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존자님의 맏상좌 화엄스님의 속명은 선재이다. 그렇기에 더욱 선재동자의 구도이야기를 설하는 ‘입법계품’을 좋아했다.
부처님의 크고 바른 깨달음과 시공을 초월하여 두루해 있는 온 우주의 실상인 비로자나 부처님의 세계를 보여주는 경전인 <대방광불화엄경>,
즉 흔히 말하는 화엄경의 마지막 부분이 바로 이 「입법계품」이다.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보리심을 내어 53 선지식을 두루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받아 수행을 완성하여 마침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느 날 화엄스님은 대웅상적광전 법당에서 연로한 존자님을 모시고 사부대중에게 그동안 스승이 수없이 말씀하신 화엄경 입법계품을 간단히 요약해서 강의하기로 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문수사리 보살은 선재동자에게 가락국의 화합산에 있는 공덕운 비구를 제일 먼저 방문해 보살행에 대해 가르침을 구하라고 권했다.
2. 공덕운 비구에게서 염불삼매를 배웠다.
3. 해운 비구에게서 보안경의 가르침을 들었다.
4. 선주 비구에게서 걸림없는 법문을 배웠다.
5. 미가 의사에게서 윤자장엄광경을 들었다.
6. 해탈 장자에게서 부처님의 장엄한 걸림 없는 법문을 들었다.
7. 해당 비구에게서 근심을 떠난 안온한 법문을 들었다. 한 중생의 번뇌를 끊기 위해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일체 중생의 번뇌를 끊고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보리심을 일으킨다.
8. 휴사 우바이에게서 근심을 떠난 안온한 법문을 들었다. 한 중생의 번뇌를 끊기 위해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일체 중생의 번뇌를 끊고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보리심을 일으킨다.
9. 비목다라 선인에게서 보살의 무너지지 않는 지혜의 법문을 깨달았다.
10. 방편명 바라문에게서 보살의 무한한 법문을 배웠다. 선재가 칼산에 올라가 불구덩이에 몸을 던져 보살이 편안히 머무르는 안주삼매를 얻을 수 있었다.
11. 미다라니 동녀는 반야바라밀로 두루 장엄한 법문을 설하였다. 여기서는 여자도 가르침을 설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2. 선견 비구에게서 수순보살등명의 가르침을 받았다.
13. 석천주 동자에게서 일체교술지혜의 법문을 배웠다. 이 동자는 문수보살에게서 산수를 배웠기 때문에 교묘한 지혜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다.
14. 자재 우바이에게서 무진공덕장장엄의 법문을 받았다. 자재우바이의 몸에서는 묘한 향기가 감돌았고, 누구라도 이 향기를 맡으면 탐욕과 욕망이 사라져 버렸으며, 그 소리를 들으면 즐거움으로 가득 넘쳤고, 그 모습을 보면 욕심을 버릴 수 있었다.
15. 감로정 장자에게서 여의공덕보장의 법문을 배웠다.
16. 법보주라 장자에게서 큰 서원을 만족하는 법문을 얻었다.
17. 보안묘향 장자에게서 모든 중생을 환희하게 하는 법문을 얻었으며, 보안묘향 장자는 모든 사람들의 병을 알고 있었다.
18. 만족 왕에게 보살환화의 법문을 들었다. 나는 몸과 입과 뜻으로 해치려는 마음을 내지 않거늘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랴. 사람은 바로 복밭으로서 온갖 선근을 기른다. 사람은 곧 온갖 공덕을 낳는 모태이다. 내가 이웃에게 보시를 베풀거나 하면 그 공덕은 분명히 되돌아온다.
19. 대광 왕에게서 보살의 대지당행삼매의 법문을 들었다. 이 삼매는 대자비행을 말한다.
20. 부동 우바이에게서 보살의 무너지지 않는 법문을 들었다.
21. 변행외도에게서 보살이 모든 선정에 도달하는 수행의 법문을 들었다.
22. 청연화향 장자에게서 일체의 모든 향기를 아는 법문을 들었다. 계율을 지키면 지혜가 자재로워지고 마음은 항상 평정하여 외부의 상황에 의해 움직이는 일이 없어진다.
23. 자재 뱃사공에게서 대비당정행의 법문을 들었다. 태어나고 죽는 번뇌의 큰 바다 속에 있더라도 결코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4. 무상승 장자에게서 일체의 과보에 이르는 보살의 정행장엄 법문을 들었다.
25. 사자빈신 비구니에게서 보살의 모든 지혜 법문을 배웠다. 이 비구니는 국왕의 동산인 일광림에 머무르며 불법을 설하여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하였다.
