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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하게 경계를 비추지만 비춤을 따라가면 어두워진다. 이제 경계를 비춘다 그랬어요. 분명하게 경계를 비춘다. 경계라는 것은 이제
눈 귀코 혀몸 뜻
이 나아라고 하는
눈귀코 혀몸뜻
나의 감각기관으로 색성향 미촉법
눈으로는 본다. 그래서 어 색성향 미촉법을 경계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색이라는 것은 색경 그러니까 모양이 있고 빛깔이 있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경계 눈으로 볼 수 있는 경계를 본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걸 이제 비춘다라고 표현을 했어요.
색경.
색성향 미촉법
할 때
색경 그리고
성경 소리라는 경계 또
향경 맛이라는 경계 아
미라는 경계 아
향기라는 경계 또
맛이라는 경계 어
촉 감촉이라는 경계 그리고
법이라는 경계
생각의 모든 대상을 이제
법이라고 해요. 그래서
눈귀코혀몸 뜻
이 우리의 감각 기관 6 가지 감각 기관이 어 대상 경계를 보고 듣고 느끼고 뭐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 느끼고 생각하고 한다. 이런단 말이에요?
그런데 눈으로 본다 귀로 듣는다. 이게 다르잖아요. 그죠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건 다르죠. 그러니까 경계를 따라가서 분별하면 달라요.
경계를 따라가서 분별하면 같은 작용이 아니에요. 눈으로는 보는 것이고 귀로는 듣는 것이고 그래서 이 눈으로 보는 것은 눈이 한다. 이렇게 분별하죠? 또 귀로 듣는 것은 귀가 한다. 이렇게 분별하죠? 따로따로 그 하는 기관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코로 냄새 맡는 것은 코가 하고 입으로 맛보는 것은 혀가 하고 감촉 느끼는 것은 몸이 하고 생각하는 것은 이 의식 뭔가 뇌가 하든지 뭔가 의식이 하든지 뭔가가 그 한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고 맛보고 감청 느끼고 생각하는 것 이게 다 다른 일 같단 말이에요. 분별하면 다른 일이에요. 분별하면 다른 일인데 우리 말에도 이제 이런 게 있죠. 이제 뭐 시각 청각 후각 뭐 미각 뭐 촉각 이런 말이 있듯이 거기다 각이라고 같은 말을 붙이듯이 그리고 또 어 눈으로 본다라고 하는데 귀로 또 들어본다. 코로 냄새 맡아 본다. 대부로 맛 본다. 몸으로 감청 느껴 감촉 느껴 본다 생각해본다. 이런단 말이야 즉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맛보고 감정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본다라는 하나의 말로 쓰고 있죠. 우리도 그러니까 그 하나가 하기 때문에 하나의 봄이란 말이죠. 하나의 보험이라는 이 성품이 비추는 보는 작용 보는 이 성품이 눈으로 가면 이렇게 모든 거 세상 모든 것을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렇게 그냥 거울 속에 모든 것이 이렇게 비추어지듯이, 거울 속에 내 모습이 비추어진다는 표현을 쓰잖아요. 비춘다. 이런 표현을 쓰죠. 어두운 밤중에 후레시를 딱 켜면 안 보이다가 이렇게 비춰봐 이렇게 하면 비추고 나면 거기가 이제 보이기 시작해요. 모르던 것을 깜깜해서 모르던 것을 비추게 되면 그걸 이제 알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것 같아 눈으로 보일 때 내가 사물을 본다라고 우리는 생각하고 분별을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생각과 분별을 내려놓고 지금까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면서 배우고 익혔던 당연히 내가 눈으로 저 바깥에 있는 대상을 보는 것이지 라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내려놓으면 실제는 뭐가 있느냐? 여기에 내가 내 눈을 가지고 바깥에 있는 모양을 보았다라고 분별하는 그 생각을 내려놓으면 실제 지금 이 경험에 뭐가 있느냐? 까지만 앉는다라는 건 뭐냐 하면 마치 갓난아기가 보는 것처럼 고양이가 보는 것처럼 판단할 줄 모르고 분별할 줄 모른단 말이에요. 갓난아기는 근데 봄이 없진 않아요. 보긴 봐요. 근데 칼을 갖다 들이대도 쌩그럽고 엄마가 얼굴을 봐도 생그럽고 도둑놈 얼굴을 갖다 들이대도 쌩그럽고 마음법이 평등하단 말이에요. 평등하게 이렇게 비추어진단 말이죠? 마치 어린아이는 아무것도 분별할 줄 모르는 아이가 무언가를 볼 때 그게 좋은지 나쁜지 옳은지. 그른지를 모를 거 아니에요. 판단을 못 할 거 아니에요. 그러나 그냥 봄이 없죠. 즉 그 아이에게는 우리에겐 우리에게도 있는 것이 아이에게도 있고 우리에겐 있으나 아이에겐 없는 게 있어요. 우리에겐 있으나 아이에게 없는 것은 뭐냐 하면 우리는 그걸 보자마자 저놈은 도둑놈이네. 저는 저 사람은 아 내 우리 엄마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네. 이건 빨간색이고 저건 파란색이야. 이건 하늘이고 저건 구름이야. 이건 내가 좋아하는 모양이고 저건 내가 싫어하는 모양이야라고 이름 붙일 줄 알고 해석할 줄 알고 분별해서 구분할 줄 알고, 이것과 저것을 구별 구별해 가지고 알 수 있죠. 아는 아르마니가 있단 말이야. 우리에게는 근데 간단하게는 그건 없어요. 