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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불기 2568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오전에는 대중들이 참석하는 봉축법요식이 열렸고, 오후에는 사회 인사들이 참석하는 봉축법요식이 열렸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9시부터 봉축 법요식 1부를 시작했습니다. 1부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후 그 기쁨을 먼저 돌아가신 조상 영가님께 회향하고 모든 영가님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천도재입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온라인으로 접속한 가운데 천도재를 여법하게 마치고 오전 10시에 2부를 시작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타종, 헌공 예불을 한 후 전국 으뜸절과 전 세계 정토행자들의 부처님오신날 축하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1400여 명의 정토회 회원들이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과 지하 강당, 1층 로비에 자리했습니다. 국내외 으뜸절에서도 330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생중계를 함께 시청하며 봉축법요식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연등 모연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생중계를 시청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 한 후 스님이 모든 중생의 해탈을 염원하며 부처님 전에 향을 올렸습니다.
이어서 인류의 희망이며 미래 세계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을 대표하여 권교림 님과 한지승 님이 깊은 지혜를 발원하며 부처님 도량을 밝히는 등을 올렸습니다.
다음은 세계전법의 주역인 국제지부를 대표하여 호주에서 오신 마일스 쿠퍼 님과 중국에서 오신 쒸차이얜(徐彩焱) 님이 부처님을 찬탄하며 부처님 전에 꽃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대중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가 무엇인지 그 뜻을 계승한 오늘날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불기 2568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모습을 여러 가지 신비한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은 그러한 모습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붓다가 되셨느냐, 아니면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셨기 때문에 그렇게 묘사가 되었느냐 하는 부분입니다.
부처님은 수행을 통해 위대한 인격자, 깨달은 자가 되셨기 때문에 훗날 전기 작가가 부처님의 일생을 상징적으로 비유해서 태어난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언제 어디서 태어났든, 어떤 피부 빛깔을 가졌든, 어떤 계급에서 태어났든, 남자든 여자든, 아버지가 있든 없든, 어떻게 태어나고 자랐든, 여러분이 깨달음을 통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고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면 여러분들은 바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삶의 조건 또한 본래 태어날 때부터 깨달음의 길로 올 수밖에 없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여러분은 가난했기 때문에 붓다가 될 수 있었고,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기 때문에 붓다가 될 수 있었고, 어릴 때부터 핍박받고 왕따를 당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붓다가 될 수 있었던 것이 됩니다.
삼생의 악연을 녹여내는 방법
누군가 나에게 비난을 할 때 같이 비난을 하면 우선 원한이 맺히고, 또 그걸 설명하려면 우리는 전생부터 원수였고, 지금 현생에도 원수고, 내생에도 원수가 됩니다. 그러나 상대의 욕설에 한 번 빙긋이 웃음으로 해서 현재의 원한이 풀리고 친한 사람이 되면, 우리는 과거에도 친한 사이였고, 이생에도 친한 사이이고, 내생에도 친한 사이가 됩니다. 즉, 삼생의 악연이 다 녹아납니다. 그런 것처럼 내가 깨달음을 얻어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면 나의 과거의 모든 고난이 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수행의 과정으로 변해버립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부처님도 한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깨달음을 얻고 부처님이 되셨기에 그 태어나는 모습마저도 아름답게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황야에서 40일간 기도 후에 ‘내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구나’ 하는 것을 자각하셨습니다. 그 자각으로 인해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에서 신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여러분도 스스로 붓다임을 자각하는 순간 육도를 윤회하는 업보중생이 아니라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인 붓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가 붓다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나는 이렇게 태어났고, 이렇게 자랐고, 이러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괴로울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합니다. 남편이 이렇기 때문에, 아내가 이렇기 때문에, 자식이 이렇기 때문에, 세상이 이렇기 때문에 늘 괴로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중생이 되기를 원하고, 괴롭기를 원하고, 불쌍하게 보이기를 원합니다. 늘 자기를 도와달라고 거지 행세를 하고, 뭐 하나라도 얻을까 하여 껄떡거리고, 이렇게 스스로를 불쌍하게 만듭니다.
