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독서 : 지혜 3,1-9
제2독서 : 로마 8,31ㄴ-39
복 음 : 루카 9,23-26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참 축복받은 땅, 대한민국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참 축복받은 땅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보석같은 땅, 대한민국입니다.
비록 반토막 난 한반도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작고 보잘 것 없는 땅 같지만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하느님께는 소중한 나라요 기적을 이룬 나라입니다.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 하지만 인류의 희망과 미래가 여기 한국 땅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 역사상 10000여명의 순교자들을 배출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무이할 것입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전무후무한 순교의 역사가 한반도 작은 땅에서 펼쳐졌던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피로 적셔진 한반도 거룩한 땅입니다.
북경에서 이승훈이 1784년 세례를 받고 귀국한 이듬해인 1785년부터 시작된 박해는
1791년 신해박해를 거쳐 1866년 병인박해까지 거의 100년 동안에 이루어진 처절한 박해와 순교의 역사였습니다.
마지막 박해는 지금부터 150년 전에야 끝났으니 그렇게 오래 전에 있었던 역사도 아닙니다.
아마 한반도 역사상 이때처럼 불행했던 때도 없었을 것입니다.
나라의 통치기능은 완전히 마비되었고 계속된 민란에 가뭄 등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절망적 조선 땅에서 희망의 태양처럼 어둠의 땅을 환히 밝힌 천주교회였고,
요원의 불길처럼 번진 신자들의 전교활동에 순교였습니다.
작년 안식년 동안 저는 수도권의 대부분 순교성지를 방문하면서 한국순교성인들의 위대한 행적을 새롭게 배웠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느끼지 못한 위로와 치유, 평화도 느꼈습니다.
순교로 세상을 떠난 믿음의 선배들은 우리에게 보이는 오아시스 순교성지를 선물로 남겨주셨습니다.
참으로 아프고 힘든 신자들이 찾는 영육의 쉼터인 순교성지였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란 말이 있듯이 특히 한국천주교회는 순교자들의 교회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 안에도 순교영성의 DNA를 지닌 피가 흐르고 있음을 느낍니다.
참으로 믿음의 용사들이 순교자들입니다.
순교의 원조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하여 저는 집무실에 들어설 때 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자가 고상의 주님을 향해 거수경례를 드립니다.
피 흘리는 붉은 색 순교는 끝났다 해도 내적으로는 더 치열한 녹색순교를 살아야 할 현실입니다.
참으로 치열한 영적전쟁의 살아있는 순교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저는 감히 날로 극심해 가는 빈인간화의 원흉인 배금주의, 물질만능주의, 세속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순교영성뿐이라 주장합니다.
바로 순교 선배들처럼 믿음의 용사로서 사는 것입니다.
한국순교성인 축일 때 마다 부르는 다음 ‘순교자 찬가’(성가283)는
얼마나 우리의 믿음을, 순교의 믿음을 고무시키는지요.
-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여 높으신 영광에 빛나는 넋이여
칼 아래 스러져 백골은 없어도 푸르른 그 충절 찬란히 살았네.
한 몸을 헐어서 백두산 모으고 선혈은 쏟아서 동해를 이루어
무궁한 신앙의 나라를 닦으신 크신 공 하늘에 영원히 빛나리.
무궁화 머리마다 영롱한 순교자여
승리에 빛난 보람 우리게 주옵소서-
바로 오늘 9월20일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대한민국의 카톨릭 순교성인들을 기리는 자랑스런 축일입니다.
기념하라, 기억하라고만 있는 순교축일이 아니라 순교영성을 살라 있는 순교축일입니다.
바로 다음 복음 구절이 순교영성을 요약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아, 바로 이 길만이 구원의 길, 승리의 길,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사람의 길, 성인의 길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주님의 은총과 자비가 주어져, 거룩한 순교자적 삶입니다. 이 길 말고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신뢰하여 이 길을 걷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이런 주님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입니다.
작년 안식년 순례의 해, 800km 2000리 산티아고 길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듯,
미사가방을 무거운 배낭에 지고 33일 동안 매일 새벽마다 미사봉헌 후 끝없이 걷던 길들이 생각납니다.