그건 없는데 갓난에게도 있고 우리에게도 있는 게 또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갓난아기도 거울과 같은 성품이 있어서 타고난 거여서 갓난아기도 타고난 거여서 무엇이 눈앞에 와도 그냥 비춘단 말이에요. 볼 줄 안단 말이에요. 그런데 갓난아기는 그 봄에 자리에 있죠. 그 대상을 따라가지 않죠. 비추는 그 성품 자리에 있는 거지 비추어지는 내용을 따라가서 그 내용에 떨어지지 않죠. 즉 여기서 말한 것처럼 분명하게 경계를 비추는데 안근이 색경을 본다고 우리는 분별을 하잖아요. 근데 그 색경 모양을 볼 때 우리는 안근이 색경을 비춘다. 내가 저것을 본다. 보고 나니까 이건 무엇이고 저건 무엇이다라고 분별을 하잖아요. 근데 부처님 가르침은 실제는 그런 게 없다. 18개가 공항이다. 무안이비서신의 무 색상향 미촉법 무1개 내지 무의식계라고 한 게 그런 게 없다는 말이거든요. 그러나 다 없진 않아요. 뭐가 있느냐? 이 비출 줄 아는 이 거울 같은 상품이 있단 말이죠? 그래서 그 아이에게는 대상이 중요하지 않아요. 무엇이 와도 비추는 이 상품 이거 하나는 살아 있단 말이야. 이것이 그 아이를 살아있게 하는 생명력이죠. 생명이죠. 그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있잖아요. 분별하지 못해도 살아있어요. 생생하게 깨어있어요. 아이는 깨어있지 못할까요? 아이가 더 분명하게 깨어있어요. 비출 줄 아는 이 비추는 이 성품이 깨어 있음이란 말이에요. 이것이 알아차림이고 이것이 순수한 앎이거든요 앎의 성품이거든요. 그럼 또 그 간단하게는 12 비교 판단 분별 해석은 할 줄 몰라요. 그러니까 12 해석 판단 분배를 하지 않으니까 어때요. 무엇이 오더라도 다 비출 뿐이죠. 비출뿐인 요 자리에 있죠. 자기 마음 자기 성품에 있죠. 경계를 따라 나아가지 않고 이 자기 자리에 있죠. 그러니까 보세요. 분명하게 경계를 비추지만 비춤을 따라가면 어두워진다. 우리는 중생들은 그 가능하긴 어쩌면 분명하게 경계를 비추는 이 비춤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들은 비춤을 따라가면 어두워진다. 우리는 비추어지는 대상을 따라가서 어두워진다. 뭐가 어두워지는 거예요. 판단 분별 시비하는 것이 어두워지는 거예요. 왜 어두워지는 거냐? 내가 판단한 것 내가 옳다 그르다라고 생각한 건 안 것 그게 진실이란 말이에요. 똑같은 모양을 보고 어떤 사람은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싫어해요. 어떤 사람은 빨간색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노랑색을 좋아해요? 그러니까 그게 옳은 거예요. 이게 저거보다 좋다거나 옳다거나 그게 맞거나 틀린 게 아니잖아요. 자기가 그렇게 분별한 것뿐이지. 그걸 집착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대상 따라가면 어두워지는 거예요. 대상 따라가면 대상을 둘로 나누어가지고 12분별하고 취사 간택하고. 좋은 대상은 취하려고 하는데 취해지지 않을 때 괴롭고 실은 대상은 멀어지고 싶은데 멀어지지 않으니까 괴롭고 그래서 대상 따라가면 어두워져서 즉 무명 보세요. 대상 따라가면 우리는 어두워지는 게 아니라 더 많이 알게 되잖아요. 이곳과 저것이 어떤 차이인지 알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아는 게 바로 어두워지는 거예요. 아르바디가 우리는 최고라고 생각해서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석박사를 거치면서 수없이 많은 앎을 늘려나가잖아요. 알음알이를 늘려나가고 지식을 늘려나가고 그래서 그 아르마리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똑똑한 사람이 돼요. 근데 이 출세간에 마음 공부에서는 많이 안다고 더 지혜로운 건 아니죠. 깨달음과 상관은 없죠. 전혀 상관없는 거예요. 많이 알든 조금 알든 그 상관이 없단 말이죠. 많이 알으면서 자기가 아는 그 앎에 집착하게 되면 나는 알고 너희들은 모른다라고 생각해서 내 지식만을 최고의 앎으로 집착하거든요. 그런데 그 진실은 뭐냐하면 2년따라 상대적으로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라서 정해진 날이란 없거든요. 이것이 길거나 짧지 않듯이 이 세상 모든 대상은 뭘로 규정할 수 없어요. 2년 따라 상대적으로 좋거나 나쁘거나 옳거나 그러거나 이렇거나 저럴 수 있을 뿐이지 정해진 그곳은 절대 진리야라고 할 만한 절대적으로 어라라고 할만한 무언가가 없단 말이죠. 근데 그 알만 따라가면 비추는 경계를 따라가면 경계를 알아가지고 그 아는 거에 미혹해져요. 의미가 없어지느냐 경계를 아는 것은 비교를 통해 아는 거기 때문에 그래서 더 어리석어지는 거예요. 비교를 통해 아는 거는 진실 같다고 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그걸 분별심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이것이 긴지 짧은지는 모르지만 이 비교를 통해서 짧은 거 옆에서는 길다라고 알고 긴 거 옆에서는 짧다라고 알지만 그건 그렇게 옆에 인연이 왔을 때 비교를 통해서만 임시적으로 길다거나 짧다고 이름이 부여될 뿐이지 그렇다고 여기 이걸 길다라고 집착하거나 짧다고 집착하는 건 미혹한 거잖아요. 어리석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경계를 따라가면 어리석어지는 거예요. 근데 일체 중생은 전부 다 경계 따라다니면서 자기 잘났다는 맛에 살고 있죠. 경계 따라다니면서 자기가 옳다. 많이 알면 나는 더 세상에서 더 밝은 사람인 줄 알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분야의 최고 가는 학자들은 그 분야에 대해서 자기는 너무 어둡다고 생각한단 말이죠? 