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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Uzbekistan
1일차
2015년 9월 11일
인천 | 17:00 OZ573 인천 출발 / 타슈켄트 향발(약 7시간 50분 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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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슈켄트 (우즈베키스탄) | 20:50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 도착 (시차 4시간)
가이드 미팅 후 호텔로 이동하여 호텔 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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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시설 | CITY PALACE HOTEL 또는 동급 | 식사 | 석식:기내식 |
타슈켄트 (우즈베키스탄) | 호텔 조식 후
타쉬켄트 기차역으로 이동 (약20-30분 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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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 고속열차 고속열차로 타쉬켄트 출발 (약2시간 20분 소요) | |||
사마르칸트 (우즈베키스탄) | 10:20 사마르칸트 도착
청록색 푸른도시 사마르칸트 유적 관광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레기스탄 광장, 아프로시압박물관
티무르황제가 가장 사랑한 왕비이자 비극의 주인공 비비아늼의 모스크
지배자의 묘라 불리우는 구르에미르 영묘
1400년대 뛰어난 천체기술을 보여주는 울르그벡 천문대
호텔 투숙 및 휴식 | ||
숙박시설 | Asia Samarkant | 식사 | 조식:호텔식 중식:현지식 석식:현지식 |
사마르칸트 (우즈베키스탄) | 호텔 조식 후
사마르칸트 출발 / 샤크리샵으로 이동 (약 3시간 30분 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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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크리샵 (우즈베키스탄) | 티무르의 고향 샤크리샵 도착 및 관광
티무르 왕국의 대표적인 건축물 악사라이 궁전
티무르 왕가의 무덤 코쿰바스 모스크, 이맘궁전 등 관광
오아시스의 도시 부하라로 출발 (약 5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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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라 (우즈베키스탄) | 부하라 도착 후
특전 1) [중앙아시아 전통 민속공연 디너쇼] : 4월부터 공연시작됩니다. : 중앙아시아 전통 옷을 차려입고 공연하는 민속공연 패션쇼
호텔 이동 및 투숙 | ||
숙박시설 | Asia Bhukhara Hotel 또는 동급 | 식사 | 조식:호텔식 중식:현지식 석식:디너쇼 |
부하라 (우즈베키스탄) | 호텔 조식 후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중심지 부하라 관광
실크로드의 중심관문으로 웅장한 외벽을 자랑하는 아크시타델
부하라의 상징 칼란모스크 & 거대한 첨탑 칼란미나렛
부하라의 구시가지 라비하우즈, 볼로하우즈 및 근처 모스크 관광
중앙아시아 최초의 벽돌건축물 이스마일 사미니사원, 마드라세 등
특전 2) [중앙아시아 전통 BBQ 샤슬릭] : 중앙아시아 유목민 전통 숯불꼬치식 (양꼬치, 소고기꼬치 등)
부하라 공항으로 이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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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슈켄트 (우즈베키스탄) | 21:35 HY1328 부하라 공항 출발 (약 1시간 30분 소요) | ||
23:05 타쉬켄트 공항 도착
* 국내선은 현지사정에 따라 항공편 및 출도착 시간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호텔 투숙 및 휴식 | |||
숙박시설 | City palace 또는 동급 | 식사 | 조식:호텔식 중식:현지식 석식:샤슬릭 조식:기내식 |
타슈켄트 (우즈베키스탄) | 호텔 조식 후
타쉬켄트 구시가지 관광
우즈벡 이슬람 종교교육기관 구켈다치 마드라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스만코란을 보관하고 있는 하스트 이맘 콤플렉스
영화 "나의 결혼원정기" 촬영지 알툴카심세이흐 사원
타쉬켄트 신시가지 관광
: 독립광장, 티무르광장, 지진기념관, 2차대전 기념비, 국회의사당 등