오늘은 내가 붓다가 되는 날
여러분들이 과거에 어떻게 태어났든지, 어떻게 자랐는지, 지금 상황이 어떠한지가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떠한 상황이든 그 상황에서 내가 주인이 되려면 괴롭게 살 것이냐, 아니면 붓다처럼 살아갈 것이냐를 두고 선택해야 합니다. 한 생각을 바꾸게 되면 바로 오늘은 여러분이 붓다가 되는 날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자기 부처 오신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깨우쳐 주시려고 부처님께서는 45년 동안 쉬지 않고 설법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구걸하지 말라, 껄떡거리지 말라, 찰나의 쾌락에 빠져서 불나방처럼 살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는데도, 오늘날 우리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을 외우면서도 껄떡거리고 구걸하고 도와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부처님의 탄생을 아름답게 묘사한 것만 보지 말고 그 이면의 의미를 살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는 저렇게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붓다가 될 수 없고 중생으로 살 수밖에 없구나’ 이렇게 생각한다면 붓다차리타(Buddhacarita)를 저작한 마명대사(馬鳴大師)는 의도치 않게 중생에게 좌절감을 준 것입니다.
*붓다차리타: 불소행찬(佛所行讃) 또는 불본행경(佛本行經)이라고도 불리는 부처님의 일대기.
그러나 마명대사가 부처님의 탄생을 이렇게 신비하고 아름답게 기록한 것은 부처님이 너무나 위대한 인격을 완성했기 때문에 훗날 그분의 일생을 아름답게 묘사한 것입니다. 6년의 고행과 사문유관도 우리가 생각할 때는 정말 고통 속에 헤매야 마땅한 상황들인데, 붓다차리타에서는 모두 부처님이 깨달음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조연 역할을 한 것으로 묘사를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우리들이 처한 상황, 현재 살아가는 상황도 어쩌면 내가 붓다의 길로 가는 것을 돕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붓다차리타(Buddhacarita)의 표현을 빌리면 신들의 화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싯다르타 태자가 왕자의 삶에 만족하여 인생을 헛되게 보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병자의 모습으로 화현해서 보여주고, 늙은이의 모습으로 화현해서 보여주고, 죽은 시신의 모습으로 화현해서 보여주고, 수도자의 모습으로 화현해서 보여준 것으로 묘사를 합니다. 이렇게 묘사를 하는 이유는 사실 우리가 겪는 모든 인생이 그때그때 일어나는 하나의 환상, 허깨비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 허깨비나 환상에 속아 넘어가서 울고불고 희로애락을 느낄 것인가, 그러한 환상 속에서 진실을 발견할 것인가, 이것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그렇게 묘사를 한 것입니다.
분노하는 마음 없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물론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부처님오신날에 등도 달고, 여러 가지 문화 행사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화는 문화대로 잘 계승하되, 부처님오신날에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선택해서 책임을 지는 것이 주인 된 자세입니다. 그 어떤 것도 강제된 것은 없습니다. 설령 어떤 사람이 내 목에 칼을 대고 ‘돈을 내놓을래, 목숨을 내놓을래?’ 하고 협박한다고 해도 나는 그 상황에서 돈이 귀하지만 목숨이 더 귀하기 때문에 목숨을 선택하고 돈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때 남을 탓하게 되면 돈을 빼앗긴 것이 되고, 그것은 마음속에 한이 됩니다. 그러나 주인 된 입장에서 보면 나는 그 순간 지혜롭게 내 목숨을 살리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관점을 이렇게 잡아야 여러분들이 분노하거나 원망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없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인종, 문화, 종교, 가치관, 생활 방식 등을 인정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어떠한 행동에 대해서도 분노하거나 미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바람직하지는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는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평생 노력을 하셨습니다.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서 북한에서 어려움에 처한 2500만 동포들과 중동 지역에서 폭격에 노출되어 가족이 몰살할 위험에 떨고 있는 가자 지역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아픔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과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이 이 땅에 평화가 도래하도록 기도하는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하는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개개인의 마음속에 평화가 깃들고, 우리가 사는 사회도 좀 더 평화롭게 나아가도록 다 같이 마음을 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부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심을 기뻐하는 강생찬탄을 했습니다. 스님이 선창을 하면 이어서 대중이 봉독을 했습니다.
"이 세계의 최고봉 히말라야 남쪽 산기슭, 로히니 강물이 굽이치는 곳, 카필라 왕국의 자손이라 불리는 샤카족의 평화로운 나라, 룸비니 동산 아소카 나무 아래, 보살은 어머니 마야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이 세상에 나오셨다...."