이 분야에 대해서는 나한테 다 물어봐 그럼 일반인들보다 더 많이 알겠죠. 근데 본인은 그 분야에서 정말 다 아느냐 그럴 수 없단 말이죠? 한국인의 25 프로는 홍삼의 사포닌 성분을 분해할 수 없습니다. 3명 중 1명꼴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분자량이 작고 체내 생체 이온율이 높은 고유사뿐인 알지스리로 성취해야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도 모르고 면역력에 좋다니까 막 드셨죠? 이젠 똑똑하게 섭취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최근에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최초로 R지3 함량을 300배 넘는 기술을 카이스트에서 성공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기술력이 진짜 놀랍죠. 이젠 우리 평균 수명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뜻이 돼요? 이 기술이 뭔지 아시는 분 알지3요 맞아요. 더르트 알지스리라는 제품이에요. 더르트 알지스리 한 달간 섭취 결과 면역력이 200% 개선되고 혈액순환이 좋아져 손발저림이 싹 사라졌어요. 비싼 돈 주고 홍삼 수십 뿌리 먹어봐야 이거 하나 못 하다는 거죠. 강의는 여기서 마치고 찾아와 주신 분들과 나중에 이 영상을 보실 분들을 위해 특별히 주문한 것이 있습니다. 과연 역대 최저가 할인이랑 3박스 구매 시 1박스 추가로 받으실 수 있게 행사 준비했으니까 무료 상담 꼭 받아보세요. 감사합니다. 그다음으로 소개해드릴 부업이 원더라는 부업인데요. 이건 이미 많은 재테크분들께서 이미 닳도록 추천을 해 주신 부업입니다. 이 원더가 뭐냐? 이건 롯데손해보험에서 만든 어플인데요. 간단하고 쉽게 설명을 드리면 보험에 대해서 부담 없이 공부를 하고 돈도 받아갈 수 있는 그런 부업이에요. 근데 여기서 여러분들이 보험이라고 하면 또 뭔가 어려울 것 같고 실적을 내야 할 것 같고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게 절대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 많은 실적을 내고 요구해야 되는 부업 같았으면 여러분들한테 소개를 드리지도 않았어요. 우선 다른 분들한테 보험 가입 권유 안 하셔도 되고요. 이 부업이 진짜 좋은 점은 뭐냐면 내가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봐서 합격을 하면 스마트 플래너라는 자격을 얻을 수가 있거든요. 그러면 그 스마트 플래너로서 내 보험 가입만 해도 25만원을 줍니다. 근데 이게 왜 좋은 거냐면 여러분들 내 보험을 갈아타기를 해도 이 25만원은 받을 수가 있어요. 이 공부에 필요한 모든 자료 모든 영상 심지어 응시료까지도 롯데손해보험에서 다 지원을 해줍니다. 이 부업은 진짜 좋은 게 뭐냐면요. 여러분들 어차피 보험 하나쯤은 들고 계실 거거든요. 근데 사실 여러분들은 부모님이 그 보험을 들어주셨거나 아니면 이 보험 상품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내가 들어야 될 것 같아서 보험을 들어두신 경우가 대부분일 거란 말이에요. 근데 이 기회에 내가 보험을 공부하고 새로운 보험으로 갈아타면 25만원을 발축하금으로 받을 수가 있는 겁니다. 다른 도구 필요 없이 휴대폰 하나로 동영상 보면서 공부할 수 있고요. 제가 바로 얼마 전 영상에서 우리가 재테크를 꼭 공부를 해야 된다고 말씀을 드렸죠. 2030의 금융 문맹률 굉장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우리가 재테크에 대해서 꼭 공부를 하고 노후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여러분 보험도 마찬가지예요. 어쨌거나 이 보험이라는 건 살면서 한 번은 꼭 공부를 해야 되는 거거든요. 그렇게 공부를 해둬야 나나.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보험을 진단하고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많은 분들께 보험이라는 게 생각보다 불필요한 고정비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한 번쯤 꼭 진단을 하고 넘어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차피 내고 있고 낼 보험료라고 하면 여러분들이 이번 기회에 공부도 하고 나한테 딱 맞는 보험도 찾고. 그리고 원래 같았으면 설계사한테 주던 수익도 내가 가져가는 구조다 보니까 이거는 제가 꼭 한번 추천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까 설명드렸다시피 시험에 합격하고 보험을 가입하게 되면 축하금 25만원을 받게 되고요. 그걸 넘어서 예를 들어 내가 건강보험을 기존에 5만원 정도짜리 들고 있었다라고 하면 첫 가입 축하금 25만원하고 더블 축하금이 또 25만원이 주어지거든요. 여기에 더해서 보험 소득 75만원까지 해서 총 125만원이 소득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운전하시는 분들 운전자보험 들고 계실 텐데 운전자보험 2만원짜리만 들어도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첫 계약 축하금 25만원 당연히 나오는 거고요. 보험 소득은 또 30만원이 또 따로 나오기 때문에 소득은 총 55만원이 됩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을 하면 내가 알아본 월 보험료의 15배가 내 수익이 되는 거예요. 