흡사 주님을 등에 업고 가는 느낌에 전혀 힘들지 않게 신들린 듯이 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왜 혼란이요 방황입니까?
삶의 목표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이정표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현재진행형이신, 십자가를 지고 앞서 가시는 예수님이 우리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요 하느님을 가리키는 이정표입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따르는 십자가의 길이, 순교적 삶이 아닙니다.
주님 향한 믿음과 사랑으로 자발적 기쁨으로 주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지칠 줄 모르는 초록빛 열정의 사랑이 있어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릅니다.
강조할 바 ‘날마다’입니다. 날마다 하루하루 순교적 삶에 충실 하는 것이요 항구 하는 것입니다.
단번에 끝난 십자가의 길이 아닙니다.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 순교적 삶의 여정입니다.
멀리 내다볼 것 없이, 지난 과거를 볼 것 없이 날마다, 하루하루 오늘 지금 여기를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다시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넘어지는 게 죄가 아니라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게 죄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힘겨운 십자가에 얼마나 절망하고 넘어지며 다시 일어나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지요.
나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영적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끝까지 죽을 때까지 내 운명의 십자가를, 책임의 십자가를 지고 믿음의 용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사람입니다.
마지막 천국의 문을 여는 천국의 열쇠도 각자 지니고 가는 제 십자가뿐입니다.
그러니 내 십자가의 짐을 덜어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갈 수 있는 힘을, 은총을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이 주님과 우정의 관계, 사랑의 관계입니다.
주님과 관계의 깊이로 살아가는 믿음의 용사들입니다.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여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 주님과 우정의 사랑도 날로 깊어집니다.
아, 바로 주님과의 깊어가는 사랑의 관계가 내적 힘의 원천입니다.
이런 내적 힘이 기쁘게 주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고 충실히, 항구히 순교적 삶을 살게 합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모든 것이 부질없습니다.
마지막까지 영원히 살아남아있는 것은 주님과 맺은 깊은 사랑과 믿음의 관계뿐입니다.
주님과 관계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아, 주님과의 깊은 관계가 마음에 안정과 평화, 기쁨을 줍니다.
인생무상, 허무의 어둠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도 주님과 관계의 힘뿐입니다.
믿음의 힘, 사랑의 힘입니다. 주님께 갖고 갈 수 있는 것도 주님과 맺어진 관계뿐입니다.
이런 확신에서 터져 나오는 바오로의 확신은 바로 우리의 확신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숨 돌릴 틈 없이 쏟아지는 바오로의 고백은 바로 순교영성을 살아가는 우리의 고백입니다.
바로 이것이 참으로 놀라운 주님과 관계의 힘입니다.
영혼의 승리, 믿음의 승리, 사랑의 승리, 하느님의 승리를 상징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과 하나 됨으로 이런 확신의 고백입니다.
참으로 순교영성을 살게 하는 파스카 주님의 미사은총입니다.
순교영성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믿음의 용사입니다.
순교성인선배들의 믿음과 사랑은 면면히 우리를 통해 계승되고 있습니다.
믿음의 용사가 바로 지혜서가 말하는 의인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이들에 대한 내면의 묘사입니다.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평화를 누리고 있으며,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주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세상 누구도 하느님 안에서 순교영성을 살아가는 우리의 내적평화를,
불사의 희망을 앗아갈 수도, 파괴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찾아오실 때 우리의 사랑은 빛을 내고 불꽃처럼 타오를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 오실 때까지 노력과 은총으로 단련의 시험을 잘 견뎌 통과하는 것입니다.
빠스카의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십자가의 길을 통해
용광로 속의 금처럼 시험하시고 단련하신 우리 모두를,
살아있는 번제물로 받아들이시고 풍성한 은총으로 보답하십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우리 모두가 기쁨으로 환호하며 주님을 맞이하는 복된 미사시간입니다.
제 좌우명 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의 마지막연의 소개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인간에게는 평생 3번의 기회가 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내 자신은 어떤가를 생각해보십시오.
저에게 있어서 기억나는 3번의 기회를 한 번 적어 봅니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병원 체험이었습니다.
갑자기 아파서 병원 응급실로 가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병명도 모른 채 열흘 정도 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많이 아팠고, 또한 많이 외로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때 간절히 기도했었지요.
