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에 핀 상사화
우리 지역은 소나기도 귀해 작열하는 태양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는 팔월 초순이다. 열대야와 폭염이 계속된다만 아침나절은 근교 산행을 나서 탁족이나 알탕을 하면서 더위를 잊고 지낸다. 알탕을 하기 전 숲속에 먼저 들어 삼림욕을 즐기면서 덤으로 영지버섯을 따서 베란다에 말리고 있다. 말린 영지버섯은 인연 따라 누군가에게 건네져 약차를 달여 먹을 재료로 삼게 될 것이다.
팔월 첫째 목요일이 밝아왔다. 그동안 생활권에서 가까운 곳으로만 전전하다 길을 멀리 나섰다. 보름 전 시내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는 벗과 의림사를 다녀온 이후 다시 찾은 마산역 광장이다. 삼진 방면 농어촌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마산역으로 나가 서북동으로 가는 73번 농어촌버스를 탔다. 점심 때 전 귀가가 어려울지도 몰라 번개시장 들머리에서 김밥을 두 줄 마련했다.
서북동은 진전 둔덕과 함께 봄날에 산나물을 채집하러 찾았던 산자락이었다. 그때는 감재나 미산령을 넘어 함안에서 열차로 복귀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을에도 그곳을 찾으면 제철에 피는 야생화 탐방이다. 지난번 벗과 의림사 계곡을 찾았을 때는 숲속에서 영지버섯은 만나지 못하고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계곡물에 알탕을 즐기고 돌아왔다. 잠시나마 선계에 머물다 나온 듯했다.
시내를 벗어난 녹색버스는 밤밭고개를 넘어 동전터널을 지났다. 진동 환승장에 잠시 들려 진북 면소재지를 둘러 덕곡천을 따라 골짜기로 들었다. 차창 밖 산골 논배미 벼 포기는 볼록해 연방 이삭이 나올 듯했다. 금산마을을 둘러 학동저수지를 돌아 서북동 종점에 닿았다. 가야사와 구원사 절간 들머리를 지난 서북산 허리 임도로 올라갔다. 봄날에 자주 다녀 익숙한 곳이었다.
서북동은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가면 부재고개에 이르러 다시 갈림이 나온다. 부재골로 내려서면 미천마을이고 수리봉 방향으로 가면 의림사가 나왔다. 오른쪽으로 가면 감재를 넘어 여항 버드내에서 함안역으로 가게 된다. 이번은 여름날 뙤약볕이라 동선을 길게 잡을 수 없어 서북산 기슭에 머물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되돌아나갈 참이다. 두세 시간 숲속을 누빌 여유는 있었다.
산기슭 들머리 임도를 따라 오르면서 나중 발을 담글 만한 곳을 물색해두었다. 구원사 곁으로 흐르는 계곡은 당국에서 사방사업을 해 놓아 맑은 물이 한자리로 모여들어 흘렀다. 그곳 위쪽 숲으로 들어 영지버섯을 찾아보고 내려오는 길에 발을 담그거나 알탕을 하기로 미루어 놓았다. 서북산 허리 T자로 난 임도 갈림길에 이르기 전 개척 산행으로 숲으로 들어 영지버섯을 찾아봤다.
서북산 기슭 숲속의 토질은 겉에서 보기와 사뭇 달랐다. 커다란 바위덩이가 뭉쳐진 암반 지대가 많아 수분 함양이 적었다. 모든 버섯은 자라려면 어느 정도 습기를 머금고 있어야 하는데 돌너덜 지대라 생육에 적합하지 않았다. 임도로 나와 더 위쪽 서북산 기슭 수종갱신 지구로 올라가려다 망설여졌다. 한낮이 다가오면 더위가 만만하지 않을 듯해 영지버섯 채집은 마음을 접었다.
산허리로 걸쳐진 임도까지 오르지 않고 발길을 돌려 숲속을 거닐다 반가운 야생화를 만났다. 그늘진 숲에서 절로 자라 꽃을 피운 상사화였다. 상사화는 꽃무릇과 함께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을 대표하지 않던가. 지난 봄날에 돋아난 난초 같이 짙푸른 잎줄기는 사그라지고 한여름이 되자 꽃대만 밀어 올려 엷은 주황색 꽃잎을 펼쳐 향기를 뿜었다. 발품 팔아 숲속을 누빈 보람이었다.
구원사 절간이 멀지 않은 밀양 박 씨 선산 사이 계곡으로 내려섰다. 당국에서 자연석을 옮겨와 사방사업을 마쳐 놓았더랬다. 속세와 고립된 산중이라 인적이 있을 리 없었다. 산짐승도 산세가 험해 내려올 수 없는 골짜기였다. 이어지는 순서는 옷가지를 훌훌 벗고 물웅덩이로 들었다. 물이 차가워 찌릿한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 배낭에 넣어갔던 김밥과 곡차를 비우고 숲을 빠져나왔다. 21.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