26. 비수밀다 여인에게서 욕심을 떠나 실제의 법문을 들었다. 이 여성은 보는 사람에 따라 모습을 자재롭게 변화시킬 수 있었다. 더욱이 만약 나와 이야기하는 중생이 있으면 그는 걸림없는 묘한 음성삼매를 얻고 만약 내손을 잡는 중생이 있으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나아가는 삼매를 얻느니라.
27. 안주 장자에게서 멸도에 드는 일이 없는 보살의 법문을 배웠다. 일년에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법을 아는 것이다. 일념의 념이란 ‘현재의 마음’을 말한다. 이 현재에 생기는 마음, 지금 집중하는 마음이 중요함을 뜻하는 것이다.
28. 관세음보살에게서 대자비법문광명의 행을 닦았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큰 서원을 세웠다. 즉 모든 중생의 갖가지 공포와 근심을 없애 주려는 서원인 것이다.
29. 정취 보살에게서 보살보문속행의 법문을 배웠다.
30. 대왕천에게서 보살운망의 법문을 받았다. 모든 보살의 물은 번뇌의 불을 끄고, 일체중생의 탐애를 태운다. 모든 보살의 바람은 일체 중생의 집착하는 마음을 다 흩어버리고, 보살의 금강은 일체의 ‘나’라는 생각을 없애 버린다.
31. 안주라는 도량지신에게서 보살의 무너지지 않는 창고의 법문을 배웠다.
32. 바시바타 야신에게서 보살의 광명이 모든 법을 두루 비추어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무너뜨리는 법문을 열었다. 이 야신이 훌륭한 대자비를 갖추게 된 것은 많은 부처님을 모시고 오랫동안 공양한 결과였다.
33. 심심묘덕이구광명 야신에게서 적멸정락정진의 법문을 받았다. 이 야신은 제 1선에서 제 4천까지의 깊은 선정을 되풀이하여 체험하였으며, 선재동자에게 좌선을 하도록 권하였다.
34. 회목관찰중생 야신에게서 보살의 보광희당 법문을 배웠다. 야신은 전혀 집착하지 않지만 우리 중생들은 세상의 갖가지 일에 집착하고 애착하여 망상을 없앨 수 없다. 부처님은 그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고 법의 힘으로 가르침을 연설하여 중생들의 집착을 소멸시켜 주신다. 선재동자는 희목천같이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하였다.
35. 묘덕구호중생 야신에게서 보살이 중생들을 교화하는 법문을 깨달았다.
36. 적정음 야신에게서 한량없는 환희장엄의 법문을 받았다. 적정음 야신은 다른 야신들처럼 이런 수승한 법문을 체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에 많은 부처님을 공양하였는데 최후에는 노사나 부처님을 공양하였다.
37, 묘덕수호제성 야신에게서 자재로운 음성의 법문을 들었다. 묘덕수호제성 야신은 깊고 훌륭한 덕으로 모든 성을 수호하였다.
38. 개부수화 야신에게서 무량한 환희로 만족할 줄 아는 광명의 법문을 들었다. 개부수화는 모든 나무에 꽃을 피울 수 있다.
39. 원용광명수호중생 야신에게서 응화에 따라 중생들을 각성시키고 선근을 기르는 법문을 들었다. 원용광명수호중생 야신은 큰 서원에 의해 용맹 정진하는 광명으로 중생들을 수호하는 야신이다.
40. 묘덕원만신에게서 룸비니 동산의 훌륭한 덕이 원만한 천신에게서 태어나는 것이 자재한 법문을 들었다.
41. 구이 여인에게서 일체 보살의 삼매 바다를 분별하고 관찰하는 법문을 들었다.
42, 마야 부인에게서 큰 서원과 자혜, 환술의 법문을 들었다. 이 가르침을 닦은 마야 부인은 노사나 부처님의 어머니가 되어 싯달다 태자를 낳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마야 부인은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이기도 하였다.
43. 천주광 동녀에게서 걸림 없이 자재롭게 청정한 장엄을 생각하는 법문을 들었다.
44. 변우동자는 아무 것도 설하지 않고, 모든 예술을 잘 아는 동자들을 소개할 뿐이었다. 변우는 동자의 스승으로서 이 가르침 또한 훌륭한 법문이다.
45. 선지중애 동자에게서 모든 예술을 잘 아는 동자로부터 42자의 반야바라밀 법문을 들었다.
46. 현승 우바이에게서 의지할 곳 없는 도량의 법문을 들었다.
47, 견고해탈 장자에게서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생각의 법문을 들었다.
48. 묘월 장자에게서 깨끗한 지혜광명의 법문을 들었다.