이어서 초파일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욕불의식을 했습니다. 욕불은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의식입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욕불을 하고, 마정수기를 받았습니다.
인도의 전통에 따르면 사람의 두 눈 사이에 깨달음의 눈이 있다고 합니다. 깨달음의 눈을 열어서 '당신은 미래에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 하고 수기를 받는 것이 마정수기입니다.
“온라인으로 시청하고 계신 분들은 바로 마정수기를 하겠습니다. 얼굴을 화면 앞으로 내밀고, 눈을 정면으로 주시하세요.”
스님은 온라인 시청자들을 향해 마정수기를 했습니다.
다음은 탄생 선언을 함께한 후 깨달음과 해탈의 길로 갈 수 있기를 서원하며 발원문을 낭독했습니다.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부처님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고통받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음에도 우리가 어리석어 어둠 속에 있는 중생들의 고통을 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부처님의 밝은 지혜의 등불로 비추어 보니 주위에 고통받는 중생들이 보이고 그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배고픈 사람, 병든 사람,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 소수 민족이라고, 소수 종교라고, 계급이 낮다고, 피부가 검다고, 여성이라고, 장애가 있다고, 차별받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는 길에 작은 일이라도 기꺼이 함께하겠습니다.
특별히 발원하옵니다. 지금 한반도는 긴장이 점점 높아지고 우발적 군사 충돌의 위험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종전을 통한 평화는커녕 다시 새로운 전쟁 국면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정전협정 71주년을 맞이하여 북핵 동결과 북미 수교가 이루어져서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항구적 평화가 이루어져 남과 북의 모든 국민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바랍니다.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전쟁의 비극이 언제든지 한반도에서 재연될 수 있음을 경계하고, 종교와 이념, 진영을 초월하여 온 국민이 마음과 뜻을 하나로 모아 한반도의 평화가 성취되고 세계 평화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거룩하신 부처님, 이와 같이 발원한 인연 공덕으로 오늘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는 보살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정토회 대표님의 인사말을 듣고 사홍서원으로 봉축법요식 2부 생방송을 모두 마쳤습니다.
“오랜만에 정토회에 오셨는데 비빔밥도 맛보아 주시고, 도반들과 만나서 수다도 편안하게 떠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고 가시길 바랍니다.
제가 15년 전에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왔는데요. 2600년 전에 태어난 부처님은 십원 한장 없이도 멋지게 인생을 살아간 모습을 보고, 나도 인생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겨서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전부를 닮아갈 수는 없지만 한 조각씩이라도 닮아서 모자이크 붓다가 된다면 정말 멋지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인생을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현장에 참석한 대중 모두가 욕불의식을 하고 마정수기를 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린아이를 안고 온 부모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 초등학생 어린이들, 남녀노소 모든 분들이 길게 줄을 서서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고 스님에게 마정수기를 받았습니다.
오백여 명의 마정수기를 마치고 스님은 법상에서 내려왔습니다.
곧이어 점심 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많은 봉사자들이 1500인분의 비빔밥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해주었습니다. 지하 식당과 2층 카페에서는 많은 대중들이 줄을 서서 비빔밥을 받고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잠시 휴식을 했다가 오후 2시부터 다시 손님들을 맞이했습니다.
정토회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해마다 이웃 종교인들, 사회 인사와 함께 부처님 탄생의 참뜻을 새기는 봉축 법회를 하고 있습니다. 2층 카페에는 일찍 오신 사회 인사와 이웃 종교인 분들이 테이블마다 앉아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한 분 한 분과 악수를 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저는 주로 부탄에 가서 지냈습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고 기후 위기 시대에 대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보려고 답사를 많이 다녔어요.”
안부를 주고받고 담소를 나누다가 오후 3시가 다 되어 법회가 열리는 지하 대강당으로 함께 이동했습니다.
맨 앞자리에는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이 자리하고, 이어서 사회 원로분들과 정치인들, 문화예술인들이 자리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낭독하고, 부처님의 탄생을 그린 강생찬탄을 함께 읽었습니다.
“보살이 태 안에 들자, 일만 세계가 모두 진동하며, 향기로 가득차고, 한없는 광명이 충만하였다. 그 때에 장님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벙어리는 서로 이야기를 하고, 곱사는 허리를 폈으며, 절름발이는 바로 걷고, 결박된 이는 사슬과 족쇄에서 풀려났다. 지옥의 불은 모두 꺼지고, 아귀들은 굶주림과 목마름이 없어졌으며, 축생들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중생들은 병이 없어졌으며, 모든 중생들은 서로 정답게 이야기하였다...”