“하느님, 저 낮게만 해주시면 이제는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살겠습니다.”
두 번째는 신학교 4학년 때에 학생회장이 된 것이었습니다.
남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을 너무나 힘들어했던 제가 뜻하지 않게 학생회장으로 뽑힌 것입니다.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쓰는 저로써는 원형 탈모증이 생길 정도로 커다란 스트레스의 시간이었지요.
세 번째는 ‘새벽을 열며’ 묵상 글을 쓰기 시작한 2001년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지요.
혼자 공부하면서 자유롭게 살다보니 신부로서의 정체성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길이 제게 맞는 길인 것 같고, 그래서 그러한 고민으로 술도 참 많이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신부로서 더 노력하며 살자고 시작한 것이 바로 ‘새벽을 열며’ 묵상 글이었지요.
첫 번째 사건으로 신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사건으로 남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지금 여러 곳을 다니며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사건으로 글 쓰는 신부가 되었고, 신부로서 기쁘게 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바로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3번의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저는 너무나 힘들어서 정말로 죽고 싶은 심정이었고, 제발 피하고 싶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있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
런 측면에서 고통과 시련의 순간이 어쩌면 지금 내 자신에게 오는 특별한 기회가 아닐까요?
이렇게 생각해보니 3번의 기회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현들은 더 많지만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기 힘드니 3번만 이겨도
훌륭한 전환점을 가져올 수 있다고 인간에게는 평생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말했던 것이 아닐까요?
오늘 우리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을 맞이합니다.
우리의 순교자들을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그들은 과연 당시의 박해가 참 편했을까요?
정말로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을 테고, 신앙을 갖게 된 것을 후회하고 싶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결정적인 기회였던 것이지요.
지금은 과거의 그런 피의 순교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계속해서 찾아옵니다.
고통과 시련의 순간에서도 주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삶,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노력의 삶이
바로 우리의 결정적인 기회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나를 만들 수 있는 결정적 기회의 요즘이 될 수 있음을 굳게 믿으면 어떨까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욕망을 탐하는 우리들에게 순교자들의 순교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가장 큰 선물이 됩니다.
가시밭에서도 길을 만드시고 가시밭길에서도
생명의 꽃을 피우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죽어야만 살 수 있다는
힘찬 역설을 깨닫게 합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넘어서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가르쳐줍니다.
순교자 대축일을 통해 저마다의 목숨과 마주하는
은총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이 육화되듯 말씀이 십자가가 되고
말씀이 자신을 이기는 진정한 순교가 됩니다.
어둠을 밝히는 십자가의 빛은 목숨 다하여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힘을 다시 얻게 합니다.
이 시대의 순교영성은 사랑할 수 없는 우리들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숨 또한 순교자들처럼
향기롭기를 기도드려야합니다.
아픈 이들을 아껴주시고 사랑하신 주님처럼
참된 순교는 우리의 목숨이 집중해야 할 사랑의 매순간입니다.
가치 있는 생명을 위하여 생명의 한가운데에는
십자가의 순교가 있습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샛길이나 지름길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십자가의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우리자신의 영혼을 속이지 않는
순교자 대축일 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산다는 건 십자가처럼 하느님만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부정하지 않기에 순교는 참된 믿음이며 참된 봉헌이 됩니다.
사랑의 순교자
반영억 라파엘 신부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한국의 순교자들을 기억합니다.
우리교회는 백여 년 동안 신유, 기해, 병오, 병인 등 4대 박해를 통해 만 명 이상이 순교를 하였습니다.
그 순교자의 피가 오늘의 신앙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 시간 순교의 삶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순교라는 말은 신앙과 믿음을 증거 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 천주교회사에는 무수한 순교자들이 등장합니다.
순교자들에게 최고의 가치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순교자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면서 그 믿음의 가르침을 사랑으로 실천하였습니다.