49. 무승군 장자에게서 다함이 없는 모양의 법문을 들었다.
50. 시비최승 바라문에게서 성원어의 법문을 들었다. 성원어란 ‘진실하고도 허망하지 않는 말’이라는 뜻인데, 이 가르침에 의해 무량한 공덕이 생긴다고 한다. 이것은 또한 불퇴전의 법문인 “이전에 물러난 적도 없고, 현재에도 물러나지 않으며, 앞으로 물러날 일도 없다”라는 가르침이다.
51. 덕생 동자
52. 유덕 동녀의 두 명의 선지식들에게서 환주의 법문을 들었다. 이 세상과 일체의 모든 것이 덧없이 머무르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53. 미륵 보살
선재동자는 남쪽의 해간국의 대장엄장원림 속에 있는 미륵의 누각으로 갔다. 선재동자는 이 누각에 있는 모든 보살들을 찬탄한 후 합장하고 예배하였다. 그리고 미륵보살을 만나 뵙고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고 보살의 도를 닦는 것이 좋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미륵보살은 선재동자를 보며 그의 물러나지 않는 수행을 칭찬한 후 “이 동자는 끊임없이 정진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많은 선지식을 구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마음속에 싫증내지 않고 머리에 붙은 불을 끄는 것과 같다”라고 하며 선지식을 가까이 한 것을 칭찬하였다.
미륵보살은 선재동자에게 문수보살의 처소에 가서 가르침을 구하도록 권하였다. 그 이유는 문수보살이 바로 보살의 서원과 수행을 완성한 분이고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이며 보살들의 스승이고, 중생들을 교화하고 있는 훌륭한 보살이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서 가르침을 받으라고 한 것이다. “문수보살은 그대의 선지식이니”라고 단정하신 미륵보살의 말씀을 따라 선재동자는 무수보살 곁으로 갔다.
54. 문수사리 보살
선재동자는 미륵보살에게 예배하고 그의 주위를 돌며 물러났다. 선재동자는 지금까지 111개의 성을 지나 마지막으로 보문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선재동자가 일심으로 문수보살을 만나 그 자애로운 얼굴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자, 그러한 마음의 힘이 통하여 문수보살이 보문성에 나타나 오른손을 뻗어 선재동자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믿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믿는 마음이 없으면 마음은 근심에 빠지고 정진할 마음도 없어지며 보살행을 실천할 수 없게 되어 부처님의 법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고 설명하였다.
55. 보현 보살
문수보살로부터 가르침을 들은 선재동자는 환희하며 보현보살의 도량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문수보살은 그대로 자태를 감추었다. 선재동자가 보현보살을 만나 뵙고 싶다고 생각하며 일심으로 염원하자 열 가지 상서로운 모양이 나타났다.
① 잠깐 동안에 모든 국토에 몸을 두루 나타내는 것
②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
③ 바른 법을 듣고 받아 지니는 것
④ 부처님의 법륜을 생각하는 지혜바라밀 법문
⑤ 자재한 지혜바라밀 법문
⑥ 끝없는 변제의 지혜 법문
⑦ 반야바라밀로 모든 법을 관찰하는 법문
⑧ 일체 법계의 큰 방편바라밀 법문
⑨ 중생들의 바라는 마음을 아는 지혜바라밀 법문
⑩ 보현보살의 지혜바라밀 법문
그때 보현보살이 오른손으로 선재동자의 머리를 쓰다듬자 동자는 한량없는 삼매문을 얻을 수 있었다. 보현보살이 “동자여, 나의 불가사의하고 자재로운 신통력을 보았는가”라고 묻자 선재동자는 “네,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또한 보현보살은 “나의 청정한 법신을 관찰하여라”라고 선재동자에게 말했으며 계속해서 “비유하면 정교한 환술사가 갖가지 일을 잘 나타내는 것 같이 부처님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갖가지 몸을 나타내 보이네, 비유하면 밝고 맑은 해가 세상의 어둠을 비추어 없애는 것같이 부처님의 밝은 지혜의 해는 과거, 현재, 미래의 어둠을 모두 없애네”라며 가르침을 설했다. 이 법을 듣고 환희하며 마음으로 믿어 심치 않는 사람은 위없는 도(무상도)를 빨리 성취하여 모든 부처님과 동등해진다.
화엄스님이 이렇게 입법계품 강의를 마쳤다. 존자님은 흐뭇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말씀하셨다.
“이젠 화엄의 법을 물려주어도 되겠네.”
그리고 화엄스님을 화종주로 인가하셨고, 사부대중은 우레와 같은 손뼉을 치며 축하해 주었다.
출처 : 진조스님 / 지리산 대화엄사 이야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