자 그러면 어떻게 합격을 하고 스마트 플래너를 딸 수가 있냐? 이 원더 어플에 들어가시면 내 강의실이 보이는데 거기 들어가셔서 강의를 들으시면 됩니다. 손해보험 제3보험 공통 이렇게 세 파트를 배우게 되고 시험을 봐서 60점을 넘으면 되는데요. 이 60점이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우리 왜 운전면허 시험 보면은 이틀에서 3일 정도 바짝하고 합격하잖아요. 그 정도 수준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뭐 개정이 바쁘신 분들 직장인분들 같은 경우는 모의고사만 풀어보고 합격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하물며 핵심 요소요. 요약집만 보고 합격하시는 분들도 계시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의고사 같은 경우는 계속 반복해서 보다 보면 점수가 오르니까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으세요? 이게 부업이 인기가 조금 많아지고 있다 보니까 시험 신청이 조기에 마감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원하는 날에 시험을 보려면 빨리 공부해버리고 빠르게 신청을 해버리는 게 낫습니다. 이 기회에 원더로 공짜로 보험 공부도 하고 내 보험 점검하고 직접 가입해서 돈도 한번 벌어가 보자고. 어깨가 뭔가 담이 왔는지 이쪽에 너무 안 좋았거든요. 손을 딱 잡아보니 바로 가시더라고요.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이 드신 분들은 또 이상한 자기만의 비책들이 다 있잖아요. 자기만의 병원 안 가도 되는 저도 어깨 너무 저희 할머니한테 배운 할머니가 맨날 보면 사람들 오면은 뭐 뭐 침 놓고 피 뽑고 나면 다 나는 거예요. 그럼 어깨 너머를 이렇게 보다가 이게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르겠어요. 저는 근데 한 25년 전에 산 온 그 부황이 있거든요. 그거 가지고 제가 그냥 어디 안 좋다. 지금 그냥 막 찔러가지고 막 그냥 뒤를 빼는데 그러고 나면 괜찮아져요. 피가 나오고 나면 근데 또 어떤 분은 눈동자를 가만히 지켜보면 몸이 어디가 아픈지 다 아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어떤 분은 손바닥을 이렇게 들여다봐요? 잠깐 10초 20초 딱 들여다보고 나서는 어디가 어떻게 안좋고 어디가 어떻게 안좋고 다 알아맞히는 사람 있어요. 그 의사선생님이 저 이제 전역합니다 하고 인사 갔을 때 따라와 이래가지고 당신이 맨날 간다는 병원도 아니고 한의원도 아니고 어디 아주 노인 같은 선생이 있다고 의사선생님 맨날 여기 간다고 그 여기서 침맞는데요? 그래서 따라갔죠. 근데 우리말로는 야매 골목 골목 가가지고 도대체 이게 뭔 집인지도 모르는 여기 내가 딴 분이 가자. 그랬으면 내가 절대 안 갔을 것 같아요. 그런 거만 허름한 집에 문 닫이고 골목으로 들어가셔가지고는 그 어떤 평범한 거사님 한 분이 계시더라고요. 그 손바닥 이래보더니 훤히 얘기를 하더라고요. 말이죠? 근데 그러고 나서 보니까 그게 맞아요. 그리고 딴 분들도 가서 이렇게 신기해 가지고 딴 분들도 진짜 그런가 싶어서 몇 사람을 데리고 갔더니만 그 규진같이 손바닥 잠깐 쳐다보고선 다 하러 갔죠. 그래서 이 오른쪽에 어떤 보사님한테 오른쪽에 그 두 개가 혹이 있는데 심각한 것까지는 아니니까 스트레스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 그렇게 얘기를 했거든요. 그분 그 앞에서는 별 얘기를 안 하더라고요. 나와 가지고와 스님 진짜 이 사람 대단하네요. 그래서 왜 이랬더니 자기가 지금까지 100일 한 100일 걸려 한 세 달 걸렸대요. 종합검진받아가지고 정밀 종합검진을 받아가지고 결과가 나와서 뭔가 미진하다. 그래서 다시 검사받고 해가지고 최종 결론이 지난주에 났는데 여기 2개 혹이 있다고 났대요. 어디 어디 부분에 2개가 되게 큰 병원에 가서 했는데 거의 100일 가까이 정밀 검사를 했는데 이 사람은 10초 잠깐 손바닥 보더니만 어느 부위에 어느 게 있고 이게 합성인지 아닌지까지 얘기를 하는데 깜짝 놀랐다면서 이 희한한 노인들이 세상에 있다니까요. 알 수 없는 근데 그게 그분들 얘기를 대충 들어보니까 그런가요? 이 침 놓는 사람은 귀 모양을 보면 사람 어린아기 때 이렇게 엄마 뱃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하고 딱 닮아 있대요. 귀가 그래서 고 부분들이 이렇게 대칭이 된대요. 그래서 고 부분에 이렇게 침을 놔주면 그 부분이 이렇게 뭐 뭐 기혈이 뚫리고 뭐 뭐 좋아지고 그런다. 그러고 손바닥도 그렇잖아요. 여기 여기를 머리 여기 2개를 손 여기 2개를 발 이러거든요. 그래서 발목 뭐 요쪽 같으면 손목. 팔꿈치 여기는 좀 눈 이래서 눈 코 입 수심 넣을 때 요렇게 찔러요. 목이 안 좋은 사람 여러분 찌르고 이런 식으로 그렇게 해서 저게 저게 맞을까 싶었는데 저흰 모 법당에 있을 때 그 이 수지침을 몇십 년 했었던 분이 계셔가지고, 그분한테 수지침을 몇 번 맞으면서 어깨 너머로 이제 강조를 열었길래 저도 이렇게 들었거든요. 그래서 수치침을 저 인제 떠나는 날 이제 사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인제 제가 인제 어디 안 좋다 하면 그 부분을 이렇게 계속 찔러본단 말이에요. 효과가 대단해요. 