지혜서의 말씀을 보면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서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지혜3,9)라고 적고 있는데
바로 순교자들을 두고 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실 순교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들의 행동이 바보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은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지혜3,1-9)라고 적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삶을 세상은 어리석게 보았지만 주 하느님 눈에 들었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는 영광의 특권을 허락하셨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할 것입니다” 하고
하느님을 위한 죽음이 곧 영생이라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김성우 안또니오는 박해 속에서
“나는 천주교인이요,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것이오”하면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이순이 누갈다는 옥중수기에서
“앉거나 눕거나 구하는 바는 오직 치명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순교성인 중 가장 나이 어렸던 유대철 성인은
1814년 기해박해 당시에 스스로 포도청에 찾아가 천주교 신자라고 밝혔고
옥리들이 담뱃대를 불에 달구어 쇠끝으로 그의 살을 지졌지만 태연자약하게 이 고통을 이겨냈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옥리들이 화젓가락으로 벌건 숯불을 집어 올려 그의 입에 갖다 대는데
유대철이 입을 크게 벌리자 깜짝 놀라 숯불을 바닥에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최해성 요한은 배교하면 한 고을을 통째로 주겠다는 회유를 거절하였습니다.
순교자들은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따를 것인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박해를 각오해야 했고 재산과 땅, 특권과 명예,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주님외의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기고 오직 주님만을 얻고자 했으며’
주님과 고난을 함께하고 그분과 함께 죽기를 원했습니다.
아무것도 예수님의 사랑에서 그들을 떼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환난도, 역경도, 박해도, 굶주림도, 헐벗음도, 위험이나 칼도 결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었습니다.(로마8,35-39)
그들이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꿋꿋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을 굳게 믿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126장에서는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이, 곡 식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하고 노래합니다.
지금 받는 수고와 땀은 후에 받을 축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시련과 역경,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축복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00여년의 엄청난 박해 속에서 신자수가 늘어갔고 감옥에 갇히고 처형당하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충성을 지켰습니다.
그 힘은 바로 죽어가는 순교자들의 모습에서 하느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면서도 평화롭게 하느님을 찬미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이 땅에 이룩하신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며,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잘 간직하여 지켜”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르면서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믿는다면,
우리는 순교자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간직했던 그 숭고한 자유와 기쁨이 무엇인지 마침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이제 그 삶을 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처음 신앙을 받아들일 때에 성직자나 수도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선교사도 없었습니다. 성경도, 기도서나 묵주, 신심서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스스로 자발적으로 공부하며 진리를 찾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은 무엇이든 풍족합니다. 그런데 주님 체험은 많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풍요 속의 빈곤’입니다. 은총은 많은데 담을 그릇이 없는 탓입니다.
복음에서 보듯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셨지만
버리지 못하고 십자가를 짊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그만한 은총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매우 자주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의해 도전받음을 체험합니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우리의 신앙을 양보해 타협하고,
복음의 근원적 요구를 희석시키며, 시대정신에 순응하라는 요구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 위에 최우선으로 모시고,
그 다음에 이 세상의 다른 온갖 것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원한 나라와 관련해서
보아야 함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순교자들은 우리 자신이 과연 무엇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그런 것이 과연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우리에게 도전해 옵니다.”(교황 프란치스코)
버린다는 것은 비운다는 것입니다.
비운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자리를 마련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지금까지 마음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덜어내야 함을 말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행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는 나의 취향과 성격, 나의 계획 등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살아온 삶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울타리 안에 갇혀 있지 말고, 더 크신 예수님에게로 나오라는 말씀입니다.
그 대표적인 모델로 바오로 사도를 기억해 봅니다. 그는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베냐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로웠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3,5-8)라고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장애가 되는 것들을 철저하게 버리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버리려고 할 때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자기가 지고가야 할 십자가입니다.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위한 삶에 익숙해져 왔는데 그런 것을 버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곧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희생과 아픔이 없이는 절대로 자신을 버릴 수 없습니다.
또한 자기를 버리지 못하면 자기 십자가를 질 수도 없습니다. 바오로는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했으며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겼습니다.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2코린 11,23.27).하고 고백합니다.
결국 십자가를 지는 것은 힘들게 고생하며 따라오라는 것이 아니라
순간마다 자신의 뜻을 비우면서 따라오라는 말씀입니다.
나의 구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풍요로워질수록 신앙생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타협할 거리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다하는 것인데, 나만 이러면 손해 보는 데 하면서 세상과 타협하고,
이권과 그리고 명예와 재물과 취미생활, 위신체면에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련과 역경 안에서도 주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께 의지하는 사람에게 자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지혜3,9)
현대의 순교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자기를 비우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 수고와 희생의 땀을 흘리는 것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 알퐁소는
“당신이 저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시오.