이어서 목사님과 신부님 등 이웃 종교인 분들이 앞으로 나와 부처님께 연등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참석한 모든 분들이 욕불의식을 했습니다. 종교가 서로 다르고, 정치적인 생각이 서로 다르고, 하고 있는 일이 서로 다르지만, 오늘은 한마음이 되어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참뜻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이어서 법륜 스님의 선창에 따라 다 함께 발원문을 낭독했습니다. 특별히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무차별 폭격으로 학살당할 위험에 처해 있음을 우려하면서 공격자의 분노를 가라앉게 하고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북핵 동결과 북미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져서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가 정착되어 남과 북의 모든 국민들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염원했습니다.
다음은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지난 25년 동안 저희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서는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매달 한 번씩 모여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인도적 지원 및 인권의 개선, 한국 사회의 국민통합 등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갈등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이념이 서로 조금씩 다릅니다. 누가 옳고 누가 틀리고가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 믿음을 인정하는 것이 존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존중에 기초하여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첫째, 내 마음속에 화가 일어나지 않고, 둘째, 어떤 문제를 풀 때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풀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는 점점 자기만 옳다는 생각이 강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우리는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인간의 독단적 생각이 얼마나 큰 불행을 불러오는지를 뼈저리게 느꼈고, 그래서 우리는 이념과 문화, 종교가 다른 데도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인권의 원칙, 평화의 원칙, 협력의 원칙 등 많은 합의를 이끌어 내고 UN을 창설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각자 자기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점점 강화되어 세계는 다시 분열하고, 패를 형성하여 세력 대결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의 조짐들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라마다 강성 지도자가 대중의 지지를 받는 현상부터 대중마저도 이런 극단적 주장에 열렬히 환호하는 현상들은 1차 세계대전 이전이나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모습을 점점 닮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요? 이런 시대이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더욱더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 서로를 이해함으로써 우리가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면 다양성이 공존하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별히 지금 한반도에서는 남한과 북한이 더욱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 국면에서 나타났듯이 남한은 거의 남북 분단과 다름없는 동서 분열이 일색화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하신 분들은 모두 종교가 다르고, 또 여야 정당이 다르고, 진보와 보수 등 정치 성향도 다릅니다. 이 다르다는 것을 혐오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는 자세로 대화하고 협력한다면 이 혼란한 시대에도 작은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부터, 우리부터 시작하는 평화
다름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 서로 협력하는 것은 대립과 갈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더 필요한 일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미국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여 강연을 했습니다. 미국의 여러 대학마다 가자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데모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고 미국 사회에서 월남전 이후 처음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현재 가자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무차별 폭격은 전쟁이라기보다는 거의 인종 학살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소위 자유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서구 나라들은 대부분 침묵하거나 말만 할 뿐이지 아무런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시민단체나 여러 사회 분야, 심지어 종교인들까지도 침묵한다면 그동안 우리가 소중히 여겼던 인권과 인도주의적인 가치를 스스로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만이라도 비록 정당이 다르고 추구하는 이념이 다르지만 서로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나는 옳고 너는 틀리며 상대를 청산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지금의 대치 국면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부터 문제를 좀 더 평화롭고 민주적으로 풀어가는 모범을 보이고, 그것에 기초해서 남북문제, 세계의 여러 갈등 문제도 풀어나갔으면 합니다. 그래서 K-드라마, K-컬처 뿐만 아니라 앞으로 K-평화도 세계에 전파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합니다. 그런 꿈을 꾸면서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함께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경동교회 집사인 김홍태 교수님이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준 후 집사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제가 6월 13일에 전북 장수 죽림정사로 갑니다. 이날 죽림정사로 오시면 정토회 합창단의 연주를 경동교회 김홍태 장로가 지휘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보게 되실 겁니다.” (웃음)
집사님은 마지막으로 ‘오 솔레 미오(O sole mio)’ 노래를 멋지게 부른 후 무대를 내려갔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오늘 참가한 내외빈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먼저 이웃 종교인 분들과 사회 원로분들을 소개했습니다. 직위에 상관하지 않고 연령순으로 한 분씩 호명을 했습니다. 소개가 될 때마다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사회 원로분들을 대표하여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님이 축사를 했습니다.