* 항공 이동 시간관계로 관광일정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타쉬켄트 공항으로 이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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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 HY777 타쉬켄트 공항 출발 (약 1시간 20분 소요) |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
통화-우즈베키스탄 솜
공식 언어-우즈베크어
인접국-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프카니스탄
우즈베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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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역사 정치적으로 이 지역에 원시적인 개념의 국가가 형성된 것은 기원전 3-4세기 경인데 이때 이미 이 지역은 알렉산더 대왕의 침략을 받았다. 5∼6세기 경에는 봉건국가 형태의 틀을 갖추었지만, 동서 무역로의 중심지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8세기 무렵엔 아랍인 들이, 13세기 경에는 몽골의 징기스칸이 이 지역을 정복하여 통치하였다. 오늘날과 같은 우즈벡의 민족적, 정치적 정통성이 수립된 것은 15세기 말 이후 이 일대에 징기스칸의 후손들이 각지에 한국을 건설, 통치하면서 부터였다. 몽골의 후예이자 투르크계인 이들 한국의 지배자들은 자기들을 따르는 자들을 '우즈벡' 이라고 불렀다. '우즈'란 '자기 자신, 진짜, 핵, 중심'이란 뜻이고, '벡'은 '백부장'이라는 뜻이다. 즉, 우즈벡은 '진짜백부장, 심복, 신하들' 이라는뜻이 된다. 소련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에는 민족자결 원칙에 의해 우즈벡에 대한 간섭을 하지 않았으나, 중앙아시아 일대가 반 혁명세력의 근거지가 되자, 칸의 세력을 붕괴시킨 후 인민 정권을 세웠고, 1922년에는소연방에 가입하게 만들었다. 이래서 우즈베키스탄 외에도 같 은 투르크계인 투르크메니스탄, 키르키즈스탄, 카자흐스탄과 이란계인 타지키스탄 등이 소 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다가 스탈린 치하인 1930 사할린의 우리동포들이 이 일대 나라들로 강제 이주 되기도 하였다. 1990년 소연방이 와해되면서 1991년 9월 1일 이들 중앙아시아 나라들은 모두 소연방으로 부터 분리 독립하였다. 그러나 독립 이후에도 우즈베키스탄은 구 소연방에 해당하는 독립 국가 연합의 협조적인 일원으로 지금도 러시아와 경제, 군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독립 후, 세계 40여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고, 1992년에는 UN 에 가입했다. |
지리, 기후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중심부에 동서로 길게 자리잡고있는 나라이다. 국토는 남북간의 거리가 925Km, 동서간은 1400km이며 면적은 약 447,400㎢ 로 이 면적은 우리나 라 남북한을 합친 면적의 약 두배이다. 위도상으로는 우리나라보다 약간 높아서 만주일대 와 같은 북위40°선에 위치한다. 중앙아시아의 중심부투란분지를 차지한 나라로 국토의 4/5가 평원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강우량의 부족으로 이 평원의 중북부는 구소련에서 두 번재로 큰 키질쿰 사막으로 되어있다. 동쪽 국경 지대 5분의 1은 산악지방으로서 동북부 쪽은 텐샨 산맥의 산자락에, 서남부 쪽은 파미르 고원에 부분적으로 걸쳐있다. 이 산악 고지 대중 높은 곳은 해발 4,000m가 넘는 고지대들인데, 이곳 고지대 산악의 눈 녹은 물과 지하수로 인하여 관개사업이 전개되어 비가 없는 사막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면화 생산국이 되었다.
대륙성기후 우즈베키스탄의 기후는 전형적인 사막형 대륙성 기후로서, 평균 기온이 7월에는 섭씨 영상40 ~ 46°, 1월에는 영하 6°정도이다. 습도가 매우 낮으며, 일교차가 심하여 한 여 름에도 밤에는 서늘하다. 그 대신 연간 일조시간이 2,700 ~ 3,130 시간으로 맑은날이 300일이상 계속된다. 우리나라 서울의 일조 시간이 2,170시간인데 비하면, 엄청난 일사량인 것이다. 비는겨울에 소량 내릴 뿐이므로 우리나라에 비하면 연중 건조한 편이다. 4계절 이 뚜렷하지만 겨울이 아주 짧으며, 봄은 긴 편이고, 여름이 뜨겁고, 가을은 온화한 것이 우리나라와의 차이이다.
사회, 문화
2006년 통계로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는 27,300,000명이다. 우즈베키스탄은 100여개가 넘는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이라는 국호가 말해주듯이 우즈베 키스탄은 우즈벡人이 71.4%로서 다수를 차지한다. 그 밖에는 모두가 소수 민족인데, 러시아인(8%), 타지크인(4%), 칼라칼파크인(2%), 키르키츠, 카자크, 투르크멘인을 합해 5%, 타타르인(4.1%), 터키인(4.7%), 고려인(1%)등이 있다. 구 소련 시절에는 우즈벡어와 러시아어가 공용어였다. 그러나 1991년 독립 이후, 우즈벡어만 공용어로 인정된다. 하지만 주요 호텔이나 관광서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할 때는 주로 러시아어를쓴다.
