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에 올린 곳 어디야? 피드에서 한 번도 못 봤던 곳인데 너무 예쁘더라.”“강진!”“아 당진? 당진에 이런 곳도 있었나?”“아니 당진 말고 강진. 전남 강진!”“강진? 강진이 어디지...”
서울에 사는 20대 초~중반 지인들에게 강진을 설명하면 위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충남 당진은 알아도, 대체 강진은 어디란 건지. 강진을 다녀올 거라고 하면 “거기 뭐가 유명한데?”라는 질문이 꼭 등장한다. 부끄럽지만, 기자도 얼마 전까진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것 같다. 뭐가 유명하냐는 말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강진에는 2030 세대가 열광하는 ‘인스타 핫플’로 입소문 난 곳도, 인기 여름 휴가지로 꼽히는 곳도 없다고 생각했다.
강진을 다녀와 보니, 그동안 강진을 몰라도 정말 몰랐구나 싶었다.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혼란스러운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가 아직 이곳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 답답하면서도, 계속 몰랐으면 좋겠다는 놀부 심보도 들었다. 그동안 언택트 여행지라고 주장하는 곳들을 많이 가봤지만, 강진만큼 한적하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던 곳은 없었다. 한적하다고 하면 무조건 ‘노잼도시’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여행 후 사진첩에 수북이 쌓인 몇백 장의 사진들과 몇 달을 잠자코 있던 개인 SNS를 업데이트시킨 강진의 흔적들이 대신해준다.
코로나19 팬데믹에 고통 받는 요즘 가족, 연인, 친구와 보낼 안전한 여름휴가지를 찾고 있다면 남도의 끝자락, 강진을 고려해보는 건 어떨지. 글보다는 사진으로 여행지를 찾아보는 이들에게도 자신 있게 추천하고픈 푸른 땅, 강진의 핫플레이스를 소개한다.
강진만생태공원강진읍 남당로 97-111/무료입장
넘실대는 초록 물결을 한눈에 담고 싶어 공원 입구에 바로 마련된 전망대에 올랐다. 높이서 내려다봐도 고개를 돌려가며 감상해야 할 정도로 입이 떡 벌어지는 규모다.
넘실대는 초록 물결을 한눈에 담고 싶어 공원 입구에 바로 마련된 전망대에 올랐다. 높이서 내려다봐도 고개를 돌려가며 감상해야 할 정도로 입이 떡 벌어지는 규모다.
‘갈대밭은 가을에 가야지’라는 편견을 완전히 깨버린 이곳. 자연 속에서 힐링하고 싶은 이들은 물론, SNS에서 입소문 난 사진 스폿에서 사람들을 피해 인증사진을 찍느라 애쓰는 젊은이들의 취향까지 저격할 비주얼을 자랑한다. 양옆에 갈대를 끼고 생태탐방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 갈대 속에 파묻힌 듯한 포근함이 느껴진다.
강진다원성전면 백운로 93-25/무료입장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월출산 밑으로 넓게 펼쳐진 차밭의 정경이 장관을 이루는 이곳. 설록차로 이름난 제다 업계 ‘태평양 다원’이 운영하는 차밭으로 면적이 10만 평에 이른다. 푸르름이 돋보이는 차밭과 월출산 바위의 절묘한 조화를 감상할 수 있다.
백운동원림에서 나와 바로 이어지는 드넓은 차밭을 보자마자 ‘윈도우 바탕화면 촬영지가 한국에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릴 스쳤다. 장마철 흐린 하늘이라 파란 하늘과 함께 담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그윽한 차향을 맡으며 먼 산을 바라보니 절로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다산초당&백련사도암면 다산초당길 68-35/무료입장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간의 유배기간 중 10여 년간 생활하며 ‘목민심서’를 비롯해 500여권의 책을 저술했던 곳. 다백련사에서 출발해 30여 분의 산행 끝에 울창한 나무 사이 꽁꽁 숨겨진 이곳에 도착했다. 햇빛 몇 줄기가 내려앉으니 고즈넉한 분위기와 함께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길은 다산 정약용선생이 백련사의 명승 아암 혜장 선사를 만나기 위해 오가던 ‘사색의 길’이라고 한다. ‘저질 체력’인데다가 전날 비가 많이 내려 다소 고된 여정이었지만,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어우러진 이 길이 품고 있을 다산 선생의 기를 듬뿍 받아가겠다는 의지로 열심히 걸었다.