저는 저의 뜻을 버리고 당신의 뜻에 저를 맞추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주님의 뜻에 맞춘다는 것은 결국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이시고 우리에게 명한 가장 큰 계명도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주님의 뜻에 맞추는 삶을 살아가는 사랑의 순교자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밉거들랑 사랑스러워질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어쩌면 그날은 안 올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지금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모든 사람을 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의지를 죽이고 주님의 생각으로, 주님의 입으로, 주님의 손발로 움직이십시오.
이것이 오늘의 순교입니다. 사랑에 사랑을 더하여 사랑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그래도 사랑하여라
- 마더 데레사 -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여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거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참된 적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당신이 여러 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지 모른다.
그래도 만들어라.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주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길로 차일 것이다.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라.
씨 뿌리는 이의 비유
조욱현 토마스 신부
복음: 루가 9,23-26: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오늘은 신앙을 증거 하기 위해 피를 흘려 순교하신 이 땅의 순교자들을 기리는 날이다.
순교라고 하는 것은 신앙이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죽음을 당하거나 중형을 감내함을 뜻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형벌이 순교자를 만들지 않고 원인이 순교자를 만든다.”고 하였다.
즉 당하는 고통 그 자체보다는 그 지향하는 바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순교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만물 위에 사랑하는 애덕에 근거를 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완전한 신앙의 행동이다.
현 지금의 상황은 우리 선조들이 박해를 받던 그러한 시절은 아니다.
지금의 참된 순교의 정신이란 내 자신을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온전히 없이할 수 있는,
그래서 참 부활의 기쁨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의 특징은 세계의 교회사상 유례없는 자생적 교회라는 것이다.
선교사에 의해서 전래된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1779년 천진암 주어사에서 광암 이벽을 중심으로 시작된 강학회를 통하여
진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어 1784년 이승훈 베드로가 첫 영세를 받은 후
1836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올 때까지 두 분의 중국인 선교사가 잠시 활동했을 뿐
성직자 없이 오랜 기간 동안 신자들만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교회가 가꾸어져 왔다는 것이다.
교회는 그 후 100년 이상 혹독한 박해를 받았다.
여기에서 나온 순교자들이 만 오천여 위가 있다.
그 중에 많은 분들이 기록이 없이 순교하였기 때문에, 순교 성인의 반열에 들지 못한 분들이 많은 것이다.
지금 다시 교회는 순교자 시복 시성 움직임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거름이 되어 오늘의 교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의 자세를 말씀하시고 계시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는 조건은 바로 수난 당하고 죽으신 스승을 닮는 것이다.
그 한 가지는 “자기 포기”와 “십자가를 받아들임”이다.
자기 포기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귀중한 것이지만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그 귀중한 것을 버리는 것이다.
성직자와 수도자의 서원이 바로 그것이다.
결혼을 포기하는 것이, 만일 나에게 필요 없는 헌신짝을 버리는 것과 같다면 그것은 포기가 아니다.
그냥 필요 없으니까 버리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를 한 것이다.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이지만, 독신으로 하느님을 선택하기 위하여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다.
또 이 자기 포기라는 말은 주님을 따르는데 역행하는 자기를 버린다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은 주님을 철저히 따름으로써 자아를 완성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중심적인 자기를 버리고,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이루셨고 당신의 영광에 들어가셨듯이
우리 인간은 우리의 십자가 즉 우리 자신이라는 이 십자가를 통하여
나 자신을 완성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하느님과 일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 앞에 자신의 이기가 살려고 한다면 그는 생명을 잃을 것이며,
하느님의 뜻 때문에 자신을 죽이는 사람은 살 것이다(24절).
여기서 우리가 세속적으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얻지 못하고 망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25절). 그
러기에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한다면,
거부하는 그것 자체로 이미 우리 자신이 구원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씀이다(26절).
우리가 오늘 기리는 순교자들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내가 오늘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데, 즉 주님을 따르는데 역행하는 요소가 나에게 어떤 것이 있는가?