효과가 상당히 대단 어느 날 이게 인제 그 노안이 오면서 눈이 막 막 너무 심심해지고 너무 뜨끈하고 막 이랬을 때 눈 부분을 막 들이고 나니까 또 괜찮았고, 이런 게 보니까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일직일체에 다지기를 하나가 곧 전체를 반영하고 있고 전체 가곡 하나를 반영하고 있는 게 끊임없이 반복된다라는 이걸 뭐 프랙 탈이론이라고 부르나요? 뭐 그 비슷한 것 같아요. 우리 세포 하나하나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것이 우주로 나갔을 때 그 모양 모양과 비슷하다 그랬잖아요. 다 같은 것이 반복된다는 거죠. 같은 하나의 전체가 반영돼 있다는 거죠? 하나 속의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다라는 것이죠. 아마 그런 원리가 아닌가 싶어요. 어 그런데 아 뭔 얘기를 하다. 여기까지 왔다가. 그렇게 뭔가 이렇게 지식으로는 지식으로는 우리가 다 할 수 없고 지식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그게 정말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닐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분이 하는 말이 그거예요. 자신이 그렇게까지 모든 의학을 다 공부했지만 결국 나중에 보니까 똑같은 병이 걸린 사람 두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하면 분명히 나야 된다는 거죠. 그럼 거의 90% 정도는 다 낳는다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했는데 안 낳는 사람이 있더래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보니까 그거는 의학적 지식 가지고는 도저히 뚫을 수 없더래요. 그 왜 그런가 보니까 이건 마음에서 있더라고요.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은 그 치료에 신뢰하지 않거나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이 안 나을 수도 있고 혹은 이 사람은 굳게 믿는데도 안 낳을 수도 있고 왜 업이 두텁다든지. 아니면 뭔가 모르게 그 어떤 그 마음에 뭔가 있더라는 거죠? 그 이 업보의 문제 마음의 문제 이런 문제들 때문에 아 이거 결국에는 결국엔 근원은 마음이구나. 모든 의학도 모든 치료도 치유도 근원엔 자기 마음에 있구나. 자기가 마음을 열지 못하면 어떤 최고 가는 의사가 좋은 약을 줘도 그 효과를 못 볼 수도 있구나. 우리가 어 위약 효과라고 하듯이 플라시보 효과라고 하듯이 굳게 믿으면. 알 설탕 하나 설탕덩이 하나 준 걸 가지고 먹고 났거든요. 근데 믿지 않으면 이거 먹는다고 되겠어, 하고 생각하면 아무리 좋은 약을 줘도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단 말이죠? 아, 이게 결국 마음이구나 해서, 그분이 그 대기업에서 원하는 거 다 때려치고 이 마음 공부하겠다고 절에 들어와가지고 마음 공부하면서 이렇게 강의 다니고 이랬던 분이었었거든요. 왜 좋다면 신기했어요. 저런 사람이 있구나 하고 그러니 결국에는 모든 것이 다 마음으로 돌아온단 말이죠. 결국에는 마음의 문제로 돌아와요. 이렇게요? 이 세상에 다 각각 따로따로 있는 것 같아요. 왜왜 그러냐면요? 이 근원에서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있는 일체USIM조 하듯이 일체 모든 것을 마음이 드러내고 있는데 일체 모든 것의 근원인 본질인 이 마음 이것은 한 번도 확인하지 못한 채 이것이 있다라는 사실조차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채 끊임없이 자기에게로 더러워지는 못하고 바깥을 향해서 뛰쳐나가기만 했단 말이에요. 바깥을 향해 뛰쳐나가는 것이 뭐냐 하면 보이는 거 바깥에 내가 보이는 거 들리는 소리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대상들 그 대상을 분별하면서 이것이 무엇이고 저것이 무엇인지를 이름 붙여가지고 분별하고 취사 간택하고 그것에 대해서 알고 그것이 지식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내가 자기분별 의식이라는 필터를 가지고 왜곡되게 해석한 거 있죠? 왜곡되게 해석한 거 전부 다 왜곡되는 속이죠. 내가 그렇게 바라본 것뿐이니까? 진실을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면 바깥 대상과는 상관없이 그 대상을 비추고 있는 이 마음이 근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단 말이야. 그러면 보이는 것 들리는 것 그 모든 바깥 경계는 전부 다 하나의 경계예요. 일진 법계에요. 하나의 진실한 법의 세계밖에 없다는 말이죠. 이 법으로 돌아오면 이 법 위에서 바깥 경계처럼 보이는 모양이 드러난 것뿐이에요. 견분이 있고 우리 마음을 둘로 쪼개 가지고 견분과 3분이라고 나누듯이 유식 불교에서는 같은 마음인데 견분 보는 마음이라고 분별하고 상분 보여지는 모양 모양의 마음이라고 분별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저것을 본다고 분별하지만 사실은 견분이 상분을 본다라는 것뿐이라는 거죠. 그것도 나가고 보이는 것도 나라는 거죠. 내 마음 바탕 위에서 보고 있잖아요. 여러분 여러분 마음을 떠나서 본 적 있나요? 볼 때 그것은 마음이 그걸 비추기 때문에 볼 수 보는 거잖아요. 어떤 소리를 들을 때 그 소리를 비추는 이 마음 때문에 그 소리를 듣는 거잖아요. 냄새가 꼭 맛볼 때 이 비추고 있는 이 마음 없이 그것만 단독으로 있었던 적이 있단 말이죠? 삶의 모든 것은 전부 다 일체 모든 경계는 전부 다 마음 위에 드러난 그림자일 뿐이다.
