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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이든 지방이든, 무엇을 위해 왜 존재하는지 우리 언론은 자신에게 쉬지 않고 묻고 있을까? 긍정하기 어렵다. 학생 때, 민주주의 수업에서, 입법, 사법, 행정으로 요약하는 3부는 서로 감시와 견제하며 권력 집중을 방지한다고 배웠지만, 현실과 달라 수긍하기 어려웠다. 군사독재정권이 물러선 지금도 갸웃할 수밖에 없다. 포악한 군홧발은 자취를 감췄지만, 자본이 정권 이상의 권력을 휘두르는 현실이 아닌가. 언론은 4부 역할에 충실해 왔는가? 3부를 시민 시각에서 감시하는가? 인정하기 어려운데, 금권에 흔들리는 모습은 거의 명확하다.
경북 지역의 한 언론이 “대통령의 국빈 방미 이후 지역 산업계에도 경제외교의 훈풍이 불고 있다” 하며 용비어천가를 불러댔다. 누구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겠는데, “세계 1위 SMR 기업인 미국 뉴스케일파워와 GS에너지, 두산에너빌리티, 삼성물산이 경북 울진에 SMR 모듈 6개로 구성되는 소형 원자력발전소를 2030년까지 건설해 462㎿(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할 계획”이라며 들뜬 표정을 짓는 걸 보면, 용비어천가는 정권에 그치지 않는다. “경북 원전산업의 글로벌시장 주도가 현실화의 길로 급가속”을 하게 됐다고 보도자료를 근거 없이 인용한다.
“자유”주의를 선도하는 국가, “미국은 선진국”이므로 후진국인 우리나라가 배워 따라야 한다는 20세기 보수론자의 신조가 여전하다. 4반세기 가까이 지난 21세기에도 부릅뜨며 외치는 자유와 선진국 타령을 광장 한구석에서 듣는다. 그들이 앞세우는 태극기가 어처구니없고, 일장기와 이스라엘 국기가 곁들어지니 우스꽝스러운데, 지금은 기후위기 시대다. 미래세대에 닥칠 위기를 진정성 있게 파악하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 현 정권은 어디에 서 있을까? 기후위기를 이끈 선진국에 책임을 묻는 위치에 있는 건 분명해 아니다. “미국의 자유”에 있는 걸까?
국빈으로 선진국 미국을 다녀와 그런지, 최고위 선출직 공직자의 발언이 대담하기 그지없다. 미래세대의 위기를 부추기는 어떤 “자유”를 추진하는데, 실존적 정체는 무엇일까? 미 선진국에서 어떤 경제인을 만났는지 알 수 없는데, 미국 자본이 원하는 “자유”에 현혹된 모습이 역력하다. 물론 균형 잡힌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가 2년 전, 2022년 2월 17일 우리나라에 보도된 보고서, 뉴스케일파워의 소형모듈반응로(SMR)가 지나치게 비쌀 뿐 아니라 위험하며 활용할 가능성이 너무 불확실하다” 밝힌 사실을 친절하게 외면한 것이다.
시민사회는 요즘 언론의 주장에 관심이 거의 없다. 자금줄이 약해진 언론은 독자보다 권력에 아부하려는 경향이 심해지고 그럴수록 신뢰는 무너지는데, 중앙이든 지방이든, 언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정권이든 금권이든, 아부할수록 버틸 재간이 생긴다고 믿는 까닭인지 모른다. 소형모듈반응로의 경북 유치 약속에 환호작약한 우리 언론은 어떤가? 어떤 위치에 있기를 자처하는가?