우즈벡은 특정 종교를 국교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체 인구중 약 90%가 이슬람교이며 그중 약 70%는 수니파, 20%는 시아파교이다. 온건한 수니파가 압도적이다보니 터키의 세속적 신앙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우즈벡 정부는 과격한 시아파 원리주의가 확 산되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교육
우즈베키스탄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전혀 교육비가 들지 않는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유치원을 마친 후 우리나라학교의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교등학교 3년교육에 해당하는 1 ~ 11학년까지를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기가 원하는 대학을 가게된다. 8학년이나 9학년이 되어서 계속 학업을 원치 않는 학생들은 취업을 중심으로 한 전문대학을 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계속수업을 원하는 학생들은 주간 5년제, 야간 6년제인 대학을 가게 된다. 왜 교육기간이 긴가 하면 9월학기가 새학년의 시작이되고 8월중순에 대학시험을 치뤄서 9 ~ 11월 까지 세계 제2의 생산품인 목화를 따러 가야하기 때문에 목화를 딴 것으로 등록금을 내지 않고 가 수업기간으로 해서 교육을 받게 된다.
우즈베키스탄
1.역사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우즈베크어: Oʻzbekiston Respublikasi, Ўзбекистон Республикаси 오즈베키스톤 레스푸블리카시), 약칭 우즈베키스탄(우즈베크어: Oʻzbekiston, Ўзбекистон 오즈베키스톤, 문화어: 우즈베끼스딴)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내륙국이고,[1] 수도는 타슈켄트이다. 이 나라의 주민 다수는 우즈베크인이며, 이들 대부분은 이슬람교 신자이다. 공용어는 우즈베크어이지만,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전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공화국이었기 때문에 러시아어 사용자도 일부 있다. 현재는 독립국가연합(CIS)의 일원이다(1991년 12월 CIS에 가입). 이 나라는 1924년에 소련에 병합되었으며, 1991년 12월 8일에 독립을 선언하고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현재의 국명으로 개칭하였다.
주요자원은 석탄·천연가스·금·동·텅스텐 등이며, 부존자원은 풍부한 편이다. 면화재배가 성하며, 그 밖에 쌀·양·누에고치의 생산도 많다. 천연가스와 석유·갈탄·구리·유황의 산출 및 전력이 있고, 기계제조(농기·방직기·광업기·화학·식료품 공업용 장치류), 질소·과린산비료, 직물(견·면), 식료품공업이 발달해 있다.
2.지리
동쪽은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남쪽은 아프가니스탄, 남서쪽은 투르크메니스탄, 북쪽과 북서쪽은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한다. 북서 일부는 아랄 해에 면한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중부에 위치한 나라이다. 이곳도 사막성 기후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곳이다. 아랄 해가 위치해 있지만, 소련 시절엔 강을 개간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현재는 호수 면적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3.우즈베키스탄은 12개의 주(viloyat)와 1개의 자치 공화국(respublika), 1개의 특별시(shahar)로 구성되어 있다.
4.기후
우즈베키스탄은 사막형 대륙성기후에 속하기 때문에 국토의 대부분이 연중 매우 건조하며 대체로 길게 지속되는 여름은 건기로서 열대공기의 영향으로 매우 뜨겁고 건조하며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여름에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다가 미처 땅에 도달하기도 전에 말라버리는 마른비가 내린다. 반면 겨울에는 우기로 비와 눈이 자주 내리면서 비교적 습도가 높고 강수량이 적은 편이고 굉장히 춥다.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 기후의 특성을 잘 나타내준다.
5.정치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소비에트에서 독립하면서 독립당시 우즈베키스탄 공산당 서기장으로 있던 이슬람 카리모프가 우즈베키스탄의 대통령이 되었다. 헌법이 제정된 이후 대통령의 연임이 가능하도록 개정하였으며, 이후 종신직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하였다.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며, 1995년 12월에 신설되었다.
휴먼라이트워치와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반체제인사에 대한 심문과 고문을 비판하고 있으며, 카리모프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독재자로 비난받고 있다. [3]
카리모프 대통령은 또한 2006년 5월 13일 안디잔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에 발포명령을 내리는 등 무력으로 강경진압하여 500~1500명(추정)을 학살하여 국제사회의 많은 비난을 받았다. [4]
러시아와도 가깝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적대적이기도 했다. 2012년에는 집단 안보 조약 기구에서 탈퇴했다.
