가라.”
그 말만 내뱉고는 다시 뛰어가는 남자. 단영은 멍한 기분이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뭐라고?
뭐라고?!!!
차금호.
그래, 그 남자의 이름은 차금호였다.
by.꿀순이♡
첫 연재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쓸 테니 부디 많이 읽어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댓글 재밌을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