“법륜 스님이 말한 것처럼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지구의 폭격 등 온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정치가 분열되어 있고, 빈부격차도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2600년 전에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 꼭 오늘날 우리를 꾸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인류의 가장 큰 스승인 부처님의 말씀을 우리 모두가 다시 새겨보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이웃 종교인 분들을 대표하여 박경조 성공회 주교님이 축사를 했습니다.
“저는 초파일 행사에서 강생찬탄을 읽을 때마다 깜짝 놀랍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과 똑같아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도 하늘의 평화가 땅 위에서 이뤄지는 놀라운 역사를 이렇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다가온다는 말씀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 더 어지럽고 캄캄해질수록 그만큼 새벽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굳게 믿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예수님의 말씀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새로운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여성을 대표하여 이현숙 여성평화안보(WPS) 아카데미 이사장님이 축사를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리틀 붓다가 되어서 서로에게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 온 세상을 평화의 등불로 물들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망을 품어 봅니다.”
다음은 정세균 전 국무총리님이 축사를 했습니다.
“사실은 걱정을 많이 하면서 여기에 왔습니다. 세상이 많이 어지럽다 보니 법륜 스님이 지쳐있으면 어떡하나 싶었거든요. 막상 와서 보니까 여전히 밝고 힘이 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또 세계대전이 일어나는가 하는 걱정이 됩니다. 법륜스님이 지치지 않고 더 힘내주십사 부탁드리고, 저도 힘을 보태어 드리겠습니다.”
참석한 모두가 귀한 말씀을 해주실 수 있는 분들인데 제한된 시간 안에 행사를 마쳐야 해서 몇 분의 축사만 듣고 소개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정토회 청년 회원들이 결혼해서 낳은 어린이들이 합창 공연을 준비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어린이들의 귀여운 몸짓에 참석한 모두가 크게 웃음을 보이며 기뻐했습니다. 다음은 정치인 분들을 스님이 소개했습니다.
“이분들은 국민의 걱정을 끼치는 분들이에요. 오늘 여러분들이 많은 격려 박수를 보내주어서 국민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정치를 해주십사 부탁 말씀을 드립니다.” (웃음)
이어서 정동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님이 축사를 했습니다.
“저는 정토회 깨달음의 장 수료생입니다. 정신적으로는 정토회 멤버라고 생각합니다. 정토회 부처님오신날 행사에 오면 항상 마음이 편안합니다. 여기에는 여야의 갈등도 없고, 진보와 보수의 갈등도 없고, 종교의 차이도 없이 모두가 한마음으로 평화로운 한반도를 염원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오늘 그런 마음으로 참석했습니다.”
다음은 주호영 국민의힘 국회의원님이 축사를 했습니다.
“저는 법륜스님이 우리나라 불자들이 바라는 불교의 모습을 구현해 주고 있어서 늘 존경합니다. 또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늘 가르침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6월에 새 국회가 시작되면 이번 22대 국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법륜스님을 초청하여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오늘 모든 분들이 불교를 알아서 행복한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전성수 서초구청장님이 인사말을 하고, 신동욱 국민의힘 서초을 국회의원님이 일어서서 인사하는 것을 끝으로 정치인들의 축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모두가 나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요. 다음은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리는 뜻을 춤으로 표현하는 ‘태평무’를 국가 무형문화재 이수자인 안명주 님이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 인사분들을 스님이 소개했습니다.
“이분은 특별히 박수를 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님의 사모님이 많은 아픔을 딛고 오늘 공식적으로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격려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모두가 큰 박수로 격려의 마음을 보냈습니다. 이 외에 많은 사회 저명 인사분들을 소개한 후 가수 난아진 님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방송문화예술인들, 특히 길벗과 평화재단에서 봉사하고 있는 분들을 스님이 소개했습니다. 모두에게 얼굴이 익숙한 방송인 김병조 님 부부, 김제동 님, 드라마작가 노희경 님, 배우 조인성 님, 김우빈 님, 조혜정 님 등 많은 분들이 한 분씩 소개되자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참석한 분들에 대한 소개와 축사를 다 마치고 나서 스님이 닫는 말씀을 했습니다.