6.주민
우즈벡족은 원래 타지크 민족과 15세기에 그들을 정복한 몽골 민족의 혼혈이라고 한다. 몽골제국의 세력이 위축되던 시기인 1312년에서 1340년까지 시르다리야 강의 북부 유목지역을 통치한 사람의 이름이 ‘우즈벡 칸’ 이었다. 우즈벡 칸이 이슬람을 강력히 전파하면서 우즈벡이라는 말이 무슬림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점차 이들의 세력이 점차 커지면서 우즈벡이라는 이름의 왕조와 국가의 명칭 그리고 민족명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14세기까지 이 지역 사람들을 ‘큽착인’이라 불렀으며 ‘우즈벡’이 민족명으로 사용된 것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무렵으로 추정된다. 14세기 중엽 이후 차가타이 칸국이, 14세기 말에는 큽착왕국이 쇠잔해짐으로써 중앙아시아의 힘에 공백상태가 나타났다. 15세기 중반에 이르자 투르크계 장군 압알하일 칸이 큽착초원에 강력한 국가를 건설함에 따라 그의 일족들과 그를 따르던 자들을 ‘우즈벡’이라고 부르게 되면서 이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는 2760만 6007명(2009년 추정치)이며, 130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6] 현재 우즈베키스탄에는 우즈벡 민족의 이슬람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으로 러시아 인들과 다른 소수 민족들의 입지에 대한 불안으로 우즈베키스탄을 떠나고, 옛 소련의 다른 나라에서 우즈벡인이 돌아오고 있어서, 소수 민족의 비율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989년 통계에서 러시아인들의 비율이 35%였으나, 2005년에는 3.7%로 대폭 감소하였다. 2005년에 전체 인구 중 우즈벡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80%로 가장 많으며 그 밖의 타지크인(5%), 러시아인(3.7%), 카자흐족(3.6%), 타타르족(0.61%), 고려인(0.6%)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는 동부지역, 특히 페르가나 분지에 집중되어 있다. 지역별로 보면 사마르칸트 주에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다음으로 페르가나 주와 타슈켄트 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인구밀도 면에서 수도 타슈켄트를 제외하면 안디잔 주와 페르가나 주가 가장 높은 편이다.
참고로 인접국가인 카자흐스탄의 인구는 현재 1,518만 명이다.
7.언어
우즈베키스탄은 공식적으로 우즈벡어를 사용하며 우즈벡어는 우즈베키스탄의 공용어이다. 우즈베크어가 74.3%가 되어 있지만, 민족 간의 소통언어로는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아직까지 러시아어만 알아도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독립 이후에 우즈베크어 사용을 권장하고 있기 때문에 공용어에서 배제된 러시아어의 중요도는 떨어졌다. 특히, 지방, 농촌으로 가면 러시아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꽤 많고, 청년층에서는 러시아어를 말할 수 없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우즈벡 정부의 민족주의 노선에 따라 거리의 대부분 간판이나 공식서류가 거의 우즈벡어로 되어 있으며 2004년부터는 100% 우즈벡어로만 공식 서류가 발행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계와 고려인 등 우즈벡어를 모르는 소수 민족들은 생활의 불편과 함께 그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영어 사용률은 1%도 되지 않는채 그 사용률이 적다. 그러나 정부 홈페이지는 영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러시아어는 이민족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잡을 때에 중요한 언어이며, 특히 도시에서 이 경향이 강하다. 또, 사업, 학술 등의 분야에서는 러시아어사용이 필수적인 경우도 많고, 대부분의 대학교육에서 러시아어가 교수언어가 되고 있다. 러시아어는 전인구의 14.2%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제1언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외의 사람들도 대부분이 러시아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지방에서 러시아어사용은 제한되어 있으며, 심지어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에서 아이들은 도시중심부에서조차 러시아어에 숙달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2003년 보고에 의하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러시아어를 말하거나 또는 이해할 수 있으며,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밀접한 외교관계가 생겨난 때부터, 정부에 의한 러시아어사용을 비권장이라고 판단하는 운동은 급속히 시들고 있다.[7] 또, 초등교육에서 교수언어는 우즈베크어와 러시아어로 나뉘어져 있으며, 대학진학이나 사업에서 유리하게 되기 때문에, 우즈베크인이라도 교수언어로 러시아어를 선택하는 사람도 많으며, 영어 사용률은 거의 없다.
