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가진 자 사이에도 의견이 나누입니다.
같은 성경을 가지고, 다른 교리로 인해 보이지 않는 전쟁과 전투가 진행됩니다.
붉은 피가 뜨겁게 흐르도록 서로를 찌르고, 베어 버립니다. 그중 한 가지가 초대교회에 있던 은사는 오늘날 없다는 은사중지론자와 초대교회에 은사는 여전히 오늘날도 있다는 은사지속론자 사이에 전쟁입니다.
은사중지론 대표적 인물은 영국 신학자이면서 목회자인 존 스토트 목사님입니다. 은사지속론 대표적 인물은 신사도운동을 하는 피터 와그너입니다. 특히, 오순절 계통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은사지속론을 주장하고, 활발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장로교는 고 하용조 목사님과 교회는 성령 운동과 은사주의 문을 활짝 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개혁주의 신학의 아버지 같은 박윤선 박사님도 방언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하였습니다. 반면 같은 장로교 안에 총신대학원 교수였던 서철원 교수님은 은사중지론을 여전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철원 교수님은 방언은 존재하지도 않고, 인간이 꾸며내며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은사중지론을 주장하는 자는 이런 질문에 답을 해야 합니다.
1. 초대교회에는 있던 은사인 예언과 방언이 왜? 언제? 어디서부터? 갑자기 중지되었는가?
2. 천년왕국을 초대교회부터 마지막 예수님의 재림으로 보는 무천년설주의자 중에 은사중지론자는 그 천년의 시기 동안 왜 초기에는 은사가 있다가 같은 천년의 기간 중 어느 순간부터는 은사가 없게 되었는가?
3. 예언, 방언, 축사, 이런 특별은총은 사라졌는데, 하나님의 섭리, 기도를 통한 기적적 응답, 중동 무슬림에게 나타난 예수님의 환상 같은 특별한 역사는 어떻게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본문에서 바울은 분명히 방언이 존재하고, 예언도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12절, #김영한, #아침개인묵상
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1) 바울은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신령한 것들 중 무엇을 더 사모하라고 하였나요? (1절)
예언을 더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2) 방언은 누구에게 하는 것일까요? 그 목적은 무엇일까요? (2절)
사람에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합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 증거가 됩니다.
3) 예언이 주어진 목적은 무엇인가요? (3절) 예언은 믿는 자에게 덕을 세우고, 권면과 위로를 준다고 하였습니다.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1) 방언과 예언은 각각 누구의 덕을 세운다고 하였나요? (4절)
자신의 덕을 세고,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 하였습니다.
2) 바울은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무엇을 또한 더 사모하도록 하였나요? (5절)
방언을 하는 자는 통역을 통해 교회에 덕을 세우도록 하되, 그렇지 않으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3) 바울은 자신도 방언을 하였습니다. 자신도 방언으로 말하지만, 더 나아가 무엇을 더 사모하도록 하였나요? (6절)
계시, 지식, 예언,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유익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4) 나 자신은 어떤 성령의 은사를 사모했었나요? 지금도 어떤 은사가 있으면 좋겠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 바울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하는 것을 무엇에 비유하였나요? (7~9절)
피리, 거문고를 연주할 때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7절).
나팔을 불 때 분명하게 소리를 내지 않으면 누구도 전투를 준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8절).
이처럼 명확하고,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내용을 알 수 없고, 허공에다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9절).
2) 너무 어렵게 말하려는 교수, 목회자, 선생님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3) 오늘날 교회는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나요? 처음 믿는 자에게 교회가 너무 어려운 교회 문화 혹 의사소통 방식을 고집하는 어떤 경향은 없을까요?
10.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1) 바울은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가 없는 것처럼 방을 할 때, 무엇을 주의하라고 하였나요? (10절)
방언으로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는 외국어를 하듯 하지 말고, 통역자를 사용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명확히 하라고 하였습니다.
2) 바울은 방언이 잘 못 된 것이 아니라 무엇에 포커스를 맞추라고 하였나요?
‘교회의 덕’을 세우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방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통역을 통해 분명히 그 소리를 명확하게 하고, 자신의 덕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은사를 잘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3) 요즘 교회에서 자신과 자신의 가정의 유익을 위하며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자들이 그럴까요?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위해서 무리한 세습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와 자신의 가정 식구들이 중요 요직을 다 차지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성도들도 자신과 자신의 가정의 이익만 구할 때가 많습니다.
4) 오늘 말씀 중 받은 도전 혹 은혜는 무엇인가요?
주님!
개인주의화 된 이 시대 정말 제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덕’을 세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