나 자신을 성찰하면서 나의 나약한 면을 과감히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죽이는 삶이 바로 그들의 순교정신을 본받는 것이며, 그들을 올바로 기리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순교자들을 공경한다고 하고, 모든 순교자들을 시성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성인이 되지 못하면, 오늘 기리는 우리 순교성인들과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분들을 기리고 이 축일을 지내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 그분들과 같은 성인이 되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이 미사를 봉헌하면서 우리 자신도 순교정신을 오늘 이 순간부터 살아
우리도 하느님 앞에서 그들과 함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이 되기를 결심하고
주님의 은총을 구하면서, 또한 많은 우리 순교자들이 시성될 수 있도록 기도하도록 하여야겠다.
부끄러움과 함께 성인들을 공경하는 오늘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지금 우리 교회는 위대한 신앙의 또 다른 선배들을 복자품에 올리려 합니다.
103위 성인과 125위 복자가 박해시대의 성인들이라면
지금 시복작업을 추진하는 분들은 안중근, 이광재, 김선영 등
근대 역사의 격랑 가운데서 신앙을 훌륭히 증거 한 분들이지요.
그런데 이런 시복작업을 추진하는 것이 제겐 왠지 흔쾌하지 않습니다.
비딱한 심사 때문만은 아닙니다.
언젠가 샤를르 드 후꼬의 정신을 따르는 후예들이
자기들의 창설자라고 할 수 있는 샤를르 드 후꼬를
성인품에 올리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역시 샤를르 드 후꼬의 후예들답게
참으로 작음을 충실히 살고 있고, 그렇게 노력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분들에 비춰 우리를 반성한다면
우리는 성인들의 삶은 그리 잘 알지도 못하고,
성인들의 후예답게 그 삶을 살려고 별로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성인이 그렇게 많은데도 또 성인을 만들려고 욕심 부린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시복추진을 하는 분들이
결코 성인들 되기에 부족한 분들이라거나
이 분들이 성인되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성인은 욕심으로 가지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얘기하기 위함입니다.
욕심으로 성인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러면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프란치스코가 얘기하듯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충실히 따른 그들의 삶을 닮고 따르기 위해서지요.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많은 성인을 그저 공경하고 본받자고 할 것이 아니라
본받고자 하는 한 분, 한분의 삶을 우리가 잘 알아야 할 것이고,
같은 의미에서 저는 이광재 사제의 삶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왜냐면 이광재 사제는 재속 프란치스코회원이기에
프란치스칸인 우리는 이분의 삶을 마땅히 잘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광재 사제는 1909년 2납 1녀 중 막내로 강원도에서 태어났는데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도록 다른 집에 보내려고 할 정도로
집안은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가난했지만 신앙은 깊은 집안에 태어났기에
20리가 넘는 길을 매일 미사를 다녔고 그런 신앙심 때문에
본당 신부님의 눈에 들어 신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신학교에서는 <8품 신부>라는 별명을 동료들로부터 들을 정도로
성실하면서도 작고 순박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 그였기에 1938년 사제 서품을 받은 그가 1937년
오기선 신부님과 함께 첫 번째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이 된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제가 되고 난 뒤의 훌륭한 생애를 나눠서 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 남달랐습니다.
어렸을 때 워낙 가난했기 때문인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이 컸고
그래서 가난한 아이들의 장학금을 대주거나, 한 겨울 거지에게는
자신의 버선을 벗어 준 것과 같은 일을 많이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선행을 다른 사람에 돌리곤 하여
가난과 겸손과 사랑이 잘 조화를 이룬 프란치스칸 사제였습니다.
두 번째는 목자로서의 성실함입니다.
신학생 때부터 성실함으로 동료들의 존경을 받은 그는
사제가 된 후에도 목자로서의 역할을 아주 성실히 수행하였습니다.