우즈베크어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된 언어이며[8], 1992년 이후 로마자에 의한 표기법이 도입되었다. 사마르칸트나 부하라, 샤흐리삽스, 키타브 등 남부 지역, 나망간, 코칸트, 페르가나, 카산, 카니바담 등의 페르가나 분지지역, 바기스탄 등의 시르다리야 강 연안지역에서는 타지크어가 광범위하게 걸쳐서 사용되고 있지만, 학교교육에서 타지크어교육은 금지되어 있으며, 가정이나 지역 공동체에서 사용되는 언어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타지크어는 대부분 우즈베크어화가로도 있기 때문에 통계에서는 타지크어의 비율은 4.4%로 낮아졌다. 하지만, 전인구의 20%~30%전후가 타지크인이기 때문에, 타지크어화자도 엇비슷하게 있을거라고 추정되고 있다.[9]
1920년대 이전에 우즈베크어 표기로 아랍 문자 필기체인 나스탈리크 체로 사용하고 있었다. 1926년에 새롭게 로마자가 도입되었고, 1930년대를 통해 몇차례의 문자계정을 거쳤다. 1940년에는 다시 문자개정이 행해지고, 소련정부에 의해 키릴 문자로 바뀌었다. 키릴 문자의 사용은 소련붕괴까지 계속되었지만, 1993년 우즈베키스탄은 재차 로마자를 정서법으로 제정, 1996년에 법제화가 행해지며 2005年년이후에는 학교에서 가르칠 때에 로마자를 사용한 지도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10] 그렇지만 공식출판물 등에서는 로마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전히 키릴 문자를 사용한 간판이 자주 눈에 띄는 등 키릴 문자 사용은 널리 행해지고 있다.
우즈베크어(74.3%), 러시아어(14.2%), 기타 언어(타지크어, 카자흐어, 투르크멘어(4.4%))순으로 되어 있으며 그 외, 부하라어, 카라칼파크어, 카자흐어, 키르기스어, 크림타타르어, 중앙아시아 한국어 등도 사용되고 있는 다언어국가이다.
8.주민의 88%가 무슬림이며, 이 중 다수(70%)가 수니파이다. 원래 불교와 조로아스터 교의 영향을 받았으나, 8 ~ 9세기 경, 이슬람 제국의 침략으로 이슬람화 되었다. 1991년 독립 이후에는 이슬람 부흥 운동으로 자발적인 이슬람 교육과 여성들의 베일 착용이 증가하였다. 소수 종교 중에서 러시아 정교회를 포함한 기독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9.교육
1991년 이후, 로마 문자 차용, 의무 교육의 단축 등을 시행하여 교육 제도를 개혁하였다. 학생 수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2001년 기준)하며, 평균 취학 기간이 11.4년, 문자 해독률이 99.1%, 교육 비용이 국내총생산의 7.9%를 차지한다.
10.경제
과거 우즈벡 민족은 실크로드 상의 무역에 종사했던 민족이다. 우즈벡 민족에 대해서 "우즈벡 사람들은 달나라에 가서도 장사를 할 사람들이다."라는 카자흐 속담이 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은 농업이 주요 산업으로 면화 재배가 널리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카자흐스탄이 석유자원의 개발을 통하여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우즈벡 민족이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서 경제적인 부를 가장 많이 축적했었다고 여겨진다.
11.문화
1991년 독립 이후, 이슬람 문화가 복원되었다. 전통 문화로는, 4분의 3박자의 민요와 '차반'을 입고 노래와 춤을 추는 것이 있다. 또한, '바자르'라 불리는 노천 시장과, '유르트'격인 '마할라'라 불리는 마을 단위 조직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주요 역사적 인물
■ 「아미르 티무르」(1336-1405)
•몽골계 유목민 출신으로 칭기즈칸의 유업을 이어받아 유라시아에 걸쳐 티무르 제국(1369-1507)을 건설
•티무르는 군사적
정복뿐만 아니라 문화 창달에도 기여
•티무르는 푸른색을 좋아하여 사마르칸트를 푸른색의 도시로 건설
■ 「울르그벡」(1394-1449)
•티무르의 손자로 40년간 통치한 군주이자 유명한 천문학자
•십진법, 기하학, 삼각법이 도입되는 등 사마르칸트를 고도의
학문과 문화 도시로 발전
•시‧역사‧신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사마르칸트에 저명한 천문학자들을 모아 천문대를 세우고 천측표를 개발
•그러나 과학발전에 반발하여 종교를 우선시하는 회교승려의 사주로 아들이 보낸 자객에 의해 피살
■ 「알리세르 나보이」(1441-1501)
•우즈벡 문학의 창시자이자 정치가이며 1472년 ‘호라산’ 왕국의 장관으로 학교‧병원 등을 지어 서민들을 도와주었으며,
문학가‧예술인 등을 지원하여 문화 창달에 기여
•다섯 개의 시편(“함사”(khamsa)라 부름)이 최대 걸작
•우즈벡 국민들은
알리세르 나보이를 우즈벡 문화 창달은 물론 민족정체성을 고양한 위대한 인물로 존경하고 있으며 거리‧학교‧도서관 등 많은 시설물이 ‘알리세르
나보이’라는 이름을 보유
우즈베키스탄 여행 안전정보
99년 2월 수도인 타쉬켄트에서 대통령을
목표로 한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12명의 사상자나 발생하였고, 2004년에는 4월과 7월에 걸쳐 주재국 정부기관과 외국 대사관을 목표로 한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60여명이 사망한 바 있습니다.
