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연등을올리는이유을 읽었다. 오혜영은 음력 1938년 4월 4일에 태어났으니 2024년 7월현재 만86세의 고령이다. 9남매의 세째 딸이었는데 아빠가 공부를 싫어해서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학교만 가면 매를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녀차별도 심해서 남동생에게만 꿀을 주어서 꿀이 뭍어있는 숫가락만 빨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혼기가 차서 서울에서 차장을 하고 있는 남편과 중매로 결혼하고 세돈금반지를 예물로 받았지만, 가난했기에 첫 아이를 낳으면서 밀린 월세와 산파비용으로 팔아야 했다.
월급을 주지않아 갓난아이를 업고 친정으로 내려가야 했고 다시 상경해서 행상으로 고생한 끝에 서울변두리에 집을 살 수있었다. 하지만 남편이 바람이 나서 반을 잘라 팔아버렸다. 게다가 술만 먹으면 폭력적이 되어서 평생 고생했다. 가까운 아내부터 시작해서 아이들까지 손찌검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시비를 붙여서 파출소에 끌려간 적도 많다. 악을 쓰고 물건을 부수는 것은 그나마 큰 피해가 없는 편에 속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속을 썩히지않고 공부를 잘해서 다행이었다.
아들에게는 결혼할 때 소형아파트를 사줄 수있었고 딸들에게는 살던 집을 팔아 똑같이 나눠주었다. 손주들도 5명이나 키워줬다. 막내 딸이 낳은 손주들만 어릴 때 미국에서 살아서 키워주지 못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아이들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였고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손주들인데 직접 키웠던 손주들이 더 보고싶다. 막내까지 결혼을 시킨후 이혼을 했다. 더이상 맞으면서 살고 싶지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딸과 같이 살았는데 이 때가 가장 편안했던 시기였다.
요양원에서는 좋아하는 찰밥도 자주해주고 친절해서 좋았다. 이제 생각이 잘 나지않고 요즈음 일은 기억도 희미하다. 그저 오남매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아들이 만든 회사에 대표이사로 거의 30년간 도움을 주었는데 그 공로를 기리기위해 공로패와 금반지를 부상으로 준다고 한다. 예쁜 세돈금반지가 있어 바로 골랐고 며느리가 해준 반지는 둘째에게 주고 중국집에서 맛있는 요리로 기념식사를 했다. 그리고 이사중에 둘째가 해준 반지를 잃어버렸기에 이번에 받은 반지도 채옥에게 줄 생각이다.
머리말 3 매년 연등을 올리는 이유, 오혜영 4 1. 나의 출생과 어린 시절 4 2. 청소년기 4 3. 20대와 30대, 결혼하고 부모가 되어 5 4. 중년으로 접어들어 10 5. 할머니가 되어 16 6. 노년을 보내며 28 자녀와 손주들의 기억 39 1. 아들 39 2. 둘째 딸 45 3. 며느리 47 4. 큰손자: 주현 63 5. 막내딸 64 6. 둘째손자: 준하 66 7. 세째손자: 성하 68 8. 공로패 69