40리 떨어진 곳에서 늦은 저녁 병자성사를 청하자 만류에도 불구하고
영혼을 구하는 일에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그 밤에 다녀오다
호랑이를 만나 죽을 뻔한 적도 있고,
농번기에는 일하는 신자들을 위해 새벽 3시에 미사를 드려주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나 공산당의 감시 속에서도 성무집행에 성실하였고,
시골신자들이 시간관념이 없어 아무 때나 성사를 청해도
아무 불평 없이 성사를 거행한 성실한 목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스러움은 무엇보다도 목숨을 건 사랑이었고
프란치스칸인 콜베 성인처럼 죽기까지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해방과 더불어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갈리고 이북이 공산화되자
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박해를 피해 남쪽으로 넘어오게 되었는데
그도 남쪽으로 넘어올 수 있었지만 자신은 신자들을 위해 남아있으면서
양양을 통해 피난하던 이들을 목숨을 걸고 그 피난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6.25 전쟁이 일어나고 그마저 체포되어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신앙 때문에 순교를 하게 되었는데
총을 맞고 죽어가던 사람들이 물을 달라고 하자
그 역시 총을 맞고 죽어가면서도 “응, 내가 떠다 주지”,
“응, 내가 가서 구해주지”하였다고 생존자들은 증언합니다.
너무도 간단하게 이광재 사제의 삶을 더듬으면서 생각게 된 것은
마지막 죽기까지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한 삶도 거룩하지만
일생 작은 일, 자기에게 맡겨진 일, 자기에게 맡겨진 신자들에게
자기를 내어준 그의 작은 성실함이 어쩌면 더 거룩하고
프란치스칸다운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칸 후배로서 부끄러움과 함께
선배의 훌륭함과 거룩함을 공경하며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류해욱 요셉 신부
오늘 우리가 한국 순교자 대축일을 지냅니다.
오늘 이 대축일의 정확한 명칭을 아시는 분 계십니까?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 하상 바오로와 그의 동료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길지요.
왜 이렇게 이름이 깁니까?
그냥 한국 순교자 대축일 하면 더 쉬울 텐데 왜 굳이 두 분의 이름을 명칭에 넣었겠습니까?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첫 사제일 뿐만 아니라 참으로 뛰어난 분이며
한국 교회의 자랑이요 한국교회사에 우뚝 선 거봉으로
한국 순교 성인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지요.
그런데 한 사람이면 되지 왜 굳이 정하상 바오로의 이름이
공식 명칭에 들어가 있는 가라는 생각을 해 보신 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7월 5일 성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에 대해 강론에서 말씀드렸으니
오늘은 성 김대건 신부와 함께 103위 한국 순교 성인의 대표인 성 정 하상 바오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신유박해로 불리는 대박해로 주문모 신부를 비롯해 이승훈, 정약종, 홍교만, 최필공, 김현우 등
교회 지도자들이 대거 잡혀서 참수되고 전국적으로 박해가 치열하여 위기에 놓여 있던
한국천주교회의 부흥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정열적으로 일하다가 순교의 영예를 안은 분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평신도들에게 사표가 되기에 사제인 김 대건 신부와 더불어
평신도로서 순교 성인의 대표로 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하상은 아버지 정약종과 어머니 유소사 사이에 1785년 출생하여
1839년 서소문 형장에서 44세의 일기로 순교를 하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 정약종은 한국 천주교회 창설에 참여한 초기 평신도 지도자로 명도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주교요지’라는 교리서를 저술하여 일반 대중들이 쉽게 천주교 교리를 접할 수 있도록 했던 뛰어난 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정약종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였고, 삼촌들인 정약전은 흑산도로,
이조 시대의 가장 탁월한 저술가인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한국천주교회사를 쓴 달레는 이렇게 서술합니다.
“박해로 인해 추방되고 파산을 하고 여러 사람이 아직도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정씨 일가는
천주교란 말만 들어도 벌벌 떨며, 그와 같은 교를 계속해서 믿으려 한다는 생각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친척들은 정하상과 그의 집안 식구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방해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통렬한 비난, 협박, 멸시, 조소 심지어는 학대까지도 모두 동원하였다.”
가문이 엄청나게 중요하던 당시 시대상에서 이런 가문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정 하상이 훌륭한 신앙을 지니고 교회의 지도자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와 형의 순교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의 가정교육이 탁월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범한 성품의 아버지와 뛰어난 부덕을 지닌 어머니의 영향으로 정 하상은 일찍부터 두각을 드러내면서
오로지 하느님에 대한 열정으로 교회를 위해 일하고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학문 연구에 열중하였습니다.