백운동원림성전면 월하안운길 100-63/무료입장
‘호남의 3대 정원’인 백운동 정원은 조선 중기 처사 이담로가 꾸민 정원으로 다산 정약용, 초의선사, 이시헌 등이 공유하던 곳이다. 백운동(白雲洞)은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돼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을 가졌다. 호남 전통 별서 정원의 원형이 잘 보전돼 있어 2018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됐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 가던 중 이곳에 하룻밤 들렀다가 아름다움에 반했다는 이유를 알 것만 같은 울창한 대나무숲, 계곡 등을 구석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정약용이 지은 시 <백운첩>에 등장하는 12경을 찾아보는 것도 묘미다.
*** 강진에 먹을 게 있나? 이것만은 꼭 드셔보시길.
강진회춘탕
추천 맛집: 은행나무식당(강진읍 영랑로4길 30)
여름철 강진에 왔다면 한약재로 낸 육수에 닭과 문어, 전복 등을 넣은 ‘강진회춘탕’으로 몸보신을 해보자. 강진 읍내의 ‘은행나무식당’이 유명하다고 해 이곳에서 시켜봤다. 일단 비주얼에 놀란다. 건강식이라고 한 번씩 들어본 것들이 싹 다 모였다. 양은 성인 네 명이 12만원 짜리 대자를 시키면 배불리 먹을 정도로 넉넉하다.워낙 많은 재료가 들어가 무슨 맛일지 감이 잘 안 왔는데, 막상 먹으니 국물은 담백하고 고기와 해산물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자꾸만 손이 갔다. 몸에 좋다는 건 다 들어가서 그런지 이름처럼 한입씩 입에 넣을 때마다 한 살씩 젊어지는 기분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와 처음 도착해 4년간 묵은 ‘사의재’. 당대 최고의 석학이자 임금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충신의 지위에서 하루아침에 대역 죄인으로 내몰린 다산 선생이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처음 의지한 곳이라는 슬픈 사연을 담고 있다. 주막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은 다산 선생이 ‘네 가지(생각, 용모, 언어, 행동)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의미로 이름 붙여졌다.
강진 읍내에 복원된 사의재 안의 ‘동문매반가’에서는 다산 선생이 좋아한 아욱 된장국(7천원), 바지락전(1만원) 등이 포함된 ‘다산 식단’을 체험할 수 있다. 아욱국과 전이 포함된 다산밥상에 간재미찜(4만원)까지 주문했다. 아주 특별한 무언가는 없지만 정감 가는 맛에 막걸리가 술술 넘어간다. 반찬으로 나온 죽순, 묵은지 등도 금세 비워 몇 번이고 리필했다. 식사를 마치니 와서 수박 잡수라며 친근하게 불러주시는 사장님이 기억에 남는 곳. 다산 선생을 맞아주던 할머니를 상상해보게 된다.
다산 정약용의 제자 이시헌이 다산 선생의 유배 시절 차를 만들어 보내던 걸 집안에서 대를 이어 100년 이상 차를 만들어 오고 있다. 이한영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고유의 이름을 가진 차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껴 최초의 차상표인 ‘백운옥판차’를 개발한다. 현재는 선생의 고손녀인 ‘이한영 차 문화원’ 이현정 원장이 백운옥판차를 만들며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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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 차 문화원에서는 이현정 원장으로부터 차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녹차, 떡차 등 강진의 각종 차를 음미할 수 있다. 귀로는 흥미로운 차 관련 이야기를, 입으로는 달달한 양갱과 함께 산뜻한 차 한 잔을 즐겨보자.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잔디밭에 모여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차소풍도 진행했다고 한다. 건물 밖 정원에는 예쁜 꽃이 가득 펴있고 테라스 좌석도 마련돼 있다.
강예신 여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