그래서 이 비춤 분명하게 경계를 비추는 이 비추는 자리에 있으면 문제될 게 없어요. 이 한마음 이 한마음밖에 없어요. 말하자면 한 마음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이 한마음 그런데 우리는 비춤을 따라가기 때문에 어두워지는 거예요. 비침을 따라가면 어두워진다. 보이는 것 따라가서 분별하고 들리는 소리 따라가서 분별하고 분별하면 좋고 나쁘니까 좋은 건 취하고 싫은 건 버려야 되고 좋은 건 취하기 위해서 집착하는 걸 내 걸로 만들기 위해서 엄청나게 삶에서 노력해야 되잖아요. 애써야 되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그러잖아요. 들리는 소리 보이는 모양 그거 따라가 평생 그거 쫓아다니지 않아요. 우리 어떤 분은 그래요? 나이 45 돼. 가지고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 어마어마하게 울면서 하시는 말씀이 자신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나를 인정해준 적이 없고 아버지는 너무 큰 산 같은 존재였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나에 대해서 인정해 준 적이 없대요. 자기는 평생 소원이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살았다는 거예요. 좀처럼 어지간히 잘해도 인정해 주질 않으시고 더 다그치고 닥달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에게 정말 인정받고 칭찬 듣는 거 더 잘했다. 정말 했었다 그럼 보세요. 눈으로 보는 아빠라는 모양 그분께서 입을 열어서 소리를 어떤 소리 넌 정말 훌륭한 내 아들이구나. 정말 대단하다. 너 정말 잘했다. 어찌 이렇게 참 마음에 쏙 들게 잘할 수가 있니? 야 너무 자랑스럽다. 이런 말 한마디 그런 소리 그 소리 한번 듣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 그 많은 소리들 가운데 그 특정한 소리를 듣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 그러고 보세요. 어떤 걸 보고 어떤 걸 듣고 그 보고 들으려고 평생을 취한다니까요? 취하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한다니까요. 모든 직업에 열심히 하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모든 일을 하고 거기 온 힘을 기울여서 한평생을 기울여서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어요. 거의 비슷하지 않나요? 우리 뭔가 한 생각 일으키면 무엇 때문이든 그 하나? 얻으려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잖아요. 그럼 뭘 얻으려고 하는 거예요. 경계를 얻으려고 하는 거죠? 돈을 얻으려고 하거나 누군가에게 칭찬드리려고 하거나 인정받으려고 하거나 그게 다 경기 아니에요. 좋게 보이려고 하거나. 내가 좋은 집에 살고 싶어서 하거나 야 너 대단하다. 너 성공했구나? 이런 소리 듣고 싶어서 하거나 내가 마음먹은 대로 돈이 많아서 충분히 먹고 싶을 때 언제나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어떤 경제적 그런 걸 위해서 열심히 일했거나 그것도 경기조차 가는 거잖아요. 이렇게 우리는 평생을 경계 쫓아 다니면서 경계를 취하거나 버리는 취사 간택 하는 거기에 삶 전체를 바쳐버립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경계라는 유령 허망한 망상 그 진실하지 않은 거니까 그거를 귀중한 경계를 내 밖에 딱 정해놓고 내가 원하는 내가 취하고 싶은 경계를 딱 정해놓고 그것을 쫓아다녀요.
눈 깊고 혐오 뜻 이게 다 경계다. 그랬죠. 코 좋은 냄새 맡고 좋은 향기 맡고 그러기 위해서 또 열심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죠. 또 맛있는 거 먹고 싶은 이 먹는 욕구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열심히 버는 사람도 있죠. 감촉 감독 하나 때문에 얼마나 정말 어떤 연예인은 2억 하는 매침대 매트릭스 침대 매트릭스 하나 2억 하는 매트리스 위에서 잔대요. 그거 감촉 아니에요. 그냥 그냥 감촉이잖아요. 감촉 그 감촉 하나 얻으려고, 또 이게 감촉이기도 하고 생각 생각으로 거기 놓여 있으면 뭔가 모르게 이렇게 아 이게 2억짜리지 하는 그 든든한 뭔가 이런 게 있을 수 있겠죠. 뭔가 허리 좋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 허리에 좋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 아닐까? 그거 뭐가 좋은지는 알 수 없어요. 나에게 뭐가 좋은지를 어떤 사람은 온돌이 더 좋지 않을까요? 딱딱한 온돌이 좋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에게는 또 뭐 푹신한 침대가 좋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의 딱딱한 침대가 좋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걸 어떻게 명확하게 나에게 좋은 걸 맞출 수 있을까? 2년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죠. 근데 보세요. 그런 감촉 촉감 하나 느끼려고 몇 억을 쓰잖아요? 그 돈 벌려고 인생에서 어마어마한 노력을 하잖아요. 