“사실은 참석한 정치인들은 한 말씀씩 다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한 말을 녹음해 두었다가 그대로 하는지 안 하는지 증거를 잡을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웃음)
특히 정치를 하시는 분들은 자기를 지지해 준 국민들의 뜻도 받들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국민 모두가 화합될 수 있도록 나라를 잘 이끌어 주셨으면 좋겠다는 부탁 말씀을 드립니다. 새로 당선이 되신 분들은 선배들의 잘못된 언행을 본받지 마시고 소신 있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정토회에서는 대한민국의 과제를 세 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 한반도에서 전쟁만큼은 없어야 합니다. 즉 한반도의 평화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둘째, 국론 분열이 심하기 때문에 하루속히 국민대통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셋째, 그동안 대한민국이 여러 어려움을 딛고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발전해 왔는데 최근에 들어와서 장기 침체 국면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해서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대한민국이 다시 지속적 발전을 하려면 평화가 정착되어야 하고, 국민이 통합되어야 하고, 경제를 비롯하여 모든 사회시스템이 꾸준히 발전해야 합니다.
6.13만인대법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런 세 가지 바람을 갖고 6월 13일에 전라북도 장수군 죽림정사에서 일만 명이 모여서 대법회를 엽니다. 정토회가 주최하지만 특정한 종교 행사가 아닙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고, 미래의 후손들을 위한 행사입니다. 그러니 바쁘시더라도 모두가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원내 대표님도 참석하셨는데 이날 국회 개원 날짜를 잡으면 안 됩니다. 혹시 국회 개원 날짜가 그날로 잡히더라도 빠지시고 이 행사에 참석해 주십시오. (웃음)
다 함께 모여서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시다. 애국가에도 나오듯이 이런 일은 사람의 노력으로만 되는 게 아닙니다. 조상들의 후원과 천지신명의 보살핌과 하나님의 보호와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야 이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그날은 정성을 쏟는 날이니까 먼 길이지만 다녀가 주십시오. 먼 길을 오고 가는 것도 정성입니다. 여러분 모두를 초대하니까 꼭 와주십사 부탁 말씀을 드립니다.”
오후 5시가 다 되어 법요식을 마치고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공양간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참석한 모든 분들이 테이블에 앉을 때까지 이쪽저쪽으로 옮겨 다니며 자리를 안내하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식사를 할 겨를도 없이 테이블마다 찾아다니며 바쁘신 중에 참석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맛있게 드셨어요?”
“네, 잘 먹고 갑니다.”
참석한 내빈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나가자 그제야 스님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저녁 6시부터는 공동체 지부 대중들과 함께 스승의날 행사를 했습니다. 하루 종일 부처님오신날 행사 준비를 하느라 바빴던 사람들도 모두 하던 일을 내려놓고 3층 설법전으로 모였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오신날이면서 동시에 스승의 날입니다. 공동체 지부 대중들은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스님에게 꽃을 달아 드렸습니다.
삼배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다 함께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렀습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스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행자님들을 위해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정토회가 공동체를 형성한 지 이제 30여 년이 지났습니다, 우리가 처음 공동체를 만들었을 때는 이번 한 생은 이 세상에 안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세 가지 목표를 위해 살기로 했습니다. 첫째, 부처님의 본래 뜻인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이 땅에 싹틔우고 꽃을 피워보자는 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둘째, 우리나라가 전쟁이 없는 평화와 분단을 극복한 통일을 이루어서 강대국에 속박받는 나라가 아니고 자주 국가가 되는 나라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원을 가졌습니다. 셋째, 지구 환경을 생각했을 때 ‘수행자로서 전 세계인의 평균 이하의 생활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원을 세웠습니다. 부처님처럼 밥을 얻어먹고 옷을 주워 입고 잠을 나무 밑에서 자는 생활은 못하더라도 60억 세계 인구 중에 절반 이하의 생활 수준을 우리가 유지해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비교한다면 하위 10%에 해당하는 빈곤층 수준의 생활을 해나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부처님 당시 출가 수행자들과 비교하면 호화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좋은 일 하니까 누가 도와주세요!’ 이런 말도 하지 않고 우리가 자립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집에서 돈을 얻어와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부모님도 이 활동의 후원자가 되도록 하자는 관점을 갖고 정토회를 시작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처음에 그런 정신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검소한 생활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동체가 출발할 때 정한 수행자의 원칙
