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 길'이 있다.
휴전선을 따라 길게 펼쳐진 트레일인데 서북쪽 끝 '평화전망대'에서 동해안 최북단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매우 외지고 호젓한 길이다.
총 거리가 520K 쯤 된다.
을사년에 이 길을 탐방하기로 결정했다.
금년 초에 이 결정을 했던 건 아니었다.
결심은 이미 몇 해 전에 했었지만 과감하게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통편 때문이었다.
DMZ 부근 트레일을 따라 걷다보면 제일 먼저,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건 몇 겹의 높다란 철책선이다.
삼엄하고 철통 같은 휴전선이다.
최전방 지역이라 민가도 별로 없다.
그러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대중교통의 형편이 좋을 리 없었다.
실제적으로도 통행하는 마을버스가 어쩌다 한번씩 지나갈 뿐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가 출발했던 지점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서 환승할 대체수단도 없었다.
'격오지 트레킹'의 경우 가장 힘든 점은 트레킹 후에 다시 차를 픽업하기 위해 원점으로 리턴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부부가 한 대씩 차를 끌고 가거나 그게 아니라면 다른 커플과 동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 마음도 맞고, 초장거리 트레킹에 저항감이 없으며 의미와 보람으로 즐겁게 전구간을 완주할 수 있는 커플을 찾아야 했다.
바로 이 점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뜻이 맞고, 시간을 적극 조율할 수 있는 커플을 찾아 의기투합을 이끌어 내는 데까지 최소 몇 달에서 많게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을사년 첫날 새벽.
처제네 부부와 장엄한 '일출맞이'를 하고 덕담을 나눴으며 하산 후엔 맛있는 떡국을 먹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평화의 길' 도보여행과 현재 고민 중인 교통편 얘기를 꺼냈더니 뜻밖에도 적극 동행해 보고 싶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오이? 정말로?"
진심으로 기쁘고 감사했다.
새해 첫날 아침에 우리가 받았던 소중하고 값진 선물이었다.
1월 25일, 강화도 서북단 '평화전망대'에 섰다.
드디어 'DMZ 평화의 길' 1구간부터 힘찬 기상으로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바람은 차가웠으나 하늘은 더 없이 맑고 푸르렀다.
우리 네 명은 힘차게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건강한 심신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멋진 도보여행을 하자고 다짐했다.
자고로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시작하기 전까지 준비하거나 고려할 사항들이 많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일단 착수했으면 이미 반은 끝난 것이나 진배 없었다.
정말이었다.
해보면 안다.
세상만사가 항상 그랬다.
첫 테이프를 끊으면 거의 오할은 이미 미무리 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운다.
실행에 옮기는 일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세상일이 어찌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어 질 수 있겠는가.
형편대로 사는 게 인생이겠지.
하지만 가급적이면 "다음 기회에" 또는 "나중에 다시 시도해 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생 동안 단 어느 한 때라도, 나를 위해 예비된 길이나 기회가 있었던가.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언제나 내가 주체적으로 계획을 짜야 한다.
부족간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선택과 집중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에게 축복처럼 주어진 하루 하루의 일상, 성심을 다해 각자의 고유한 스토리텔링을 엮어가는데 진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죽음 보다 의미 없는 삶을 더 두려워 하라'는 말이 있다.
내 기도제목 중 하나다.
그런 을사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금년에도 다양한 목표와 각종 계획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DMZ 평화의 길'에서의 '도보여행'은 우리의 영혼을 더욱 멋지고 향기롭게 해 줄 최고의 축배가 될 것으로 믿어의심치 않는다.
대장정에 흔쾌하게 동참해 준 동서와 처제에게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전한다.
사랑하는 모든 분들.
행복한 명절연휴 보내시고 눈길에 꼭 안전운행 하시길.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첫 발 시작을 응원합니다.
완주의 그날까지 건강하고 보람찬 발걸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