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만행 만보
백세를 넘겨 사는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건강 비결이 무엇인가라는 전직 기자 유튜버 질문에 일을 하다 보니 건강은 절로 따라 오더라 했다. 자타가 인정하는 지성인인 그분에게 일이란 당연히 연구와 저술과 강연일 테다. 그 대담에서 사람은 할 일이 없어지는 순간, 죽음이 곁에 다가왔음을 알았다. 나를 위해 살기보다 남을 위해 사는 삶이 의미가 커다는 얘기도 마음에 와 닿았다.
연일 열대야가 지속되고 폭염경보가 내려지지만 나의 만행(漫行) 만보(漫步)는 계속된다. 나는 그동안 평일은 아이들 앞에 서고 주말이나 방학이면 자연에서 한 수 배워왔다. 현재는 가르침과 배움이 교차되지만 정년을 맞으면 홀가분한 학생 신분만 유지한다. 그날이 오면 숙제도 내가 내고, 검사도 내가 하게 된다. 시험 점수가 낮다고 꾸중하거나, 높다고 칭찬해 줄 사람도 없지 싶다.
방학을 맞아 더위와 코로나 와중에도 창원 근교 산자락을 꾸준히 누빈다. 한낮은 무덥기에 이른 아침 길을 나서 반나절 산행으로 그친다. 숲속에는 한여름 피는 야생화가 드문지라 꽃을 대신할 예쁜 영지버섯을 찾아 베란다에 말리고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나는 전문 약초꾼에 버금갈 만치 영지버섯을 따 모아 형제나 지인들과 나눈다. 더위를 잊고 지내는 나만의 독특한 피서법이다.
엊그제 주말부터 내리 이틀 낮에는 소나기가 한 줄기 내렸다. 우리 지역은 강수량이 적어 감질날 정도라 뜨겁게 달구어진 대지를 식히지는 못하고 있다. 그제는 강수가 예보되어 산행을 나서질 않고 이른 아침 우산을 챙겨 창원천으로 생태 탐방을 나갔더랬다. 한여름 천변 풍경을 살펴보고 남천을 둘러왔다. 어제 아침나절은 북면 양목이고개로 올라 숲속에서 영지버섯을 찾아 나왔다.
연 사흘째 국지성 소나기에 예보된 팔월 첫째 월요일이다. 날이 밝아오는 즈음 새벽 산책으로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가로등이 불을 밝힌 퇴촌삼거리로 나갔다. 사림동으로 건너가니 날이 밝아온 정병산 정상부는 운무가 걸쳐져 있었다. 메타스퀘어가 우람하게 자란 사격장 오르는 길을 올라 잔디운동장으로 들어섰다. 내보다 먼저 바깥 트랙을 걷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사격장엔 천연잔디가 심겨진 넒은 운동장을 갖추어 인근 주민들이 산책을 즐기는 곳이다. 나는 생활권에서 다소 멀어 방학이나 주말에 가끔 틈을 내어 찾는다. 처음엔 축구장을 겸한 용도였으나 최근 시내 곳곳 인조 잔디구장과 창원축구센터가 들어서 산책객만 출입해 좋았다. 잔디밭 바깥 트랙을 예닐곱 바퀴 걷다 창원대학 캠퍼스로 건너가 생활관 앞 청운지 연못가를 거닐었다.
안내문을 보니 코로나 감염자가 속출해서 당국에서는 대학 기숙사를 코로나 생활치료소로 확보해 둔 듯하고 상경대학은 리모델링으로 어수선했다. 사회과학대학과 예술대학을 지나 공학관으로 가니 그곳도 인부들이 이른 아침부터 무슨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창원중앙역으로 올라 역세권으로 개발된 상가 안쪽 신리못으로 갔다. 예전 농업용저수지를 호수공원으로 조성된 곳이다.
신리못 수변 산책로를 한 바퀴 둘러 역세권 개발 현장을 거쳐 도청으로 향했다. 경찰청과 도청에서는 팔월 첫 주 업무가 개시되는 월요일 출근 시간임에도 한산했다. 원이대로 오가는 차량과 중앙대로 관공서 이면도로 주차장도 헐렁해 휴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팔월 초순이면 창원공단은 휴가에 들고 관공서도 필수 인원만 남고 다수가 휴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중앙대로에서 용지문화공원으로 들어서니 아침나절이라 너른 숲 그늘에 인적이 아무도 없었다. 쉼터에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 불어와 땀을 식혀 주었다. 그간 방학을 맞아 산이나 계곡으로만 찾아갔는데 도심 공원 나무 그늘에 앉아 쉬어도 봤다. 이제 두 주간을 더 보내고 나면 광복절 직후 개학이라 거제로 떠나야 한다. 나에게 허여된 시간은 느긋하게 걷고 또 걸으련다. 21.08.02
첫댓글 폭염도 물리치고 부지런히
걷고 또 걸으시네예
우짜든 단디
한여름 잘 보내십시오 선생님!
회신 안부 감사합니다.
무더위와 코로나 잘 넘기시고 ...
늘 건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