2005년 5월 안디쟌에서 발생한 소요나 주변국인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정세가
계속 불안한 상황인 점을 감안할 때, 당분간 주재국에서의 테러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신변안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현재, 동부(페르가나, 안디잔, 나망간)지역과 남부 아프간접경(테르미즈)지역은 여행유의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치안 상태는 보통
수준입니다.
최근, 가파른 물가상승, 국내적으로 높은 실업률, 낮은 임금 수준, 심각한 빈부격차 등의 요인을 감안할 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 테러, 강도 등의 범죄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혼자서 외출을 하거나 밤늦게 다니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외출 시 주재국 경찰이 신분증이나 여권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반드시 신분증을 소지해야 합니다.
불의의 사고나 피해를 당했을 겨우 즉시
대사관에 연락할 수 있도록 대사관 전화번호(998-71-252-3151/2,3)를 기록하여 소지해야 합니다.우즈베키스탄 국민의 80%이상이
이슬람 신자인 바, 이들을 자극하는 공공연한 기독교 선교행위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CIS회원국가 국민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은 반드시 사전에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에서 비자(사증)을 발급받아야 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입국 사증 발급은 일반적으로 1-2주일 정도 소요되는데, 아래와 같은 절차와 구비서류를 제출하여 취득하실 수
있습니다.
- 초청장, 여권,
사진1장, 신청서(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 비치)
- 우즈베키스탄의 초청기관이 우즈베키스탄 외무부에 초청장 제출
⇒ 우즈베키스탄 외무부 검토
⇒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에 승인번호(TELEX NO)
통보
⇒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 사증
발급
- 단수사증(7일 $40, 15일 $50, 1개월 $60, 3개월 $80, 6개월 $120, 1년 $160),
복수사증(6개월 $150, 1년
$250), 단체사증(15일 $15, 1개월 $25),
경유사증(24시간 $20, 48시간 $25, 72시간
$30)
※단, 상용비자 발급을
위해서는 초청기관인 회사가 초청장을 작성하여 우즈베키스탄 외무부에 제출하여야 하고, 관광비자는 여행사를 통해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외환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어, 출입국시 세관신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보통 세관신고서는 인천-타쉬켄트를 운항하는 기내에서 제공하거나, 타쉬켄트
국제공항 내에 세관신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
입국시:
1. 세관신고서 2장 작성
2. 세관 확인
3. 1장은 세관당국 보관, 1장은 본인 보관(출국시 반드시
필요합니다.)
4. 입국수속 완료
* 출국시:
1. 입국시 작성한 세관신고서 1장과 또 다른 출국세관신고서 1장을
작성
2. 세관에 2장 모두 제출
3. 세관 확인(외환 통제를 위한 확인이므로 정확하게 기재할 것!)
- 이 때, 출국시
신고한 소지현금이 입국시 신고한 액수보다 많을 경우 차액에 대한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 신고한 현금과 실제 소지한
현금이 다를 경우,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습니다.
(최근, 출입국시 동법 위반으로 인한 처벌 사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하면, 3일 이내(근무일 기준)에 외국인
등록처(OVIR:오비르)에서 거주등록(PROPISK:프로피스크)를 해야 합니다. 호텔 투숙객은 자동적으로 호텔에 거주 등록에 되지만, 개인
아파트 등에 거주하는 경우 현지 아파트 주인과 함께 혹은 개인적으로 거주등록을 꼭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