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일들을 보면 웃을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온통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윤리도덕, 어떤 것을 봐도 웃을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심지어는 그래도 신선해야 될 종교계를 봐도 그렇습니다.
올해는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더욱 더 우울해지고 어두워지게 되었습니다.
미국 아리조나주에 20년 동안 관절염으로 고생 고생하던 데이비드 제이콥스라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관절염을 고치기 위해서 병원치료, 물리치료, 건강요법 등등 안 해 본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통증을 견딜 수 없을 때면 잠시나마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코미디비디오를 보거나 유머 책을 읽곤 했습니다.
이것들을 보면서 억지로라도 실컷 웃고 나면 통증이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병원 약보다도 웃는 것이 통증을 이길 수 있는
어떤 능력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복용하던 약을 다 버리고 약병 속에 유머를 적은 종이 쪽지를 집어놓고
하루 몇 차례 씩 종이를 꺼내 읽으면서 실컷 웃고, 또 웃으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20년 동안이나 고생 고생하던 관절염을 고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에 200km 자전거 타기 대회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땄다고 합니다.
저가 어릴 때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코미디프로가 생각납니다.
많은 코미디언들이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국민들의
애환을 달래주기 위해서 웃음을 만들어냈습니다.
코미디 프로를 보며 배꼽이 나올 정도로 웃고 나면 한결 삶의 여운과 생동력이 살아 움직였습니다.
이숍 우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많은 재산을 가진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부자에게는 사랑하는 두 딸이 있었는데 아주 귀엽고 예뻤습니다.
부자는 두 딸을 너무너무 사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큰딸이 원인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부자는 유명한 의사를 불러서 큰딸의 병을 고쳐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큰딸은 병을 앓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부자는 죽은 딸이 너무 불쌍해서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러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장례식 날 돈을 받고 울어주는 여자들을 여러 명 부르기로 했습니다.
장례식 날이 되어 울어주기 위한 여자들은 머리를 풀고 가슴을 치면서
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둘째딸이 여자들이 우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 여자들을 좀 보세요.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인데
저렇게 가슴을 치면서 슬프게 울고 있어요."라고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놀라지 말아라. 얘야. 저 여자들이 그렇게 슬프게 우는 것은 죽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일로 돈을 받기 위해서란다."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가슴을 치면서 울기도 하는데
우리는 우리의 영혼과 심령을 새롭게 하고, 가정의 분위기를 세신하기 위해서
웃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울면 슬픈 분위기,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어내지만
웃으면 밝고 맑은 분위기, 환한 분위기, 행복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요.
연기자들은 슬프지 않아도 울고, 기쁘지 않아도 웃습니다.
연기를 위해서, 직업상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직업상으로도 아니고, 연기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행복한 삶을 위해서 웃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기뻐하라는 말씀을 수없이 써서 보냈습니다.
기뻐하는 것이 웃는 것이지요.
웃지 않고 기뻐할 수 없지요.
웃기 위해서는 마음에 평안이 있어야지요.
마음에 평안이 있어야 전원주씨 버전처럼 "하 하 하" 하면서 크게 웃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스트레스를 웃음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얻어지는 평안으로도 크게 소리내어 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주어지는 평안은 잠시잠깐에 불과합니다.
목이 마르고 컬컬할 때 마시는 한 모금의 냉수도 시원함을 줍니다.
하지만 다시 목이 마르고 컬컬해집니다.
영원한 평안과 기쁨의 원천은, 영원히 시원함을 주는 생명수의 원천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지는 은혜여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요한복음14;27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했습니다.
요한복음6;33에서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였습니다.
잠언17;22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우리의 마음이 즐거워서 우리의 영혼의
모든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말끔히 치료해 줄 수 있는 양약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초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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