자동차 승차감 한번 좋게 하려고 승차감에 다 거기서 그게 아니겠어요. 어차피 방지턱 넘을 때는 막 비슷하지 방지턱 안 넘으면 되거나 넘을 때 살살 넘으면 싼 차 사서 방지턱 살살 넣으면 되지 뭐 괜히 비싼 차 사가지고 방지턱에 넘어도 스무스한 그 감촉 느끼려고 몇 억을 투자한단 말이야 말이죠. 그리고 또 그 의식으로 어때요? 남들에게 보이는 2차에서 딱 내리면 남들이 나를 뭔가 이렇게 우르르 올 것 같은 그 그 기쁨 그거 하나 얻으려고 뭔가 그럴 수도 있단 말이죠? 이를테면 그게 다 뭐예요? 우리 삶은 통째로 경계 끌려다니는 거에 허비되고 있다니까요. 그 경계가 정말 좋은 경계인지 나쁜 경계인지 나에게 도움되는지 도움이 안 되는지도 모른 채 그것이 공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허상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보이는 모든 경계가요? 어느 건 좋아 보이고 어느 건 나빠 보이잖아요? 어느 건 좋아요? 어느 건 나빠 보이죠? 그죠 여러분 한 시간 전에 어마어마한 압도적인 놀라운 풍경 뭐 히말라야의 어마어마한 풍경을 직접 보고 오셨어요. 예를 들어 어제 보고 오셨어요. 그리고 어떤 사람은 뭐 그냥 맨날 평범하고 심심한 것만 봤어요. 그럼 그 두 사람이 분명히 본 게 달라요. 그죠 근데 지금 그 있어요. 히말라야 압도적인 풍광 지금 있어요. 찾아볼 수 있나요? 그거 기껏 찾아본다고 해도 찾아볼 수 있는 건 뭘 볼 수 있어요. 생각을 움직여서 생각 위에 그때봤던 히말라야를 떠올리는 그 이미지 생각이란 거 위에다가 위에 내가 히말라야. 이렇게 봤던 그 이미지가 요렇게 떠오를 거 아니에요. 그거 보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죠 실제 히말라야를 봤다고 하지만 그 이미지 그 이미지 떠오르는 거 고거잖아요. 상이잖아요. 상 상을 보는 거잖아요.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히말라야 앨범을 봤어도 그 히말라야에서 별 감흥을 못 느끼는 사람도 있죠. 또 히말라야는 책 보고 히말라야 같은 도반 스님이 히말라야에서 화가 나가지고 카톡을 보냈다는 얘기를 했잖아요. 책 한 권이 완전 딱 사기다. 이러면서 이건 뭐 아무것도 없는데 뭘 감동도 없는데 이렇게 감동이 있다고 그렇게 글을 썼냐? 이러더란 말이죠? 되게 마음에 그걸 담을 이게 준비가 없으면 국수 감동을 못하죠. 그런가 하면 저는 히말라야 갔다. 와가지고 더 놀라웠던 것은 히말라야. 그러니까 그 어마어마한 압도적인 그 풍광에 놀라고 한국에 돌아보니까 그 못지않은 풍경이 한국에 어디 가나 다 있더라고요. 자 그때 가운데 앉고 살았는데 강원도 양구로 가는 길목 언저리 하나하나마다 다 놀라운 풍경들이 다 있어요. 어디나 그럼 우리가 본 것 내가 본 거 있잖아요. 본 거 본 것이 실제 하는 겁니까? 그걸 보면 정말 좋은 느낌이 있어야 되는 게 맞습니다. 그 대상을 보면 누구나 다 좋아할 까요? 대상을 받아도 누구나 다 좋아하지 않아요. 그게 마음이 열리는 사람만 좋아하고 열리지 않는 사람 안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그게 강렬한 아름다움이고 어떤 사람은 별거 없네. 이렇게 느낄 수 있어요. 저는 제가 강의를 그 되게 되게 잘해가지고 여러분들이 이렇게 집중을 한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저희 법회 할 때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정말 제가 여러분 그 돋보기 이렇게 딱 집중하면 새까만 종이가 확 타버리잖아요. 타버리는 것 같이 여러분의 이 저를 바라보는 이 이 초고난도의 집중력 한 시간 반 동안 꼼짝을 안 하고 여러분 이 연세에 한 시간 반을 앉아가지고 이렇게 초집중을 안 흐트러지고 초집중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에요. 정말 힘든 일이에요. 저는 알거든요. 군에 있을 때도 뭐 간부들 교육도 많이 시켜보고 했단 말이에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게 쉽지가 않아요. 근데 여러분들이 이렇게 하시길래 야 내가 강의를 좀 하나? 이렇게 이렇게 집중을 하시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관공서 같은 데 강의가 이렇게 가서 강의를 했는데 처음 시작도 하기 전부터 3분의 2는 머리를 콕 쳐박고 핸드폰만 보고 있는 거예요. 아예 들을 마음 자체가 없는 거예요. 앞에 있는 한 3분의 1만 들어요. 제가 그래서 아 저들을 제가 다 해봤군요. 구내에 있을 때 군인들이 듣기 싫어하잖아요. 근데 그 군인들 처음에 듣기 싫어해도 재밌는 얘기부터 해가지고 막 이렇게 끌어가면 나중에 전부 다 듣거든요. 어지간하면 확 나름대로 이렇게 몰입이 되거든요. 근데 제가 깨달은 게 뭐냐 하면 야 내가 사람 시선을 어떻게든 내가 끌어볼 수 있는데 스마트폰한테는 내가 이길 수가 없구나. 이러면 스마트폰은 너무나 강렬해서 제가 그분들을 어떻게든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도록 만들어보자 하고 얘기를 해도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오케이 저들은 이제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요 앞에 열심히 듣는 사람하고 같이 공부하자. 이러고 얘기를 하고 왔단 말이죠? 보세요. 아무리 좋은 소리가 들려도 어때요? 그 소리를 듣지 않는 사람은 그건 좋은 소리가 아니에요. 감동이 있는 말이 아니에요. 그럴 수가 없어요. 