소형모듈원자로(SMR)는 발전 용량이 300메가와트급 정도인 소형 원자력 발전소다. (이미지 출처 = KTV 국민방송 채널 동영상 갈무리)
미래세대가 처한 기후위기가 시시각각 다가온다. 하필 이때 소형모듈반응로가 대안이라는 미 경제인의 주장에 이 땅의 금권과 정권은 현혹되었을까? 그런 모습이 역력한데, “한·미가 ‘경쟁’에서 ‘원팀’으로 SMR 글로벌시장 공동 진출에 나섬에 따라 원전 시장의 ‘절대 강자’로 자리잡을 것”으로 해석한 정권에 아부한 언론은 금권에 아부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모듈화해 운송·조립하면 경제성이 뛰어나고, 도시, 공단, 광산, 섬, 사막 등 필요한 곳에 설치해 전력을 공급할 수 있으며, 수소생산, 물류혁명, 우주탐사까지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는 우리 자본의 신기루를 사실처럼 늘어놓았다. 실용성은 둘째이고, 정작 문제는 안전인데, 미래세대의 처지에서 안전은 확보되었던가?
소형이므로 안전하고 경제적인가? 보도자료를 베끼기 전에 취재했는가? 상용화 가능성을 높였다고 자평하는 뉴스케일파워는 미국에서 어떤 시설도 가동하지 못한다. 안전뿐 아니라 경제성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다르다. 항공모함이나 잠수함에 적용하는 기술을 발전사업에 적용하는 데, 핵이 그렇듯, 어려움이 크다. 표현을 자제할 자유가 있으니 안전성은 불문에 그치더라도, 경제성을 확보하려면 최소 수십, 수백 기를 건설해야 한다. 하지만 안전선을 구체적으로 확보하지 않은 기술을 미국 시민이 허락할 리 없다. 실용성? 실용성은 이미 의미를 잃었다. 태양이나 바람 같은 ‘재생가능한 에너지’의 경제성이 핵보다 훨씬 우수한 세상이 아닌가!
선진국 경제인의 제언을 받아들이면 대한민국은 저절로 선진국이 되는 걸까? 20세기 논리에 마취될 논리는 21세기 언론에 없는데, 경북 언론은 “17만 5,000여㎡(제곱미터) 부지에 SMR 6개를 짓는 사업을 2031년까지 완료”하면 “글로벌 600조 시장 선점”할 것이라 보도했다. 그를 위해 정부는 “신속하고 원활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북이 미래 글로벌 첨단산업의 혁신기지가 될 수 있게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훈수를 두었다. 물론 시민사회가 납득할 근거는 없다. 다행인 건, ‘MOU’ 다시 말해 실행을 담보하지 않은 약속, 소형모듈반응로 건설과 가동은 번복할 수 있는 양해 각서에 불과하다는 점이리라. 미래세대 안전을 위한 시민사회의 행동이 지금부터 중요하다는 의미다.
한국은 여전히 미국을 위한 실험동물인가? 미국 자본은 기대감에 젖었을 것이다. 자국이 아니라 남의 나라 땅에서, 한국 부담으로 안정성을 실험할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환호작약까지 연출하니 얼마나 기특할까? 그런데 우리 권력, 금력, 그리고 언론이여. 생각해 보라. 안전이 확보되면 한국 뜻대로 수출할 수 있을까? IEEFA 보고서를 참고하면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실용화에 성공한다면? 핵발전소 수출 의지가 미 자본의 제지로 꺾였듯, 뜻대로 수출할 수 없을 것이다. 수출해도 수익 창출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미 재생가능한 자원으로 핵보다 경제적인 에너지가 무궁하고 저렴하게 창출되는 세상이라는 걸 잊지 말자.
우리의 환호작약이나 미 정권과 금권의 유혹과 관계없이, 결국 소형모듈반응로의 경제성과 실용 가능성은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미 선진국의 시각으로 보자면 밑지는 장사는 분명히 아니다. 한데 문제는 선진국 미국이 아니라 실험동물 신세인 우리에 있다. 설계수명을 막무가내 연장하는 핵발전소와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핵폐기물 저장고에 둘러싸인 경북은 장차 어떡하나? 경북의 내일은 어디를 향하려는가?
박병상
60플러스 기후행동, 상임공동대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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