그러나 저는 우리의 초심이 세상의 변화에 물들어서 많이 흐트러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규로 들어오는 젊은 세대가 볼 때는 꼰대 같은 소리가 될 수도 있는데요.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수행자로서 본분을 지키자는 관점을 가졌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수행자들은 ‘세상에는 계급제도가 있든지 말든지 상가 공동체 안에는 계급제도가 없다’, ‘세상은 성차별이 있든지 말든지 상가 공동체 안에는 성차별이 없다’, ‘세상 사람들은 잘 입고 잘 먹고 쾌락을 즐기든지 말든지 우리는 밥을 얻어먹고 옷을 주워 입고 잠을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잔다’ 이렇게 원칙을 정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세상에 물드는 게 아니고 세상 사람들이 수행자에게 물들어서 수행자를 따르고 그 가르침을 받도록 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세상 사람들이 수행자를 거지로 취급하거나 박대하지 않고 거꾸로 존경했다는 것은 그만큼 수행자 모두가 물드는 존재가 아니라 물들이는 존재가 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이 우리에 의해서 물이 드느냐? 우리가 세상에 물드느냐? 우리는 어느 쪽일까요? 소승의 중심 가치는 내가 세상에 물들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그건 그들의 세상이고 나는 거기에 물들지 않겠다고 한다면 소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승의 중심 가치는 세상에 물들지 않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물들이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승 수행자는 세상 사람들이 이 일에 참여하고 후원하고 지지하도록 하는 정도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즉, 소승은 자기 자신만 지키면 되지만 대승은 세상을 물들이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승 보살은 원력이 가장 큰 수행의 원칙이고, 소승은 자기를 지키는 계율이 수행의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그러니 소승을 포함하는 대승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지키면서 동시에 세상을 물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을 물들인다면서 자신도 물든다면 그는 수행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사는 모습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칭찬받을 만합니다. 요즘 세상에 정토행자 같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자는 것도 생활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세상의 기준을 두고 보면 여러분 모두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출발할 때 정한 수행자의 원칙에서 본다면 우리는 지금 많이 물들어 있는 존재라는 걸 자각해야 합니다. 원칙을 너무 강조하면 소수만이 따르고 결국 세상으로부터 고립될 위험이 있습니다. 세상과 함께한다고 세상의 물정을 자꾸 받아들이다 보면 결국 세속화가 됩니다. 이름만 수행자고 이름만 공동체일 뿐 세상하고 별 차이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중도적인 관점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이 있지만 그러나 현재 우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 있습니다. 이 현실을 인정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이 현실을 극복하는 데 있습니다. 이런 관점을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가져야 해가 거듭될수록 변화가 일어나고 수행자로서 발전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런 관점을 못 가지면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퇴보해서 ‘초심이 중요하다!’ 하고 초심을 강조하는 쪽으로 자꾸 나아가게 됩니다.
세상을 물들이는 존재
우리가 왜 이렇게 모여서 사는가에 대한 목표를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의 목표를 잊어버리면 우리는 불쌍한 존재가 됩니다. 먹는 것에 껄떡거리고, 입는 것에 열등의식 가지고, 자는 것에 불편을 느끼고, 일하는 것에 지친다면, 주위로부터 칭찬은 받을지 모르지만 세상이 우리를 불쌍히 여깁니다. 세상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는 세상을 물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부러워하면 우리가 세상에 물듭니다. 우리가 당당하고 거침없고 쾌활해야 세상 사람들이 처음에는 거리를 두다가 점점 물이 들어서 존경심을 내고 따르게 됩니다. 그런 힘을 여러분들이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야지 여러분들이 중생으로부터 불쌍함을 받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불쌍해서 한푼 도와주는 돈을 받아서 생활할 바에야 내가 내 힘으로 내가 벌어서 먹고살지 무엇 때문에 남의 보시에 의탁해서 신세 지고 삽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보시를 당당하게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보시를 당당하게 받으려면 바로 내가 이 돈을 세상을 위해서 깨끗하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누군가가 아무리 돈을 많이 보시해도 고맙기는 하지만 비굴해지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수행자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스승의 날을 챙겨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인도, 필리핀, 부탄에 파견 근무를 나가 있는 행자들도 온라인으로 접속하여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참석한 행자들 몇 명이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렀습니다.
조촐하게 스승의날 행사를 가진 후 곧바로 스님은 문경 선유동 연수원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차로 2시간을 달렸습니다. 저녁 9시에 문경 선유동 연수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부터는 선유동 연수원에서 공동체 법사단 수련을 3박 4일 동안 진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