누군가에겐 엄청난 충격적인 감동이 있는 말이었어도 누군가에게는 그냥 아주 쉬는 시간 잠깐 졸 수 있는 시간 아니면 맘 편히 그냥 핸드폰 할 수 있는 시간 뭐 그런 정도의 시간일 수도 있잖아요. 모든 경계는 그와 같아요. 경계 자체에 좋거나 나쁜 게 정해져 있지 않아요. 내 바깥에 있는 모든 경계는 그것 자체의 가치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의미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 모든 의미는 바깥 경계에 대한 모든. 귀중하다. 귀중하지 않다 라는 좋다. 나쁘다라는 가치는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다라는 가치는 각자 자기에게서 나와요. 자기의식에서 자기 분배성에서 나와요. 왜 그 바깥 경계 자체는 좋거나 나쁜 게 아니고 공허하거든요. 무언가를 받는데 그게 좋은지 나쁜지 누군가에겐 좋고 누군가에게 안 좋거든요. 그리고 그게 좋다고 해도 지금 그 좋은 곳을 따라가 보세요. 여러분 바닷가 너무너무 보고 싶잖아요. 가슴에 답답할 때 보면은 뭔가 뻥 뚫린 바닷가를 한번 보고 싶다. 이런 생각 들 때가 있잖아요. 제가 뭔가 막 일도 안 풀리고 힘든 일도 있고 이럴 때 옛날에 바닷가 너무 보고 싶어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뜬금없이 그냥 바로 바닷가를 갔다가 본 적이 있었거든요. 제가 가봐서 알아요? 그때 제가 느낀 게 뭐였냐면 너무너무 며칠 동안 바다가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국 바다로 갔어요. 그래가지고 바다에 앉아가지고 계속 쳐다보고 있어요. 근데 놀라운 걸 목격했어요. 뭐였냐면 그렇게 몇 주 동안 바다가 보고 싶었잖아요 그러면 바다가 가서 딱 앉았잖아요. 그러면 좀 볼만도 하잖아요. 볼만도 하잖아요. 이거 보러 왔으니까 한 5분 10분 보는데 자꾸 딴 생각을 하거나 뭐 딴 거 없나 하거나 뭐 어디 저 바닷가 보이는 어디 카페 가서 커피 1잔 마실까 하는 생각이 들거나 뭐 자꾸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거 그 10분도 못 보고 거기서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던 거였기 때문에 버리고 와서 이렇게 앉았는데 그럼 지금 이게 보면서 해소가 되고 있을까? 해소가 되는가 하고 이렇게 바라보니까 이게 해소가 되는 건지 아는 건 되는 건지도 모르겠고 바다를 보고 있는데 이게 바다를 보고 있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이렇게 보고 있는데 별 감흥이 없죠. 처음에 바다가 딱 자동차로 가다가 자동차 모퉁이 탁 돌아서 바다가 쫙 펴질 때와 이러잖아요. 누구나와 이럴 때 고 때 감흥이 있는 거예요? 그때 내려가가지고 거기서 이렇게 한참 쳐다보고 못 잊는다니까? 사람들은 그 감흥은 금방 깨져요. 그러니까 여러분 너도 나도 서울 사람들은 한강에 쫙 펼쳐지는 아파트를 사고 싶어 하잖아요. 그 감은 잠깐이라니까 내 집이 되면 그거 문 닫고 살지 않겠어요. 목에 그렇게 보고 싶겠어요. 바닷가 사는 사람이 해운대 사는 사람이 그러거든요. 바닷가 쫙 펼쳐진 자원관 속에서 창을 거실 창문을 쫙 열면 망망대해가 쫙 펼쳐지는 걸 살고 싶어요. 그런데 진짜로 그곳에 딱 사는 사람은 한두 달 살면 우울증 걸린다 그래요. 정말 너무 완벽하게 우울증 걸리기 좋은 풍경이래. 그래서 한 20층 이상 높은 데 살면 바다밖에 안 보이잖아요. 그러면 적당히 한 7. 8층 정도 돼서 밑에는 땅에 사람들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보이고 그 위로는 바다도 보이는 정도가 차라리 낫대요. 그런데 돈은 위로 올라갈수록 더 비싸잖아요. 망망대해 첫인상에와 하는 그게 돈은 더 비쌀 거 아니에요? 수억 더 비쌀 거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 첫 느낌와 하는 그 첫 느낌 거기에 속는 거예요. 그 느낌에다가 돈을 몇 억을 주는 거 아니에요? 그거 한번 느껴보려고 근데 그거 계속 거기서 살면 그 느낌 없다니까요. 당연하지 않을까요? 물론 어느 정도는 좀 또 좀 다른 것도 있겠지만 뭔가 깝깝한데 사는 것보다야. 낯선 나긴 하겠지만 이와 같이 모든 경계는요. 그것 자체를 관하면요.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면요. 그것이 대단한 경계거나 장엄한 아름다움이거나 막 어마어마하게 좋거나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있는 그대로 보면 그냥 여여할 뿐이에요. 여여하게 볼 뿐이에요. 아무리 어마어마한 풍경도 제가 뭐 히말라야에 가서 뭐 어마어마하게 좋다. 이런 식으로 쓰니까 그게 어마어마한 뭔가인 줄 안단 말이에요. 어마어마한 뭔가. 효과가 있었던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오늘도 걷고 내일도 걷고 모레도 걷는 그 아무 일 없이 걷는 그 고요함 그러니까 그 고요함 그 비추는 그 마음에 있으니까 그게 좋았던 건데 그게 우리가 느끼듯이 막 막 좋아 죽겠는 그런 좋음은 아니에요. 근데 그걸 표현을 하다 보니까 이 이 심심하지만 여유한 이 이것을 표현하다 보니까 그렇게 표현이 된 것뿐이지. 근데 그 표현을 보고서는 사람들은 뭔가 막 감정적으로 자극적인 어떤 무언가 감동이 막 그 막 벅찬 눈물 같은 감동이 막 열릴 거다. 막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더란 말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