달레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의 위대한 마음은 결혼 같은 것은 염두에도 두지 않았고, 그의 고귀한 심경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있었다.”
박해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교회를 다시 살리기 위해 20세도 되기 전에
1816년 북경을 다녀 온 정하상은 그 후 본격적으로 천주교회 부흥 운동만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치게 됩니다.
우선 성직자 영입을 위해 교황과 북경에 눈물로 편지를 썼는데
특히 유진길과 더불어 한국교회의 대표로서 정하상이 쓴 교황님께 올린 편지는
조선 교회의 비참한 실정을 소상히 기록하고 손을 내밀어 절망의 심연에서
그들을 구해 달라고 간청하는 내용으로 교황청의 심금을 울리게 됩니다.
그 결과 유방제, 모방, 샤스땅 신부들과 앵배로 주교를 모실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모방 신부가 한국에 도착한 즉시 세 명의 신학생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보낼 때
그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정하상은 모셔온 신부님들을 집에 모셨고 그분들의 비서,
곧 오늘날의 사무장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신자들의 지도자였으며 대표이었습니다.
그의 동료 순교자인 이 베드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와 모든 신자들이 증언할 수 있는 바이지만, 그는 참으로 덕성스럽고 굳세었으며
충직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리에 무척 밝고 놀라울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이러한 재능과 덕 때문에 신자들은 그를 진정으로 장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정하상은 당시 재상에게 올리는 글인 상재상서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이 글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가 어떤 신앙을 지녔으며 그의 하느님과 한국교회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털끝만한 것도 다 하느님의 힘입니다.
낳으시고 기르시고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죽은 후에 받을 상은 그만두더라도 현재 받고 있는 은혜가 이미 무한하여 비할 데 없으니
우리가 마땅히 일생을 다하여 어떻게 받들어 섬겨드려야만 그 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이 도리를 한 집안에서 실행하면 집안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며,
한 나라에서 실행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이고,
전 세계에서 실행하면 온 세계가 평화로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는 정신이 흐려서 깨닫지 못하다가 죽은 후에 후회하고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목을 끊어버릴 큰 도끼가 앞에 있고 몸을 삶을 큰솥이 뒤에 있더라도 굳건히 신앙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목숨을 걸고 생명을 바쳐서 천주의 참된 가르침을 증거하고 천주의 영광을 나타냄은 저희들이 해야 할 본분입니다.
이 몸 또한 머지않아 죽어야 할 몸입니다.
이렇게 감히 말해야 할 때를 만나서 한번 머리를 쳐들고 길게 외치지 않고 슬프게 입을 다물고 죽는다면
산더미와 같이 쌓인 감회를 장차 백대가 지닌다 하더라도 다 풀지 못할 것입니다.”
1839년 기해년 6월 정하상은 체포되어 순교의 월계관을 받게 됩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한국천주교회의 부흥을 위해 애쓰던 그는
결국 순교로서 신앙의 탁월한 증거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순교 성인들의 축일을 지내면서 순교의 의미와
오늘날 우리가 순교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순교는 무엇보다도 신앙에 대한 증거입니다.
하나 뿐인 목숨을 바쳐서까지 믿는바에 대한 확신을 지니고 그것이 바른 행위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 하는 것은 참으로 하느님의 은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 우리는 얼마만큼 내가 믿는 바에 대한 확신을 지니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 하고자 애 쓰는가 반성하게 됩니다.
순교는 참으로 커다란 사랑과 용기에서 나올 수 있는 결단입니다.
자기의 목숨보다도 하느님을 더 사랑하는 마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고 그 사랑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고 이 또한 하느님의 은총 없이 불가능한 행위입니다.
우리 자신들의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돌아보며 더 큰 사랑을 지닐 것을 다짐하며
순교 성인들의 전구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순교 정신은 한마디로 희생정신이라 하겠습니다.
희생이란 자기를 나누고 남을 위해 기꺼이 자기를 버리는 행위입니다.
오늘 순교 성인들의 축일을 지내며 우리가 하느님과 교회,
그리고 우리의 이웃을 위해 나는 무엇을 희생할 수 있는지,
목숨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이 시대에 나는 내가 지닌 무엇을 나눌 수 있을 것인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