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생충/설국열차 스포일러!!!!!!!!!!!!!!
※ 영화 리뷰는 평어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동도들의 깊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송강호(기택)은 어떤 인물인가?
무골호인처럼 보인다. 권위적이지도 않고, 돈에 대한 욕심도 없어 보인다.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측면도 있지만, 사람 자체는 참 좋아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 모습이 자기 방어를 위해 선택한 현실 도피의 결과적 모습일 뿐 이라고 생각한다.
기택의 시점에서 이 영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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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상승의 소망을 끝내 달성할 수 없었던
한 실패한 중년 사내가 현실 도피를 선택하고 표류하며 살던 중에,
상류층 박사장과 얽히게 되면서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던 자신의 현실(실패자, 하류인생)을 직시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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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택은 원래, 그의 아들처럼
계획이 있고, 그 계획이 어그러지더라도 또다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길 만큼
꿈과 야망이 큰 사람이었다.
지상과 지하의 경계, 반지하 그의 집 은,
그의 삶에서 이제까지의 포지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곧,
기택은 하층민이지만 하층과 상층의 경계선에서,
위로 올라갈 거라는, 신분 상승에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꿈을 꿨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거듭된 사업 실패로 야심이 꺾이고 자존감의 급락을 경험하게 된다.
시궁창 같은 현실은 야망이 컸던 만큼이나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선사했고,
자존심이 센 기택은 결국, 자기 방어의 일환으로 현실 도피를 택하게 된다.
현실을 직면하기에는 그 현실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기에,
한 가정의 가장임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에서 도망쳐버린 것.
그렇기에,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지만, 반면,
모든 걸 놔 버렸기에, 탈권위적이고 소탈하며 무슨 일이든 허허하며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계획이 있던 한 젊은이를
자본주의라는 믹서기에 갈아넣은 후 나오게 된 결과물이
바로 중년의 기택인 것이다.
계획이 있는 아들과 계획은 항상 어그러진다는 걸 아는 아버지
허나,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자식의 계획에 모든 부모가 한가닥이라도 기대를 품게 된다
그냥 그렇게 변화없이 살았으면, 현실을 외면한 채 계속해서 자족하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사장과 얽힌 이후, 그렇게나 꿈꿔왔던 상류층의 삶을 지켜보게 되면서
그 눈부신 대비는 기택으로 하여금 꽁꽁 감춰놨던 현실감각을 계속해서 일깨우게 한다.
'나는 하류층이고 패배자다.'
"바퀴벌레 같은 인간" 이라는 아내의 농담,
'그들만의 냄새' 에 관한 박사장의 뒷담화와
바퀴벌레처럼 탁자 밑에 숨고 몰래 기어서 도망쳐야 했던 일들,
돈을 받았으면 찍소리 말고 일이나 해라 식의 박사장의 정색어린 말 등은
현실감각이 돌아온 자존심 쎈 기택 의 상처를 계속해서 헤집어놓게 된다.
붉게 물든 기택의 얼굴은 끓기 위해 단 1도의 상승만을 남겨둔 99도 쇠냄비의 그것과 닮아 있다.
기택은 왜 박사장을 죽였을까?
박사장과의 계속되는 '대비효과'로 인해 현실감각이 강제귀환된 기택은,
1. 거듭된 사건사고들로 멘탈이 붕괴된 시점이었고,
2. 자존감이 급락된 상태였으며,
3. 상처난 자존심은 며칠간 거듭된 칼질들로 인해 너덜너덜한 지경이었다.
멘붕, 바닥을 친 자존감, 상처 입은 자존심
이걸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위 상태들의 특징은 사람을 굉장히 날 서고, 예민하며, 공격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 박사장의 냄새에 질색하는 표정은 끓기 전에 남은 1도씨이자,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기택 멘탈의 숨통을 끊어놓은 마지막 일격이었다.
누군가 무심히 던진 돌이 개구리를 죽인다.
박사장의 이 행동은 시뻘겋게 달아있던 99도씨의 기택을 발화시킨 트리거였다.
물론, 저 행동이 사람을 죽일 만큼의 몹쓸 짓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무심히 던진 돌이 연못 안의 개구리를 죽일 수 있듯,
은연 중에 튀어나온 박사장의 코를 쥐는 행동은
상처입고 날이 잔뜩 서 있던 하류인생 기택 안에 남아있던 "마지막 퓨즈"를 끊어 놓게 된다.
그렇게 일어난 "우발적" 살인.
그리고, 제정신이 돌아온 기택은 마치 바퀴벌레처럼 숨을 곳을 찾아 지하밀실로 스며든다.
한때는, 박사장 같은 상류층이 되기를 희망했던 반지하 계층 기택이
결국, 사건사고들에 풍화되어 "근세化" 되는 순간 이다. 즉,
늙은 기택은 이제,
자신이 하류인생이라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이에 순응하게 된다.
기택의 아들은 아버지를 구하게 되길 소망하지만, 그건 "백일몽"일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하류인생이 상류층이 되는 것은 얼마나 "꿈" 같은 일인가.
기생충에서 기택은 자본주의 체제가 그어놓은 선,
그 아랫쪽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와 닮은 그의 아들은 결국 그처럼 체념하고 현실에 순응하며 살 지도 모른다.
신분 상승의 가능성이 있던 영민한 딸은 사건사고들에 휘말려들며 돌연사.
선 위 쪽의 사람들은 아래 쪽 사람들이 선을 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렇기에, 설국열차의 송강호는 열차(자본주의 체제)를 전복시키면서까지 그 선을 지워버리려 했던 거고,
그러한 일은 그저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기생충의 송강호는,
자신의 인생이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암울한 것임을 그대로 인정하고 만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최우식이 주연, 송강호는 조연역할이라 생각했는데, 진짜 중요한, 송강호가꼭해야했었던 역할이었군요
의도된 건지 아닌지는 몰라도 초반 반지하에 소독차 약이 들어올때 유일하게 기택만이 기침하지 않고 버텨냅니다.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이 죽거나 쫒겨난 후에도 (이유와 방식이야 어쨌든) 그 집에 계속 기생해서 사는 사람도 기택이지요. 진짜로 기생충이 된겁니다.
봉테일이라면 99프로 의도로 봐야겠죠.
믿고 보는 무명자 님 글 읽고 싶은데 기생충을 안 봐서 댓글만 답니다 ㅠㅠ
제목이 왜 기생충인지 잘 이해되는 글이네요!! "무심코 던진돌이 개구리를 죽일수 있다" 너무나 공감되는말입니다. 너무 좋은글 잘봤습니다. 기생충 곰곰히 생각해보면서 다시 정주행해야겠어요
겉으론 송강호집안이 기생충이지만 실제론 상류층의 가진자들이 서민들을 빨아먹는 기생충이라는 해석이 많더군요.
해석 제대로네요. 멋진 통찰력 입니다. 가생충이 진짜 담고 있는 요소가 많네요.
퍼가도 되죵?
넹
몇일 - 며칠이요. 글은 항상 잘 보고 이씁니돠욧
진짜 잘쓰세용^^
훌륭한 해석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