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님의 낭독입니다
꽃돌
한 천년쯤 붉은 심장에 불 지피면
돌에서도 모질게 꽃이 피나
시들지 않는
그러나 아무도 꺾어갈 수 없는,
설상가상을 견디며 닳고 닳은 마음
지울 수 없는 문신으로 서로의 상처를 파고든 흔적
박제, 라는 사랑의 방식이 화석이라면
벙어리 냉가슴에 활활 벙근 꽃불을
보라, 저 광염에 차갑게 은폐된 마그마의 불꽃을
모두 숨기고 숨죽여 살았다
진앙에서 멀어지며 에둘러 분화한
모란, 해바라기, 장미, 매화… 꽃송이의 여진들
향기를 버리느라 자주 돌이킬 수 없었다
색을 버리느라 끝내 눈이 멀었다
벼린 꽃부리로 돌의 뼈마디에 새긴
짐승의 눈빛, 달빛의 울음, 낙뢰의 칼날
접몽이었나, 어디선가 모시나비 한 쌍이
돌의 깊은 적막을 열고 불현듯 날아드는 것인데
한 천년쯤 참어讖語를 속으로 삭이면
돌에서도 참하게 꽃 잎사귀 돋아나나
정지홍님의 낭독입니다
눈맛
하늘 언저리 퍼질러 앉아
누가 제빙기를 살살 돌리고 있나
구메구메 눈발이 실실 날리고 있다
먼 산은 된바람에 몇 차례 몸을 털고
몸 턴 자리에 다시 눈은 쌓이고
그렇게 얼어붙었다 녹았다 사라지던
한갓진 마음 구석 응달의 잔설처럼
희부윰 쓸려갔다 잊을 만하면 오늘같이
웅크린 모과나무 발등을 적셔 오기라도 하면
너를 털어냈던 자리에 문득문득
다시 네가 쌓이는 이 순간만큼은
첫사랑이란 이름을 꺼내 봐도 좋으리
찻잔 둘레에 온기가 사무쳐 오고
얼음장 밑에 숨겼던 수줍은 연서 몇 문장이
칠락팔락 송이눈처럼 가슴에 흩뿌려 오면
읽던 신문을 접고 누런 잔디 마당에 나가
아아아, 입 벌리고 눈맛 좀 다셔도 좋으리
어디에 안착할까 이리저리 눈치 보는
눈송이의 비행을 감상하는 구경꾼 되어
그냥저냥 밥맛 잃고 눈길만 걸어 봐도 좋으리
최지원 시인외 1
가곡 '눈' 을 불러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글라디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
노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